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행을 불행으로 끝내는 사람은 지혜가 없는 사람이다. 불행 앞에 우는 사람이 되지 말고 불행을 하나의 출발점으로 삼는 사람이 되라. 불행은 예고없이 도처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불행을 딛고 그 속에서 새로운 길을 발견할 힘이 있다.
- 발자크
시작부터 불행했던 사람이 있습니다. 사물을 인지할 나이, 어린시절이라 떠올릴 수 있는 나이의 기억은 어머니로부터의 폭력이었습니다. 학대의 끝은 버림 받는 것이었고, 또다른 시작은 보육원이었습니다. 성인이 되어서 우연히 마주친 이부(異父) 형과 친모는 그나마 모아두었던 돈을 강탈해 갑니다.
세상은 냉혹했고 혈육은 비정했습니다. 스스로 일어서고자 했던 때에 찾아온 시련. 주인공 정오는 그 불행에 좌절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나의 출발점으로 삼습니다.
사회가 안정화되면서 경제를 기반으로 한 계급은 공고해졌고 계급 간의 이동은 더욱 어려워졌습니다. 그것을 뛰어넘기 위해 타인의 도움을 받는 다는 것은 요원한 일입니다. 로또 당첨이라는 희박한 확률에 기대거나 그 간극 자체를 무색하게 만드는 무엇인가가 필요하지요. 그의 선택은 사법고시. 검사가 됩니다.
그는 정의감에 불타는 열혈 검사가 아닙니다. 그렇다고 권력에 빌붙어 기생하는 정치검사가 되지도 않습니다. 그저 직업윤리에 충실할 뿐입니다. 봐주는 것은 없습니다. 그에게 걸린 나쁜 놈의 최후는 법의 심판을 받는 것입니다.
법정물 자체로도 흥미진진한데 작가는 여기에 미스터리 요소를 가미합니다.
13마녀 수도회, 바티칸 특임국, 퀸스 가드, 실(sil)이 그것입니다.
법정물의 치밀함과 통쾌함, 미스터리물의 스릴과 서스펜스가 공존하는 소설. 흔들림 없이 글을 써 나가는 작가를 응원합니다.
끝으로 신경림 시인의 ‘쓰러진 것들을 위하여’에는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전략)
그래서 나는 늘 슬프고 안타깝고 아쉬웠지만
나를 불행하다고 생각한 일이 없다
나는 그러면서 행복했고
사람 사는 게 다 그러려니 여겼다
쓰러진 것들의 조각난 꿈을 이어주는
큰 손이 있다고 결코 믿지 않으면서도
소설 속 주인공은 ‘쓰러진 것들의 조각난 꿈을 이어주는 큰 손’이 될 수 있을까요?
저는 끝까지 따라가보려고 합니다.
Comment '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