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 견문록(2006년5월4~7일)
1일차: 상해(샹하이)
현재 있는 상주(챵저우)에서 고속 버스로 2시간을 가면 상해가 나온다.
3박 4일 일정이라서 큰 여행용 가방 한 개를 끌고 도착한 후 택시를 탔다.
택시 기사에게 ‘쓰핑루’ 하면 기사가 어디냐고 다시 묻는다.
그러면 다시 ‘쓰’에 악센트 팍팍 주어 ‘쓰핑루’ 대답해준다.
언어에 사성이 있는 중국인에게 성조 없이 ‘스핑루’ 해서는 알아듣지를 못한다.
성조까지 완벽해야만 알아듣는다. 한국처럼 생각하였다가는 큰 낭패이다.
일을 보고 다시 택시를 타고 푸동을 갔다.
푸동은 상해에서 가장 발달한 구역이다
상해에서 푸동으로 들어가려면 ‘황푸’라는 강을 건너야 한다.
황푸는 양자강의 마지막 지류이며 그 발원은 소주 서쪽에 위치한 태호이다.
강 밑으로는 세 개의 터널이 있고 그 터널을 통해야 푸동에 진입가능하다.
저녁 늦게 도착하여 동행한 안사람 기분 좋게 하려고 택시기사에게 푸동 동방명주(세계에서 세 번째 높은 탑으로 푸동의 명물-관광코스) 근처 제일 좋은 호텔에 데려다 달라고 했다.
가격이 장난이 아니다. - 상주 4성급 호텔의 10배되는 가격을 내고 들어갔다.
짐 풀고 바로 앞 백화점 피자헛 가서 피자를 먹고 동방명주 구경을 했다.
야경이 완전 죽인다.
근처의 빌딩들도 완전 마천루이다.
제일 높은 빌딩으로 하얀 구름들이 걸쳐져서 흐른다.
호텔이 좋아서인지 잠도 잘 잤다.
다음날 아침 한국에서 팩키지 관광을 목적한 일행들이 동방명주로 왔다.
합류하여 동방명주 꼭대기에 오르고 황푸를 거쳐 와이탄 구경을 하고 남경로에 들러 구경을 했다.
오일절 휴가라서인지 사람이 장난 아니다. 사람이 콩나물 대가리로 보인다.
중국식으로 식사를 하고 예원이라는 중국식 정원을 갔다.
예원은 상해에서 알아주는 정원으로 어떤 부자가 노부모에게 효도하기 위해 지었다고 한다.오밀조밀하며 아름다운 정경들이 사진기속에 고스란히 들어온다.
다음날 항주로 가서 서호에 갔다.
항주는 강남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이다. 강남은 ‘어미지향’이라고 불릴 정도로 물고기와 쌀이 많다.
산은 없고 대부분이 평야이다.
하지만 항주는 다르다.
산도 많고 아름다운 호수도 많다.
그 정경이 하늘의 천상에 비교될 정도이다.
그리고 여자들의 피부가 고와 예로부터 항주 미인은 알아줬다.
월나라에서 오나라에 보낸 서시도 항주 부근의 여자이다.
서호는 규모가 작아 중국 지도에도 표시되지 않을 정도라지만 실상은 아주 넓다.
배를 타고 서호를 구경하니 정말 아름답다.
소동파가 서호의 아름다움을 특히 많이 묘사하여 입구에 소동파의 동상도 있다.
중간 중간에 땅을 파서 만든 섬이 있는데 나무가 울울창창 우거지고 멋들어진 건물을 지어 특히 아름답다.
서호는 평시보다는 안개 낀 서호가 아름답고 안개 낀 날 보다는 비오는 서호가 아름답다는 말이 있다.
호수 중간에는 작은 석탑이 있어 그곳에 등을 밝혀 등대 역할도 했다.
다음으로 간 곳은 영은사이다. 서호 근처에 있는데 영은사와 가까운 곳에는 구화산이 있다.
구화산에는 신라시대 중국에 건너왔던 유명한 스님의 등신불이 안치돼있다.
놀라운 것은 신라에서 중국에 오신 스님(이름은 기억 안남)을 중국에서는 지장보살로 떠 받들고 있다는 것이다
지장 보살은 부처님 아래로 여래보살. 문수보살...거의 동급의 보살이다.
영은사에서도 당연 지장보살의 동상이 있다.
영은사는 규모가 매우 큰 사찰이다.
인상적인 것은 안치된 오백나한이 거의 실물크기로 만들어져 있다는 것이다.
중국 사람들은 향을 피울때 그 양이 거의 밥 하면서 장작 때는 수준이다.
그 값도 천차 만별이고 말이다.
영은사를 지나 육화탑에 잠시 들렸다.
육화탑은 항주에 흐르는 ?강 때문에 세워진 것이다.
