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한담

연재와 관련된 이야기를 합시다.



작성자
진세인트
작성
09.07.29 14:21
조회
1,314

새들의 울음소리가, 다정하게 사랑을 나누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나무사이를 지나며 장난치는 바람이 불지 않았다. 다람쥐가 주운 도토리는 썩어 있었고, 나무들은 속이 썩고, 물이 없어 메말라 죽어갔다. 물고기가 헤엄치던 강물은 쓰레기로 인해 더 이상 흐르지 않았고, 공기는 더 이상 숨을 쉴 수 조차 없도록 독가스로 변해버렸다. 숨쉴 때마다 머리가 아파왔고, 지독한 두통 때문에 사람들은 병으로 죽어갔다.

인디언들은 모두 사라졌다. 이곳, 네버랜드에서 마지막 숨통을 이어가던 그들은 마침내 단 하나의 어린 생명마저 숨이 끊어졌다. 비통해할 사람도 없었고, 슬퍼해줄 사람도 없었다. 아이가 마지막이었기에. 그 아이의 죽음이 인디언이란 종의 멸망을 의미하는 것이었기에 그 누구도 슬퍼하지 않았고,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

요정들 또한 사라졌다. 나방과도 같이, 날개에서 나오는 요정의 가루는 더 이상 나오지 않았고, 그로인해 더 이상 날지 못하게 된 요정들은 땅에 머리를 처박고 죽거나, 바다에 빠져 상어의 밥이 되었다. 하지만 아무도 요정들의 죽음을 슬퍼하지 않았다. 지켜보는 자들이 아무도 없었으니까. 인디언은 죽고, 요정들도 죽었다. 말할 수 있는 네버랜드의 생명체들은 모두 검은 먹구름과, 탁한 공기로 더 이상 숨 쉬지 못하고 죽어버렸다.

모든 약탈자와 바다의 쓰레기들, 그리고 그 무엇도 두려워하지 않는 잔인한 해적들을 대표하는 졸리 로저 호가 당당히 바다 한가운데서 두둥실 떠있었다. 멈춰있는 배. 그들의 별명, 혹은 이름을 들으면 누구나가 두려움에 떨거나, 기절할 만큼 무시무시한 악당들이 선원으로 일하는 배. 졸리 로저 호의 선장 제임스 후크는 오른손 대신 달린 갈고리를 들었다.

선원들은 모두 중앙 돛에 모여 있었다. 돛대에는 요정들이 짜 만들어준 초록색의 요정의 가루가 곳곳에 꼼꼼하게 발라져있는 옷을 입은 소년, 피터팬이 묶여 있었다. 숙인 얼굴은 검은 때가졌고, 옷은 갈갈이 찢겨서 간신히 몸을 가리는 정도였다. 쓰레기장에서 풍기는 냄새보다 더 고약한 냄새가 났다. 이 무시무시한 악당들의 더러운 것에 익숙해진 코마저 막게 할 정도로 심했다. 하지만 위대한 악당, 악당중의 악당이며, 바다 제일의 해적인 제임스 후크 선장은 오히려 당당하게 피터팬의 앞에 서 있었다.

그의 모습 또한 피터팬에 비해 그다지 좋아 보이지 않았다. 깨끗하고 상큼한 냄새가 났던 내의는 검붉게 물들어버렸고, 때가 타서 묻거나 태워버려야 할 것만 같았다. 짙은 갈색의 바지는 곳곳에 구멍이 났고, 세월에 바랬는지 무두질이 다 해졌다. 신고 있는 구두는 앞이 뚫려 검은 때가 잔뜩 낀 발톱들이 그대로 드러났고, 어깨에 걸친 붉은 선장의 외투와 머리에 쓴 선장 모자만이 유일하게 번뜩이고 있었다. 하지만 이마저도 더러웠다는 것을 은근히 드러내고 있었다. 부하들에게 시켜 급하게 딱은 것이기에.

후크 선장은 자신이 개조해 만든 두개씩 동시에 필 수 있게 만든 파이프를 입에 물었다. 뻑뻑- 독한 담배연기가 독한 공기 속으로 올라갔다. 이젠 바다내음보다도 공장에서 끝없이 나오는 연기냄새가 더 익숙했다. 제임스 후크는 파이프를 왼손으로 잡아들고, 피터팬의 눈높이에 맞춰 쭈그려 앉았다. 벌린 입에서 담배연기가 나와 피터팬에게 풍겼다. 지독한 입 냄새와 담배냄새가 섞여 빈속에서라도 무언가가 올라올것만 같았다. 하지만 피터팬은 죽은 시체처럼 고개를 떨구고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냄새를 맡지 못하는 것처럼, 피터는 가만히 고개를 떨구고만 있었다.

