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명 : 가우리
작품명 : 강철의 열제
출판사 : 파피루스
편하게 평어로 가겠습니다.
가우리의 강철의 열제는 고구려인들이 주인공이라는 점에서 연재시부터 꾸준히 인기를 누려왔던 작품이다. 중간에 출판주기가 길어지는 바람에 포기했었지만, 16권까지 나온 지금에 다시 읽어보았다. 미리니름을 최소화하기 위해 내용은 넣지 않았지만, 덕분에 감상문이 약간 딱딱해지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많은 분들에게 내 소감이 제대로 전달되길 바라며...
* 요동벌판을 호령했던 가우리(고구려)의 혼을 되새긴다.
눈을 감고, 상상해본다. 우리의 조상들이 광활한 벌판을 누비는 것을. 질풍같이 쇄도하는 군마들과 뿌연 먼지구름. 북방의 진취적인 기상이 내 심장 깊숙이 스며드는 것 같은 환상을 느낀다. 중원의 주인이라 자처했던 당나라 대군이 번번이 분루(憤淚)를 흘리며 회군해야 했던 요동벌판. 을지문덕, 양만춘, 연개소문을 비롯한 수많은 호국의 영령들이 수호하고 있을 고구려. 생각만 해도 가슴이 뜨거워지지 않는가?
역사를 기반으로 한 소재는 항상 인기가 있다. 수많은 독자들과 함께 호흡하고, 함께 울고, 함께 웃을 수 있는 유일한 소재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기억한다. 2002년 여름 전국에 울려퍼졌던 환희의 함성소리를. 그 시간만큼은 우리는 모두 하나였다. 세계를 놀래켰던 그 장면에 뿌듯함을 느낀 것은 비단 본인만이 아니었을 터이다. 민족의 힘은 역사에서 나온다. 수많은 박해를 겪어내고 세계의 중심에 우뚝 선 유대인들에게는 역사에 대한 자부심이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고구려의 후예이다. 까마득한 과거부터 인해전술에 도가 텄던 중국의 침입을 소수의 인원으로 막아냈던 고구려. 그 찬란한 역사를 우리가 이어가야만 한다. 자랑스런 한민족이여 고구려의 혼을 되새겨보자꾸나.
"고구려의 스물여덟 열제이시여, 고구려의 영령들이시여. 통한에 스러져 갔던 역사를 다시 일구어보겠나이다. 우리들의 외침이 들리신다면 요동벌판 하늘에서 함성을 더해 주소서."
*해학의 미(美), 작가의 고뇌
강철의 열제의 매력은 크게 두 가지에서 기반한다. 하나는 고구려의 역사를 잇는 그들의 화끈한 행보, 나머지 하나는 대화와 상황에서 우러나오는 위트와 해학이다. 어느 것이 더 어렵냐고 한다면 나는 후자에 손을 들어주고 싶다. 요즘 수많은 글이 쏟아져 나온다. 그 중에서 절반은 독자를 웃기기 위해서 여러가지 수단을 동원한다. 주인공의 수난시대, 유치한 말장난은 기본으로 깔고 변태들도 심심찮게 등장한다. 그러나 대다수는 개그가 아니라 오두방정일 뿐이다. 무게가 가볍다는 이유로 선호하는지는 모르겠지만, 글의 목적이 단지 웃기기 위해서가 아니라면 글을 적으면서도 나침반을 관찰할 필요가 있다. 어떻게든 웃겨보려고 용을 쓰다가 스토리는 안드로메다로 나아가는 경우는 일반적이라고 할 수 있겠다.
본인이 강철의 열제를 보면서 가장 감탄한 부분은 '가벼움과 무거움의 조화'였다. 이 글에 나오는 가우리인들은 대다수가 전직 코미디언이다. 심지어는 무뚝뚝함과 대책없기로 유명한 우리의 열제폐하까지도 말이다. 권수를 더해가면서 작가의 고뇌가 묻어나오기 시작했다. 단순하게 한 장면을 넘기기 위한 도구로서가 아닌 계산된 해학이었다는 점에서 눈길을 끌었다. 가벼움과 무거움을 조화시켰기에, 가끔씩은 인물의 분위기가 변한다거나 오버스러운 장면이 연출되기도 했으나 장점에 의해서 단점은 그다지 돌출되지 않았다.
"이 간나 새끼들 다 디진기야!"
*감정의 폭발, 그리고 절제
폭발과 절제라는 단어가 완벽하게 들어맞을지는 모르겠다. 작가는 독자들의 감정을 조정하는 마술사가 되어야 한다. 작가가 의도한 곳에서 웃고 울게 할수 있다면 수준급의 작가라고 자부해도 좋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이 글의 소재는 이미 사라져 버린 우리들의 과거이다. 그들이 이계에서 삼족오 깃발을 휘날리는 모습에서 독자들이 두 주먹을 쥐어야 하고, 성을 지키기 위해 몸을 불사르는 무장들을 보면서 눈물을 글썽여야 한다.
