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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해하는 운명카드[미리니름]

작성자
Lv.3 팔란티어
작성
11.09.26 00:02
조회
1,497

작가명 : 윤현승

작품명 : 살해하는 운명카드

출판사 : 새파란상상

 [살해하는 운명카드]는 새파란상상 브랜드로 출간되었으며 경장편으로 볼 수 있을 만큼 작은 판형의 얇은 분량으로 나온 스릴러다. 돈을 놓고 벌이는 게임이라는 점에서는 현대적이며 밀실에서 벌어지는 연쇄살인이라는 점에서는 고전적인 요소가 섞여 있다. 또한, 운명에 저항하는 인간의 모습과 마침내 파국으로 치닫는 광기에서는 그리스 비극적 요소를 엿볼 수 있다.

 그리스 비극인 소포클레스의 희곡 [오이디프스 왕]은 비극적인 운명에 처한 인간이 신 앞에서 나약하지만 운명과 맞서 싸우려고 한다는 점에서 숭고함을 갖고 있다. [살해하는 운명카드]도 비극적 요소를 갖고 있다. 현대 비극에서는 그리스 비극처럼 추락을 통해 연민과 공포를 느낄 고귀한 인물이 주인공이었던 것과 달리 [세일즈맨의 죽음]처럼 주변 인물이 비극의 대상이 된다. [살해하는 운명카드]에서도 고귀한 신분의 추락을 담고 있지 않으며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현실적인 돈 문제로 고민하는 인물을 등장시킴으로써 감정 이입을 쉽게 유도하고 작품에 몰입할 수 있게 한다.

 그리스 비극에서는 주로 신탁이 비극적인 운명을 암시했으나, 이 소설에서는 제목이나 작품 내에서 언급되듯 ‘운명카드’를 통해 직접적으로 운명을 부여 받는다. 이때, 이 게임을 디자인한 직쏘(영화 [쏘우]의 인물) 같은 스페이드는 신의 입장에 서 있다. 주인공을 비롯한 소설 속 인물들은 운명카드를 받아들고 나서 각자 자신의 운명에 저항하려고 한다. 그러나 이것은 쉽지 않다. 운명을 거스르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을 인식해야 하며, 이는 결과적으로 자신의 눈을 찌르게 되기 때문이다. 주인공이 마지막에 집에 돌아와서 고통에 몸부림치는 것은 바로 자기 자신을 인식했기 때문이다. 오이디프스가 근친살해를 하고 나라에 역병을 불러온 죄인이 자신이라는 인식을 한 순간, 눈을 찔러 멀게 했듯이, 주인공 역시 앞으로 끊임없이 죄의식 속에서 살게 될 것이다. 오이디프스의 왕에서 오이디프스가 자신의 신탁의 아이이며, 이미 어머니와 관계를 맺고 아버지를 살해했다는 사실을 깨닫는 ‘급전’이 일어나듯이, 이 소설에서는 주인공이 퀸의 운명카드를 읽는 순간 사태가 역전되는 급전이 일어난다.

 [라크리 모사]와 [살해하는 운명카드]는 모두 단권으로 끝난다는 점과 한정된 공간에서 규칙대로 움직인다는 점 그리고 그 규칙을 제대로 간파하지 못 하고 결국 각각의 주인공이 파멸을 맞는다는 점이 동일하다. 한편, [라크리 모사]는 초자연적인 존재가 등장하지만 [살해하는 운명카드]에서는 초자연적인 존재는 등장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 게임을 디자인한 사람은 100억이라는 돈의 규모만큼 현실적이지 않고 서양 소설에 주로 등장하는 악마의 현신처럼 느껴지는 점은 분명히 있다. 사건의 흐름이나, 정황들에서 현실성을 느끼기 힘들며 이는 인물에서도 마찬가지다. 환상적인 요소를 좋아하는 독자라면 전자에 더 흥미를 느낄 것이고, 이국적인 배경과 인물들에 이질감을 느끼고 위화감을 느끼는 독자라면 한국을 무대로 하여 한국인들이 나오는 동시대를 배경으로 한 [살해하는 운명카드]가 더 몰입이 잘 될 것이다. 워낙 많은 권수의 책을 출판하고 인기가 있었던 작가답게 문장의 가독성이 좋고, 따라서 흡인력이 뛰어난 작품이다. 스릴러라는 장르의 특성상 긴장감을 조성하고 빠르게 읽히는 점이 중요한데, 이 작품은 독자를 빠르게 끌어들이는데 성공하고 있다. 분량이 적고 흡인력이 있는 덕분에 몇 시간만 집중하면 금세 다 읽을 수 있다. 빨리 읽어서 아쉬운 감정이 들 정도다.

 간결한 문장과 빠른 전개 덕분에 속도감은 있었지만, 디테일한 묘사나 차분한 인물 조형이 아쉽기도 하다. 주인공뿐만 아니라 다른 인물들에 대해서도 일일이 조명을 해주었다면 작품이 더 다양한 의미를 내포할 수 있었을 것이다. 특히 ‘퀸’의 존재가 이 작품의 백미라고 할 수 있는데, 좀더 살릴 수 있었다면 더 가슴에 와 닿는 소설이 되었을 것이다. ‘퀸’은 이 작품 속에서 유일하게 운명카드에 저항한 인간이다. 스스로 죽음을 선택함으로써 운명에 저항에 성공했다는 아이러니하면서 비극적인 인물이다. 굉장히 독특한 인물인데 연쇄 살인을 너무 쉽게 벌이는 묘사 때문에 그 놀라움이 반감된 감이 있다. 만화 데스노트에서 마지막에 라이토가 당하는 것은 가장 극적인 부분인데 ‘제반니’의 사기적인 혹은 신적인 능력으로 가능했다는 것으로 처리되어서 독자들의 원성을 산 적이 있다. 그 후에 제반니는 신적인 존재라며 언급되고 패러디 되기까지 했는데, 이 소설에서는 ‘퀸’ 역시 사기적인 살인을 저지르면서도 그 이유를 독자들에게 효과적으로 납득시키는데 실패하면서 결말에서 소설 전체에 아쉬움이 들게 만드는 것이다. 만약, ‘퀸’의 살인 과정이나 심리, 이유 등을 좀 더 바꿨다면 작품의 깊이가 더해지고, 소설이 끝나고 난 뒤에도 독자들이 가만히 음미할 만한 울림이 전해졌을 것이다. 지금은 허탈감과 씁쓸함만을 주는 결말로만 다가와 아쉬운 감이 있다.

 그럼에도 윤현승이라는 스토리텔러는 언제나 일정 이상의 재미를 주며, 한국에서 찾아보기 힘든 독특한 스타일을 선보이면서 즐거움을 안겨준다. 이름만으로 믿고 살 수 있는 국내에 몇 안 되는 소설가인 것이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다크문], [하얀 늑대들] 등 대하 장편에서 그 능력을 만개하는 작가 중 한 명이기 때문에 다음에는 단권이 아닌 여러 권의 장편을 어서 읽어보고 싶은 생각도 든다. [뫼신 사냥꾼]을 끝으로 출판사 문제로 중단된 [뫼신 지기], [뫼신들의 전쟁] 등 뫼신 시리즈의 완결을 기대해보며 이만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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