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의상 존칭을 생략하겠습니다.
요 며칠 유료연재가 독배에 가깝다는 말을 많이 본다. 하지만 유료연재를 해보지 않은 나로서는 그게 무슨 소린지 모르겠다.
아마도 무료연재보다 유료연재가 독자들의 반응을 볼 수 없으니 상대적으로 더 박탈감 같은 것을 느끼는 것인가 싶다.
그런데 그것은 당연한 일 아니던가? 책으로 낼 때도 마찬가지니까. 무료연재 독자들이 모두 책방에 가서 빌리거나 서점에서 사진 않는다. 아마 무료연재를 보다 유료 전환시 떨어져나가는 비율만큼(물론 대여가 훨씬 싸니 대여가 더 많이 이뤄지겠지만)이나 대여점을 가지 않는 독자들이 많을 것이다. 더구나 대여점 이용 독자들도 덧글을 달지 않는다.
나도 한 질의 책을 낸 적이 있다. 그 때가 벌써 몇 년 전인지. 그 당시 불법복제가 무척이나 문제가 되던 때였고, 그 때 즈음 부터 대여점의 숫자가 줄기 시작했을 거다.
대여점에 내는 글을 쓴다는 것은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많이 다른 일이었고, 준비가 되어 있지 못한 나는 결국 처참한 실패를 맛 보았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것은 무척이나 이상한 것이었다.
지금은 모르겠지만 그 땐 보장부수라는 것이 있었다. 1,2권은 정해진 분량의 책을 찍는다는 것이다. 그 당시 추세가 아마 3000권에서 4000권 사이를 찍었던 걸로 안다. 그리고 후의 반응에 따라 다음 권을 얼마나 찍을지 결정한다. 잘 나가는 책은 보장부수 수준을 유지하고 그렇지 못하면 500권이나 찍을까?
그 당시엔 이렇게 생각했다. ‘사람들이 많이 빌려가 계속 대여점에 들어갈 정도로 찍으면 좋겠다.’
지금 다시 생각해 보면 어리석은 생각이다.
내가 마지막권으로 받았던 인세가 50만원이 안 되었던 걸로 기억한다. 즉 천 권도 찍지 않았다는 뜻이다. 다시 말하면 내 글은 그 정도의 사람만 볼 정도라는 것이다. 물론 천 명 보단 더 보았겠지. 사는 것이 아니라 대여니까.
그래서 난 이런 생각을 또 하게 되었다. 사람들이 잘 빌려가려면 독특한 소재를 생각하고 재미를 줄 수 있는 글을 쓰면 되지 않을까? 그러면 나는 3000부씩 계속 찍는 글을 쓸 수 있지 않을까?
이건 정말 내가 할 수 있는 최악의 생각이었다.
(그래서인지 사람들이 색안경을 쓰고 보는 팬픽을 쓰는 요즘 나는 팬픽을 쓴다고 더 자랑하고 다닌다. 그리고 그 때의 글은 오히려 더 창피하게 생각한다.)
소설은 문학이다. 문학은 글로 하는 예술이다. 예술엔 그 안에 담겨진 단단한 심지가 있어야한다. 그 심지로 사람들에게 무언가를 던져준다. 그것이 주제고, 예술이라는 이름을 갖게 하는 요소다.
그런데 어느 새 나는 독특한 소재와 재미있는 사건, 매력있는 인물, 대여점에 맞는 구성을 생각하고 있었다.
톡 까놓고 말해 보자. 이것이 SOD 기획물 포르노와 다를게 무엇인가?
심지어 나는 내가 만든 가치 만클 벌 생각(잘 되면 잘 되는 만큼, 못 되면 그만큼 망하는)을 하지 않고 단순히 대여점 숫자 만큼만 넣을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렇다. 애초에 나는 그릇된 생각을 갖고 출발한 것이다. 대여점에만 넣을 포르노를 찍을 생각으로.
작가가 아닌 활자제조기로.
그런데 이건 나 뿐만이 아닐 거다.
통계적으로 그런지는 모르겠는데 체감상 요즘 문피아를 다니는 사람이 적어진 것 같다. 문피아 뿐만 아니라 옆동네, 윗동네, 아랫동네 모두 그런 것 같다.
세상엔 재밌는게 너무 많다. 핸드폰만 붙들어도 하루 종일 무료하지 않게 시간을 보낼 수 있다.
대여점은 불법복제가 아니라 핸드폰에 밀린게 아닌가 싶다. 대여점이 줄어든 시점을 보면 스마트폰이 보급된 시점과 맞물리는 것도 있으니까.
당장 나만해도 유료연재를 결재하는 것 보다 와우 한달 결재하는 것이 더 싸고 재미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글을 읽는 것 자체를 좋아하는 사람들만 남은 것이 아닌가 싶다.
친구와 이런 말을 한 적 있다.
아이가 그린 그림. 너무나 엉성해서 손발의 크기도 제멋대로지만 그 마음이 담긴 가족을 그린 그림과 프로 화가가 그린 잘 만든 춘화 중 어느 것이 더 가치 있는가?
나는 아이가 그린 그림이라 했다. 그 안에 담긴 가족을 생각하는 마음이 담겨 있기 때문에.
환경이 많이 바뀌었다. 이젠 정말 쉽게 글을 올리고 그것을 통해 돈을 벌 수 있다. 앞으로 더욱 프로와 아마의 경계는 무너질 것이다.
예전 보다 세상은 재밌는 것으로 가득하다. 이제 특별하게 뛰어나지 않는 이상 어설프게 재밌는 글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지 못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작가가 유료연재에서 살아남으려면 바뀌어야한다.
전처럼 글을 쓰면 안 된다. 대여점에 들어가는 글을 생각하고 글을 쓰면 안 된다.
이제는 내가 쓴 글의 가치만큼 벌 수 있다. 대여점 숫자만큼이 아니라. 대여점 점주의 마음에 드는 글이 아닌 돈을 내고 구매하는 독자의 마음을 얻어야한다.
핸드폰 보다, 영화보다, 텔레비전 프로그램보다 원초적인 재미를 줄 수 있는 글을 쓰긴 어려울 거다.
장르소설이라도 독특한 소재는 없을까? 재미만 있으면 되지 뭐 하는 생각은 이제 버려야한다.
작가들은 이제 내몰린 것이다. 한 만큼만 버는 냉혹한 세상에. 주제없는 글은 외면 받는 세상에.
그런데 그게 원래 작가가 있어야 할 자리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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