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에 글을 보고 글을 올립니다. 먼저 양판에 대한 제 생각을 표현하자면, 단 하나의 양판만 있다면 그것은 굉장한 소설이고 유네스코에 등제되어야 마땅합니다. 일단 사람들에게 충분히 인기 있다는 전제 하에서요. 사람들이 그 양판에 공감해주고 책을 사서 읽어주고 즐겼다는 건 그만큼 인간에 대한 이해도가 높으니까 가능한 것이죠.
물론 양판계가 매우 바람직하게 발전하고 있어서 질투가 날 정도입니다. 하지만, 양판의 치명적인 단점도 있죠. 그건 너무 많이 생산된다는 겁니다.
그게 왜 문제가 되냐면요.
즐거움만을 추구해서 재미의 구조 속에 다양한 컨텐츠만 바꿔치기 하다보면 가끔 꽤나 소름 돋는 스토리들이 나오기도 합니다.
그것들이 하나만 나온다면, 어떤 사회적 현상에 대한 경고로서 등장해 문제 의식을 일으켜 줄 수 있기에 매우 환영하겠죠.
그러나, 그것에 대한 양산들이 우후죽순처럼 따라나오는 순간 비극이 시작됩니다. 재미라는 당근에 의해 특정한 사상들이 반복적으로 제시하다보면, 구조 자체에 익숙해져 버리고 그 구조의 텅빈 자리에 그 어떤 컨텐츠가 슬며시 끼어들어도 별 생각없이 넘어가버리게 되거든요.
지금 양판 소설들이라 분류되는 것들은 타인에 대한, 사회에 대한 무시무시한 생각들을 아무 꺼리낌 없이 구조 속에 집어넣습니다. 그 안에 뭐가 오든 구조가 재미를 보장하니까요.
그리고 그 안에 들어가는 컨텐츠들은 주로 경쟁에서 남을 이기는 것, 타인을 짓밟으며 내 욕망을 실현하는 것, 타인의 고통을 모른 체 할 수 있는 것, 자기 스스로에 대한 무비판 등을 지향합니다.
왜냐하면 그런 것들이 우리 사회에서 먹히는 컨텐츠이니까요. 재미 구조와 저런 것들이 합성되면 그야말로 잘 팔릴 수밖에 없다는 거죠. 그러니 양산됩니다. 양산되다보니 더욱 익숙해지고요. 익숙해지다보니 이해하기 편해집니다.
그리고 우린 낯선 것들은 배척하고 싶어하죠. 드라마는 오로지 뻔하기 때문에 재밌는 겁니다. 가끔 신선한 드라마가 인기를 몰이한다고 반박하실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실상은 이렇게 돌아갈 겁니다. 현실에 대한 치열한 고민 끝에 그것을 드라마를 그려내면 소수의 사람들은 좋아할 지 모르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싫어해요. 그려낸다 해도 재미 구조 속에서, 익숙한 컨텐츠로 그려내야 사람들이 좋아합니다. 그러다보면 원래의 치열한 문제의식은 다 증발해버리고 어느새 익숙한 문제의식으로 변질되어 버리죠.
왜냐하면 이제 현실에 대한 문제의식의 주장은 구조 자체에 대한 도전이 아니면 그 본연의 의미가 모조리 위성화되어 질서 속에 편입되어 버리거든요. 체 게바라가 그려진 티셔츠를 입고 다니는 사람들을 생각해보세요. 저항의 상징조차 상품으로 팔릴 때에만 사회 구조 속에서 용인되는 것이죠. 그런 가벼움들 속에서 진정한 무거움, 진실됨을 찾아서 진짜 체 게바라 짓을 해버리면 그거야 말로 인생과 스토리 모두 다 ‘노잼’입니다.
그리고 가장 큰 핵심적인 문제는 그렇게 순환되다보면 어느새 그런 특정 컨텐츠가 재미 구조 속에 편입되버린다는 겁니다. 그때는 정말 손도 써볼 수 없는 상황에 이르는 겁니다. 지금 제가 느끼는 장르 소설계가 그런 모양이고요.
사람들이 양판의 미래를 걱정하는 건 그러한 점이 아닐까요? 단순히 양판이 잘나간다는 질투심 보다는요.
무엇이 인간 전체에 가장 이로운가를 정할 순 없겠지만, 어떤 것이 인간에게 굉장히 해롭다는 건 이미 인간의 역사에서 충분히 데여 왔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주전자가 벌게 진다면 손을 데지 않아야 합니다... 적어도 저는 절대 중세로 돌아가기 싫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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