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연성 사실성 현실성에 대한 견해와 작품성.
재미와 현실성(개연성)사이에서의 갈등 이라는 글에 금강 문주님의 글이 달려서 문득 감흥이 생겨 이에 대한 제 생각을 밝혀봅니다.
괜히 쓸데없는 오해는 하지 말아주시고, 水原이라는 사람은 저런 생각을 가지고 있구나 하는 정도로 이해를 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우선 오래전 제 기억 하나를 들추어 보는 것으로 이 글을 시작 합니다.
제가 고등학교 2학년때로 기억하는데, 당시 제가 무협소설을 어마어마하게 읽던 시기였습니다. 우스개 소리로 웬만한 무협소설은 초반 50페지 정도만 보면 그 뒤의 이야기는 쉽게 짐작 할 수 있는 경지에 이르렀다는 평가를 받을 정도였습니다. 만물박사 시절이었죠.
그때 야간 자율학습을 하기 싫어서 몰래 탈출을 감행했는데, 시간 보낼 방법은 만화방 뿐이었죠. 그날 문제의 소설 '大英雄'을 만나게 됩니다.(총 13권입니다)
아마 이 소설을 기억하시는 분이 있다면, 상당한 연배로 무협매니아 층에 속할 것입니다. 저자는 이름을 밝히지 않겠습니다만, 당시 무협 소설계의 빅 스타중 두명의 공저였습니다.
처음은 재미가 없었습니다. 무슨 장사를 하는 장면이 나오고, 임평지의 가문의 몰락에 관한 부분이 나오고 파사검보(원전은 벽사검보)라는 것이 혼란의 중심에 서서 진행을 이루다가, 이후 악불군이 등장하고 영호충이 등장하고, 동방불패가 나오고 갈수록 스토리 진행이 가관이더군요.
당시 제가 받은 충격은(그때는 그 작품이 김용의 것인지 몰랐습니다) 상상초월입니다.
이전까지 보던 무협소설과는 차원이 다른 세상을 보았다고 해야 할까요? 제 머릿속에는 해머로 두들겨 맞았다는 느낌이 들 정도였습니다.
전혀 다른 차원의 세상을 보게 된 것이었죠.
물론 훗날 그 소설이 그 두분의 작가들이 표절을 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기존 무협소설속에서 그 소설을 읽게 되었을때의 충격이란 말로 표현이 불가능 했습니다.(당시로서는) 그 충격때문에 20년이 넘게 지났지만, 그 소설에서 벽사검보(원전)를 파사검보로 바꾸어 불렀다는 것 조차 기억하고 있을 정도죠. 얼마나 제게 쇼크를 주었는지 알만한 대목입니다.
이렇듯 잘 쓰여진 소설은 독자에게 엄청난 재미와 감동을 줄 수 있습니다. 모랫속에서 진주를 찾은 느낌. 말로 표현하기 힘듭니다.
어차피 이 글을 쓰는 것이 표절에 관한 부분이 아니기때문에. 그것은 언급할 필요가 없습니다.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이런 보석같이 빛나는 작품을 왜 요즘 장르 작가분들이나 그것을 지향하는 분들은 쓰지 못하고, 오히려 쓸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제가 문피아에 가입한지 몇달되지 않았습니다만, 가끔 기발하고, 정말 재미가 있고, 잘 쓰면 세계적으로도 성공할 수 있는 그런 소재라고(개인적 생각) 생각되는 글도 본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 뿐이죠. 좀 더 과격하게 표현하면 그런 좋은 소재와 재료들을 가지고, 가축 사료로 쓴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왜 그럴까요?
이문열씨는 평역 삼국지를 쓰기 위해서 1년 넘게 거의 2년간 엄청나게 공부를 했습니다. 그리고 몇몇 대만교수들에게 조언을 구하며 결국 평역삼국지가 탄생한 것이지요. 이 작품은 창작이 아닙니다. 여러분들도 잘 아시는 그저 삼국지 리메이크에 불과합니다. 그 리메이크를 쓰기 위한 준비작업이 저 정도입니다.
사실성(寫實性)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리얼리티라고 하기도 하죠. 흔히 현실감이라고 번역을 하면 되는데, 이것이 사실 판타지나 무협에는 어울리지 않는 듯한 말입니다만, 사실은 꼭 필요한 것이기도 합니다.
