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한담

연재와 관련된 이야기를 합시다.



글단증상

작성자
강시우
작성
11.11.21 01:33
조회
2,238

담배를 끊은 지도 두 달이 다 되어 갑니다.

담배를 끊어서 제일 좋은 건 이제 담배를 피우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지요.

그에 비하면 아침에 일어날 때 뭔가 더러운 게 없다거나, 어쩌다 술을 많이 마셔도 다음 날 금방 깬다거나, 옷과 몸에서 냄새가 안 난다거나, 돈을 절약한다거나, 저 악마 같은 담배 회사 주머니를 불려주지 않아도 된다는 것 등은 사소한 즐거움입니다.

그런데도,

이제 금단증상도 거의 없는데도,

지난 두 달 동안의 고생을 뒤로 하고 다시 담배를 물고 싶게 만드는 것은,

액체로는 해소할 수 없는 집요한 갈증도, 술이 전처럼 맛있지 않다는 점도, 문득 가슴이 답답할 때 뭔가 허전한 채로 멍하니 답답해 하고 있는 수밖에 없다는 점도 아닙니다.

당췌 글이 안 써지네요.

좋아하는 판타지소설을 써서 먹고 살겠다는 생각을 버리고 펜 하나를 꺾기로 한 지 몇 달 되었습니다.

그리고 곧바로 펜 하나를 더 꺾었지요. 영어 번역 실력에 나름 자부심이 있었는데, 여건상 이리저리 끌려다니며 남 좋은 일만 하게 되더군요. 그 일도 그만두기로 했습니다.

본명으로 쓴 책은 인문교양서를 여성잡지 기사 수준으로 수정하길 요구하는 출판사와 3년째 줄다리기 중입니다.

결국 글로 먹고 살 생각을 버리고 다시 말로 먹고 살게 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왜 글이 안 써진다는 이유로 담배를 다시 피우고 싶을 정도냐!

라고 물으신다면, 먼저 죽은 서양 사람의 말을 빌어 대답하겠습니다.

"이해한다는 것은 섹스와 같은 행위이다. 그것에는 분명히 나름대로의 실제적인 목적이 있지만, 그렇다고 그 때문에 사람들이 통상적으로 그 행위를 하는 것은 아니다."

라고요.

저에게는 글을 쓰는 것도 같은 행위인 것 같습니다.

아니, 장르소설을 쓰는 것이 말이죠.

무언가를 낳는다는 것, 혹은 그 결과물보다 쓰는 행위자체가 즐거우니까요.

그런데,

돈, 출판, 개를 줘도 안 아까울 인기 같은 것을 떠나서,

순수하게 본인의 즐거움을 위해 글을 쓰려고 하는데, 그게 안 써지더라는 이야기입니다.

성기능장애에는 사이비 치료제도 있고 민간요법도 있는데, 이건 좀 미치겠는 게 아주 좋습니다.

이젠 술을 많이 마셔도 담배 생각이 안 나는데요.

지금도 내일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지울 걸 뻔히 알면서도 완전히 다른 인격으로 이걸 쓰고 있을만큼 취했는데도 담배생각은 전혀 안 나는데, 글만 쓰려고 하면 창자에서부터 그 더러운 연기를 향한 갈증이 손을 뻗어 목구멍을 간질이네요.

문피아에는 소설을 여러 편 연재했었습니다.

[나르시스]는 한 권 20만자 분량으로 세 권을 쓰고 연중했지요.

15권 완결 예상이니까 한 동안 그거 쓰면서 신나게 놀 수 있어야 정상입니다.

[차원비행]도 1부만 연재했습니다.

공모전 분량 제한 때문에 전체의 절반에 해당하는 2부를 한 챕터로 줄였었죠.

지금이라도 달려들어 2부를 신나게 쓰고 있어야 정상입니다.

어설프게 연재하다가 어설프게 출판했지만 결말은 제대로 맺었다고 자평하는 [엔트로피]는 사실 [나르시스]와 [차원비행]의 '더 비기닝'에 해당하는 이야기였습니다. 서로 다른 이야기지만 둘 다 옐로스톤 국립공원이 폭발하면서 시작하니까요.

[엔트로피]도 출간삭제했으니, 문피아에서 완결까지 쓴 글은 중편 [빨랑하늘] 밖에 없네요.

사실 [차원비행]은 순수하게 쓰는 즐거움을 위해 쓸 수 있는 책이 아니므로 지금 고려 대상은 아닙니다.

[나르시스]도 너무 무겁고, 역설적으로 애정이 너무 많아서 지금 손대고 싶지는 않습니다.

