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나 하죠.
우리나라에는 없지만 유럽이나 미국에서는 최초로 파는 소설에 별로 돈을 안 들이더군요. 종이의 종류는 갱지, 표지는 제목 정도, 제본 방식도 굉장히 돈 절약되겠군이라는 생각이 절로 들 정도의 방식.
(뭐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값은 단순 계산으로는 우리보다 훨씬 비싸지만.)
대신 돈 쓰는 독자들을 위해서 고급 양장품도 파는 모양이지만 그건 일단 논외로 치고......
저건 아는 사람 다 아는 이야기지만 한때 우리나라 출판사에서도 똑같이 사용되던 제책 방식입니다.
바로 시대를 풍미했던 박스무협입니다.
저 얼마전까지도 박스무협책 몇권 가지고 있었는데(옛날에 빌려왔다가 잊고 있던것...) 누님이 독일에서 사오신 독일의 유명 작가 소설이랑 질이 그게 그거더군요.
우리나라도 아마 저런 방식으로 책을 만들면 책값을 많이 따운 시킬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는 분들이 많을 줄 압니다. 편집도 맞춥법이나 교정하는 정도로 대충하고, 표지도 제목이나 찍어넣고, 싸구려 종이에, 싸구려 인쇄법을 쓰면 분명히 책 값의 원가는 어느 정도 다운 되겠죠.
하지만 출판사들은 절대로 저런 방식으로 책 안찍습니다.
이유는 몇가지 있죠.
1. 저런식으로 책 만들면 저질 3류 출판사로 매장당합니다. 그 책이 얼마나 양서이건 말건 싸구려 책 만드는 출판사는 싸구려 출판사로 취급되는 거지요.
2. 싸구려 출판사라고 매도 당하더라도 출판 시장을 위해 이 한 몸 희생해서 찍어낸다! 라고 해도 찍어낸 책을 독자들에게 팔 방법이 없습니다. 우리나라 서점이나 대형 서적 도매상들은 싸구려 책을 취급해서 3류 싸구려 서점으로 취급받으려 하지 않습니다. 절대로 말이지요.
3. 훌륭한 서점이 있어서 싸구려 취급당하더라도 독자를 위해 기꺼이 팔겠다! 라고 하는 서점이 있어도 소용없습니다. 서점 망합니다. 다른 출판사들이 책을 공급안할테니까요. 싸구려 서점에 책을 파는 출판사는 싸구려 출판사가 된다고 생각할테니까 말입니다.
4. 독자들이 팔아주면 한 출판사 한 서점만으로도 먹고 살 수 있다!
못 먹고 삽니다.
저렇게 저렴하게 책을 만들어도 실제 가격까지 저렴해지기는 힘들기 때문입니다.
책 값에서 각각의 요소가 차지하는 원가를 보면 참 재미있는 점을 알게 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설마하는 부분인데,
출판사가 서점에 책을 넘기는 가격은 액면가의 50~60%입니다.
중간 도매상과 서점이 판매가격의 40~50%를 나눠먹는단 이야기입니다. 부당하다고 생각되면 오산입니다. 서점이 책을 진열할 공간과 재고를 보관할 공간을 확보하고 그 책이 유통될때까지의 시간과 그에 따른 소모비용을 고려하면 생각외로 큰 돈 아닙니다.
인터넷 서점에서 예전에 비교적 큰 할인률을 적용하고, 오프라인 서점들이 이에 강력하게 항의했던 이유가 이겁니다. 오프라인 서점들은 자신들이 진열해서 광고하면 사람들은 자신들의 서점에서 물건을 확인하고 인터넷 서점에서 저렴하게 구입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건은 거론하자면 무지하게 긴 이야기이니 이쯤에서 대충넘어가고......
출판사의 이야기로 돌아와서
이 출판사가 판매하는 50~60%의 가격중 5~10%는 작가인세입니다. 요즘 왠만한 출판사는 장르문학 작가에게 거의 10%인세 지급한다고 하니 10%로 잡겠습니다.
그럼 출판사의 몫은 40~50%로 다시 떨어집니다.
책값을 8000원 초판 물량을 대략 3000권으로 잡으면 출판사 몫은 대략 1200만원에서 960만원 정도라는 겁니다. 출판사는 이 비용내에서 제작비와 이득을 모두 얻어야 합니다.
표지 디자인 비용은 200~300사이라고 하는데 쉽게 300만원에 6권 기준으로 권당 비용 50만원 정도를 잡읍시다.
