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어릴 때 화가나 조각가가 꿈이었습니다. 화실 근처에도 가지 못하고도, 제법 자신이 있었지요. 그런데 붓만 들어도 부모님이 몽둥이를 들고 달려오시는 바람에, 집에서나마 그림을 그릴 짬도 내질 못했습니다. 체계적으로 배우지도 못하고, 터득하지도 못해서 많이 아쉽긴 했어도, 언제나 실기점수는 반에선 세손가락 안에 들었구요. 그런데 고3때 미대를 준비하는 몇몇 급우들이 미술선생님한테 절 지목하며 이렇게 말하더군요. 쟤는 어차피 미대 안 가는 애니 A학점 주지 말라고. 그래야 자기들처럼 미대를 지망하는 학생들이 의욕을 잃지 않을 거라고. 그런데, 그런 얘길 들으면서 저는 심장이 찔린 것 같았습니다.
미대에서 한발, 두발 밀려나서 사학과를 갈까 생각도 해보았다가, 사학과에 가면 밥벌이나 하겠나 싶어서 국문과를 지망했습니다. 국문과도 취직이나 진로엔 그다지 도움이 되진 않겠지만, 백번 양보해서 저에겐 국문과가 마지노선이었거든요. 절대로 그 이상 양보는 못한다 싶었구요. 그런데, 또 어처구니가 없었던 것이, 우여곡절 끝에 사학과도, 국문과도 아닌 다른 과에 입학했습니다. 운명의 장난이 조금 있었지요.
그 와중에 각각 홍대와 중앙대 미대에 합격한 급우들이 또 이런 말을 하더군요. 너는 왜 미대 안 갔냐고. 네 실력에, 네 성적이면 충분한데 왜 못 갔냐고. 저를 두번 죽이는 기분이랄까. 이웃에서 제 어머니께 비슷한 걸 물어보셨습니다. 어머니 대답이...저를 세번 죽였구요.
전혀 원하지 않았던 학교에, 학과에 입학하게 되어, 방황을 좀 했습니다. 답답해서 미치는 줄 알았습니다. 그나마 국문과에 갔더라면 숨통이라도 트였을 텐데. 엉뚱하게 입학한 학과에서 번역체 문장에 길들여지면서, 미칠 지경이었지요. 하루종일 볼펜이라도 붙잡고 아무거나 끄적였습니다. 반쯤 미쳐서는 그냥 마구 낙서를 휘갈겼지요. 그때 제가 외사랑을 했던 남학생이 있었는데 시간이 많이 흐른 뒤에 이메일을 주고 받으며 저를 기억하며 하는 말이, ‘글을 잘 쓰고 싶어서 애쓰던 아이’였습니다.
대학시절 손에 배어버린 번역체를 떨쳐내느라 시간이 정말 많이 걸렸습니다. 지금도 다 떨쳐내질 못해서 매번 고민하지요. 참 우스운 게, 밥벌이 못할까봐 사학과는 아예 접어두고도, 정작 지금 저는 역사소설을 씁니다. 물론 여전히 돈은 안됩니다. 그래서 몹시 쪼들립니다.
그림 그리는 것도 안티였던 식구들이, 글 쓰는 것도 안티입니다. 사실 컴퓨터 화면을 열어놓고 자리를 뜨는 바람에 제 동생들이 제가 어디에 무슨 소설을 연재하는 지도 압니다만...이놈들도 제 소설을 읽지 않습니다. 돈도 안되는 소설 왜 연재하냐는 식입니다. 그렇다고 유료연재로 돌릴까 상의해보면, 또 유료연재도 반대합니다. 비웃습니다. ㅠㅠ 기 꺾는데는 선수입니다. 제 주변에 식구들은 모두, 제 안티입니다. 모니터 앞에만 앉아도, 타박하는 사람들 천지입니다.
그나마 친구들은 안티까진 아닙니다. 그렇다고 지원군도 아닙니다. 친구들은 제가 무슨 소설을 쓰는 지 모릅니다. 제가 역사소설을 쓴다고만 아는 정도입니다. 역사소설을 쓴다니까 초등학생도 읽기 쉽게 쓰라고 충고를 해주더군요. 하지만 초등학생도 읽기 쉽게 쓴다는 것도 제겐 쉽지 않습니다. 그건 좀 시간이 걸려서야, 제 손에 역사의 흐름이 완전히 익어서야 가능할 것 같습니다. 지금은 고증에 치이고, 필력이 달리고, 그래서 숨이 턱에 차서 숨가쁘게 쓰는 참이거든요. 그래도, 시간이 좀더 걸리면 해낼 수는 있을 것 같습니다. 누가 봐도 쉽고, 명료한 역사물을 쓰는 경지까지 언젠가는 도달하겠지요.
추천글과 댓글을 열심히 써주시는 분들, 정말 고맙습니다. 제 자신이 마지막 안티라서...힘들게 힘들게 쓰는 중이지만, 덕분에 이번 작품도 완주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다음 작품은, 더 좋은 작품이 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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