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작가다.
나 스스로 아직 작가가 되려면 멀었다는 사실을 너무도 잘 알고 있지만,
그래도 나는 작가다.
나는 성공한 작가, 헤밍웨이의 일상을 머릿속으로 그리면서,
나는 그런 작가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
하루 일과를 시작한다.
27살에 억만장자가 된 폴 마이어가 집세가 없어서 살던 집에서 쫓겨나는 순간에도
"나는 부자다. 단지 지금 집세를 낼 돈이 없을 뿐이다."라고 주문을 외우듯이,
미국에 자동차 세일즈로 가장 성공한 카 세일즈맨이 항상 가장 비싼 차 앞에서 가장 멋진 양복을 빼입고 찍은 사진을 가슴 속에 품고 다니면서 "이게 내 미래의 모습이야." 라고 마음 속으로 소리치듯이....
나는 작가다. 그것도 성공한 작가!
나는 성공한 작가가 되기 위해서 항상 노력한다.
그래야 성공한 작가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가 아는 범위 내에서 어느 작가보다 일찍 일어나고,
어느 작가들보다 많은 책을 읽고 있다.(사실 최고라고는 말 못한다. 정말로 나보다 많은 책을 읽고 있는 진짜 작가 셋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느 누구보다 많은 궁리를 하고 있다고 자신한다.
(이건 측량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그렇게 주장한다. 증명이 안 되니까, "카더라" 할 수 있다. 이 얼마나 좋은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번에도 연재를 안 올렸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못 올린 게 아니라 안 올렸다.
못 올렸다는 할 수 없었기 때문이고, 안 올린 것을 할 수는 있어도, 안 했다는 것이다.
영어로 하면 could not 과 did not의 차이다.
이 차이는 누가 뭐래도 명확하다.
왜 안 올렸냐고?
왜! 난 프로니까.
난 글을 써서 그 글을 팔고 그 돈으로 먹고 사는 프로다.
그냥 아무렇게나 글을 써서 사람들이 그 글을 읽는 것으로 좋아라 하는 것만으로도 만족스런 아마추어가 아니다.
난 프로다.
프로이기 때문에 남들이 와서 돈을 주고 보기에 충분한 글을 써야 한다.
그런 퀄리티와 그 정도의 퀀티티가 채워지지 않는다면,
나는 글을 올릴 수없다.
내 자존쉽이 허락치 않는다.
나는 프로다.
나는 내 글을 돈을 주고 사서 읽어보는 독자에게 그 돈이 아깝지 않을 만큼의 이익을 안겨 주어야 한다.
그래야 그 독자는 다음에도 내 이름을 보고,
내 글을 읽는데, 그 돈을 내는 것을 아까워 하지 않을 테니까 말이다.
그것이야말로 프로근성이다.
나는 프로다.
샐러리맨이 아니라는 말이다.
내 노동을 계약해서 시간단위로 팔고 그 댓가로 다른 사람으로부터 고정적으로 수입을 받는 그런 샐러리맨이 아니다.
시간이 지나면 자동으로 수입이 생기는 것이 아니라,
내 노동에 의해 창조물이 나오지 않는다면, 수입이 생기지 않는 프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창조물을 내놓지 못한다는 것은 프로로서 그만큼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 없다.
하지만,
프로이기 때문에 창작물을 내놓는데 망설이지 않을 수 없다.
한 번 창작물을 내놓고 나면-그것이 인쇄되어 시장에 풀리고 나면- 다시는 되돌릴 수 없기 때문이다.
샐러리맨이야, 이번 달에 실수를 하더라도, 다음 달에 그 실수를 만회하면, 이번 달 월급이건, 다음달 월급이건 차이 없고, 다음 해에도 안 짤리면 연봉이 인상되겠지만, 난 그런 샐러리맨이 아니다.
내 창작물로 시장에서 평가받고 그것으로 내 가치가 매겨지지 않을 수 없는 프로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내 글을 내놓을 때면 항상 가슴이 두근거린다.
왜냐하면... 나는 프로이기 때문이다.
처음 연재를 하는 것도 아닌데, 처음으로 글을 쓰는 것도 아닌데....
항상 서문을 쓸 때면 독자에게 조심스런 몸짓으로 글을 내밀게 되고,
작가 후기를 슬 때면 언제나 미안한 마음이 든다.
고작 이런 것으로 여러분의 주머니에서 돈을 가져간다고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글을 내미는 이유는....
나는 이것이 직업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 직업으로 금전적 수입을 가져가는 프로다.
프로이기 때문에....
자신있다고 생각되지 않는 한, 나는 안 꺼낸다.
대충 써 갈겨서 대충 10k 채울 수도 있지만, 내 자신이 그것을 용납 못 한다.
<칠독마>4권....
썼다 지웠다 하기를 몇 번 째인지 모른다.
처음 썼던 것을 지웠고, 다른 글을 쓰면서 미루다가 지웠고, 다른 곳의 부탁-이라기 보다는 그렇게 하라는 주문-을 받아서 다시 쓰다가 마음에 안들어서 다 폐기했다. 그래도 성에 안 차서 다시 쓰다가... 아직도 마음에 안 든다.
그래서 또 미루어 놓았다.
나도 안다.
기다리는 독자들이 많고, 이제는 그들의 뇌리속에서도 잊히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하지만, 나는 그렇다고 대충 내놓을 수도 없다.
이제는 더욱 대충 써서 출판사에 넘길 수가 없게 되었다.
몇 번을 썼다는 게 이 정도냐는 소리는 죽어도 들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나는 프로이기 때문이다.
차라리 뒤로 미루고 지금 내가 잘 쓸 수 있는 글, 지금 쓰고 싶은 글을 먼저 쓸 지언정, 그래서 연재도 못하고 컴퓨터 하드 디스크 한 쪽 구석에 정리도 안 된 채 조각난 텍스트 파일로 쑤셔 넣고, 어디에 무슨 파일이 있는지 수첩에 메모를 하다가 수첩이 지저분해지고, 그렇게 되기를 반복하다가 수첩에 내가 어디에 무엇을 썼는지도 까먹고, 결국은 그게 무슨 소리인지도 모르게 될 지언정, 그래서 결국 머릿속에 "무슨 스토리의 글을 쓸까 생각했었는데 기억이 안나...." 하는 넋두리만 남을 지언정, 부족한 글을 서둘러 내놓을 수는 없다.
설익은 밥을 먹으면 설사를 한다.
하지만, 설 익은 글을 내놓으면, 나는 더 이상 글을 쓸 수 없다.
왜냐하면, 나는 프로이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도 꿈을 꾼다.
근사한.... 하얀 대리석으로 지어진 별장에서 딸아이 같은 애첩을 끼고, 일광욕을 즐기면서 다음 작품 구상을 하는 헤밍웨이-가 아니라, 한국의 장르 소설 작가 스트레인지웨이(別道)를....
나는 그렇게 될 수 있다.
그러니까, 그렇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프로니까.
그래서 나는....
오늘도 연재 안 한다.
연재해도 된다고 내 스스로 인정할 때까지!
프로 작가를 꿈꾸는 별도(別道)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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