?강은 매년 8/18일에 바닷물이 역류하는데 그때마다 둑이 터져 주변이 물에 잠겼다.
여기서 바다까지는 백오십여 킬로미터는 되는데 대단하다
참고로 중국은 십리가 오 킬로미터다.
그래서 그 강물의 기를 죽이기 위해 풍수지리학적으로 세워놓았단다.
항주에서 먹은 거지닭은(닭을 연잎이나 갈대잎으로 싸고 황토를 발라 구운 닭) 아직도 머리에 남는다. 푹 익어서인지 닭 뼈조차 부드러이 씹힌다.
고기도 매우 맛있고 말이다.
항주 관광을 마치고 소주에 갔다.
소주는 예로부터 비단이 유명했다.
비단 말고는 부채와 다기(차 끓이는 도구)가 유명하고 말이다.
그래서인지 항주에서 소주로 가는 길은 유난히 뽕잎이 많다.
소주에 도착해서 처음 도착한 곳은 노주스님의 제자인 한산이 지은 한산사이다.
전날이 석가탄신일이라서 그런지 부처님 진신사리를 꺼내놓고 일반인에게 참관시키고 있는데 헌화식이라서 사람이 많다.
사람들이 줄서 있기 때문에 아쉽게도 진신사리는 보지 못했다.
다음으로 간곳은 호구탑
예전에도 한번 가본 곳인데 오왕 구천의 전설이 깃들어 있다.
구천이 죽은후 무덤을 만들었는데 거기 언덕에 하얀 호랑이가 와서 며칠동안 떠나지 않아 이름이 호구탑이다.
구천은 검을 아주 좋아했었다고 한다.
그래서 호구에는 시금석이 있다.
검을 시험하는 돌이라는데 옆에는 커다란 바위가 검으로 벤 듯 일자로 갈라져 있다.
오나라 시대의 유명한 장인 간장과 막사부부가 만든 검으로 바위를 내리쳤더니 바위가 갈라지고 검에는 휘광만 돋보였다는 설명이다.
그리고 숨겨진 비사.
검지라는 연못(연못보다는 규모가 작다)가 있다.
절벽 틈새에 있는 연못의 모양이 검을 닮아서 이름이 붙었다는데 그 검지위쪽에 석교가 있고 그 석교 중간에는 구멍이 두 개 있다.
이곳에서 서시가 구멍을 통해 검지를 바라보니 검지 속 물고기들이 서시의 아름다움에 취해 지느러미를 움직이는 것을 잊어버려 물속에 가라앉았다고 한다.
미인을 지칭하는 침어낙안 중 침어로 대표되는 서시이다
더 비밀스러운 내용이 있다.
몇 십년 전에 중국정부에서 검지를 청소하려고 물을 뺏는데 그 연못 속에 비밀 동굴이 있고 그 동굴이 오왕의 무덤인 호구탑 지하로 연결되었음이 발견되었다.
그 속에는 오왕이 수집한 삼천자루의 보검과 보물들이 들어있는데(역사적 고증) 호구탑이 무너질까봐 아직도 개봉을 못하고 그대로 방치하고 다시 물을 채웠다고 한다.
실제로 역사적 문헌을 보고 수많은 도굴꾼들이 보물을 찾기 위해 호구탑을 파헤치기도 하였다
그래서인지 호구탑은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고 그 경사도가 이탈리아 피사의 사탑보다 더 심하단다.
어쨌든 보검과 보물은 아직도 지하 깊숙한 석굴 속에 매장되어 있다.
다음으로 간곳은 소주 비단공장
누에에서 비단을 뽑는데 누에 고치중 누에가 한 마리 들어간 고치에서는 비단실을 뽑고 누에가 두 마리 들어간 고치에서는 실을 뭉텅이로 뽑아 명주이불(이불솜)을 만든다.
쌍둥이 고치는 실이 얽히고 섥혀 있어 실이 뽑히지 않기 때문이란다.
하지만 강도는 대단하다.
왠만한 날카로움으로는 쉽게 뚫리지 않아 방탄복에도 쓰인단다.
순간적으로 드는 생각은 당연 천잠사이다.
이후 간곳은 졸정원이다.
소주에서 비리로 돈을 왕창 번 졸부가 지었다는데 그 아름다움과 규모가 장난이 아니다.
그리고 가는 곳마다, 아니 처처에 전설이 가득하고 건물마다 독특하고 의미가 깃들여 있다.
건물 이름도 대단히 멋들어진다.
그 규모와 정성을 보면 건물로 만든 진세가 떠오를 정도인데 우스운 것은 그 엄청난 정원을 아들 녀석이 하룻밤 마작으로 날려 먹었다는 것이다.
아마 상대방은 자금성이라도 내놓고 패를 돌렸나 보다.
거기서 관광을 마치고 상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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