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으로는 주인공이 고생고생하는 이야기를 굉장히 좋아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주인공이 단순히 구르기만 하는 이야기라면 뭐든 좋아하지는 않습니다.
요컨대 굴려도 재미있게 굴려야 읽을 맛이 있다는 것이죠. 그럼 어떻게 굴려야 재미있어 보이냐 한다면....
굴리기가 재미있는 경우:
(1) 주인공이 강적을 상대로 겨우 겨우 이기는 경우
이래야 스릴감도 만끽할 수 있고,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다음 페이지로 넘길 수 있으니까요. 겸사겸사 주인공의 근성과 투지에 대해 감탄할 수도 있고, 지능적인 방법으로 적을 종이 한 장 차이로 이겼을 때는 엄청난 카타르시스도 느낄 수 있고요.
(2) 주인공이 처한 상황이 너무 억울해보이는 경우
이렇게 하면 주인공에게 감정을 이입하며 책을 보게 되더군요. 한편으로는 주인공을 억울한 상황에 몰아넣은 악역들을 보고 화를 내고, 그들이 몰락하는 장면을 보고 싶어서 다음 장을 넘기는 효과도 있고요.
여담이지만 이런 굴리기는 생각보다 대중들에게 잘 먹히는 방식입니다. 이런 방식으로 인기를 얻은 이야기가 한 둘이 아니니까요. 단적인 예로 ‘몬테크리스토 백작’을 들 수 있겠네요. 흥미성 소설로 시작해 고전으로 길이 남은 명작 말입니다.
(3) 막판에 주인공을 나락으로 떨어뜨려 버리는 경우
반전의 재미가 있으니까요. 물론 그냥 나락으로 떨어뜨리면 어이 없는 결말로 보이기 마련이고, 주인공이 ‘잘못된 신념’을 추구한 결과 나락으로 떨어지는 등 납득할만한 ‘과정’이 있어야 합니다.
이런 굴리기도 나름 인기는 많이 끌었습니다. 최근 작품들을 꼽자면 ‘페이트 제로’, 게임 중에서는 ’바이오쇼크: 인피니트‘(좀 많이 복잡하긴 하지만 넓은 의미로 이런 굴리기 방식에 포함되긴 합니다)를 예로 들 수 있겠네요.
굴리기가 영 재미없어 보이는 경우:
(1) 주인공이 어이 없는 실수나 주의 부족으로 구를 경우
똑똑한 악역들 때문에 누명을 쓴 주인공을 보면 동정이 가지만, 자신의 실수나 부주의한 행동으로 고생을 자초한 주인공을 보면 울화통이 터지기 마련이죠. 막말로 ‘저 ㅂㅅ같은 ㄴ’과 같은 반응도 나오고.
이러면 주인공에게 기대를 걸 수 없게 되므로 이야기에 대한 흥미를 잃게 됩니다. 특히 주인공이 한 짓이 너무 어이 없고 바보 같게 보인다면, 아예 책을 집어던지게 되겠죠.
(2) ‘굴리기’를 위한 ‘굴리기’를 할 경우
역경을 이기는 카타르시스를 제공하기 위해 주인공을 굴린다면 별 불만이 없습니다. 조금만 참으면 주인공이 추진력을 받아 시~원하게 활약해줄 테니까요.
부당한 현실을 비판하기 위해 주인공을 굴리는 것 또한 별 불만이 없습니다. 그럴수록 ‘책이 참 속 시원하게 현실을 찌르는구나’라는 감상을 받으니까요.
하지만 단순히 별 이유 없이 인물을 굴리는 건 별로입니다. 나중에 속 시원한 장면이 나올 거라는 기대가 들지 않으니까요. 심할 경우 ‘작가가 캐릭터를 소중히 다루지 않는구나’ 싶은 인상도 받을 수 있고요.
(3) 지나치게 질질 끌고 가는 경우
굴리기 분량이 늘어지면 늘어질수록 독자는 지치기 마련입니다. ‘언제 주인공이 활약하려나’ 기대하는 심정으로 책을 봤는데, 원하는 장면이 계속 나오지 않으니 말입니다.
물론 스토리 상 오랫동안 굴릴 수밖에 없는 경우도 많습니다. 허나 이런 경우는, 길게 길게 주인공을 굴리기보다, 쉼표를 찍는 느낌으로 주인공을 한 순간씩 풀어줘야 합니다.
실제로 주인공을 나락으로 보낸 몬테크리스토 백작의 경우도, 감방에서 주인공의 정신적 지주가 돼 줄 인물 ‘파리아 신부’를 등장시켜서 독자들이 한 숨 돌릴 수 있도록 했죠. 그리고 나서 독자들이 충분히 숨을 돌릴 무렵, ‘파리아 신부’가 병으로 쓰러지는 장면을 넣어서 멘탈을 날려버렸고요 (...)
이런 식으로 주인공을 굴리는 상황을 나눠서 투입하고, 중간중간에는 희망을 심어주는 식으로 이야기를 전개해줘야 읽기 편합니다. 안 그러면 괴로워서 중간에 그만 두거든요. -_-
여튼, 목적성이 없는 굴리기는 그냥 ‘주인공이 무능력하고 약하다’라는 사실을 부각할 뿐입니다. 이를 극복하려면 ‘주인공을 어떻게 굴려야 이야기가 재미있어질까;라는 점을 고민해야겠죠.
Comment '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