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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읽은 연재글 두 편 때문에 마음이 복잡합니다.
처음 읽은 소설은 흔한 소재로 버무린 글임에도 술술 잘 읽히더군요.
요즘 말로 클리세라고 하던가요. 이미 닳을 대로 닳은 에피소드의 연속인데 얼음 동동 동치미처럼 아삭하고 시원한 것이, 방금 뽑아낸 생맥주 마시듯 벌컥벌컥 들이켰습니다.
연재분까지 전부 읽자마자 얼른 메모장 열었습니다. 이렇게 재미있는 글은 널리 알려야 하니까요. 추천글은 댓글 고자인 제가 작가님께 드리는 감사인사나 응원의 메시지입니다.
하지만, 추천글 쓰다가 몇 번이고 지우고 고치고… 결국은 삭제해버렸네요.
제가 보기에 상당히 취향타는 글이었고 추천글이라고 해서 칭찬만 마냥 늘어놓을 수는 없으니까요. 취향이 아닌 독자는 피해 갈 수 있게 살짝 암시라도 해야 하는데, 그것이 참 미묘한 부분입니다.
소설 속 깊숙이 스며 있는 일본 냄새를 뭐라고 언급해야 할까요. 굉장히 조심스럽습니다.
한글로 쓰인 창작소설에서 노골적인 일본색을 발견할 때 강한 거부감을 느끼는 독자도 적지 않기 때문입니다.
솔직히, 저 자신도 정치 사회 문화 전반에 깊숙이 뿌리내린 일본 세력을 느낄 때마다, 우리나라가 일본 강점기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는 생각에 가슴 답답해지곤 합니다. 친일파가 상위 계층을 차지하고 있는 현실과 상당 부분 정기를 훼손당한 한국 전통문화를 떠올리면 개선될 희망조차 흐려지지요.
그런 의미로 보면, 제가 읽은 소설은 추천글이 아니라 비평글을 써야 할 판입니다.
그러나 그럴 수 없었습니다.
작가로 하여금 자기 작품을 타인의 시선과 가치관을 통해 다시 한번 되돌아보게 하는 것이 비평의 역할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 작가님은 이미 캐릭터 묘사와 감정 표현에 일본 투가 속속들이 배어 있어 습성 그 자체가 되어버린 분으로 보입니다. 어려서부터 일본 애니를 보며 자라고 일본 소설에 심취하면서 글쓰기를 시작한 소설가들이 빠지기 쉬운 함정이지요. 누가 뭐라고 한다고 해서 고쳐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한마디로 비평글을 쓰는 의미가 없습니다.
추천도 비평도 깨끗이 단념하고 다른 글을 찾아 읽기 시작했습니다.
가는 날이 장날인가요…….
작가님 이름만 보고 골랐는데 이번엔 대놓고 일본 라노벨풍입니다.
한국인의 한이나 정서와는 궤를 달리하는 병약한 감상주의, 주인공을 중심에 두고 음모와 숨겨진 설정으로 뒤틀어진 세계. 자신의 내부 세계로 한없이 침잠해 들어가는 꼬이고 꼬인 심리 묘사.
여기까지는 작가의 개성으로 여길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결정적으로, 일본 소설을 조금이라도 읽어본 독자라면 한눈에 알아볼 (한글 문법에 어긋나는) 일본 고유의 표현으로 연이어지는 문장….
제일 안타까운 것은 이 글의 작가님이 '글에 진지한 분'이라는 사실입니다.
직접적으로 뵌 적은 없으나 여러 번 작가님 생각을 엿볼 수 있는 게시글과 다른 분들 게시글에 달린 댓글들로 닉네임이 눈에 익었고, 언젠가 이 분 글을 읽어보고 싶다고 기억해둔 분이었습니다. 연재분을 끝까지 읽어본바, 다행히 작가님이 본인의 문제를 자각하고 조금씩이나마 나아지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이야기에 작가님이 들이는 정성과 이야기 자체의 재미, 절대로 적지 않습니다.
그러나 읽어보고 좋으면 추천글 써드리고 싶다고 기대가 컸던 저로선 이번 역시 추천도 비평도 할 수 없어 조용히 내려놓을 수밖에 없었던 소설입니다.
작가님이 이미 인지하고 고치려고 노력하시는데 비평글은 필요없는 시비일 뿐이니까요. 그리고 그렇게 노력하는데도 쉬이 걷어내지 못하고 있는 일본어 투를 지적하면서까지 추천글을 쓴다면 거꾸로 작가님 가슴에 비수 꽂는 행위가 될지도 모르니까요.