왜 이것이 필요하냐 하면, 무협이나 판타지는 기본적으로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는 동떨어진 다른 세계관을 가집니다. 굉장히 특별한 세계죠. 그런 부분을 다루면 반드시 등장하는 말이 현실성에 대한 부분이 거론 될 수 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소설이니 문제 될 것은 없죠. 하지만, 그래서 이런 리얼리티가 더더욱 필요한 것입니다. 사건진행에 있어서 자연스러운 부분이라든가, 성격에 대한 묘사와 같은 부분, , 인간관계에 대한 부분, 그리고 등장인물간의 갈등 등은 좀더 현실감을 집어 넣지 않으면, 결국 한번 읽고 마는 소설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그것은 정체와 퇴보를 의미하게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일반 사람들에게 어필을 할 수 없습니다. 결국 일부 매니아층 외에는 아무도 즐기지 않는 분야가 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현실성은 판타지와 무협세계에서 동떨어져 있지만, 그렇기에 인간관계나 심리적인 부분에 관한 묘사는 더더욱 현실적이어야 비로소 뛰어난 작품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절대로 무시해서는 안되는 부분이라는 말입니다.
이러한 사실성의 기초는 바로 개연성에 있습니다.
개연성은 일반적인 사람들이 대개 그러할 것이다. 라고 하는 정도의 말이죠. 개연성이라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것은 아닙니다. 다만 작가의 관점에서 보면 안되고, 독자의 관점에서 "누구라도 이 상황에서 저런 행동, 사건진행등등이 당연히 그렇게 흘러갈 법 하다." 입니다. 그게 개연성이죠.
소설에서 개연성이 없으면, 소설이라 부를 가치조차 없습니다. 왜냐하면, 소설에 대한 정의가 '개연성 있는 허구'이기 때문입니다. 이 당연한 명제를 가지고 이러쿵 저러쿵 말을 할 필요조차 없는 것이죠. 왜? 당연한 것이니까.......
뛰어난 작품이라는 것은 개연성은 당연히 들어가고, 작가 개개인의 세계관은 제외하더라도 가장 기본적인 인간의 행태에 관한 부분에 있어서 리얼리티를 확보하지 않으면, 좋은 글이 될 리 없습니다. 재미가 있다고 느끼셨습니까? 여러분은 재미있는 소설을 본 것이 아니라, 재미있는 스토리를 감상하신 것 밖에 되지 않습니다.
왜 소설이 문학의 한 장르인지 이해를 하셨으면 하고, 왜 문학을 예술이라 부르는지도 알아야 합니다.
제가 보기에 많은 사람들이 너무나 좋은 소재를 가지고 성급함에, 혹은 다른 이유로, 단지 이야기를 만들어 쓸 뿐이라는 것이지요. 이렇게 된다면 결국 무협이나 판타지(한국적)의 대부분은 일반 서점에 진출조차 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소설이 아닌 글이 너무나 많기 때문입니다.
좋은 소재, 재미있는 스토리로 1권 혹은 나아가서 2권분량까지 어느정도 흥미와 재미를 줄 수는 있습니다만, 그것은 감각적인 흥미와 재미일 뿐입니다. 결국 그 소재가 떨어지면, 그때부터 늘어지고 재미가 없는 글이 될 뿐이죠. 우린 그런 글들을 무수히 많이 봐 왔지 않습니까? 작품성 있는 소설(무협의 예로 김용의 소설)들은 독자로 하여금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해 줍니다. 때로는 독자의 눈에서 눈물이 흐르도록 해 주기도 하죠. (전 비호외전에서 정영소가 죽는 장면에서 눈시울이 뜨끈해지더군요 )
제가 이 긴 글을 쓴 이유는 왜 대부분의 장르 작가분들이나, 그것을 목표로 글을 쓰는분들은 애써 그 장르 혹은 양판소 기준으로 맞추려 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살기 힘들어서? 그러면 결국 지금과 같은 악순환을 깰 수가 없습니다. 요즘은 작가분들도 소설을 쓰지 못하고 스토리만 팔고 있더군요. 개탄할 노릇입니다.
개연성 현실성 사실성 모두가 판타지나 무협에서는 반드시 필요한 요소들입니다. 하다못해 보통명사화 된 단어조차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는 분들도 많습니다. 기가 막힌 현실이죠. 거기에 관해서 어떤분은 자신의 논리로 반박까지 하는분들도 있습니다. 알고보면 사전을 뒤져도 나오는 보통명사를 가지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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