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조선시대에는 진서림님의 말씀대로 무예를 익힌 문관도 많았지만, 무예를 익히지 않은 문관이나 무관이 더 많았습니다. 전쟁이 일어날 때도 대체로 문관들이 사령관을 맞거나 했습니다.
모원의의 기록에 따르면 임진왜란 당시에는 조선 창고의 병장기가 대부분 녹슬어 쓸만한 것이 거의 없었다고 합니다.
진서림님의 어렸을 적부터 무예를 단련하고, 하나의 무예를 탄생시킬 정도의 수련을 쌓은 사람이 과연 많았을까요?
진서림님이 규정하시는 뛰어난 무술과 전통 무예가 어떤 것인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무술전문가와 역사가, 언어연구가들의 조사한 바에 따르면 한국에서 전통무예라고 주장하는 4~50여가지 무예 중 20세기 전에 만들어진 무예로 추정도는 것은 고작 택견과 선무도, 기천, 추풍검법 정도입니다.
비홍검술 역시 하늘을 나는 기러기를 베었다고 해서 그것을 본 사람들이 비홍검이라고 불렀을 뿐 실제 이름은 알 수가 없습니다.
또한 검법이 발달한 자극이 없었다는 것은 말도 안되는 이야기입니다. 조선 중기 이후로는 분명 성리학과 유학의 중시로 인해 무예를 천시하는 풍조가 생겼습니다만, 엄연히 조선 중기 때의 이야기입니다.
조선은 몽고, 홍건적, 왜구 등 외적에 의해 혼란했던 시기 속에서 건국된 나라입니다. 무예가 발달하지 않을 수 없는 환경입니다.
또한, 군용무예라고 하여 뛰어난 무술이 아니라는 보장은 없습니다. 오히려 더욱 뛰어날 가능성이 높습니다. 단련이 되기 때문이며 실전적이기 때문입니다.
조선초기의 군용 무예가 얼마나 뛰어난 수준인지는 대마도 정벌과 북방 한계선 확장으로 얼마든지 추측할 수 있습니다.
척계광은 왜구와 싸워서 그들을 격퇴시켰지만, 일본도가 얼마나 위력적인지는
감탄을 금치못했습니다. 그대로 옮긴다면,
"칼날의 길이가 5척이며 뒷부분에 등호인 1척을 썼다. 칼자루, 손잡이를 합하여 전장 6척 5촌이나 되며 무게는 2근 8량이다. 이 칼은 왜구가 중국을 침법하면서 보이기 시작했다.
그들이 이칼을 쥐고 춤을 추니 번쩍이는 칼빛이 우리 군사들의 앞에 다다르니 이미 기세를 빼앗았다. 왜인이 뛰어들면 한발 남짓 뛰어드니 부딪히는 자가 두동강이 난다.
이것은 칼이 날카롭고 두손으로 칼을 쓰기 때문이다. 예전부터 이를 써왔고 지금도 그들만 쓰는 것 같으니 막아낼 도리가 없다. 오직 조총수가 견제할 수 있다."
라고 했습니다.
그런 왜구의 집합소인 대마도를 정벌했으니 얼마나 강력한 무예를 가졌는지는 더 이상 증명하지 않아도 되는 바입니다. 활 때문에 가능하기도 했습니다만, 일본인들은 엄연히 개자검술을 자랑하는 민족으로, 갑옷을 한국보다 더 많이 착용하였습니다. 근접싸움이 약하다면 정벌은 감히 꿈도 못꿉니다.
또한 검이 왜색이라는 건 이해하기 힘듭니다. 현재 예도를 쓰는 게 왜색이긴 하지만, 검은 엄연히 어느 나라나 있는 무기입니다.
단, 검이 의례적인 상징이라는데 있어서는 저도 같은 의견입니다. 하지만 군용무예를 진서림님께서 약하게 보시는 듯 하여 섭섭하군요.
분명히 조선세법은 의례적인 무기인 검을 사용합니다.
군용검술로 통용될 정도로 잘 정리가 된 검법입니다.
하지만 후자의 경우가 되기 위해서는 실전적이며 강해야하죠. 때문에 조선세법이 검도사에 평가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의례적인 의미로 멈춰있던 검법에 있어 다른 무기술과 겨룰 만한 것은 동양에서 조선세법이 유일합니다.
조선세법은 마상검법이자 개자검법이고 또한 수련검법입니다.
사용하는 검은 패검으로 중국에서는 고대부터 고려검이라고 불리며, 허리에 차는 대검입니다. 한국 분들은 허리에 차는 곧고 단단한 이 검이 평범하다고 생각하실 지 모르겠지만 실제로는 한국에서밖에 생산될 수 없는, 제철기술의 극치를 나타냅니다. 왜냐하면 일본도처럼 휘지 않고, 중국검처럼 찰랑대지 않으며, 서양검처럼 두껍고 굵지 않으면서도, 길고 간격이 일정한 장검은 오직 고려검, 패검 밖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조선세법의 역사성과 전통을 뒷받침하는 근거이기도 합니다.
결론지어, 한국의 전통검술은 분명히 강했고 그 중 하나인 조선세법은
궁시에 비해 전혀 떨어지지 않는 한국의 전통 무예라고 생각합니다.
ps. 저는 가끔 호주 시드니 한인 대학의 역사 교수님과 판타지나 무협의 설정과 역사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곤 하는데, 그분께서 강조하시는 말이 있습니다.
"역사란, 사실 강한 사건이 지워지거나 숨겨질 때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남아있는 역사가 약한 사건이라는 의미는 결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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