후크 선장은 얼굴을 찌푸리지 않았다. 이럴 줄 알았다는 듯, 파이프를 옆으로 내려놓고, 말끔한 신사처럼 행동했다. 옷을 제대로 갖추고, 얼굴을 폈다. 우수에 젖은 눈과, 이젠 어깨를 넘어 내려오는 긴 곱슬머리는 그의 품위를 더했다. 놀라울 만큼 아름답고 찬란하리만큼 잔인한 품위가 그에게서 뿜어져 나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터는 고개를 들지 않았다. 죽은 게 아니냐는 말이 부하들 사이에서 나왔다. 하지만 작은 목소리였기에 후크 선장의 귀에는 들리지 않았다.

후크 선장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당신의 파이프를 툭-툭- 털고선 붉은색 외투에 달린 주머니에 파이프를 집어넣었다. 잠깐 찌뿌둥한 몸을 풀기라도 하듯, 후크 선장은 허리에 손을 얹고 상체를 뒤로 숙이기도 하고 팔을 빙빙 돌리기도 하고, 발을 쿵쿵 구르기도 했다. 가끔씩 몸에서 두둑- 두둑- 하는 뼈 소리가 났다. 그 소리에 부하들은 공포에 떨었다. 그들은 악당이지만, 신사다운 악당이며 그들의 대장인 후크 선장만큼 대단한 악당이 되지 못한다. 작은 악은 더 큰 악에 굴복하기 마련이기에, 그들은 그들의 대장이, 선장이 무슨 짓을 할지 궁굼해 하며 두려움에 떨었다.

「네버랜드는 죽었다」

툭. 돌맹이를 수평선 너머로 던지는 듯, 너무나도 단조로운 목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그 단조로운 소리에 몇몇 심장이 약한 부하들은 눈을 감지도 못하고, 그 자리에서 숨이 막혀 기절하거나 죽었다. 공포에 부들부들 떠는 부하들의 귀엔 무덤에서 다시 기어나온 망자처럼 높낮이가 없었고, 뼈소리가 났다. 타닥! 타닥! 뼈와 뼈가 부딫히는 듯한 소리가 들렸고, 숨결에선 '죽음'이 그대로 튀어나왔다.

그의 말에 그동안 아무런 움직임을 보이지 않던 피터가 조금이나마 움찔! 하며 살아있다는 신호를 보내왔다. 아주 작은 신호였지만, 후크 선장은 그것을 놓치지 않았다. 후크 선장은 허리를 숙여 피터팬의 얼굴을 왼손으로 들어올려 침을 뱉었다. 그에게 있어선 품위를 버리는 행위였지만 그는 개의치 않았다. 그마저도 그의 품위를 더해주는 자태였기에 지켜보던 부하들은 모두 그의 품위에 놀랐다.

피터팬은 반응하지 않았다. 잡고 있던 손을 놓자 힘없이 고개가 떨어졌고, 후크는 천천히 품위를 지키며 일어섰다. 그리고 오른손에 달린 갈고리를 들었다. 오직 갈고리만이 새것이었다. 갈고리는 그의 품위를 한층 빛내고 있었다. 전투로 인해 잘린 손대신 붙은 갈고리는, 그의 품위와 더불어 훌륭한 무기였다. 원래 있었던 오른손보다도 더 훌륭하게 자신의 역할을 수행하는 갈고리는 파도치는 바다 위, 검은 먹구름으로 가득찬 어두운 하늘 아래서 살아있는 생명처럼 꿈틀거렸다. 번쩍- 하는 번개가 치고, 선원들이 모두 놀라 눈을 감은 사이 갈고리는 돛대에 묶인 피터팬을 향해 떨어졌다.

-우리가 아는 동화와 모르는 동화들 중-

무려 주인공이 전설의 제임스 후크 선장님이십니다!!

여러가지 동화가 이리저리 복잡하게 짬뽕되어 나오는 소설, '리가 아는 동화와 모르는 동화들'입니다!

(아직 저만의 란이 없어서 제 닉네임이나 '동화'라고 직접 입력해야 보실 수 있습니다.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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