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에게는 연극을 하는 친구가 있습니다.
그 친구...한 달에 65만원 정도 받고 죽도록 일하고 연극 연습만 하더군요.
그 시간동안 막노동을 하면 기백만원은 넘게 벌겠던데...연극이 그렇게 좋은지...
너무 어려서부터 같이 자라 친구로 통하지만 저보다는 나이가 많은 사람입니다.
가정도 있고, 자녀도 있어 생활도 여의치 않더군요.
이 친구는 술 마시고 싶으면 무조건 저를 찾아옵니다...같이 연극하는 친구들은 다 같이 가난하여 서로 술 한잔 사 달라 할 형편들이 아니기 때문이죠.
이 친구가 술만 들어가면 항상 하는 소리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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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 자기 극단에서 정통 예술극의 정수 가운데 하나인 <리어왕>을 공연하기로 했다는 겁니다.
국립 극단 레벨이 아니면 시도조차 하기 힘든 이 연극을 먹고 살기도 힘겨운 지방 중소 극단이 한다고 하니까 정말 대견하기는 하더군요.
<이런 사람이 있어 연극계가 아직 씨가 마르지는 않았구나>
라고요.
그런데 관객들의 평은 형편없었답니다.
객평을 듣기 위해 관객인척 극장 주위를 다니던 그는 아마
<연극하는 놈들은 무조건 있어 보이고 어려워 보이면 좋아해>
라든지...
<그렇게 잘 났으면 국립 극단에나 들어가서 연극하지 미쳤다고 지방 극단에서 일해?>
라는 비아냥 뿐이었나 봅니다.
그리고 얼마 후 리어왕 연극의 적자를 메우기 위해 연 것이 바로 어떤 가족 뮤지컬이었다는군요.
쉽고 교훈적인 내용에 코믹을 섞어서 나름대로 관객들이 재미있게 보았다는 군요.
이 연극이 끝나고 나서...역시 나가는 관객들 객평을 들어 본 그 친구...
그 객평이란...
<으휴, 명색이 예술한다는 사람들이 돈 맛은 알아서 이딴 애들 볼거리나 하고 말이야.>
라든가
<뭐, 한국 연극계가 다 그렇지, 뭐. 뭐 대단할 게 있겠어?>
라는 소리 뿐이었다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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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습니다.
모두 옳은 소리들이죠.
연극을 본격적으로 하는 사람들은 여기에도 자기 주장이 있어
<연극하는 사람들은 예술적 향취만을 추종하여야 하며 가족 뮤지컬 따위로 연극을 모독하는 것은 예능인으로 품위 위반이다>
고 하시는 분이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연극은 종합 예술로 그 전통과 뿌리가 깊어 그 하나만을 깊이 추구해도 사람의 일생이 짧은 예술인 것은 틀림 없고...
또한 너무 어려운 예술만 추구하다 관객의 외면을 자처하는 것은 연극이 살아갈 기둥 뿌리마저 뽑는 일이라 할 수도 있겠죠.
모든 주장은 항상 다른 논지로 반박 가능합니다.
과학적 사실이 아니라 사회 이슈의 주장은 하나의 근거를 놓고도 서로 다른 판단이 나오기에 해석과 문화의 문제입니다.
마음에 드는 글이 아니라 비판의 대상이라고 말한다면...
자기 보기에 수준이 낮다고 비판의 대상이라 말한다면...
현학적인 체 한다고 비판의 대상이라 말한다면...
좀 문제가 있는 게 아닌가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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