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명 : 실비 제르맹
작품명 : 프라하 거리에서 울고 다니는 여자
출판사 : 문학동네
프라하 거리에서 울고 다니는 여자.
한눈에 봐도 그냥 그럭저럭한 작가로 절대 끝나지는 않을 것이다, 라고 판단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실비 제르맹의 임팩트는 강렬하다. 그 정도로 책 한권은 극단적인 심미성으로 가득 차 있다. 이쯤 되면 젊은(의미가 좀 이상하지만 세기의 명 작가와 비교해 볼 때 중년의 그녀는 젊은 것이 아닐까?)작가가 재능에 취한다는 판단이 들 법도 하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녀에게선 그런 것이 느껴지지 않는다. 내 글쓰기의 방식은 원래 이렇다고 말하고 있는 것만 같다.
책의 원제는 좀 애매하다. 직역은 ‘프라하 거리에 우는 여자.’ 이지만 책의 해설에도 나와 있듯이 그냥 우는 여자가 아니라 ‘상복차림의 눈물을 흘리는 여인상’을 가리킨다. 이것은 굉장히 중요한 것이라고 판단하는데 해설에 놔둬야 할 것이 아니라 책의 처음에 이것을 독자들이 확실하게 인지 시켜주었으면 더 좋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냥 프라하 거리를 배회하는 상복차림의 눈물 흘리는 여인상은 제목이 좀 이상하려나? 하여간 인간 여자가 아니라 여성임을 암시하는 하나의 존재(혹은 신격화한 인물)를 가리키는 것에 가깝다.
‘거인여자는 그 두 가지 공간, 그 두 가지 시간성 사이를 걷는다. 그래서 그 여자는 쩔뚝거리는 것이다. 그리고 그 여자는 범죄, 고통, 악, 불행의 짓누르는 듯 무게와 신에게서 나오는 헤아릴 수 없는 연민 사이의 균형을 유지할 수 없기 때문에 그만큼 더 쩔뚝거리는 것이다.’ 146p
한번 상상해 보아라. 무척이나 거대한 여성이, 다리를 저는 여성이, 빌딩처럼 기다란 다리를 절뚝거리며 프라하 도시를 걸어 다니고 있다. 마치 유령처럼 그녀의 몸은 흐릿하기만 하다. 구멍이 숭숭 뚫린 누더기 옷은 이리저리 나풀거린다.
‘그녀의 발자국마다 잉크 맛이 솟아난다.‘ 14p
책에선 모든 것을 감싸 안고 쓸쓸히 방황하는 한명의 여성만이 존재한다. 그 시선을 다름 아닌 독자가 쫓는 것이다. ‘그 여자가 책 속으로 들어왔다.‘로 책은 시작한다. 그 책 안에서 모든 것을 받아 고통 받고 수천 번도 넘게 죽고, 고문당하고 다시 소생하는 것이 그녀다. 어디에도 있을 수 있지만 오직 프라하 거리에만 존재하는 것이 그녀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무언가를 정확히 꼬집고 있지는 않는다. 시간 속에 갇혀 버리거나 잊혀버린 이들을 위해 슬퍼하고 자신의 몸 안에 연민 가득한 그것들을 새겨 넣는 한 여인의 행적에 대한 기록에 독자는 충분히 당황할 수도 있다. 몇몇 프랑스 소설이 그러하듯이 이것 역시 어떤 애매한 경계사이에서 소설의 색체를 띄고 있고 철학적이며 사색적인 경향에 깊이 발을 들어놓고 있기도 하다
‘그것은 책이 아니라 부름들과 메아리들의 되풀이다. 글쓰기의 절뚝거림, 더듬거림이다. 잉크의 눈물흘림이다. 기다림이다.’ 147p
책의 마지막 페이지에서 그녀는 존재하지 않는다. 기록되지 않는 수많은 시간과 신화와 역사사이에서 삭제된 이들처럼 결국 그녀도 책에서 사라진다. 그녀는 어디에 있는지는 직접 프라하 거리에서 울고 다니는 여자를 읽어야만 알 것이다.
그녀는 오직 텍스트로 존재하는 고통 받는 여인이며, 슬퍼하는 이가 바로 프라하 거리에서 울고 다니는 여자이다. 그녀는 여성체이며 시간에 중첩된 신에 대한 숭배와 감정과 고통과 연민 그 자체며, 그것의 거울이다. 모든 것을 받아들여야 하는 존재이며, 고통을 감내하는 하나의 상징이며 시각화 되었지만 형상화 되지 않는 초자연적인 무언가 바로 그것이다.
‘그 여자는 책에서 밖으로 나갔다.’ 149p
실비 제르맹의 다른 소설들이 국내에 출판이 되지 않았기에 이 책만으로 그녀에게 극단적인 칭찬을 할 수는 없다. 어쨌거나 이 책은 만점을 줄 수는 없지만 만점자리 책이 아닌 것은 아니다. 동시에 열광할 수는 없지만 끈기 있게 기다리지 않는 것은 아니다. 모든 판단은 독자들에게 내 몰려져 있지만 읽을 때 마다 불투명했던 경관은 시간이 지날수록 차츰 뚜렷해진다.
-----------------------
기냥 한번 써봤음. 문학동네 책값은 언제나 열라 짱나.
Comment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