이 글을 읽는 작가분이 계신가요?
그렇다면 제발 부탁입니다. 퇴고하고 나서, 한 번만이라도 문법 검사기를 이용해 주시길 바랍니다. 네이버에서 검색하면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것들도 있습니다.
문법 검사기가 만병통치약은 아니지만, 최소한 현재 우리가 쓰고 있는 말들이 얼마나 많은 부분 잘못 쓰이고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너무나 익숙해서 내 것처럼 쓰고 있던 말이 실제로는 우리말을 병들게 하는 외세의 흔적이란 것을 확실하게 보여줍니다.
저도 처음 문법 검사기를 돌렸을 때 얼마나 놀랐는지 모릅니다.
문법과 단어 오용, 영어에서 온 수동태와 일본식 조사 사용….
본문보다도 잘못 지적글이 더 길었습니다.
문법 검사기도 완벽한 것은 아니어서 시키는 대로 고쳤다가 외려 틀리기도 몇 번 하고…….
국문과 교수도 올바른 문법을 쓴다고 장담할 수 없는 오늘의 현실이 답답하긴 합니다. 문법 검사기를 통과했다고 해도 시간이 지난 다음에 다시 읽어보면 여전히 오타와 비문이 눈에 띄곤 합니다.
그래도 아예 안 하는 것보다는 함으로써 얻는 이익이 훨씬 큽니다.
눈으로 보고 익힌 잘못된 단어와 문법이 작가님의 뇌와 손가락에 완전히 자리 잡기 전에 스스로 떨쳐낼 기회를 잃지 마셨으면 합니다.
독자의 한 사람으로서 부탁합니다.
※ 아랫글은 일본말 사용 지적에 관한 게시글이면 꼭 나타나는 분들께 드리는 말입니다.
일본 대중문화를 그 자체로 즐기는 것이야 취미 생활이니 뭐라 할 말 없습니다.
그러나 일본식 단어 사용에 대체할 수 있는 순우리말이 있다고 알려주는 글과 잘못 표현된 일본식 문법임을 지적한 글에 외려 반발하는 분들도 여러 번 보았습니다.
줄거리 전개야 타인이 침범할 수 없는 작가 고유의 창작 권한이니 지켜주어 마땅한 일입니다.
그와 별개로 개연성 문제와 고증, 단어나 문법 오용에 대한 지적은 독자로서 얼마든지 할 수 있는 피드백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작가님에 대한 예의는 지켜야 하겠지만요.
그런데 지켜본 바로는 작가님 본인보다도 오히려 독자들끼리 일을 키우며 댓글난을 싸움터로 만드는 예를 자주 보았습니다.
지금까지 잘 써왔는데 새삼 왜 트집이냐는 사람도 적지 않고요.
지구촌 한가족인 요즘 세상에 무슨 고리타분한 이야기냐는 주장, 중국 일본 미국 등 사대주의가 골수 깊이 박힌 보수 지식인과 일부 언론인들의 글을 갖다 붙이면서 말도 안 되는 세계화 운운하는 이들도 꽤 많았습니다.
하지만, 말이 좋아 세계화이지 말입니다.
제 것도 제대로 지키지 못하는 주제에 남의 것인들 제대로 받아 소화할 수 있을지 저는 의문입니다.
그런 분들 말씀 듣노라면, 김구 선생의 "부강한 나라가 되기보다 문화가 뛰어난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라는 말씀이 생각납니다.
한국의 역사와 한국 문화를 되돌아볼 때, 언어가 곧 국민정신이라는 말이 틀린 말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김구 선생이 왜 그런 이상주의자 같은 말씀을 하셨는지 절실히 깨닫는 순간입니다.
영양실조에 걸리면서까지, 한글을 연구하고 가르치는데 얼마 안 되는 수입의 태반을 쏟아부은 주시경 선생이 계십니다.
조선인이 조선말을 하면 잡혀가는 일본 강점기에 분함과 좌절감으로 눈물 삼키셨을 조상님은 또 얼마나 될는지요.
지금은 굶주림과 체포 고문의 걱정이 없는, 그야말로 마음껏 한글을 쓰고 국어를 말할 수 있는 좋은 세상입니다.
이 좋은 세상, 한글을 올바르게 쓰기 위한 최소한의 노력은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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