거기에 편집비용이 들어갑니다. 편집비용은 실가를 잡기가 좀 어렵군요. 거의 안들어가면 안들어가고 많이 들어가면 무지하게 많이 들어가는군요.
종이값들어갑니다.
인쇄비용들어갑니다.
제본비용들어갑니다.
그리고 진짜 거론하고 싶지 않지만 손실비용이 들어갑니다. 손실은 책을 만들어질때의 얼마 안되는 손실과 손상된 책의 반품등으로 입는 막대한 손실이 있습니다.
결국 이것저것 떼고 나면 출판사가 책을 팔아서 얻는 이득은 대략 책값의 10~20%정도가 고작이라는 겁니다.(이걸 고작이라고 할 수 없다는 분도 계시겠지만, 의외로 출판사가 폭리를 취하는 줄 아시는 분들이 많아서 이렇게 설명하면 고작? 이라는 반응들이 많더군요.) 영세 출판사가 작가 인세에 박한 이유를 알 수 있지요. 영세한 출판사일 수록 이득율이 낮기 때문에 작가 인세를 박하게 주면 그만큼이 출판사 이득율로 올라갑니다. 10:10에서 5:15가 된다면 출판사들이 욕먹어도 눈 질끈 감을 정도가 되어 버리지요.
살펴본 바와 같이 책값에서 실제로 종이나 인쇄비용이 차지하는 비용은 적다는 겁니다. 종이값 반으로 아끼고, 인쇄비용 반으로 아끼어 봐야 책값 특별히 안 내려갑니다. (반대로 장수 좀 줄이고 글자수 좀 줄여봐야 출판사에 이득가는거 별로 없습니다. 최근의 책들이 장수가 줄고 글자수가 커지는 것은 아무래도 작가들이 권당 원고지매수를 적게 잡는게 원인인듯 합니다. 초기 무렵에는 1200매정도였다고 알고 있고, 최근에는 900매 정도로 들었는데 비교해 보면 알겠지만 1/4이 줄었습니다. 작가의 부담이 1/4 줄었다는 이야기지요.
참고로 1200매 꽉 채워서 조밀하게 책 냈더니 글자가 너무 작고 줄간격이 너무 좁아 보기에 불편하다는 욕을 한번이라도 먹으면 두번 다시 1200매 채울 의욕 안 나옵니다.)
싸구려 취급 받아봐야 실제로 책값을 다운시키는 폭은 기껏해야 1000원 정도가 한계입니다. 1000원 싸게 팔면서 그 난리 치느니 그냥 좀 비싸게 팔고 말지요.
이쯤에서 의문이 생깁니다.
어? 그럼 예전에는 어떻게 그렇게 저렴하게 팔았어? 그때나 지금이나 원가 차이가 그렇게 적다면?
간단합니다. 박리다매입니다.
IMF이전까지 우리나라 출판사들은 책을 왕창 찍어서 도매상이나 서점에 떠 넘겨 버렸습니다. 결제는 어음으로 받습니다.
당장의 현금부담없이 책을 넘겨 받은 서점이나 도매상들은 부담없이 책을 마구 팝니다. 그들에는 최악의 경우 팔린 만큼 돈을 지불하고 안 팔리는 분량은 반품해 버리면 된다는 개념이 있습니다. 당연히 부담이 적고 그만큼 책을 파는데 자신들의 비용이 적게 소모됩니다. 그래서 부담없이 마케팅 비용을 지출할 수 있게 됩니다.
물론 출판사쪽에서는 아무책이나 이렇게 마구 찍어서 넘겼다는 망하기 쉽상입니다. 안팔리고 거의 대부분이 반품들어오는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망하는 출판사도 많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 판매량과 반품량 때문에 작가 인세의 경우가 판매량에 대해 지급되는 것인지 인쇄량 전부에 대해 지급되는 것인지에 대해 분쟁도 꽤 많았다고 합니다.
어찌되었던 이런 방식 덕분에 수십만권씩 팔리는 책들이 일년에도 제법 나옵니다. 드래곤 라자가 이 방식의 수혜를 입은 거의 마지막 베스트 셀러입니다.
문제는 IMF였습니다.
IMF와중에 여러 회사 망하면서 별로 상관없어 보였던 서점이나 중간 도매상들도 여럿 망했고, 덕분에 출판사들이 이들에게 받았던 거액의 어음들이 왕창 부도나는 사태가 발생합니다. 당시에 이름만 들어도 알법한 초 유명의 베스트셀러들이 이런 경우를 만나서 출판사를 말아먹은 경우가 제법 된답니다.
