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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논하다.

작성자
Lv.1 한배달쥬신
작성
07.12.15 22:19
조회
2,758

일단 글이 기니 읽는데 시간이 다소 걸릴 겁니다.  

크게 개요 및 그에 따른 2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연재한담에 올린 제목이 "[한담] 역사를 논하다.('우연찮게 천지림님의 글과 그 댓글을 보고'에서)"란 글에서  배울 것이 많아 그 글들과 댓글을 퍼 왔습니다.  직접 찾아가서 그 글과 댓글을 읽어도 상관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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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요한 `역사공정` [중앙일보 2006.12.18 ]  

이젠 한반도 문화 뿌리까지  

중국이 한반도와 만주 문화의 뿌리로 알려진 랴오허(遼河) 일대의 북방 신석기 문화를 자국 문명권에 편입하려는 노력을 가속하고 있다. 선사(先史)시대 중국문명의 판도를 기존 학계가 주장해온 황허(黃河)와 창장(長江) 유역에서 여타 지역으로 확대하려는 이른바 '중화문명 탐원공정(探源工程)'에 따른 것이다.  

17일 중국 언론에 따르면 국가문물국은 랴오닝(遼寧)성 뉴허량(牛河梁) 신석기 유적 등 35개를 세계유산위원회에 등재 신청할 중국의 세계문화유산 예비 목록에 포함했다.  

국가문물국은 적어도 10년에 한 번씩 세계문화유산 등재 신청 예비 목록을 수정해 제출하도록 한 '세계문화.자연유산 보호협약'에 따라 1996년에 이어 이번에 목록을 수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동안 학계에서는 뉴허량 유적을 랴오허 유역에 분포한 북방 신석기 문화의 대표적 유적의 하나로 분류해 왔다. 랴오허 일대 문화는 한반도와 만주 문화의 원류를 형성한 것으로 평가돼 왔다.  

이번 조치에 대해 전문가들은 "고조선.부여.고구려.발해 등을 중국사에 편입하기 위해 이들 문화의 원류인 랴오허 일대의 북방 문화를 중국 문명권에 편입할 의도"로 파악하고 있다.  

중국 사학계는 황허와 창장 유역을 중국문명권으로 분류하고 랴오허 일대는 중국문명과 뿌리가 다른 북방문명으로 파악해 왔다. 그러나 중국 정부가 올해 선양(瀋陽) 박물관에서 '랴오허 문명전'을 여는 등 일련의 역사 왜곡을 진행하면서 북방문명을 중화문명권에 편입하려 한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한편 새로 작성한 예비 목록에는 뉴허량 유적 외에도 ▶대운하(大運河)▶실크로드▶장경동(藏經洞) 등이 포함됐다. 그러나 헤이룽장(黑龍江)성 닝안(寧安)시 보하이(渤海)진에 있는 옛 발해의 수도 상경용천부(上京龍泉府) 유적은 복원작업이 진행 중이라는 이유로 목록에서 빠져 당분간 신청이 어려울 전망이다. 예비 목록에 오른 유산 중에서 2008년 32차 세계유산위원회 총회에 등재 신청할 유산이 최종 선정된다.  

장세정 기자  

◆ 뉴허량 유적=랴오닝성 링위안(凌源)시 젠핑(建平)현 근교에서 1981년에 발굴된 신석기 유적. 북방 신석기 문명(기원전 7000년)의 하나인 훙산(紅山)문화에 속하는 유적으로 황허 유역의 중원 신석기 문명보다 일찍 발생했다는 것이 정설이다. 랴오허강 일대에 기원전 3500년 무렵에 형성됐다. 섬세한 옥기(玉器)와 돌무지무덤(적석총) 등이 발견됐다. 특히 흙으로 빚은 여신의 두상(頭像)은 전형적인 몽골 계통의 피부색을 하고 있어 중원문명과 확연히 구별된다.  

◆ 탐원공정=상고사를 고쳐 써서 선사시대 중국문명의 판도를 확대할 목적으로 중국 당국이 벌이고 있는 사업이다. 랴오허 일대에서 황허문명(기원전 3000년)보다 더 일찍 발생한 신석기 유적이 발굴되자 중국 당국이 이를 자국 역사에 편입하기 위해 2003년부터 해온 사업이다. 랴오허 일대를 편입하면 중국문명이 기원전 1만 년까지 올라간다. 현재의 정치 사정에 맞춰 역사 왜곡을 시도하려 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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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내몽골자치구 적봉시 동북쪽에 紅山(홍산)이라는 산이 있다. 몽골사람들이 ‘우란하따(烏蘭哈達)’라고 부르는 이 붉은 바위산 인근에서 학계를 놀라게 한 거대한 제단(壇)과 신전(廟)`적석총(塚) 등 거대한 후기 신석기 문화가 발견됐다. 100여년 전의 일이다. 중국 요녕성과 내몽골, 하북성 경계의 燕山(연산) 남북, 만리장성 일대에 널리 분포된, 국가 체제를 완벽하게 갖춘 이 유적을 ‘홍산문화’라고 부른다.  

◇홍산문화를 세상에 처음 알린 사람은 일본 고고학자 도리이 류조(鳥居龍藏)였다. 1906년 적봉 일대 지표조사를 하던 중 많은 신석기 유적과 적석묘 등을 발견했는데 동북지방과 만주, 한반도 일대에서만 발견되는 무덤 형태다. 1955년 이를 ‘홍산문화’로 이름 붙였는데 이후 1982년 요녕성 뉴허량(牛河梁)에서도 같은 유적이 대거 발굴되자 세계 각국 언론들은 ‘5천 년 전 신비의 왕국’이라며 대서특필했다. 이 일대는 현재 발굴작업이 계속되고 있으나 중국의 방해로 연구가 제대로 진행되지 못 하고 있다.  

◇황하문명보다 앞선 서기전 4천500년~2500년경으로 추정되는 홍산문화는 통상 청동기 시대에나 출현 가능한 분업화가 이뤄진 국가형태를 띠고 있다. 특히 가면과 玉(옥) 장식 등에 곰 형상이 투영된 유물이 대거 발견돼 국내 학자들은 곰 토템을 지닌 웅족과 청동기 시대의 고조선 초기(고조선 중기 이후는 철기시대) 이전 한민족 원류 중 하나인 신석기 시대의 배달국 초기(한웅배달국 후기는 청동기시대)가 자리했던 곳이라고 주장한다. 즉 홍산문화는 단군조선 건국의 토대일 가능성이 높은 유적이라는 말이다.  

◇2006년에 중국이 뉴허량 유적 등 35개를 중국의 세계문화유산 예비목록에 포함시켰다고 한다. 遼河(요하) 일대의 북방 신석기 문화를 중국 문명권에 편입하려는 중국의 探源工程(탐원공정)이 더욱 가속화되고 있는 것이다. 이에 국내 학자들은 “고조선과 부여`고구려`발해 등을 중국사에 편입하기 위해 요하 일대의 홍산문화를 중국문명권에 편입할 의도”라고 비난하고 있다.  

◇30년 전 중화문명의 시발점을 앙소문화에서 하모도문화로 바꿔 재설정한 중국은 뉴허량 유적 발견 이후 홍산문화를 ‘요하문명’이라 부르며 중화 3대 문명의 시발점으로 부각시키고 있다. 漢族(한족)의 것과 엄연히 다른 동이족 문화인데도 과거 일제가 한 것처럼 한민족의 뿌리마저 잘라버리려는 역사왜곡 행위를 서슴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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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0월 21일 (일) 09:53 연합뉴스  

BC 7세기 철기유물 강원 홍천서 출토  

"철기시대 개막 앞당길 획기적 자료"  

(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 기원전 7세기 무렵에 제작돼 사용한 것이 확실시 되는 철기 유물이 강원도 홍천에서 출토됐다.  

이는 기원전 300년 무렵에 철기가 제작, 사용됨으로써 한반도는 '초기철기시대'에 접어들었다고 보는 한국 고고학계 통설에 일대 의문을 던지게 하는 획기적 성과가 될 전망이다.  

강원문화재연구소(연구실장 지현병)는 원주지방국토관리청이 시행하는 국도 44호선 홍천 구성포-두촌간 도로확ㆍ포장 공사구간에 포함된 홍천군 두촌면 철정리 1246-16번지 일대 12만6천509㎡(3만8천268평)를 지난해 2월 이후 발굴조사한 결과, 청동기시대 한 주거지에서 송곳과 같은 형태의 단조품 철기 1점을 수습했다고 21일 말했다.  

지현병 실장은 "이 소형 철기는 무문토기가 출토된 58호 주거지에서 유물을 수습한 뒤 바닥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확인됐다"면서 "주거지 내부에서 수거한 목탄(숯) 시료를 채취해 서울대 기초과학공동기기연구원 AMS연구실에 탄소연대 측정을 의뢰한 결과 BC 640-BC 620년(BP 2540±80, BP 2500±50)이라는 연대를 얻었다"고 전했다.  

지 실장은 "청동기시대 중기 또는 후기에 만들었다고 판단되는 주거지에서 철기가 출토된 것은 국내 최초이며, 특히 그 연대가 기원전 7세기로 확인된 것은 매우 중대한 의미를 가진다"면서 "이는 철기가 한반도에 출현한 시기를 훨씬 앞당길 수 있는 획기적 자료일 뿐만 아니라 아직까지 뚜렷한 정설이 확립되지 못한 청동기시대의 하한 연대도 결정할 수 있는 자료가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연구소 최종모 조사3팀장과 현장책임자 김권중 연구원은 "후대에 만든 철기가 지층 변화 등으로 인해 폐기된 청동기시대 주거지에 휩쓸려 들어갔을 가능성을 두고 유적을 더욱 세밀히 검토한 결과,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으며, 주거지가 활용된 청동기시대 제품임을 확신할 수 있었다"고 강조했다.  

이번 '철정리Ⅱ 유적'에서는 신석기시대 적석 유구(돌무지 흔적) 1기, 청동기시대 주거지 66기ㆍ주구묘(周溝墓) 9기ㆍ지석묘 하부구조 1기ㆍ소형 석관묘 2기, 철기시대 주거지 19기, 삼국시대 석실묘 4기를 비롯한 총 230기 이상의 유구가 확인됐다.  

이 중 청동기시대 대형 주구묘는 국내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독특한 묘제(墓制)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주구묘란 도랑처럼 땅을 파 사방으로 두른 무덤으로 이번 철정리 유적에서는 이런 주구가 평면형태 기준으로 볼 때 모두 장방형이었다.  

이 중 2호 주구묘는 길이가 무려 43.28m에 이르지만(폭은 3.96m) 훼손된 부분을 감안하면 원래 길이는 45m 가량으로 추정된다고 조사단은 말했다.  

