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명 : 장 필립 뚜생
작품명 : 사진기
출판사 :
그냥 짧은 논평입니다.
사실 취미로 글을 쓰기는 하지만 제대로 문예에 대해서 지식을 쌓거나 연구를 해 본적이 없어서 이런 문학적인 단어엔 거의(아니 완전히) 무지하다. 단지 남이 쓴 표현이나 기법을 따라 흉내를 내는 것만 할 뿐이다. 그렇기에 문학적인 포괄성은 당연히 인정하지만 반대로 어디까지가 그 허용범위 인지는 무지하다고 볼 수가 있다. 그런 나에게 누보로망이란 단어를 주입시켜준 장 필립 뚜생의 사진기는 정말로 고마운 작품이 아닐 수가 없다.
사전적으로 설명하자면 앙티로망 혹은 누보로망이란 단어는 바로 신소설을 의미하는 것으로써, 기존의 소설의 정해진 규칙, 인물의 법칙과 내면, 생각의 연결성을 무시하고 보다 자유로운 형태의 인간 본연의 모습을 표현하는데 중점을 두고 있다. 기존의 소설들이 발달 전개 절정의 연결 구조를 가지고 있다면 누보로망은 그러한 소설의 기준을 일체 무시하며 현제 바로 지금의 상황을 그리고 있다.
장 필립 뚜생의 사진기를 보면, 어제 운전 면허연습을 갔던 주인공이 다음날엔 특별한 연결이나 의미도 없이 출장을 가고 치과 치료를 받는다. 그러다 여자 친구의 식사에 초대되고 그녀의 아버지와 차 수리 센터에 가며 여자 친구의 여행길에 충동적으로 사진기를 훔친다. 바로 지금 우리의 일상처럼 무엇이 벌어질지도 모르며 구성역시 한없이 불확실하기만 하다. 이 소설이 같은 이러한 풍부한 자연스러움은 어찌 보면 일반 독자에게 당혹감과 의아함에 흥미를 떨어뜨리는 요인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다시 보면 이것이 가지는 매력은 바로 그 불확실한 점이다. 지금과는 다른 이 반항성과 독특한 구성은 “바로 여기에 있어! 이 길만 쭉 쫓아가!“ 라고 외치는 수많은 소설과는 달리 무엇을 느끼고 생각하는 지를 독자 스스로 찾아야 하기에 독자들의 좀 더 폭넓은 사고와 감정을 요구한다. 아니, 그렇지는 않더라도 누보로망이 가지고 있는 그런 감성적인 부분은 독자들의 지친 사고 회로를 풀어헤쳐 줄 좋은 청량제 역할을 하기에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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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어느 사이트였는지 잘 기억이 안 나지만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에 대해서 비판의 글들과 논쟁이 쏟아져 왔던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 비판의 주된 내용은 너무나 쓸 때 없는 오브제가 많다는 것이었죠. 대체 문학은 얼마나 날씬해야 하고, 얼마나 주제에 부합될 만큼 명확해야 하는가? 라는 것은 오랫동안 나에게 고민거리가 되어왔습니다. 요즘은 그냥 주제가 달려 있는 자유로운 형태의 글 정도로 생각하고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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