한 장수가 처절하게 싸운다. 그들의 왕을 위해. 그들의 백성들을 위해. 창이 배를 뚫어도 싸워야 하고, 화살이 등에 서너개 박혀도 싸워야만 한다. 그의 어깨에 수많은 가우리의 백성들의 안전이 달려 있다. 죽고 싶어도 죽을 수 없다. 이 장면에서는 작가가 적절한 조미료만 첨가해 주면 수많은 독자들을 울게 만들 수 있다. 감정을 남김없이 폭발시켜야 한다. 그 장수는 자신의 모든 것을 불사르고 장렬하게 전사한다. 감정을 폭발 시키는 장면을 쓰는 것은 작가에게 있어서 기본이 되어야 한다. 물론 그 기본도 안 되어 있는 분들도 많다. 쓰면서는 멋있다고 쓰는 모양이지만 보는 사람에게 전해지지 않는다면 실패작이리라. 그런 면에서 작가 가우리는 독자들의 심금을 울려내는 것에는 성공했다. 그러나 정작 어려운 부분은 그 슬픔을 가슴 속으로 갈무리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울면서 슬퍼하는 것은 쉽지만, 웃으면서 슬퍼하는 것은 어렵다. 울면서 슬퍼하는 장면을 멋지게 그려낼 수 있다면 작가로서 한 발을 들여놓은 것이고, 웃으면서 슬퍼하는 장면을 멋지게 그려낼 수 있다면 그 사람은 일류 작가라고 불려도 손색이 없다고 생각한다. 이런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작가 가우리에게 가능성을 보았기 때문이다. 말초적인 감정을 심어주는 단계를 넘어서 독자들의 뇌리를 울릴 수 있는 글을 쓸 수 있다면 능히 장르계의 대가라고 불릴 수 있을리라 본다.
까맣고 어두운 밤.
그 밤을 수많은 별들이 밝히며 있다.
무수히 많은 별 중에서도 가장 밝았던 별이......
어떤 때보다도 밝았던 별이....
진다.
* 아쉬움일까 허전함일까
이 글을 읽으면서 참 아쉬웠던 점이 있다. 군데군데 맞춤법이 틀려 있다. 예를 들어 주었다(give)와 주웠다(pick up)가 혼용된다던지, '~하네요'를 '~하내요'라고 표기한 부분을 들 수 있다. 특히 후자와 같은 경우에는 각 권마다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기본에 민감한 본인은 사실 이 글을 읽는 것을 포기하려고 몇 번이고 책을 덮은 경험이 있다. 재미있게 읽다가도 맞춤법이 한 번 눈에 밟히면 글에 선입견을 가지게 되기 때문이다. 참으로 아쉬운 부분이 아닐 수 없다. 편집의 실수인지 작가가 모르고 계속 쓴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계속 반복해서 쓰이는 걸로 봐서는 작가분이 모르고 쓰신게 아닌지 추측해 본다. 아니라면 파피루스 무지 난감하다.
또 앞에서 언급했던 바와 같이 감정을 절제하면서 표현하는 부분이 약간 어색하다는 느낌이다. 특히 고진천의 경우에 심적인 갈등보다는 겉으로 묘사되는 부분이 월등히 많기 때문에, 주인공을 멋있게 하려는 연출이 과한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이 부분은 취향마다 평가가 다를 수 있음을 언급해 둔다.
과연 몇 권에서 완결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현재로서는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다. 전개에 약간의 긴장감을 두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 마치며...
예전에 몇 권 읽다가 포기한 이후에 다시 손에 잡은 강철의 열제. 16권까지 읽고 나서 나름대로 감상문을 적는 시간을 가져 보았다. 주관적인 요소 위주로 되어 있어서 반론이 있을 수도 있지만, 감상문이 원래 다 그런 것이 아니겠는가? 우리나라 역사를 바탕으로 쓴 판타지. 읽을 만한 가치는 충분해 보인다. 퓨전에는 학을 떼는 본인도 여기까지 읽었다는 것은 그만큼 거부감이 적다는 소리도 될 테니. 판타지를 좋아하시는 분들, 혹은 역사물을 좋아하시는 분들도 한 번 쯤 읽어보시길 권한다. 최소한 '이게 뭐야?' 하면서 욕을 하시진 않을 것이라 확신한다. 여담이지만 대조영과 같이 보니 조금 더 재밌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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