이 외에도 철정리 유적에서는 한강 유역 한반도 중부지방 철기시대 문화층에서만 독특하게 출현하는 평면 呂자형과 凸자형인 주거지가 다수 발견되고, 그 중 일부는 벽체 시설과 부엌 아궁이를 비롯한 내부 구조가 완벽하게 남아 있어 당시 가옥 구조 해명에 결정적인 자료가 될 전망이다.  

http://blog.yonhapnews.co.kr/ts1406  

taeshik@yna.co.kr  

<오픈ⓘ와 함께하는 모바일 연합뉴스 7070>  

<저작권자(c)연합뉴스  

p.s 반도식민사관학자들의 오류는 무조건 한반도내에서만 유물,유적을 찾으려는데 문제가 있는 것이다.  

우리의 원래 기원은 몽골,만주,연해주,중원대륙의 북부와 동부인데 자꾸 한반도로만 국한시켜려는 자체가 말이 안 되는 것이다.

일례로 짱골라 한족이란 존재도 순날조요.

다음의 기사들만 봐도 알 수 있소.

中교수 “순수한 漢族은 없다”… 多민족 섞여 혈통 불분명

2007년 02월 16일 | 글 | 베 이징=하종대 동아일보 특파원ㆍorionha@donga.com |

일개 민족이 전 세계 인구의 19%인 13억 명이나 될 수 있을까.

이런 의문을 가진 학자가 있었다. 중국 란저우(蘭州)대 생명과학학원의 셰샤오둥(謝小東) 교수. 회족(回族)인 그는 한족(漢族)과 서북지역 소수민족의 유전자(DNA)를 몇 년에 걸쳐 조사했다. 중국 서북지역 소수민족의 기원과 이동 경위를 파악하기 위한 연구였다.

조사 결과 세계에서 인구가 가장 많다는 한족은 실제로 1개의 민족이 아니었다. 한족이라고 부를 만한 순수한 혈통이 존재하지도 않았다.

중국 언론은 13일 셰 교수의 연구 결과를 자세히 보도했다.

셰 교수는 “오래 전부터 한족은 중원(中原)에 살고 있는 것으로 여겨졌지만 이는 어느 한 시기에 한족을 주변 국가 또는 민족과 구별하기 위해 지역적으로 획정한 것일 뿐”이라고 설명했다.

흥미로운 사실은 일반적으로 ‘염제와 황제의 자손(炎黃子孫)’으로 생각돼 온 한족이지만 연구 결과 염제와 황제의 발원지는 중원이 아닌 ‘북적(北狄·북쪽 오랑캐)’지역으로 드러났다는 점이다.

황제(黃帝)의 발원지는 현재의 간쑤(甘肅) 성 친양(沁陽)에서 톈수이(天水)에 이르는 지역이고 염제(炎帝)의 발원지는 간쑤 성 동부에서 산시(陝西) 성 서부에 걸쳐 있는 황토고원으로 이들 지역은 원래 ‘북적’ 지역이었다.

중국 역사에 나타나는 중원의 범위는 산시(山西) 성 남부와 장쑤(江蘇) 성 서부 및 안후이(安徽) 성 서북부를 포함한 허난(河南) 성 일대. 따라서 이 지역에 사는 사람이 바로 중원 사람이라고 생각돼 왔지만 이 역시 사실과 다른 것으로 나타났다. 셰 교수는 “연구 결과 현재 소수민족이 된 객가족(客家族)이 오히려 고대 중원인의 문화전통을 계승한 것으로 드러났다”며 “순수한 한족이 존재하지 않는 것은 오랜 기간에 걸쳐 주변의 소수민족이나 주변 국가가 한족과 융합한 결과”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셰 교수의 연구결과에 중국의 일부 누리꾼은 셰 교수가 한족의 ‘동포감정’을 훼손했다며 사죄할 것을 요구했다.

한족의 비율은 중국 대륙이 92%, 대만이 98%, 홍콩과 마카오가 각각 95%와 97%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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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동아>에서

“漢族, 단일민족 아니다 해!”

중국 유전연구소 충격 발표 … “지배민족 편입된 ‘가짜 한족’ 수천 년간 묵인”

중국을 여행해 본 사람이면 누구나 중국의 남쪽과 북쪽 사람의 생김새가 너무나 다르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문외한이 보더라도 광둥(廣東) 지방 사람과 베이징 사람과는 겉모양이 뚜렷이 구분된다. 그런데도 그들은 이구동성으로 자신들을 같은 한족(漢族)이라며, 한족과 닮지 않았다는 말에 상당한 불쾌감을 표하곤 한다. 그러나 최근 중국에서는 이들을 몹시 불쾌하게 할 만한 발표가 있었다. 54개 소수민족으로 이루어진 다민족 국가임에도 13억 인구의 92%가 한족이라는 중국 정부의 공식 인구 통계를 부정하는 연구결과를 발표했기 때문. 거대 순수 혈통으로 인정받던 중국 한족이 단일한 민족이 아니라는 이번 연구 결과는 중국 사회를 뒤흔들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이번 발표가 중국 한족에게 더욱 충격적인 것은 중국 한족의 ‘순수혈통론’에 반기를 들고 나선 주체가 바로 중국 국영 연구소라는 점이었다. 중국 과학원 소속 유전연구소 인류유전자연구센터가 지난 5월 26일 15년 동안 진행한 중국인의 성씨와 유전자 관계에 대한 분석을 토대로 한족이 단일한 민족이 아니라고 전격 선언하고 나선 것. 분석자료를 통해 연구팀이 내린 결론은 중국 남부 지역인 푸젠성(福建省)과 장시성(江西省)에 걸쳐 있는 우이산(武夷山)과 난링산맥(南嶺山脈)을 경계로 남쪽과 북쪽에 거주하는 ‘한족’이 혈연상으로 확연하게 구분된다는 것이었다. 심지어 연구팀은 두 개의 ‘한족’이 한족과 소수 민족 간 유전적 차이보다 더욱 큰 차이점을 보였다고 발표해 파장을 더했다.

난링 산맥 경계 두 개의 ‘별개 집단’

이 연구팀의 한 관계자는 “한족이 통치하던 송나라와 명나라 시기, 그리고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이후 등 모두 세 차례의 인구조사 내용을 분석하고 500여 편에 이르는 고문헌과 족보를 참조했다”며 “동시에 수백만 명의 중국인 혈액을 검사해 분석한 결과 이와 같은 결론에 이르렀다”고 주장한다.

유전학자들의 이런 연구 결과는 일부 소장 역사학자들의 지지를 받으면서 더욱 힘을 얻고 있다. 중국의 역사는 황허(黃河) 유역 한족세력의 남방 침략과 정복의 역사였고, 이 과정에서 남방의 토착민이 자신의 출신을 속이고 한족 행세를 하면서 이같은 결과가 빚어졌다는 게 학자들의 주장이다. 북경의 한 역사학자는 “한족만이 중국 사회에서 정치적 파워를 가질 수 있는 상황에서 토착민들이 우월한 중화문화권에 편입하기 위해 한족임을 자처했다”며 “중앙 정부도 소수민족 복속정책의 일환으로 그것을 묵인하고 장려해 왔다”고 말했다. 한편 이들 ‘가짜 한족’ 외에도 한족과 소수민족 간의 결혼으로 인해 태어난 후손 중 절대 다수가 소수민족을 포기하고 사회생활에 유리한 한족을 택한 것도 한족 양산의 주요인으로 꼽힌다. 현재 중국에서 부모의 출신 민족이 서로 다르면 자녀에게 선택 권한이 주어지지만, 소수민족을 택하는 자녀는 거의 없는 실정. 바로 이와 같은 상황이 수천 년 동안 이어져 온 것이다.

결국 한족은 ‘가짜 한족’에 대한 묵인과 ‘민족 선택제’라는 소수민족 통치 기술로 그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고, 이는 거꾸로 지배민족으로서 한족의 위치를 수천 년 동안 보전하는 힘이 되었다. 역사학자들은 소수민족을 한족의 수로 압도하려는 중국 정부의 ‘인해전술식’ 인구정책의 결과물이 바로 92%라는 통계수치라고 비웃는다.

어쨌든 ‘중화주의’라는 민족적 개념을 통치 이념의 전면에 내세우는 중국 당국에게 ‘한족이 사실상 두 개의 별개 집단’이라는 사실은 커다란 부담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인지 인류유전자연구센터의 이번 발표는 국영 연구소의 발표임에도 중국 언론매체에 거의 소개하지 않고 있다. 한족의 이익이 중국 전체의 이익을 대변하였음을 보여주는 또 다른 단면이다.

< 소준섭/ 상하이 통신원 > youngji@81890.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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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다른 일례로 삼국지연의와 삼국지정사를 구분 못 하는 사람들도 정말 많더군요. 삼국지연의는 소설입니다. '연의'란 뜻이 '소설'을 의미합니다. 삼국지정사는 사서입니다. 전혀 다른 것이죠.

이 부분에 대한 것은 여령의 '삼국쟁패'에 있던 댓글에서 알게 되어 몇가지 덧붙이리다. 사실 이 블로그 알게 된 것도 '삼국쟁패'에 있던 댓글에서 알게 된 것이니....

지나의 삼국지에 나오는 백만 어쩌고 하는 것은 사실 뻥이죠. 지나놈들의 농간에 불과합니다. 그 당시 인구 대비로 따져도 그것은 억지죠.