신화창조 스토리 공모전에 보낸 팩션 한 편도 소설로 쓸 생각이었는데 역시 즐거움을 위한 글이 아닌 정도가 아니라 그저 돈을 벌기 위한 글이 될 것 같아 관두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순수하게 즐거움 만을 위한 이야기를 한 번 써보려고 했는데 담배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최소한 아직은요.

자기가 읽어도 재미가 없는 데다가 넷북 배터리가 다 닳도록 5천자도 못 쓰고 앉아 있다면 즐거움은커녕 자학에 가까운 짓이겠죠.

고통을 감내할 가치가 있는 "작품"을 결과물로 추구하는 것도 아닌데요.

담배 없는 삶에 완전히 익숙해지고 뇌와 손가락이 글을 쓸 수 있을 정도로 재생되는 기적이 일어난다면, 온갖 장르를 넘나드는 bottle taste 소설을 한 번 써보고 싶네요.

다른 일을 하면서 취미생활을 위해 담배를 다시 피우게 될 것 같진 않으니, 글을 쓰고 싶어 다른 취미생활에 손이 안 가는 글단증상이 사라지기 전에 이 빌어먹을 니코틴 금단증상이 완전히 사라지기만을 바랄 뿐입니다.


Comment ' 8

  • 작성자
    Lv.15 파장
    작성일
    11.11.21 09:26
    No. 1

    노병은 죽지 않고 다만 사라질 뿐이다...라고 어떤 탱크병(?)이 말했다던가?
    强雨는 사라지지 않고 다만 잠수를 조금 할 뿐이다... 라고 어떤 자가 또 생각했다네요.

    담배 끊는 거 두 달로는 좀 그렇고 최소 세 달은 지나야 조금 안정기? 제 경험으로는 그러고도 거의 1년 동안은 다른 자의 담배 냄새가 구수해서 유혹받았던 기억이...
    제 경우에는 氣功, 단전호흡, 기타 다른 운동 등으로 완전히 끊을 수 있었던 것 같은데, 아무튼 금단현상(?) 글단현상(?) 모두 다 이기고 승리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소설은 장르니 뭐니 좁은 곳에 국한하지 마시고 [일반 소설]로 써 보시면 어떨까 조심스레 건의해 봅니다. 아니면 최소한 예전 명칭처럼 [통속소설] 정도? 예를 들면 [Bond]시리즈 라든지 [Bourne]시리즈 라든지 [쥬라기 공원]이나 아시모프의 [로봇]시리즈 같은.
    이런 거 서점에서 팔릴 때 '장르'니 뭐니 했던 기억 나지 않거든요?
    그것도 아니라면 Philip K Dick 풍의 소설을 단편이 아니라 장편으로...

    어쨌거나 다시 돌아오는 것도 쌍수를 들고 환영할 일이오나 그보다는 '글'로도 '세속적' 성공을 이루시기를 진심으로 빕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Personacon 동방존자
    작성일
    11.11.21 10:48
    No. 2

    열다섯에 담배를 벗하고 어느덧 햇수로 27년이 되었네요..
    폐렴 때문에 두 차례 병원 입원했을 때의 대략 2개월을 제하면, 담배가 입에서 떨어져본 적이 없네요..
    중간에 심할 때는 하루 세 갑을 피기도 했으니, 도대체 그동안 얼마나 많은 니코틴 독을 흡입한 것인지.. ㅡㅜ
    글 쓰신 분 취지는 담배 문제가 아닐지언정, 저는 금연하셨다는 그 자체가 참으로 부럽습니다..
    그러면서도 별로 끊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지 않으니, 원..
    어쨌든, 금연 완벽 성공하시길 바랍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0 직하인
    작성일
    11.11.21 11:01
    No. 3

    중2때 첨 담배를 접할 때 부터 코로 담배 연기를 내뿜었지요. 지금까지 세번 금연했고, 한 번도 금연에 고생한 적도 없었습니다. 마음 먹은 그날부터 금연했으니까요. 보통 1년에서 2년정도 금연했었군요. 하지만 금연의 필요를 느끼지 못합니다. 이제는 담배량도 거의 일정해지고, 병원에 있어도 틈틈이 이 친구와 대화를 해야...하하.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창조적변화
    작성일
    11.11.21 11:46
    No. 4

    흠...담배를 피워 본 적이 없는 저로서는 그러한 고민을 해본 적이 없다는... 물론 말씀하시는 주제가 담배가 핵심은 아니겠지만... 글을 쓰면서 이런 저런 생각을 많이 하지만 담배를 전혀 피지 않는 저로서는 담배와 연관지어 글에대한 생각을 해본 적이 없네요. ㅠㅠ 그것보다 모든 걸 떠나서 즐거움만을 위한 글을 써보려 하신다는 말씀이 참으로 마음에 듭니다. 그러기는 결코 쉽지 않은데 말이지요. 물론 그런 결심을 하고도 문제는 생기는 것이겠지만... 세상사 참 희안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앞에 문제가 있어서 결정을 내리면 또 문제가 나타나니 말입니다. 원하는 것이라 생각하고 결정을 내렸음에도 해결되지 않는....여튼, 건필하세요~~~^^

    찬성: 0 | 반대: 0 삭제

  • 작성자
    강시우
    작성일
    11.11.21 12:20
    No. 5

    예상대로 지금 다시 보니 지우고 싶은 글이군요. ㅎㅎ
    그러나, 댓글도 댓글이지만 이걸 지우면 바로 위 홍보글이 곤란해지는 상황이어서 그냥 놔두기로했습니다.

