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새벽이었습니다.
그 날도 걸그룹의 신나는 땐스땐스를 보며 용솟음 치는 기분을 춤사위로 표현하던 저는 하늘에서 한 줄기 섬광이 내리꽂혀오는 것을 느꼈습니다.
아니오. 그것은 빛이 아니라 벼락이었습니다.
전기충격을 받은 제 심장이 바운스 바운스 꿍떡쿵떡덩기더덕쿵떡 뛰기 시작하고 저는 벅차오르는 충격을 금할 길이 없어 그대로 집 밖으로 뛰쳐나가 강변을 달렸습니다.
한참동안 달리고 나니 조금 차분해졌습니다.
아직은 서늘했던 시기. 새벽공기가 땀맺힌 콧잔등을 시리게 쓸었죠.
그 시절, 책방의 쇼파에서 700원씩 내고 판타지 소설들을 읽었던 무렵들을 떠올렸습니다.
많은 소설들을 읽었지만 그 모든 소설들의 제목을 다 기억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하나씩 떠오르는 소설의 내용들은 제 안에 어떤 명확한 표상을 만들었습니다.
그리하여 저는 제 눈과 귀가 열려있음을 알았고 들숨과 날숨을 자각했고 폐부에 들어차는 차가운 공기, 수그러드는 복부의 압력에 의해서 다시 내뱉어지는 날숨, 흐르는 강물의 소리, 그 위에 고소라니 물결을 일으키는 소금쟁이의 발자국, 그 밑에서 생태계를 파괴하는 붉은귀거북의 날쌘 움직임, 어렸을 적 엄마가 사주셨던 햄스터 케이지, 우리집 강아지, 항문, 발가락 끝, 머리카락, 끊임없이 위 아래 위위 아래를 울려대는 이어폰과 그 진동을 고스란히 받아들이는 고막까지.
순간 모든 것이 저와 연결되어 있음을 깨닫고.
저와 연결된 모든 것이 결코 무의미하지 않음을 깨달았습니다.
오가는 사람 없는 새벽의 제방길.
당차게 고개를 든 저의 남성이 바지를 팽팽하게 했지만 저는 부끄럽지 않았습니다.
그래. 소설을 쓰자.
판타지. 판타지가 좋겠어.
그리고 이내 곧.
난봉왕을 썼습니다.
https://blog.munpia.com/doodm/novel/6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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