실제로는 1/2에서 1/3정도 즉 50만에서 30만정도의 군사력 밖에 안 됩니다. 고구려,백제의 인구 및 군사수에 관한 자료가 있던데

참고해도 좋을 듯 하네요. http://blog.daum.net/hearo9mars/4924656

나관중이 지은 연의에는 장판파에서 조운이 80만의 군대 속을 홀로 유린했다고 하지만 실제 정사의 기록을 보면 조조의 군세는 8천뿐이었다고 합니다. 나관중의 허무맹랑은 상산 조자룡에만 거치지 않죠. 관우의 청룡언월도 그것 역시 거짓입니다. 언월도란 무기 자체가 송나라 시대 이후에나 등장해 원나라때 자주 사용하는 것 중 하나입니다. 즉, 후한 말기 언월도란 무기 자체가 없었습니다. 툭하면 100만 대군 하는데 이 역시 거짓이죠. 하여튼 역사와 판타지를 구분 못 하는 사람들이 많죠. 무조건 짱골라들의 허풍은 믿으면서 반면에 우리의 역사는 외면하죠, 위 글에서도 나오듯이 과학의 발달로 서서히 역사적 진실이 드러나고 있죠. 유물,유적 등 역사의 진실을 파헤치는데는 사학자만 활동하는 것이 아니죠. 그 유물,유적 등에서 나오는 물질을 분석하기 위해서라도 인류학자,화학자,생물학자,고고학자 등 이루 말할 수 없는 분야의 여러 학자들이 함께 동원되죠. 이런 여러 관련 분야들의 학자들이 서로 연관되어 연구하는 것이 기본입니다. 딸랑 사서 하나만 연구 하지 않는 것이죠. 그리고 위 댓글들을 보면 [사고전서]란 것이 나오는데, 이 사서 [사고전서]는 청나라 건륭 황제 때 연간 1000여명의 학자를 동원, 10년에 걸쳐 국력을 기울여 편찬한 동양 최대 총서로 무려 7만9천여권에 달합니다. 고대부터 청나라에 이르기까지 역대 중원의 주요 문헌들을 거의 다 망라하고 있는 이 책은 그 사료적 가치를 국내외에서 모두 인정하는 동양의 대표적인 고전 총서입니다. 특히 그 중에서도 동이 사료 안에는 한국역사, 동양역사의 물꼬를 바꿀 수 있는 그야말로 새로운 발견에 필적하는 귀중한 자료들로 가득 차 있죠. 상(은)나라나 춘추전국시대의 나라들이 모두 동이족이라는 것도 다 밝혀져 있죠. 만약 고대부터 청나라때까지 역대 중원대륙 모든 왕조들의 역사서들을 그 출처로 하여 종합편찬한 [사고전서]를 부정한다면 그것은 그 출처였던 중원대륙의 모든 사서들마저도 부정하는 자가당착에 빠질 뿐이죠. 청나라의 [사고전서]나 후조선의 [조선왕조실록]은 모두 이미 디지털화되어 있어 일반인들도 확인이 가능하죠. 민족이란 말이 근대 국민국가 이후에 생겨났다고 하지만 우리는 민족이라는 말을 사용하기 훨씬 이전부터 겨레라는 순수 우리말을 사용해 오고 있습니다. 요사,금사,원사,청사 등에 보면 그들이 모두 고구려나 흉노 등 배달계통 동이의 후예 또는 갈래민족이란 것을 다 밝히고 있죠. 거란의 요나라와 여진의 금나라,청나라 모두 고구려의 후예라고까지 자처했으며, 특히 신라가 망한 후 그 신라 왕족 일부가 이들 나라들의 건국에 참여했다는 것도 얘기 하고 있습니다. 여러 증거로 말미암아 이번 2007년부터는 고조선 역사가 국사에 편입됐을 뿐만 아니라 홍산문화,요하문명 등 우리 고대의 역사가 서서히 밝혀지고 있죠. 그것을 짱골라들이 방해하고 있는 것이고 그래서 더더욱 역사탐원공정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삼국쟁패 댓글들을 나름대로 잘라서 퍼왔습니다.

도대체 누가 소설 쓰는지 헛웃음만 나올뿐이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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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글쓴이 : 천지림  

2007-09-29 12:4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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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인mars님이 제 글에 댓글로 남기신 것입니다.  

너무 내용이 좋고 여러분도 읽었으면 하는 바람에 제가 이곳에 옮겼습니다.  

내용 중 자신과 맞지 않는 부분이 있으시면 화성인mars님의 블로그를 이용해서 글을 남기시면 좋을 듯합니다.  

전 몸이 좋지 않은 놈이라 여기에 많이 들릴 수도 없고 논쟁할 여력도 없습니다.  

대신 화성인mars님은 다르다 생각됩니다.  

한 번 읽어보시면 상식에도 좋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몇몇 단어나 표현 등에 집착하지 마시고 전체를 보면서 편견없이 읽어주셨으면 합니다.  

비판이나 댓글은 그 다음에 남기는 센스!  

부탁 드릴게요.  

다음은 화성인mars님의 글입니다. 딱 한 단어는 수정했습니다.  

****  

본인의 블로그에서 일부 몇 가지 자료를 제시합니다.    

한반도-만주 8천년 전에도 동일 문화권 입증    

http://blog.daum.net/hearo9mars/4420405    

이제 한걸음을 떼기 시작한 한국역사    

http://blog.daum.net/hearo9mars/4846896    

홍산문화와 요하문명, 주인공은 우리 겨레였다    

http://blog.daum.net/hearo9mars/3590109    

동북공정은 서막에 불과하다    

http://blog.daum.net/hearo9mars/3589049    

유학은 동이족의 마음을 담은 사상    

http://blog.daum.net/hearo9mars/3646230    

사료를 통해 알아보는 동이의 실체    

http://blog.daum.net/hearo9mars/3026908    

순수한 한족漢族은 없다    

http://blog.daum.net/hearo9mars/3301830    

훈민정음에서 말하는 '중국'    

http://blog.daum.net/hearo9mars/4265412    

왜왕실에 잠들고 있는 우리 사서들    

http://blog.daum.net/hearo9mars/3025139    

blog.daum.net/hearo9mars 이 본인의 블로그에서는    

요하문명이나 홍산배달문명 등 여러 공신력있는 자료들이 있으니    

보면 많은 도움이 될 겁니다.    

국회자료, 방송다큐멘터리, 신문, 대학교수들을 비롯 여러 학자들의  논문, 짱골라들의 역사공정에 대한 현상황까지 알 수 있습니다.  짱골라의 역사탐원공정은 고구려,발해뿐만 아닌 그 이전의 한웅배달국,단군조선국 등의 홍산배달문명,요하문명, 하가점문화,장강문화 등 배달 한겨레의 고대문명을 노리고 벌이는 짓입니다.    

여러 영상자료도 많으니 많은 도움이 될 겁니다.    

/동영상/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각각의 자료들에 있어 그 관련성이나  필요에 따라 /역사/면, /인물/면, /음모,테러/면 등 각 대분류(카테고리)마다 영상자료들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기타 궁금한것은 본인의 블로그에서 검색해 직접 둘러보면 많은 의문이 어느 정도 풀릴 것이라 기대합니다.    

몇 마디 부연하자면, (이전에 천지림님의 댓글에 남긴 것을 그대로 재인용합니다. 시간이 많이 없는 관계로 ^^;)    

주나라도 사실 배달갈래왕조입니다.    

특히 주나라가 주목해야 할 것이 이 때부터 민족구성이 약간 기형적인  왕조가 되는 것이죠.    

상(은)나라를 무너뜨리면서 은나라에 여전히 충성을 바치던 가문들을  배제하는 과정 중에 중간관리 다수를 화하족을 끌어들여 상위지배층과 하위백성들은 배달 동이족이 대부분인데, 중위지배층이 화하족인 이상한 구조가 되죠.    

이때부터 서서히 왜곡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공자의 가문 역시 은나라에 충성하던 가문 중 하나인데 그때문에    

주나라를 거쳐 춘추전국시대까지 배척을 많이 받았던 하나의 원인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공자의 아버지는 동이족이고 어머니는 화하족인데, 아버지가 공자가 아주 어릴때 돌아가셔서 어머니의 영향을 많이 받은 면도 컸죠.    

기형적인 왕조였던 주나라에 반기를 들고 일어난 것이 춘추전국이죠.  춘추전국의 대부분 나라 모두 역시 배달갈래민족이죠.    

배달겨레 중 환족과 웅족 그리고 범족이 배달의 정통성을 두고 일시  다툽니다. 그래서 환족과 웅족은 몽골,만주,연해주,한반도로 퍼지고  범족은 중원대륙으로 퍼지죠.    

환족과 웅족의 후손들은 북쪽에서는 흉노로 동쪽에서는 북부여를 세웁니다.    

흉노족이 나중에 유럽의 헝가리를 이룩한 훈족, 수나라와 당나라를 세운 선비족, 터키와 위구르의 돌궐족, 북중원을 차지한 거란족, 유라시아를 통치한 몽골족 등 여러 민족으로 다시 나누어집니다.    

몽골의 원나라 후예를 자처한 티무르제국은 티벳의 강족같은 배달계 융족과 배달계 흉노의 일파인 몽골,돌궐 등이 합쳐진 나라죠.    

그래서 중앙아시아 역시 여러 배달겨레의 혼혈입니다.    

그 과정 중에 일부 백인과도 피가 섞이게 되죠.    

동쪽은 예족,맥족,숙신,말갈족 등으로 지역에 따라 달리 불리며 성장하게 되죠. 배달계 말갈족이 여진족으로 불리고 다시 만주족으로 불립니다.    

짱골라들이 마치 다른 민족인 것럼 조작하기 위해 시대에 따라 달리  부른 것입니다.    

북부여의 뒤를 이어 동부여,고구려,백제,대진국(발해) 등이 세워지고  고구려,발해의 후예를 자처했고 그들의 역사서에도 분명하게 남긴 여진족의 금나라,청(후금)나라 등이 일어나죠.    

신라는 일부 흉노족이 섞인 배달갈래왕조입니다.    

근세고려는 이들 겨레구성 모두를 다시 융합하여 이어가게 되죠.    

중원대륙으로 들어간 배달 범족은 하나라,상(은),주,춘추전국으로  왕조들을 이어갑니다.    

헝가리나 터키 등이 우리와 모습이 많이 다른 이유는 지역적인 이유로  황인종의 피에 백인종의 피가 꾸준히 유입된 결과입니다.    

몇대를 거쳐 어느 인종의 피가 다수를 점하면 그에 따라 그 농도가 진해지죠.    

브라질을 비롯 남미의 등 여러 나라에서는 서양의 침략과정 중에 워낙  많은 피가 섞여 같은 친부모 아래에서도 황인종,백인종,흑인종 다양하게 태어납니다.    

친자식이 어느 인종으로 태어날지 예측할 수가 없죠.    

그래서 친형제인데도 불구하고 형은 흑인 동생은 백인,황인 이런식으로  이루어진 가정이 많죠.    

KBS나 MBC 혹은 BBC 등 국내외 뉴스나 다큐멘터리를 통해서 이를  확인할 수 있죠.    

직접적으로 짱골라의 시작은 유방의 한나라때부터입니다.    

이 때부터 사마천의 사기를 집필하는 등 여러 역사조작 왜곡을 시작합니다.    

진시황의 분서갱유로 많은 서적들과 자료들이 불타버린 관계로 조작하기가 한층 쉬웠죠.    

옛날(B.C 200) 쥐나의 사마천은 당시까지 정립되지 않았던 쥐나의 역사를 2600년을 거슬러 올라가 짱골라의 역사를 편찬했습니다.    

그것이 쥐나의 사기입니다. 소위 말하는 춘추필법으로 말이죠.    

즉 자기들은 한껏 올리고 주위의 국가나 민족은 한껏 깎아 내리는 못된 필법으로 말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당시에는 그들 스스로도 그것을 역사서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약간 양심은 있었던지....)    

그것이 약 300년 후에야 정식 쥐나의 사서로 채택된 것입니다.    

그것도 후대의 왕들이 자기들을 높이기 위해서는 안성맞춤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한번 생각해봅시다.    

2600여년이란 결코 짧은 세월이 아닙니다.    

당시까지 정립되지 않았던 그들의 역사라고 하는 것은 정식역사라고  할만한 사료가 그때까지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사마천은 2600년을 거슬러 올라가면서 단숨에 정립(?)했던 것이죠. 사마천이 편찬한 사기史記25권......    

진시황의 분서갱유 등의 여러 이유로 인해 당시까지 제대로 된 사료가  없는 상태에서 사마천이 그 많은 사서를 편찬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죠.    

따라서 사마천이 서술한 역사들은 거의 꾸며낸 짱골라 위주의 재미있는  책에 불과합니다.    

그러니까 그들 자신도 어처구니가 없었던지 그것을 정식역사로 인정을  하지 않았던 것이죠.    

