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담의 분위기도 바꿔볼 겸 해서 레알 한담 갑니다.
국산 장르 소설, 특히 판타지 쪽에서 제가 생각하는 대표작을 몇 개 꼽아보려고 합니다.
1. 이영도 타자님의 “눈물을 마시는 새”
이영도 타자님은 뭐, 두 말할 것도 없는 이 바닥 본좌죠.
본인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의 세계관을 만들려면 응당 이 분처럼 해야 합니다. 이 분의 작품 중 독창적이고 재밌지 않은 소설이 없습니다. 깨알 같은 개그와 적당한 시리어스함이 절묘하게 어우러진데다, 캐릭터 하나하나 소설 안에서 맡은 바 임무가 확실하고 그에 따른 캐릭터성도 매력적입니다.
다른 작품도 버릴 것이 없지만 그 중 하나만 꼽으라면 전 “눈물을 마시는 새”를 꼽겠습니다. 똑같은 세계관이지만 피마새가 장대한 서사 쪽에 치우친데 반해, 눈마새는 판타지의 정통이라 할 수 있는 모험자, 여행자의 요소와 정치, 전쟁 등의 서사가 적절하게 어우러져 한국의 톨킨이 쓴 한국의 반지의 제왕을 읽는 기분이거든요.
새 시리즈의 첫 작품이자 그 매력적인 세계관이 등장한 첫 작품이란 점에서 점수를 더 주고 싶기도 합니다. 안 읽으신 분 계시다면 꼭 보세요. 두 번 보세요.
2. 전민희 작가님의 “룬의 아이들 - 윈터러”
말할 것 없는 이 바닥 본좌 두 번째.
두 분 사이에 우열을 가릴 이유도 없고 무엇보다 스타일에 있어 확연한 차이를 보이기 때문에 누가 으뜸이냐 논할 필요도 없습니다. 가나다 순서에 따른 것임을 알려둡니다(......)
얘기했다시피 이영도 타자가 서사시를 그려낸다면, 전민희 작가는 서정시를 그리는 편에 가깝습니다. 세계관의 독창성, 짜임새를 논하는데 있어 이 두 분은 그야말로 난형난제, 용호상박이죠.
다만 그 세계관을 가지고 이영도 타자는 세계 단위의 군상극을 그리는 반면, 전민희 작가는 주인공- 특히 소년과 소녀의 성장을 밀도 높은 묘사를 통해 그려낸다는 점에서 모험과 성장이라고 하는 정통 판타지에 더 가까울지도 모르겠습니다.
전민희 작가의 그런 성향과 역량이 최고조로 발휘된 작품이 윈터러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데모닉은 주인공 두 명이 애늙은이들이라(......) 세월의 돌은 데뷔작인지라 문체가 완성되기 전이라 글이 잘 안 읽히는 편입니다. 물론 재미와 감동은 있지만요.
만약 태양의 탑이 제대로 나온다면 태탑을 꼽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세월의 돌 보고 전 그다지 짱짱맨이란 생각까진 안 들었는데, 태탑을 보고 경악했습니다. 세월의 돌에서 쉽게 읽히지 않던 문체는 말끔히 정리됐고, 그렇게 되자 세계관은 물론, 인물, 사건, 풍경 등에 대한 치밀한 묘사가 생생하게 다가왔습니다. 거기다 이야기의 완급 조절이 아주 그냥;
그야말로 다음 권이 궁금해 밤잠을 못 이룰 경지. 그래서 지금도 전민희 작가 팬들이 태탑이 어서 재개되기를 그렇게 간절히 빌고 또 비는지 모르겠습니다.
3. 민소영 작가님의 “홍염의 성좌”
호불호가 좀 갈리는 작가님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초기 판타지 작가들이 TRPG 특히 D&D의 설정과 로도스도 전기의 아인간 및 몬스터 설정을 많이들 차용한데 비해 이 분은 꾸준히 독창적인 세계관을 만들고 있습니다. 캐릭터 묘사와 사건 서사도 훌륭하구요.
다만... 히로인이 워낙 취향 타는데다, 딥 다크한 설정을 자주 사용하는지라 동일 작가의 작품들 사이에서도 취향 타는 경우가 생깁니다; 저를 예로 들자면 겨울성의 열쇠는 무난했지만 검은 숲의 은자는 지금도 찝찝한 기억이 남아 있어요.
홍염의 성좌 같은 경우는 크게 취향 타지 않고 판타지 장르 팬이라면 대부분 재밌게 읽을 수 있을 것 같아 대표작으로 꼽았습니다.
4. 홍정훈 작가님의 “월야환담 채월야”
사실 이 분...... 좀 그렇죠. 세계관 표절이나 차용에 관한 논란이 늘 뒤따르는 분이라. 한두 번은 의도하지 않은 비슷함일 수도 있지만 논란이 자꾸 반복되는 건 좀.
오히려 발틴 사가 같은 독창적인 소설도 진짜 재밌게 잘 쓰는 분인데, 조금 아쉽습니다. 발틴 사가는 시장의 평가가 좋지 못 했나 봅니다 ㅠㅠ
어쨌든, 한국 판타지 장르 초기 이른바 요즘 말하는 현판 장르의 효시격이라 할 수 있는 대표작이 채월야죠. 딥 다크한 설정 속에 광기에 물들기 직전인 주인공이 만나는 정신 나간 인물들과 사건들이 스피디하고 임팩트 있게 그려집니다.
마찬가지로 좀 취향 탈지도 모르겠습니다. 적나라하고 폭력적인 부분이 꽤 되거든요.
번외 무협편. 용대운 노사의 “군림천하”
대한민국 무협의 본좌 용노사 일생일대의 대작입니다. 아직 완결이 안 났습니다만.
당초 예정보다 권수가 길어지면서 불안불안한 모습도 보이지만, 용대운 작가의 무시무시한 필력은 물론 깨알 같은 용노사 작품들에 대한 패러디 요소들이 어우러져 용노사의 대표작이자 한국 무협의 대표작이 될 가능성이 농후한 작품입니다.
무협 팬들이라면 당연히 아시겠지만, 판타지 장르만 좋아하시던 분이라도 한 번 일독을 권해봅니다. 정통 무협이라 할 만한 이 작품을 읽은 다음 좌백 작가님을 비롯한 다른 신무협 작가분들의 작품들도 보시면 괜찮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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