    홍길둥 님 //
    3개월은 지나야 신체적 금단증상이 완전히 사라진다고 볼 수 있다고 하니, 홍길둥님 말씀대로 일단 내년까지 기다려볼 생각입니다.
    의도한 건 아닌데, 내년 1월 1일이 꼭 100일째거든요.
    거기서 2월 28까지 더 기다려보고, 그래도 글이 안 써지면 3.1절부터 다시 피우거나, 그냥 글 쓰기를 포기하거나 하려고요. ㅎㅎ
    죽기 전에 꼭 쓰고 싶은 소설 두 편이 있어서 어찌 될지 모르겠습니다. 취미로 쓸 글도 아니고, 돈을 벌기 위한 글도 아니고요.
    어쨌건 그 전에 문피아에서라도 다시 만날 수 있기를....ㅠㅠㅠ

    동방존자 님 //
    담배는 끊고 싶지 않으면 절대로 못 끊지요.
    끊어 보지 않으면 끊고 싶어지지도 않고요. ㅎㅎ

    직하인 님 //
    저도 올 초에 교통사고로 병원에 입원해 있었은데, 다리를 절면서도 옆 침대 갈비뼈 부러진 아저씨랑 비틀비틀 수도 없이 담배 피우러 나갔지요. ㅎㅎ
    간혹 직하인 님처럼 담배를 쉽게 끊을 수 있는 사람이 있다고 하더군요.
    그분들은 오히려 완전한 금연에 성공할 확률이 낮다고 하네요. 워낙 쉽게 끊을 수 있으니, 아무 걱정 없이 다시 손을 대기 때문이라지요.
    저도 골초인 것에 비하면 매번 쉽게 끊는 편인데, 이번엔 끊어야 할 필요성도 느껴서 절대 다시 손대지 않으려고 작정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복병을.....
    아무튼, 담배가 몸의 회복력에 좋은 영향을 끼칠 리 없으니, 완쾌하실 때까지라도 금연하시는 게 어떠실런지요. ^^

    창조적변화 님//
    담배를 한 번도 피워보신 적이 없다면 정말 복받으신 겁니다.
    저는 오래 전 군대에서 배웠는데, 군대가 아무리 지랄이어도 담배에는 손 대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후회막심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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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Lv.1 [탈퇴계정]
    작성일
    11.11.21 14:00
    No. 6

    글을 쓰는 흡연자의 입장에서... 굉장히 설득력 있는(?) 이유로군요.
    확실히 담배를 피지 않으면 글 전개 자체가 지지부진해지거나, 손에서 나가질 않거나 하죠.
    하지만 잠시 담배를 쉬며 글을 써본 입장으로 말하자면... 나름 담배를 쉬는 것에도 장점이 있습니다. 그게 뭔지는 아직 잘 모르겠으나(먼 산), 분명히 있다고 봅니다.

    덧붙여 담배는 반쯤은 버릇삼아 피는 경우가 많죠. 글 쓰며 담배를 피다가 끊었으니, 그런 버릇이 아닐까 하네요. 잠시 머리를 식힐, 혹은 스토리 구상에 대해 생각할 여유를 만드는 방법을 생각해보심이 좋을 듯 합니다.

    저 같은 경우에는 담배 잠시 쉴 때는, 밖에 나가서 걸었습니다. 가만히 앉아서는 생각 자체가 잘 되질 않아서...(먼 산)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평온
    작성일
    11.11.21 20:46
    No. 7

    담배 끊고 나서 하드한 운동을 매일같이 5개월간 해본 결과 운동중독되고 담배 생각도 않나던데여;;
    일단 매일 1시간 씩이라도 런닝머신 뛰는게;;
    아... 있으시다면요ㅣㅣ 아님 근처 공원이라도;

    찬성: 0 | 반대: 0 삭제

  • 작성자
    평온
    작성일
    11.11.21 20:47
    No. 8

    3개월만 되도 운동의 즐거움을 알게 됩니다.. 몸이 건강해지고 강해지는게 느껴진달까요?

    찬성: 0 | 반대: 0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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