짱골라는 역사를 삭제,왜곡하는 등의 방식뿐만 아니라 그들은 사이四夷라 하여 북적,동이,서융,남만으로 나누어 배달 한겨레를 흉노,동호,몽골,선비,묘족,말갈(여진)족,돌궐,거란,강족,오환,저족 등으로 계속 분리되도록 유도해왔습니다.    

이夷란 뜻마저 오랑캐로 변질시키기까지 했죠.    

반면에 짱골라는 서로 다른 민족과 결합되도 양친 중 한명만이라도 짱골라면 그 혼혈인은 짱골라다라는 정책을 편 것이죠.    

누구는 결합되면 민족이 사라지고 누군 마찬가지로 결합되도 민족이 불어나는 말도 안 되는 억지를 계속 한 것이죠.    

북부여,동부여,졸본부여(고구려) 등은 한웅배달국과 단군조선국의 후예들로 농경과 유목기마를 함께 하는 대표적인 반농반목민족국가이고 몽골,돌궐 등은 전형적인 유목기마민족국가죠.    

배달 한겨레는 여러 지역에 따라 여러 모습으로 퍼져 살았기 때문에 어느 하나를 보고 그것이 모두를 대표한다는 것은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일 뿐만 아니라 어불성설입니다.    

배달 한겨레는 농경민족이면서도 유목기마민족이며, 그의 후예 백제나 왜열도 등 해상민족이기도 한 것입니다.    

유방 한나라 이전에는 짱골라가 존재하지 않았죠.    

아니 없어졌다고 보면 됩니다.    

화하족은 낙양 중심으로 살아가던 소수민족이었죠.    

시간이 흘러 화하족은 배달민족들에게 흡수되어 사라졌습니다.    

그런데 유방의 한나라 때부터 자신의 치부를 가릴려고 조작하게 되면서  짱골라 개념을 갖고 나오게 된 것이죠.    

한나라가 영토확장하려다 북쪽 배달계 흉노와 동쪽 배달계 북부여에게  대패해서 그들에게 조공을 바쳐가며 살아가는 속국으로 전락하죠.    

이런 상황 등이 그들에게 조작,날조하도록 더욱 부채질하게 되죠.    

진시황의 분서갱유로 조작하기는 더욱 쉬운 것은 말할 필요없죠.    

짱골라들이 타국을 침략할 때 가장 먼저 한 일이 그 나라의 사고에 있는  역사서나 수많은 저서들을 약탈하거나 불태운 것이었죠.    

지들이 저질러놓고 그것을 믿으라 하는 심보가 정말 가관입니다.    

지들이 없애놓고 니네는 원래 그런 것 없었다 하면 말이 됩니까?    

민족에 의해 그 역사가 탄생하는 것이지, 영토에 의해 역사가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민족의 흥망성쇠에 따라 영토의 변화가 있을 뿐이죠.    

짱골라들이 내세우는 역사관의 맹점은 시간의 연계성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더더욱 공간(영토)를 확보하여 날조,삭제하려고 생난리를 떠는 것이죠.    

복희, 신농, 공손헌원, 요임금, 순임금 등 삼황오제 모두 배달 한겨레입니다. 진시황의 진나라마저도 배달 흉노계 국가죠.    

실제 짱골라의 왕조는 한,송,명 3왕조뿐이며 이들이 설쳤던 세월은 고작 수백년 밖에 안 됩니다.    

한나라는 북쪽 배달계 흉노와 동쪽 배달계 북부여의 속국으로서 조공을  바치며 연명했고, 송나라는 배달 흉노계 거란족의 요나라와 고구려,발해 후예인 배달 부여계 여진족의 금나라에 조공을 바치며 힘겹게 속국으로 살아가다 배달 흉노계 몽골족의 원나라에 병합되어 사라집니다.    

명나라 역시 고구려,발해의 후예 여진족의 청나라(후금)에게 망합니다.    

처음 시작은 단일민족으로 시작했을지 모르나 시간이 흐르면서 우리 겨레가 여러 계통으로 나누어졌죠.    

그래서 지금으로서가 아닌 오래전부터 우린 다민족국가라 할 수 있습니다. 부모님과 형제들이 처음에는 하나였지만 시간이 흘러 먼 친척이 되고 그 후에는 남남이 되어 다시 서로 만나 부둥켜 살아가는 세상처럼 말입니다.    

수많은 배달 한겨레들이 오랜 세월을 거쳐 오면서 여러 분파로 나뉘어졌습니다. 그래서 그 기원은 배달 한겨레에서 시작되지만 그 세부의 역사에 있어서는 그 분파된 민족의 고유한 역사인 것입니다.    

역사는 그 민족의 것이지, 시대적인 영토변화에 따라 역사가 바뀌는 것이 아닙니다. 민족의 흥망성쇠에 따라 영토의 변화가 있을 뿐이죠.    

원나라의 역사는 몽골 그 자신들의 것이고, 훈제국의 역사는 헝가리의 것, 오스만투르크(돌궐족)의 역사는 터키의 것, 부여,고구려,백제 등의  역사는 대한민국인 것처럼 우리 배달 한겨레 형제들의 역사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에 대해 억지를 부리는 짱골라들이 문제입니다.    

치우천황이나 복희,신농,공자,묵자,징기스칸 등 남의 조상도 자기 조상이라 하고 수많은 배달갈래왕조들이 이룩한 발견,발명,업적 등을 자기 것이라 어거지를 부리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러니 짱골라의 억지에 대해 우리는 보다 정확히 민족을 분류하고 그것에 따라 역사를 논리적으로 반박할 뿐이죠.    

만약 누가 우리 자신이 역사나 민족을 너무 확대시킨다고 성질을 낼지도 모르죠. 하지만 그것은 사대주의 매국노나 짱골라,쪽바리 등의 의견에 동조하는 행동일 수 있습니다.    

우리는 다만 배달 한겨레가 시간이 지나 이렇게 여러 민족으로 나누어졌다는 사실을 언급하고 끝내려 하나 짱골라가 말도 안 되는 억지를 부리니 그것에 대해 배달 한겨레가 나누어졌다고 말하는 이상의 사실을 지적하며 그들의 무지를 일깨우려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먼저 문제를 일으킨 것이 아니죠. 문제를 해결하려면 그 원인을  제거해야 하는데, 그 문제의 원인과 원인제공자인 짱골라나 쪽바리에게는 아무 말 안 하고 가만히 있으면서, 그에 대해 지적하는 우리 자신 스스로를 타박한다면 말이 안 되죠.    

그런 어리석은 짓은 공정하지도 못 할 뿐더러 스스로를 자학하는 꼴이죠.    

민족이란 용어가 근대 국민국가 이후에 생겨났다고 해서 배달 한겨레가 부정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민족이라는 말을 사용하기 훨씬 이전부터 겨레라는 순수 우리말을 사용해 오고 있습니다.    

겨레는 같은 혈족,언어,풍습,문화 등을 공유하는 용어입니다.    

고대의 배달겨레가 크게 동이계,흉노계와 융족계 등으로 나누어졌지만  그 뿌리는 함께 공유하고 있는 것입니다.    

배달민족이 먼저 생긴 개념이고, 이것이 후에 광의의 동이족, 협의의 동이족 개념으로 나누어집니다.    

그리고 배달계통이 흉노,예맥,말갈(여진),돌궐,동호,거란,선비,묘족,오환족, 강(티벳)족, 장족 등으로 좀더 세분되어집니다.    

배달민족이란 용어 안에는 흉노계나 융족계,동이계 등 모두 담을 수 있는 말이지만 동이족이란 말은 그렇지 못하죠.    

그리고 한웅배달시대가 단군조선시대보다 더 이전의 시대니 당연한 것이죠.    

요하문명 전시회도 심양이나 대련에서 열고 있는데 짱골라들은 그 유산들과 우리 배달 한겨레의 연관성을 숨기려고 엄청 노력을 하더군요. 그래서 역사공정을 더욱 펼치는 것이죠.    

한웅배달국의 홍산문명이나 단군조선국의 요하문명 등 여러 고대 유적들이 드러나고 세계 학자들 사이에 논문이 계속 나오고 있습니다. 국회에도 자료가 올라가 있죠.    

물론 2006년에 생방송으로 국회방송도 했었습니다.    

짱골라들이 진실을 가릴려고 러시아,미국,독일 등을 비롯한 세계 학자들의 유적방문조사도 못 하게 막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 짱골라들이 그 고대 유적들을 조사 못 하게 군사통제구역으로 설정해서 출입을 아예 틀어 막고 있으며 그 유적들의 일부는 물에 수장시키거나 나무를 심는 등 여러 방법으로 파괴하고 또다른 일부는 유적지 자체를 들어내어 거기에 인위적인 장치를 하는 등 여러 방식으로 조작하고 있는 것도 알았으면 합니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오랑캐라 치부하던 치우천황이나 단군,징기스칸 등을 지금에 와서는 짱골라들이 자신의 조상이라고까지 우기는 코미디도 연출하고 있죠.    

실제 복희,신농,요순임금 등 삼황오제 모두 배달민족일 뿐 아니라 진시황의 진나라 역시 배달 흉노계 국가이니 이미 말 다 했죠.    

남의 조상,역사,업적 등을 빼앗으려 하는 짱골라들.    

한,송,명 3왕조를 제외하고는 수많은 배달왕조들에게 지배당한 짱골라들.    

그래서 짱골라들은 배달 한겨레에 대해 그렇게 열등감과 두려움으로 똘똘 뭉쳐있나 봅니다.    

<사고전서>는 청나라 건륭 황제 때 연간 1000여명의 학자를 동원, 10년에 걸쳐 국력을 기울여 편찬한 동양 최대 총서로 무려 7만9천여권에 달합니다. 고대부터 청나라에 이르기까지 역대 중원의 주요 문헌들을 거의 다 망라하고 있는 이 책은 그 사료적 가치를 국내외에서 모두 인정하는 동양의 대표적인 고전 총서입니다.    

특히 그 중에서도 동이 사료 안에는 한국역사, 동양역사의 물꼬를 바꿀 수 있는 그야말로 새로운 발견에 필적하는 귀중한 자료들로 가득 차 있죠.    

만약 고대부터 청나라때까지 역대 중원대륙 모든 왕조들의 역사서들을 그 출처로 하여 종합편찬한 <사고전서>를 부정한다면 그것은 그 출처였던 중원대륙의 모든 사서들마저도 부정하는 자가당착에 빠질 뿐이죠.    

7000년을 대륙의 지배자로 군림하다 그 후 2000년은 혼란을 거듭하다  이제는 이렇게 반도에 처박혀 옛 영광은 거의 망각하게 되었지만 보름달은 앞으로 기울게 되어있고 초승달은 앞으로 달이 차오르는 형세이니, 비록 반딧불에 미치는 한국이라 할 지라도 앞으로 기울 보름달보다는 나을 겁니다.    

아니 고토를 회복하는 등 다물하여 과거의 한웅배달국이나 단군조선국 같은 배달 한겨레의 영광을 다시 찾아 갈 것입니다.    

어차피 역사의 수레바퀴는 돌고 도는 것이니....    

