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중 발췌-
그때, 나는 내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클레어?”
그 모습은 마지막까지 아름다웠다. 그 금발은 순금을 녹여 실로 짜낸 후 표면에 순은을 입혀 보기 좋게 다듬은 듯, 흐르는 윤기는 내 피부에 닿는 그 순간을 영원히 기억하게 할. 젖은 달빛을 반사하듯 은은히 빛나던 그 눈빛에서는 나의 기대와는 달리 언제나 표독스럽게 휘어지곤 했지만, 그럼에도 그 미의 투영을 방해하지는 아니하였다. 꼭 벨벳을 입어야 할 것 같은 모습. 현대에 어울리지 않는 너의 모습에, 나는 너를 볼 때면 남몰래 파리스가 헬레나를 만나는 기분을 간직하곤 했다.
그리고 지금도 마찬가지를 느껴본다.
너의 입술은 떨어지지 않고 묵묵히 자리를 지킨다. 어깨를 그리는 둥근 곡선이 너무도 완벽해서, 나는 네가 옷을 하나도 걸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쉬이 잊고 만다. 아무것도 바라보지 않는 눈. 너의 눈에는 언제나 무언가가 터질 듯 들어서 있곤 했지. 나는 네 그런 공허한 눈이 좋아. 그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은 그 상상만으로도 절정에 달할 것 같으니까. 그 눈꺼풀에 손가락을 뻗는다. 빗살처럼 휘는 속눈썹을 가다듬어 본다.
언제나 남몰래 그렇게 말해왔지만.
“나는 너로 인해 완전해졌어. 이제는 내가 너를 완전하게 할 차례니까.”
나는 그녀의 귓불을 핥으며 그렇게 속삭였다.
*
지향하는 인물 상은 그다지 대단한 인물이 아닙니다. 제가 지금까지 써왔던 글의 등장 인물 중에 뚜렷하게 드러나는 성격- 클리셰로 본다면 츤데레라든가 바보와 거기에 태클을 거는 만담 콤비는 거의 없습니다. 사실 이런 사람들은 현실에서도 찾아보기 힘들죠.
제가 그리는 인물들은 환상과 연계된 세상을 살아가고 있으면서도 정신은 우리들과 비슷합니다. 상처를 받을 수도, 싸울 수도, 분노할 수도, 기뻐할 수도 있습니다. 아직 이 글에는 그런 내용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 글, 그림자의 춤을 쓰면서 지향하는 바는 그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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