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를 매혹시키는 글의 요소는 하고 많은 것이 있겠지만 개중 제일로 치는 것은 뭐니뭐니 해도 매력적인 주인공 아닌가 싶습니다.
<칠성전기>의 마초적인 매력이 물씬 풍기면서도 무식하지 않고 언제나 명쾌한 삶의 방식을 제시해주던 바바리안.
<불멸의 기사>에서는 말발굽으로 시체를 짓뭉개고 언제나 철가면을 쓴 채 소름끼치는 목소리로 학살자라 경원시되지만, 철가면 안에는 노래 부르는 것을 좋아하던 유약한 청년의 모습이 숨겨져 있는 얀 지스카드.
최근으로 거슬러 올라오면, <던전 디펜스>에서 모두를 농락하면서 자기 자신까지도 그 대상으로 삼는 위악적인 주인공의 염세관에서부터, <킬더드래곤>에서 미약한 초능력과 더불어 누구보다 굴강한 정신으로 타파해나가는 주인공의 의지력까지... ... .
노벰버 레인의 프로스트는 그런 매력적인 캐릭터 일람에 명함을 끼워넣기 충분합니다.
아포칼립스 풍의 황폐한 미래 도시, 알비노 태생의 제대로 된 시민권조차 없는 검투사 프로스트는 명백한 하류 계층입니다. 세상(특히 그것이 멸망한 이후의 것이라면)은 언제나 개미한테 가혹하고, 프로스트는 매일같이 돈을 벌기 위해 검투장으로 나가 걸레짝이 된 몸을 끌고 돌아옵니다.
주식은 프로틴 바, 개인적으로 알고 지내는 사람은 불법 의사에다가 취미는 몸을 단련하는 것 정도로 삭막한 남성. 힘들게 싸움을 벌이고 돌아와 몸을 누이는 집 역시 잠을 자는 곳으로서의 기능만 할 뿐 살풍경합니다.
그렇게 한 걸음 한 걸음씩 살아나가던 그는 자신한테 전혀 어울리지 않는 십 대 소녀와 인연을 맺게 됩니다. 이질감에 몸서리 치지만 어느 날 집으로 돌아와 프로틴 바를 씹던 프로스트는 문득 깨닫습니다.
‘맛이 없군.’
전엔 아무렇지 않게 먹던 건데 말입니다.
도통 여유가 없던 프로스트는 그가 몰랐던 다른 맛의 존재를 알아나가는 것처럼 소녀와 지내는 과정에서 다른 일상도 서서히 배워 나갑니다. 한편으로 검투장에서는 다음 그 다음의 투쟁이 항상 그를 기다리고 있고, 이내 닥쳐온 커다란 경기에서 그는 처절하게 뒹굴면서도 결국 승리를 움켜쥐어 냅니다.
이러한 일들을 겪으면서 그의 주변에 점점 새로운 인물과 사건이 닥쳐들기 시작하는데... ... .
여타의 소설처럼 딱히 미래로부터 되돌아와 세상을 구원해야겠다거나 응징해줄 옛 동료가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가 벌이는 싸움의 동기는 철저하게 개인적이고 생존을 위한 것입니다. 불치병을 고치기 위해 돈을 벌어야 하니까요.
다만 주인공답게 남다른 점이라면 프로스트는 결코 포기하지 않습니다. 그건 작가가 프로스트에게 주인공으로서 부여한 특권이라기보다 프로스트가 포기할 수 없는 것 아닐까 싶습니다. 도대체 제대로 된 행복이란 게 있을 수가 없는 환경이지만, 어쨌든 그가 얻어온 것들은 포기하지 않았을 때만 획득할 수 있었던 겁니다. 어떻게 보면 포기하지 않는 것만이 그의 유일한 자존심인 셈이죠. 포기하는 건 바로 그가 쟁취해온 자신의 삶을 부정하는 것과 같은 뜻일 테니까요.
그런 그가 싸워나가는 모습은 기가 막힐 정도로 전투신을 잘 그려내는 필력과 어우러져 독자에게 어떠한 종류의 감동까지 선사합니다. 언더독이라기에는 눈부시게 강렬하고, 영웅적이라기에는 지나치게 비참합니다.
‘처절하다'는 수식어가 어울립니다. 그 몸부림치는 모습이 독자로 하여금 눈을 떼지 못하게 만들죠.
누군가 강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협객의 풍모가 엿보이거나 대악당인 것도 아닌데 어쩔 수 없이 빠져들게 되는 주인공을 찾는다면 앞으로는 손가락을 들어 자신있게 프로스트를 가리켜주면 되겠습니다. 제가 지금 하는 것처럼요.
정신없이 몰아쳐대기만 하는 요즈음 세상에서 나와는 다른 모습으로 역풍을 헤쳐 나가는 주인공이 보고 싶다면 노벰버 레인 추천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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