많이 알수록 끊임없이 노려할수록 유럽의 변방에 불과한 독일이 일어났듯이 징기스칸이 대제국을 건설했듯이 왜놈들이 강대국에 올라섰듯이 우리도 자주국방다물하여 다시 세계에 우뚝 서는 팍스 코리아나 시대를 열어 나가야 합니다.    

만약 이곳, 연재한담에서만은 이 방법이 안 된다면, 그 분에게 환단지로에 댓글이 있으니 확인하라고 하세요.    

자신이 던진 말이 있으니 최소한 확인할 의무에서라도 할 것입니다.    

만약 그가 확인하지 않는다면 애초에 그 사람은 알려고 하지도 않으면서 무조건 비판만 하고 딴지를 거려는 투덜이일 뿐이죠.    

자기 스스로 무덤을 판 격이죠.    

대체로 그런 사람들 대부분은 자기 멋대로 규정해서 환빠니 어쩌니 하며 몰아부치기 좋아합니다.    

솔직히 난 환빠도 아닐 뿐더러 식민사관학자는 더더욱 아니죠.    

오히려 신문,방송국 등 언론계, 여러 분야 대학교수 등의 강단학자들(개구라같은 식민사관학자들 제외)을 비롯한 학계 기타 등등 공신력있는 자료를 더 믿는 사람입니다.    

유적발굴이나 역사를 알아가는데는 역사학자만 동원되는 것이 아닙니다. 고고학자,인류학자,화학자,생물학자 등 여러 분야의 학자들이 동원됩니다. 그 유물,유적에서 나온 물질을 분석도 해야 하는 등의 여러 상호관련되어 진행되는 것이죠.    

알아보려고 하지도 않는 방관적인 태도랑 중립적인 태도는 같은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진실을 알기 위해 중립적이면서도 공정한 태도는 학자들뿐만이 아닌 기자,판사,일반인 등 우리 사회구성원 모두에게 필요한 당연한 행동인 것입니다.    

이런 내가 환빠라니 뭐니 하는 소리 들으면 정말 기도 안 찹니다.    

그렇다고 모든 자료를 다 믿으라고 강압하는 것이 아닙니다.    

각자가 그 자료들을 보면서 객관적으로 판단하는 것이죠.    

