작가명 : 이영도
작품명 : 폴라리스 랩소디
출판사 : 황금가지
이영도의 글은(필력) 독특하다. 그 말은 사람들의 기억에 남는 글이며 개성이 넘치는 필력을 지녔다는 말이다.
그의 재주에 가장 큰 장점은 독자들의 수준에 따라 작가가 낸 수수께끼 같은 철학을 해석하는게 천차만별이기 때문이다.
그의 주제는 적나라하지만 그 속에 함정이 있으며 양파 껍질처럼 벗기면 벗길수록 숨겨진 속살의 향이 더욱 강렬하다.
극중 큰 핵이 되는 두 주인공. 해적 선장 키와 해적노예 오스발의 차이는 완성형과 비완성형이다.
키는 완성된 캐릭터이고, 오스발은 비완성된 캐릭터다. 키는 소설에서 두가지를 상징하는 자유와 복수중에 복수를 위해 자유를 버린다.
키의 함선 자유호와 그의 애검(명검) 복수는 이야기의 핵심을 상징하는데 그는 결국 분노에 못이겨 자신 직접 죽이-명검 복수로-러 떠난다.
즉, 복수를 위해 자유를 버린다는 것을 상징한다.
오스발은 비완성형 캐릭터다. 그는 노예이지만, 그에 대해 어떠한 불만도 없으며, 자유를-해적을 시켜준다는-준다는 키의 제안도 거절한채 노예로 있기를 원했다.
그 이유가 가관이다.
해적은 죽이지만, 노예는 해군에서 죽이지 않는 다는 이유다.
그에 대한 키의 평가는 한마디로 버러지다.
오스발은 즉, 충동적 의지가 없으며, 아직 아무것도 갖추어지지 않는 채워야 할 캐릭터고, 결국 타인(공주)의 요청으로 도주하게 된다.
그런 키가 말리는 부하들을 물리면서까지 공주도 아닌. 버러지 노예를 죽이기 위해 위험한 대지로 여정을 왜? 떠나는가
키의 입장에서는 공주와 노예는 그의 소속물이다. 특히 공주는 키가 행할려는 행사(?)에 쓰일 아주 귀중한 물건이다.
귀중한 물건이 오스발이 강탈해갔다.
즉, 자신에게 해를 입혔다.
고로 복수를 해야 되지 않겠는가? 그의 솔직한 감정을 표출한 의사야 말로 자유가 아니겠는가.
즉, 복수와 자유. 이 두가지 어울리지 않는 것들이 묘하게 뫼비우스의 띠처럼 연결이 된다.
하지만. 이것은 멍청한 소리이며 또 말이 안된다.
바다 위에서 온갖 패악을 저질르는 무법자가 해적선장 키다. 바다에서 만큼은 그는 그 누구보다 자유롭다.
그런 그가 복수라는 자유의사를 지키기 위해 자유를 버린다.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이 양반의 글은 항상 모순으로 부터 출발한다.
그리고 이야기의 전개상 복수와 자유. 이 두 상징은 끝없이 서로의 존재를 부정하며 엇갈리는 상황이 연출되고, 또 서로의 존재를 인정해야지만 존재 가치의 정당성을 얻는다.
아무래도 작가는 모순이라는 단어에 큰 매력을 느끼고 굉장한 힘이 있으며 모든 철학의 출발과 끝은 카오스다 라고 주장하기라도 하듯 말이다.
이영도라는 작가는 항상 모든 작품에서 이러한 모순을 보여준다.
작가가 말하고픈 것은
"나와 너는 다르다."가 아닐까?
요즘 비평란의 글을 읽으면서 문듯 예전에 읽었던 폴라디스 랩소디가 생각나 여기에 올려본다.
비평란은 문학의 장.
생각도 자유. 표현도 자유다. 여기에 존중이 없다면 자유는 사라지고 속박이 된다.
속박이란 무엇인가? 역설적으로 말하면 통일이다.
나라는 개성이 없어지고... 특정 집단의 이념에 맞추어가야 한다. 그럴거면 비평란이 왜 필요한가?
필자는 얼마전 필자가 쓴 비평글의 댓글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여기는 문학집단이 아닌, 종교집단으로 착각할정도니...
진정한 사고를 교환하는 문학의 시장이 되기를 진심으로 원하며 이만 글을 줄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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