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지않고 움직이던 세상은 잘려나가 한곳에 머물게되었다.
그 안의 사람들은 세상이 멈췄음을 알기엔 너무 어리석었다. 그들은 전혀 다른 존재인 자신들의 완성체를 자신들이 쌓아온 기술로 몰아내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10년, 세상을 죽인 사신이 죽고.
세 여왕이 긴 잠에서 깨어나 세상을 향해 날개를 펼쳐올린다.
하지만 아직 잘려나간 세상을 끝낼 파괴자가 세상에 남아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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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아아암..."
졸리다. 겨울인데도 이렇게 햇볕이 따뜻하다는건 굉장히 정신적으로 위험한 상황이 틀림없었다. 이렇게 무방비로 나른해지다니, 봄만큼이나 나른해져버려 정신이 몽롱해져간다.
"후훗, 졸고 계신 모습은 나무님들과 정말 비슷하군요."
풍성하고 이리저리 뒤엉킨 녹색 머리칼을 땅에 덩굴처럼 늘어뜨린 그녀는 내 옆으로 와서 앉았다. 10년 이상 식물인간으로 잠들어있던 이 여인은 오로라.
"여긴 자주 오시네요? 저도 이곳은 햇님이 잘 보여서 좋아해요."
"으응, 그보다 겨울인데 나무를 자라게 하는건 좀 자제해줄래? 여기 정리가 안되잖아."
그녀 덕에 이렇게 추운데도 식물들이 한아름 자라 푸른 잎을 하늘로 치켜올리고 있었다.
"처음보는 특이한 어린아이가 있군요."
로라는 문뜩 자리에서 일어나 조신하게 뒤로 걸어갔다. 나도 눈을 잠깐 떠서 뒤를 돌아보니, 저번에 실험실에서 구해줬던 네다섯살 정도 되어보이는 어린꼬마, 하릭이 내 여동생 유진이의 손을 꼭 잡고 걸어오고 있었다. 작은 몸에 비해 꽤 긴 머리카락을 어깨 아래까지 늘어뜨리고 머리 윗쪽으로 더듬이같이 튀어나온 두갈래의 머리카락을 이리저리 나풀거리고 있었다. 오로라는 그 아이의 머리를 살짝 끌어안더니, 유진이가 잡고 있지 않는 다른쪽 손을 잡고 벤치쪽으로 왔다.
"오빠, 또 여기서 자고있는거야? 감기 걸려."
"감기에 강해지기 위해 여기에 있는거야."
"바보!"
나는 코트 자락을 움켜쥐고 바람이 새어들어오지 않게 벤치 오른쪽 한켠으로 자리를 옮겼고, 녹색머리의 여인과 더듬이가 있는 어린 꼬마 여자애와 끝에 살짝 파마의 웨이브가 남아있는 단발을 단정히 늘어뜨린 뿔테안경을 쓴 내 여동생이 차례로 벤치에 앉아들어왔다.
"머리 정말 예쁘시네요, 오로라 언니."
"감사합니다, 후훗."
"하아암..."
나는 여자애들의 수다도 별 신경 쓰지 않고 다시 눈을 감았다.
겨울잠이라도 잘 생각으로, 평화가 깨지지 않길 기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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