하지만 아주 소수의 몇몇 자료가 미심쩍다 하여 나머지 절대 다수의 객관적인 자료를 마다할 필요는 없는 것입니다.  

~~~~~~~~~~짧은 토막상식~~~~~~    

대놈, 땟놈 >> 대국이란 말에서 나온 말로, 이 용어를 쓰면 짱골라를  오히려 큰 사람, 큰 나라사람 하며 칭찬하는 꼴이 됩니다.    

짱개 >> 계산대란 말로 영어로 번역하면 프론트,    

즉 이 말을 쓰면 짱골라를 주인장이라 부르는 꼴이 됩니다.    

짱골라 >> (썩을 장, 장례 장) (뼈 골) 즉 장골라란 말에 강세가 붙은  말로서 해석하면 '썩은 냄새나는 좀비같은 버러지'란 뜻.    

바퀴벌레 족속들에게는 짱골라란 말도 과하죠.    

그래서 그런지 그들은 씻는 것을 싫어합니다.    

그들에게 나는 냄새가 고약하죠. 세계인들이 질겁을 합니다.    

쪽바리 >> 왜놈들이 신는 버선이 돼지발을 닮았다 하여 족발이,쪽발이,  쪽바리로 변음된 것입니다. 물론 더러운 돼지와 연관시켜 부정의 의미도 함께 담겨 있죠.    

짱골라가 주변 여러 나라들이 자기의 연호를 쓴다고 자신들의 속국이라 억지를 부리는데 실지로 짱골라의 왕조는 한,송,명 3왕조뿐이며 오히려 짱골라들이 배달계왕조들의 지배에 있었고 혹은 속국으로 살아간 노예종족입니다.    

(실지로 짱골라족 자체가 허구의 개념입니다. 조작,날조를 시작하면서  허구의 종족을 내세운 것에 불과합니다.)    

2007년 9월 29일 현재, 짱골라는 서력을 쓰니 서양의 속국이군......  

  1  10만리한국 2007-09-29 13:16:16      

좋은자료 감사합니다^^* 짱골라~ 짱골라~ 쪽발이 ㅋ;;  

  2  수부타이. 2007-09-29 13:27:47      

홍산문명이 나오면 한단고기가 연상이 되서 거부감 부터 들더군요. 예전 다음 한열사 카페에서 이것때문에 박이 터지게 싸웠던 경험이 있는데 증거라고 내 놓는것들이 거의 음모론 수준이었습니다.  

결국 가슴뜨거운 한단고기 신봉자들에게 혼자 다구리를 당한 후 다시는 그쪽 근처에 얼씬도 거리지 않고 있지만 문피아 한담란에서 비슷한 글을 읽게되니 슬슬 몸이 달아오르네요.  

한가지만 예를 들겠습니다.  

배달의 기수라는 국방부 홍보드라마를 보고 자란탓에 배달이란 우리겨레를 뜻하는 것으로 철썩같이 믿고 살았지만 조금만 생각이 달리하고 깊이 파고 들어간다면 사실 그 어원자체도 출처가 모호합니다.  

한단고기에서 처음으로 언급하고 많은사람들에 의해 과장되고 재 해석되면서 지금에 이르고 있지만 솔직히 상고시대에 국가라고 불릴만한 나라가 한반도나 한반도 북부에 존재 했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됩니다. 물론 중국도 마찬가지겠죠?  

한민족 9000년 역사라던지 12000천년 문명 이라던지 한쪽 블로그나 사이트에 집착해서 파고드는것 보다 좀더 균형잡힌 시각으로 세계사 전체를 아우르는게 올바른 역사의식을 만들어 가는데 바람직 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한민족 9000년 이라는 것이 왜 말이 되지 않는지 고대 근동사만 살짝 곁눈질 해도 분명해 집니다. 세계 대규모 농경의 역사만 살짝 살펴봐도 되고 문명이 발생조건만 조금만 생각해 봐도 됩니다. 철기와 청동기의 시작에 대해서도 조금만 관심을 가지면 더욱 분명해 지겠죠.  

하다못해 용산 국립박물관에 들려 유물을 관람해도 시야는 넓어집니다.  

요즘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국가주의나 민족주의 코드가 두려운 마음에 짧은 댓글을 남겨봅니다.  

  3  狂猫眼 2007-09-29 14:02:23      

제가 잘 몰라서 그러는데요, 국가주의나 민족주의 코드가 안좋은 이유가 무엇인가요? 아무래도 동북공정이나 일본문제 관련해서 이야기들을 보다보면 국가주의나 민족주의에 안좋은 감정을 갖고 계신 분들이 많은것 같아서요. 전 아직 그쪽 계통으로 주관이 뚜렷한 상황이 아니라 국가주의나 민족주의에 의해 쓰여졌다고 판정되어지는 글들이 제 마음에는 와닿는데, 왜 그게 문제가 되는건지를 잘 몰라서요..  

  4  흑미르 2007-09-29 17:01:32      

어느나라 사람이나 기본적으로 국가주의나 민족주의를 가지고 있죠..  

또 나라 발전을 위해서 꼭 필요한 요소 중 하나고요..  

하지만 지나쳤을 때 문제가 되겠죠..  

그 자세한 이유는 밑에님이..;  

  5  리키 2007-09-29 17:12:44      

짱골라 짱골라 짱골라  

자제좀 합시다  

  6  inhm0 2007-10-03 08:21:25      

취지는 좋지만 상당히 위험한 발언입니다. 중국이나 일본이 그들의 역사를 보기좋게 포장한다고 우리까지 그렇다면 똑같은 욕을 들어 마땅합니다. 저도 한국을 사랑하고 고구려를 사랑하지만 고증된 역사가 아니라면 함부로 입에 내뱉어서는 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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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글쓴이 : 한배달쥬신

2007-12-14 09:2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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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블로그 들어가봤습니다. 그 동안 역사적 진실이 얼마나 가려졌는지 느낄 수 있었습니다.  

거기에 민족이나 민족주의에 대한 이런 글도 있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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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이 글을 보고 무조건 딴지를 거는 이가 있다면, 일단 제시한 자료 확인이나 하고 말했으면 합니다.  

딴지를 걸기 위해 자신이 던진 말이 있으니 최소한 확인할 의무에서라도 해야 할 것입니다  

만약 그가 확인하지 않는다면 애초에 그 사람은 알려고 하지도 않으면서 무조건 비판만 하고 딴지를 거려는 투덜이일 뿐이죠.          

자기 스스로 무덤을 판 격이죠.          

대체로 그런 사람들 대부분은 자기 멋대로 규정해서 환빠니 어쩌니 하며 몰아부치기 좋아합니다.          

솔직히 난 환빠도 아닐 뿐더러 식민사관학자는 더더욱 아니죠.          

오히려 신문,방송국 등 언론계, 여러 분야 대학교수 등의 강단학자들(개구라같은 식민사관학자들 제외)을 비롯한 학계 기타 등등  

공신력있는 자료를 더 믿는 사람입니다.          

유적발굴이나 역사를 알아가는데는 역사학자만 동원되는 것이 아닙니다.  

고고학자,인류학자,화학자,생물학자 등 여러 분야의 학자들이 동원됩니다.  

그 유물,유적에서 나온 물질을 분석도 해야 하는 등의 여러 상호관련되어 진행되는 것이죠.          

알아보려고 하지도 않는 방관적인 태도랑 중립적인 태도는 같은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진실을 알기 위해 중립적이면서도 공정한 태도는 학자들뿐만이 아닌 기자,판사,일반인 등 우리 사회구성원 모두에게 필요한  

당연한 행동인 것입니다.          

이런 내가 환빠라니 뭐니 하는 소리 들으면 정말 기도 안 찹니다.          

그렇다고 모든 자료를 다 믿으라고 강압하는 것이 아닙니다.          

각자가 그 자료들을 보면서 객관적으로 판단하는 것이죠.          

하지만 아주 소수의 몇몇 자료가 미심쩍다 하여 나머지 절대 다수의 객관적인 자료를 마다할 필요는 없는 것입니다.  

다물을 이루어 다시 영광의 진정한 최강 대한국으로 거듭날 수 있는 최소한 의 토대를 마련하기 위해서는  

우리 정신의 회복이 꼭 필요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올바른 역사부터 먼저 다시 세워야 하겠죠.  

역사란 현실의 거울이요 미래의 지표라고 합니다.  

진실되고 확실한 역사관정립은 분명히 후대에 남길 수 있는 유일한 선물이자 우리 미래의 도약대가 될 것입니다  

평화를 바라면 전쟁을 대비하라!란 말도 있죠.  

준비하지 않는 자에게는 기회가 오지 않습니다. 기회가 와도 준비소홀로 실력이 부족하여 그 기회를 잡지 못 하겠죠.  

하물며 주변4강국에 둘러싸인 한국은 풍전등화의 위기라 볼 수 있습니다.  

손 놓고 있다가는 평화는 커녕 모든 것을 잃게 될 겁니다. 과거의 기상을 잃어버린 근세조선만 봐도 알수 있죠  

[소위 세계화]라는 것은 우리 자신의 정체성이 확고하게 확립된 위에 이뤄져야 [진정한 세계화]가 이뤄질 수 있습니다.  

각 국가의 역사교육,민족교육,국민교육이 바로 [그 나라, 혹은 민족의 정체성]을 기르는 교육이죠.  

[시민교육]은 세계인으로서 갖춰 야할 [보편적인 윤리/덕목]을 가르치는 것이죠.  

따라서 [역사교육]은 없고 [시민교육]만 한다는 찌질이의 절규에 정말 웃기는 일입니다.  

(옛날 덴마-크의 "그룬트비히"라는 사람은 [너는 크리스찬이 되기 전에 먼저 덴마-크 인이 되라]고 했죠.)  

유태인들이 부르짖는 시온주의, 독일의 게르만주의 운운하는 것도 다 같은 맥락입니다.  

미국도 다민족국가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각 민족사회,인종사회로 굴러갑니다.  

그에 따라 인종차별도 심하고... 그래서 미국 정치계에서 스패니쉬계나 흑인종,동양인 등을 비롯한 각 단체들의 힘겨루기가 극심합니다  

근데 미국내 한국사회만 결집이 안 되는 편이죠. 그래서 미국에서 부당한 이익을 받는 면이 더 큽니다.  

흑인이나 스패니쉬계 등은 각각의 정치의원이나 이익,인권 등 다양한 수단을 마련해 미국 정부에 압력을 주어  

보다 많은 것을 이끄는 것에 비하면 정말이지 어리석기 짝이 없습니다.  

하나가 되고 있는 유럽공동체마저도 각국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확고히 합니다. 물론 미국도 마찬가지.  

그런 기반이 되는 정체성교육도 없이 세계화를 추진한다는 것은 한마디로 사상누각입니다.  

그렇게 따지면 보스니아 내전이나 아프리카의 여러 내전과 같은 위험을 안게 되는 겁니다.  

체코슬로바키아가 체코나 슬로바키아로 나누어진 것이나 구소련이 무너진 후, 여러 국가가 들어선 것만 봐도  

현재는 한울타리의 세계화라는 이면의 신민족주의시대로 볼 수 있는 겁니다.  

하여튼 자신의 주변도 살피지 못 하면서 인류애,세계화를 부르짖는 찌질이들이 된다 면 우리는 곧 무너질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지금 폭풍전야의 풍전등화같은 어려운 상황에 놓여있는 겁니다.  

최근 유엔에서 한국 순혈주의 운운하며 마치 인종차별을 낳는 식으로 민족주의가 나쁘다는 식으로 몰고 가는데 참 황당합니다.  

민족주의는 부정도 긍정도 아닌 그저 중립적인 용어일 뿐입니다.  

민족주의와 인종차별주의를 혼동하는 일은 더 이상 없었으면 하는군요.  

어떤 이들은 애국심과 배타성을 구분 못 하더군요.  

미국 사람들이 자기 나라 위해 애쓰면 애국심이고, 한국 사람들이 조국을 위해 애쓰면 국수주의,배타성입니까??  

도대체 이런 사람들의 의식구조는 어떻게 되어 먹은 것인지.....  

언제부터인가 한국은 스스로에 대한 자신을 잃어버린 나머지 외부에서 무슨 소리를 하면 쉽게 흔들리더군요.  

그리고 도움도 안 되는 체면을 위해 손해보기를 밥 먹듯이 하고, 똥고집은 엄청 부리죠.  

근세고려 아니 후조선 초기까지만 해도 나름대로 실리추구를 하는 면이 강했는데 중기에 들어서면서 유학이란 학문을  

변질적인 유교로 받들기 시작하면서 더욱 그런 것 같습니다.  

유교로 포장하는 것도 실은 불완전한 후조선 왕조의 정통성을 극복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이었죠.  

그래서 백성과 현실을 도외시한 채 양반만의 정치, 체면과 허위허례의식의 유교로 똘똘 뭉쳐  

종국에는 국방력을 모두 말아먹고 외세에 침입에 쉬이 당하고 무너진 것입니다.          

<<글이 다 들어가지 않아 나머지는 댓글에 덧붙이겠습니다.>>


Comment ' 23

  • 작성자
    Lv.1 한배달쥬신
    작성일
    07.12.15 22:23
    No. 1

    몇 가지 더 인용하면서 말하겠습니다.


    단일민족론의 기원은 조선유교 쥐나사대주의에 비롯합니다.
    단일민족이론의 시초에 대해서는 여러 주장이 제기되고 있지만,

    유학이 통치이념으로 자리잡은 근세조선조 이후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죠.
    ‘조선왕 독살사건’ ‘우리 역사의 수수께끼’ 등의 저자인 역사 연구가 이덕일(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장)씨는