출판사들의 마인드가 바뀝니다. 출판사들은 도매상이나 서점에 책을 넘기면서 현금으로 결제를 요구합니다. 당연히 도매상이나 서점들은 부담을 느낍니다. 이제 예전처럼 일단 왕창 받아놓고 팔면 팔리고 아니면 반품하고는 안 통합니다. 왜냐면 반품할때까지 자신들의 자금이 출판사에 묶이게 되기 때문입니다. 몇천만원의 돈이 몇개월의 기간동안 내손에서 구르는 것과 남의 손에서 굴렀을때의 이익은 거론하지 않겠습니다. 거기에 반품했을대 그만큼 돈을 돌려 받는 다는 보장도 없습니다.
도매상이나 서점들은 책을 받을때 소극적으로 변합니다. 이전에는 이 정도 수준이면 한 천권 받아서 마구 팔아볼까? 싶던 것들도 한 300권 받아서 팔다가 다 팔리면 또 주문하지. 로 바뀝니다. 책 판매의 초기 푸쉬가 약해지면서 전체로 책 판매량이 떨어집니다. 그리고 이 적은 판매량은 책값 인상의 강력한 요인이 됩니다.
대량 생산이 원가 절감에 미치는 요인이 책에 어떻게 미치는가? 에 대해 이해 못하시는 분들을 위해 간단히 설명하자면 300만원 주고 만든 책 표지 디자인의 원가를 3000권에 1000원씩 부담시킬것인가 3만권에 100원씩 부담시킬 것인가를 계산해보면 쉽게 나올겁니다.
책값이 오릅니다.
그리고 악순환이 시작됩니다.
이 시기 도서대여점이 번창하기 시작하고, IMF로 국민들의 소비 심리가 위축되면서 사람들은 서점에서 가격이 오른 책을 사는데 부담을 느끼고 도서대여점에서 빌려보는데 익숙해집니다.
판매량은 또 감소합니다.
책값은 또 인상요인이 생깁니다.
IMF로 인한 국민소비심리의 지속적 하락은 왕창 생겼던 도서대여점의 수마저 줄여버립니다.
책 판매량은 또 감소합니다.
책값은 또 인상됩니다.
아닌것 같다구요?
97년 초기 환타지 작품들의 초판은 대부분 1만권 전후였습니다. 하지만 2000년을 전후해서 5천에서 7천권 사이로 하락했고, 2003년 쯔음에는 왠만큼 유명하지 않은 작품은 3천권 이하로 떨어집니다.
5%정도 지불하던 데뷰작가의 평균 인세도 7% 10%로 지속적으로 인상됩니다. 총 판매량이 적으므로 작가에게 어느 정도 이상의 인세를 쥐어주기 위해서는 인세비율을 높일 수 밖에 없게 된 겁니다.
제대로 된 출판사라면 작가가 벌게 되는 수입에도 민감하게 신경씁니다. 수입이 보장이 되어야 지속적으로 창작 활동에 전념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 판매량의 하락이 지속적인 책 값 인상 요인이 되고, 책값이 인상이 다시 판매량 하락의 요인이 되어 장르문학은 도서대여점용으로 굳어지게 됩니다.
이게 97년 나름대로 화려하게 기지개를 키며 시작된 장르문학이 시장에서 걸어간 길입니다.
이제와서 뭔가 대안이나 대책을 찾기도 힘들어보입니다.
도서대여점이 없어진다고 해도 도움은 안될것 같습니다. 장기적으로 사서보는 풍조를 부활시킬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 전에 장르문학은 다 고사할겁니다. 지금 작가 다 죽을 각오하고 다음 세대를 위해서라면 몰라도 어림없는 이야기입니다.
책값을 떨어뜨리는 방법은 위에 서술한바와 같이 책값이 떨어져서 독자들이 사서보는 풍조가 되살아나기 전에 수익성 악화로 관련 출판사들이 다 망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대안은 하나 정도입니다.
이전에 많이 거론했다싶이 도서대여점 용과 개인 판매용 책을 구별하는 방법입니다. 이 방법에 대해 여러가지 실행 방법과 그에 대한 장단점은 수십차례 거론되었으니 여기서 거론하지 않겠습니다.
이 글을 읽으신 여러분들이 부디 책값이 비싼 이유가 출판사가 돈독이 올라서라거나 작가들이 떼돈 벌려고 그러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마지막으로 이게 연재한담에 올려도 되는 이야기인지 모르겠습니다.
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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