    ‘소쥐나’ 사상에 경도된 유학자들을 단일민족이론의 시초로 꼽습니다.
    이씨는 “유교를 받아들이면서 쥐나와 일체화하기 위해 같은 민족이었던 동이, 몽골, 만주족을 오랑캐로 내몰았다”면서
    “민족 개념이라는 것도, 봉건시대에서 통일국가로 이행했던 유럽이나, 왜국의 경우에는 맞아 떨어질지 몰라도,
    나라의 개념이 하나뿐이었던 우리나라에 적용하는 것은 무리”라고 지적했습니다.
    그는 “단군신화를 순수혈통주의로 해석하는 것은 옳지 않다”면서 “한 조상이라고 해도, 여러 지류가 흘러 큰 물을 이루는 넓은 개념으로 해석하면 다문화, 다민족 사회를 가로막는 요소로 보기 힘들다”고 덧붙였습니다.


    고대에 이미 배달겨레가 크게 동이계,흉노계,융족계로 나누어집니다.
    이들이 서로 다시 여러 민족으로 갈라지며 합쳐지는 등의 변천을 거듭했죠.
    곧 우린 이미 배달겨레의 여러 민족으로 이루어진 다민족국가입니다.
    그래서 단일민족이니 뭐니 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니 서양인들이 헛소리하는 것 자체가 모순이죠.
    더욱이 그들의 혼혈은 다른 나라를 침략하여 식민지 지배로 통한 것이니...
    더군다나 그들의 현사회에서도 오히려 인종차별이나 민족차별이 심하면 심했지 못 하진 않죠.
    지들 주제도 모르면서 남에게 뭐라 한다는 것 자체가 어처구니 없는 거죠!


    그리고 유엔에서 한국의 민족 운운하는 헛소리들은
    정확히는 유럽에서의 논란이라고 보는 것이 보다 적절할 것입니다.
    본인은 외국의 사례인 스킨헤드, 시오니즘, 네오나치,kkk단 등은 굳이 거론하지는 않겠습니다.
    하지만 표리 부동한 그들에 대해서 비판은 하겠습니다.
    유럽인들이 왜 다인종 국가를 만드는데 성공했을까.....
    그것은 그들의 관용(똘레랑스 ㅗ 먹이셈)따위가 절대 아닙니다.
    그것은 오직 제국주의 시대에 값싼 노동력을 착취하기 위해 끌고온 것이었으며,
    2차대전 이후 경제성장에 있어 3D업종에 종사 시킬 사람들을 충당하기 위해
    그나마 연관성이 있는 식민지인들을 데려온게 아니었습니까.
    그리고 신생아 출생 감소로 인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였고.
    그것으로 인해 다원사회를 이룩하였으면서,
    그들이 본질적으로 관용적인 것처럼 말하는 것에 어이가 없을뿐입니다.


    어차피 한국도 20년내 고려인 역이주.
    50년내 타국민 이민을 받아들여 인구수 8000만 유지해야만 하는 떄가 옵니다.
    통일한국이 되면 더욱 가속화되겠죠.
    순리가 그러니까 제발 먼저 설레발 치지 않길 바랄뿐입니다.
    그 잘나신 프랑스도 타인종 관리 못해서 폭동이나 일어나게 만드는 주제에, 자신들이나 잘 관리하길 충고할 뿐입니다!
    똘레랑스 좋아하고 자빠졌다. {-_-}


    우리도 다시 일어서야 할 때입니다. 고토를 회복하고 과거의 영광을 재현하려면 강해질 수 밖에 없습니다.
    근세조선이 침묵을 지키고 있을 때, 왜국은 1592년이후부터 포르투갈의 조총 등을 비롯한 문물,난학(네덜 란드 학문),프랑스,독일,미국 등 많은 서양의 문물을 300년간이나 꾸준히 받아들이고 발전시켜 지금의 강국이 되었습니다.
    물론 독일 역시 마찬가지 입니다 수십개의 소국으로 갈라진 약소국 독일은 끊임없이 주변 유럽의 열강에 당해왔습니다.
    하지만 비스마르크의 철혈정책,그로 인한 과학의 집중적 투자 등으로 독일은 하나의 나라로 통일할 수 있었으며 그 저력으로
    세계1,2차대전까지 일으키는 최강국이 된 것입니다.


    서양은 동양으로부터 문물을 받기 시작해서 그리스,로마 문명의 기초를 다질 수 있었죠.
    하지만 중세시대의 미쳐버린 종교때문에 건축기법 중 시멘트공법마저 잊어버릴 정도로 암울한 시대죠
    하지만 아랍의 문명을 다시 받아들이면서 르네상스를 이루어 과거의 학문,문화 등을 서서히 되살리기 시작하죠.
    세계최초의 종합병원이나 도서관 아라비아 숫자 등 뛰어난 동양 아랍문명이 없었다면 어림도 없었죠.
    하물며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 등 의 여러 고대 저서 등이 아랍의 도서관에 보관되지 않았다면 아마 서양의 문명은 벌써 사장되어 한참이후에나 다시 발전을 이루어 나갔을 것입니다.
    이 부분은 전에 ebs 교육방송에 방영된 bbc역사관련 다큐멘터리 등에서도 나왔던 내용입니다.
    한웅배달국부터 시작하여 고구려,발해까지 위대한 선조들이 이룬 업적을 짱골라에게 우리 조상까지 다 빼앗기고 역사마저 빼앗기게 만든 그 후손이 못 나서 그렇지 그 조상이 못 난 것은 아니죠.
    아무리 뛰어나도 그 후손이 못 나면 아무 소용없죠.
    우리의 전례뿐만 아니라 잉카,마야,캄보디아의 크메르, 인도의 여러 문명,종교때문에 모든 발전이 거의 정체되게 된 근동,중동의 아랍문명 등등...


    서양 역시 마찬가지죠. 동양의 문명이 없었으면 다시 르네상스를 일으키지도 못 했죠.
    또 회계제도는 우리나라도 개성상단의 사개송도치부법이라는 훌륭한 복식부기법이 예전부터 사용되어왔고 시스템도 현대 서양의 그것에 비해 결코 뒤쳐지지 않습니다.
    숫자는 한웅배달시대에는 산목으로, 단군조선시대에는 산대 등으로, 시간이 많이 흘러 근세조선에 들어서는 쥐나의 숫자나 조선산이라는 고유숫자도 사용했습니다.
    물론 숫자표현체계는 아라비아숫자가 더 쓰기 편한듯 싶습니다
    이 우리부기법은 서양보다 200년이나 앞서있어 1910년대 오스트리아 경영학회에 보고되어

    고려의 회계시스템이 아라비아를 거쳐 유럽에 전파되었다고 주장되었으나

    왜국의 학자가 이를 반박하는 논문을 발표하였고 당시 왜국의 식민지배를 받던 우리 나라의 상황때문에 묻히게 됩니다.
    물론 금속활자에 대한 앞선 사용 또한 마찬가지죠.
    참고로 서양이 동양을 서서히 따라붙다가 17세기초에 이르러, 여러 분야의 발전 에서 조금씩 추월하기 시작하죠.
    그리고 서양이 세계대항해시대를 열게 된 배경 중 자연의 영향도 큽니다.
    15세기에서 18세기까지 유럽은 소빙하기시대였거든요.
    그래서 최북단에 있던 영국은 식량문제 등을 비롯한 여러 악조건을 타개하기 위해서 상공업을 장려시키고 과학을 위시한 학문을 공부하고 세계로 뻗어나갈 필요성이 컸죠. 이런 복합적인 이유로 끝내는 산업혁명을 일으키고 그리하여 전세계에 미국,호주 등의 영연방이 생기게 된 기저가 되죠.


    솔직히 서양인들이 배가 부른 때라 해 봤자 기껏 '그리스, 로마시대'와 '산업혁명 이후부터 현재에 이르는 300년 정도'입니다.
    이를 제외하면 수천년동안 아랍과 동아시아 등 동양의 지배에 있었던 야만인들에 불과할 뿐입니다.


    역사의 수레바퀴는 돌고 도는 것이죠.
    이제 다시 우리가 일어선다고 해서 하등 이상할 것도 없습니다.

    그리고 몇몇 이들은 현재의 모습을 가지고 문명과 역사를 판단하는데, 이는 대단히 위헙하고 짧은 생각입니다.

    문명과 기후,지형 변화 등 다각도로 그 상황에서의 여러 관계들을 함께 끌어들여야 제대로 볼 수 있는 겁니다.

    과거의 땅이었던 것이 지금은 바다로 되어 있는 것도 많고 또 이전에는 초원지대가 지금에 와서는 사막이 된 자역도 많죠.
    한마디로 오판하는 그들은 지구의 환경변화에 대해 고려하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따라서 지구의 환경변화를 중심으로 문명을 이야기할 수 밖에 없는 것이죠.

    다시 한번 말하지만 유적발굴이나 역사를 알아가는데는 역사학자만 동원되는 것이 아닙니다.
    고고학자,인류학자,화학자,생물학자 등 여러 분야의 학자들이 동원됩니다.
    그 유물,유적에서 나온 물질을 분석도 해야 하는 등의 여러 상호관련되어 진행되는 것이죠.


    알아보려고 하지도 않는 방관적인 태도랑 중립적인 태도는 같은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진실을 알기 위해 중립적이면서도 공정한 태도는 학자들뿐만이 아닌 기자,판사,일반인 등 우리 사회구성원 모두에게 필요한
    당연한 행동인 것입니다.
    본 블로그에 들어와서 게시된 여러 글들을 읽으며 전체적인 맥락을 파악했으면 하는군요.
    종합과 분석을 같이 해야 그 사이의 미묘한 상호작용을 알 수 있죠.
    따로 떼어놓고만 보면 나무만 보지 숲은 못 보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는 길을 헤맬일 뿐이죠.
    ///

    어쨌든 위의 몇몇 댓글 단 이들에 대해서도 한마디 하고 싶네요.
    확인없이 댓글 달지 말고 일단 거기에 들어가서 제대로 그 근거부터 확인하고 말하는 것이 당연한 절차 아닐까 합니다.
    자신의 주관적인 선입견만으로 그것이 한단고기네 역사왜곡이니 하는 미리 설레발부터 치는 행동에 어이없었습니다.
    글에서는 한단고기를 크게 내세워 다루는 것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한단고기를 들먹이며 덮어씌우고 보자는 식의 수부타이의 행동이나, 가치중립적인 낱말인 민족주의를 무조건 배타적 수구주의로 호도하는 식의 흑미르의 말은 좀 아니라고 봅니다.

    현재 몇몇의 환빠때문에 역사적 논지가 흐려지는 것도 안타깝지만 수부타이 같은 어설픈 이들 때문에 진정한 역사 찾기가 퇴색되는 것 같아 한숨만 나옵니다.

    외부의 적인 짱골라의 역사공정도 위협스럽지만 오히려 내부의 적인 식민사관학에 물들어 역사적 진실을 찾으려는 노력을 외면하는 인식 자체가 더 큰 문제라고 봅니다.

    일단 그 근거자료들 <a href=http://blog.daum.net/hearo9mars/5289466 target=_blank>http://blog.daum.net/hearo9mars/5289466</a> 에서 확인부터나 했으면 하네요.

    두서없이 글 올린 점 양해해 주십시오.

    혹시나 해서 말합니다.
    블로그 방문하다가 데이터 읽어들이는 과정에서 약간의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습니다. 나 역시 몇번 겪었던지라....
    mars님 블로그 방문하여 둘러보다가 게시물들의 내용화면이 바로 나오지 않을 때는, mars님 블로그 우측 메뉴에 있는 '카테고리(대분류)'를 통해 직접 게시물을 클릭하면 뜹니다.
    혹은 각 게시물 우측 위의 '목록열기'를 통해 직접 게시물을 클릭해도 뜹니다. 이런 경우에 대해 mars님이 DAUM관리자에게 문의하여 들은 설명답변에 의하면, 그 게시물의 내용(용량)이 많은 관계로 서버가 일시적으로 못 읽어들여 그런 현상이 발생하였다고 합니다.
    그러니 재차 게시물들을 클릭해주면 된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게시물들의 내용이 마음에 들어 자신의 블로그나 카페, 플래닛 등에 스크랩했을 경우에도 간혹 가다 스크랩내용이 하얀 백지같이 떠면서 제대로 나오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럴 경우 역시 자신의 블로그 등에서 스크랩한 내용을 '카테고리'나 '목록열기'를 통해 다시 한번 클릭해주면 제대로 뜹니다.
    게시물 내용이 많아서 일시적으로 서버가 읽지 못하 것이라 하니 걱정할 필요없다고 합니다.
    만약 그래도 안 뜬다면 mars님 블로그에 댓글이나 방명록을 통해 글을 남기라네요.
    그러면 mars님이 DAUM에 문의해서 문제를 해결하겠답니다.
    처음에 내가 mars님의 몇몇 게시물들을 내 블로그에 스크랩했더니 스크랩내용이 하얗게 뜨더군요. 하지만 mars님이 제시한 방법대로 나의 블로그에 스크랩한 후 나 자신의 블로그의 '카테고리'나'목록열기'를 통해 스크랩한 게시물을 클릭하니 뜨더군요.
    스크랩은 제대로 됐는데 그게 잠시 내 블로그 화면에 제대로 안 떴었던 거죠.
    mars님의 자료들은 대체로 용량이 큰 편이라......

    역사관련에 대해서 mars님의 블로그 <a href=http://blog.daum.net/hearo9mars target=_blank>http://blog.daum.net/hearo9mars</a> 를 강력추천합니다.

    이 블로그에서 출처표시가 없는 것은 대부분 mars님이 조사해서 직접 작성한 것이고, 다른 이들의 글을 퍼거나 인용하는 부분에서는 mars님은 대부분 출처를 표시하고 있으니 알기 쉬울 것입니다.

    한가지 더 말하자면 mars님은 펀글이라도 내용이 좀 모자란다 싶으면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이나 조사했던 것을 덧붙이거나 좀더 보충시킵니다.
    그래서 펀글이라도 내용 후반부분들에 가서는 오히려 내용이 원문보다 더 풍부해지거나 달라지는 것이 많습니다.
    그러니 펀글같은 경우는 mars님의 부연설명이 붙은 글들과 비교해서
    읽어봐도 좋을 것입니다.

    그리고 mars님 자신의 블로그의 글들을 퍼 가도록 공개해 놓았습니다.
    다만 지킬 것은 반드시 출처를 확실히 기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남의 자료들을 이용하더라도 출처를 밝히는 것은 인터넷을 쓰는 네티즌들에게는 너무나 당연한 네티켓이겠죠.

    물론 온라인상에서뿐만 아닌 오프라인에서도 마찬가지죠.
    밝히지 않고 무단으로 사용하는 것은 어떻게 보면 범죄이니까요.
    그런 기본 예의만 지킨다면 자료를 퍼가도 전혀 문제없죠.
    돈 드는 것도 아니고 어려운 것도 아니니
    지키기는 쉬울 것입니다.

    blog.daum.net/hearo9mars 이 블로그에서는
    요하문명이나 홍산배달문명 등 여러 공신력있는 자료들이 있으니 보면 도움이 될 겁니다. (국회자료,방송다큐멘터리,신문,여러 대학교수 등을 비롯한 학자들의 논문, 짱골라들의 역사공정에 대한 현상황까지 알 수 있습니다. 동북공정은 고구려,발해뿐만 아니라 그 위의 한웅배달국, 단군조선국의 홍산배달문명,요하문명,장강문화,하가점문화 등 고대문명을 노리고 벌이는 짓입니다. 궁금한 점은 mars님의 블로그에서 검색해서 둘러보시길...)

    블로그에서 주지하는 주의사항도 일부 퍼와 덧붙입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 한배달쥬신
    작성일
    07.12.15 22:59
    No. 2

    하나 더 왜곡사례를 얘기할까 합니다. 그래서 몇 가지 더 퍼 왔으니 보다 자세한 사항들은 직접 블로그에 가서 확인했으면 합니다.

    ~~~~~~~~~~~~~~~~~~~~~~~~~~

    # 고조선 Vs 한나라, 그 결과와 한사군의 허구



    漢四郡 사건'의 실상과 朝鮮四郡


    여기서 한사군에 대해서는 간략히 알아보겠습니다. 이전 학계에 남아있는 한사군의 설치문제, 도대체 한사군의 설치연대가 언제입니까? 서기전 108년이요. 좋아요. 그러면 서기전 108년에 설치된 낙랑·현도·진번·임둔이라는 4군 가운데 가장 오래 존속된 것은 무슨 군이죠? 낙랑군입니다. 낙랑군의 멸망연대는 언제입니까, 그럼? 313년! 전부 박사들만 모였네! 설치에서 멸망까지 도합 421년입니다. 중원대륙의 역대왕조 가운데 하나의 왕조가 400년 이상 존속한 것이 몇개나 됩니까? 단 한개도 없습니다. 그럼 300년 이상 존속한 왕조는 몇개나 될까요? 그것도 없습니다. 한국에는 500년 이하의 왕조가 거의 없습니다. 없는 것은 마찬가지이지만, 우리는 이하가 없고 중원대륙은 이상이 없습니다. 여기서부터 우선 역사의 질(質)이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200년에서 250년 사이의 왕조가 4개 있었는데, 즉 한(漢)·당(唐)·송(宋)·명(明)나라입니다.
    (+실제 짱골라의 왕조는 한, 송, 명 3왕조뿐입니다.
    수나라와 당나라는 배달 흉노계 선비족 국가입니다. 진시황의 진나라마저도 배달 흉노계 국가이니 이미 말 다한 것이나 다름없죠.)

    그런데 한사군의 종주국가는 한나라입니다. 한나라는 서기 8년에 망합니다. 그러면 종주국인 한나라가 망해 버린 때부터 305년동안 종주국이 없는 식민지가 과연 존재할 수 있었겠습니까? 도저히 상식으로 이해할 수 없는 낙랑군이 평양에 실존했었다는 것은 실사(實史)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이건 동화 같은 얘기입니다. 아니 초등학교 학생한테 물어보아도 알 수 있는 얘기를 대학생한테 얘기해야 하는 저도 참 바보 같군요.


    여기서 저는 학문을 논하자는 것이 아니라 상식을 말하는 겁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서 종주국가가 서기 8년에 망했는데, 그 식민지는 313년까지 존속했다는 것이 동화입니까, 역사입니까? 역사도 동화도 모두 아닙니다. 동화는 논리가 없어도 되는 겁니까? 오히려 동화야말로 어린애들이 알아듣기 쉽게 논리가 정연해야 됩니다.


    어찌되었건 한사군 얘기는 이제 끝난 얘기입니다. 앞서 강의하신 박시인 박사도 한사군을 위해 참으로 많이 애썼습니다. 도대체 학문이 되지 않는 사안을 가지고 해방 후 40년동안 떠들어 온 것입니다. 사기(史記)라는 사서는 한무제(漢武帝)의 신하였던 사마천이 쓴 목격기입니다. 사기가 완성된 때가 서기전 100년입니다. 사마천의 그 때 나이 27살이었습니다. 약관의 27세 때 한사군 전쟁을 직접 보고 적은 기록이 조선열전(朝鮮列傳)입니다. 사기 조선열전에는 낙랑, 현도, 진번, 임둔이라는 4군이 없습니다. 사학에서는 이런 자료를 1차사료라고 합니다. 1차사료인 목격담 속에 낙랑현도진번임둔이 없는데, 우리는 뭐가 아쉬워서 자꾸 그 이름들을 외치는 건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사기 다음에 쓰여진 쥐나정사가 한서(漢書)입니다. 한서는 서기 80년 경에 쓰여졌는데, 한사군 사건으로부터 말하면 200년이 채 안되는 180년 이후에 쓰여진 기록입니다. 그런데 한서는 사기의 조선열전을 복사기로 복사를 해 놓은듯 똑같이 기록해 놓았습니다. 그런데 한서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사기 조선열전의 '수정조선위사군(遂定朝鮮爲四群)'이라는 기록을 '수멸조선위낙랑현도진번임둔(遂滅朝鮮爲樂浪玄兎眞番臨屯)'으로 바꾸어놓았다는 점입니다. 어떤 사람(반고)이 8글자를 가필을 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니까 한서에서부터 '낙랑현도진번임둔'이라는 8글자가 나온 것입니다.


    남대문을 구경한 사람이 서울얘기를 하는 것과 남대문 구경도 못한 사람이 서울 얘기하는 것 중 어느 것이 더 정확하겠습니까? 그러니까 한사군 전쟁이 일어난 시절에 태어나지도 않았던 반고(班固)가 적은 한서(漢書)가 정확하겠어요, 아니면 한사군 전쟁이 났을 때 한무제의 신하였던 약관 27세의 사마천이 적은 기록이 정확하겠습니까? 게다가 사기 조선열전의 기록을 볼 것 같으면, 우리가 상상하는 한사군과는 완전히 정반대의 기록이 나옵니다.


    한국사람의 마음 속에는 '한국은 외국과 싸우면 의례히 진다'라는 패배의식이 한국사관에 의해 알게 모르게 드리워져 있습니다. 중고등학교나 대학에 와서 배운 역사라는 것이 전부 싸움에서 지는 것이었습니다. 한무제의 육해양군(兩軍)과 위만조선의 군대가 싸웠으니까, 보나마나 또 졌겠지 하는 생각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싸움에 진 결과로 이긴 자가 설치한 것이 낙랑현도진번임둔이라는 식민지였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실제 그게 그렇지 않다는 데 문제가 있습니다.


    한무제의 군대와 위만조선의 군대가 싸웠는데, 우리의 예상을 뒤엎고 한무제의 군대가 졌습니다. 그러나 사마천의 사기에는 '조선이 이겼다'는 얘기는 없습니다. 전쟁이 일년동안 지속되다가 끝나고 난 뒤, 한무제는 논공행상을 합니다. 육군사령관 순체, 해군사령관 양복(楊僕), 천자의 사신인 공손수(公孫遂)와 위산(衛山) 등 네사람을 앞에 대령시켰습니다. 만약 이들이 전쟁에 이긴 개선장군이라면 계급을 높여주거나 황금으로 상을 주었을 겁니다. 그런데 상은 커녕 벌을 내립니다. 벌 가운데에서도 최고의 벌인 사형을 내립니다. 사형 중에서도 최고의 사형을 내립니다. 제일 악랄한 사형, 조선조 같으면 능지처참에 해당되는, 사람을 죽여 사지를 찢어서 쥐나의 장안 사대문에 걸어놓는 사형[棄市]을 내려 죽입니다. 네사람 중 천운(天運)이 기시(其時)한 사람도 살아남질 못했습니다. 그러니까 이 논공행상 하나만 보더라도 한나라가 전쟁에 진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사마천은 이렇게 자기 한나라가 졌다고 했는데, 우리 한국인은 오히려 우리가 졌다라고만 하고 있는 것입니다. 분통터질 일입니다.


    그리고 한사군이 아니라 조선사군이 생겼습니다. 평주·날양·추저·홰청이라는 네군의 책임자(최, 참, 음, 협)가 전부 조선사람입니다. 우리는 역사를 거꾸로만 알고 세상을 살아왔니다. '한사군 사건'이야말로 우스꽝스런 사건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게다가 제일 마지막에 가서 '태사공 왈(太史公 曰)'이라고 한 부분이 있는데, 아주 중요한 대목입니다. 뭐라고 했는가 하면, '한나라의 육해양군은 모두 졌다'라고 했습니다.
    사마천이 자기의 한나라가 싸움에 졌다고 했는데, 반도식민사관학자들이 나와서 '아니다, 우리가 졌다'라고 하니까 지금까지 우리가 진 걸로 생각해 왔던 것입니다. 전쟁에 직접 참여한 사마천 자신이 '육해양군이 모두 졌다(兩軍俱辱 將率莫侯矣)'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세상만사 본은 무상하다라고 탄식하며 조선열전의 붓 끝을 놓았습니다. 이런 기록을 보면서도 한사군얘기를 하는 사람은 도저히 정상인으로 볼 수 없는, 장님과 하등 다를 바 없는 것입니다.


    발해연안에서 산동반도에 걸쳐 평주, 추저, 날양, 홰청이라는 사군이 설치되었는데, 바로 이땅이야말로 위만조선의 땅입니다. 위만조선이 무너지면서 그 땅이 조선사람 네사람이 통치하는 조선사군으로 바뀐 것입니다. 위만조선 이전에는 그 곳이 기자조선의 땅이었습니다. 한국사를 논하면서 한반도는 언급하지 않고 왜 만주쪽을 가리키느냐 할 지 모르겠지만, 한국사의 본질은 반도사관이 아니라 이처럼 대륙사관입니다. 왜놈들이 반도사관에 역점을 두어 반도라는 것이 우리의 운명적인 강역인 것처럼 강의했습니다.


    지금 국회의원들도 하등 다를 바 없습니다. 지금의 헌법3조를 보면 우리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로 되어있습니다.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 이것이 우리의 숙명적인 강역인 것처럼 알고있는 것입니다. 한반도는 왜인들이 우리의 머리 속에 심어놓은 강역일 뿐입니다. 한반도라는 것은 우리 민족사의 가호적입니다. 근세고려 이전에는 모두가 대륙에서 생겨난 역사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가호적이 본호적으로 둔갑되어있는 것입니다. 이제 한국사는 반도사관이 아닌 대륙사관으로 보아야 합니다.
    졸본부여(고구려)나 백제(남부여) 그리고 고구려의 후예 대진국(발해) 모두 그 건국의 땅이 모두 대륙입니다.
    북한 사학은 60년대 초에 한사군문제를 싹 정리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아직도 낙랑,현도,진번,임둔 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러나 이번 2007년부터 여러 유물, 유적의 실증에 의해 고조선의 역사가 국사에 편입되었습니다.
    이제 비로소 첫발을 내딛을 뿐입니다. 해방 이후 40-50년동안 우리는 식민사학을 복창 복습했다는 것을 여기서 또한 알 수가 있습니다.


    고쳐야 할 事大主義


    시간이 조금 더 남았으니, 그럼 '똥되는 놈'얘기를 조금 해 보겠습니다. 오늘 제가 자꾸 똥되는 놈이라고 해서 미안하지만, 국호문제에 있어서 중국(united states of china)이라고 부르면 안됩니다. 똥되는 놈이 우주의 가운데, 즉 태양이면 우리는 자동적으로 제후국이 됩니다. 이것은 아주 원초적인 사대주의 발상에서 나온 말입니다. 그러니 중국이라 하지 말고 지나라고 瞞?됩니다. 이웃 왜놈들도 지나라고 하고 서양사람들도 차이나라고 하는데, 유독 우리만 중국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잘생긴 세종대왕의 훈민정음에 나와있는 '나라말씀이 중국과 달라....'라는 구절도 있는데 여기서 말하는 중국은 '국중' 곧 '나라 안' 이란 뜻입니다.
    나라안의 백성들이 말이 안 통한다는 뜻으로. 중국이란 국명은 20세기중반까지 존재하지 않았던 말입니다.


    한글을 위해 평생을 살겠다고 생각하는 학생들이 있을지 모르지만 그건 잘못된 생각입니다. 한글만 우리 글자입니까? 아니 우리 역사가 몇년인데 한글만 우리 글자입니까? 우리 문화사가 500년밖에 안됩니까? 서양사람들이 잘 알지 못하니까 한자를 차이나글자(Chinese character)라고 얘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건 서양 중심의 가치관에서 하는 말이고, 이제부터의 세계는 우리 중심의 문화세계, 우리 중심의 가치관이 전개되어야 합니다.


    백인종이 모여 세운 나라가 USA인데, 앵글로 색슨족이 주류족입니다. USC라고 하면 차이나를 말합나다. 똥되는 놈들 민족 가운데 주류족은 USA의 앵글로 색슨족에 해당되는 한족(漢族)입니다. 이 한(漢)은 민족의 이름도 나라의 이름도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한테서 표절을 해 갔습니다. 한웅배달 할 때의 '한'(桓, 원음은 '환')에서 한이라는 발음을 따 갔던 것입니다. 이 한(桓)은 한족(漢族)이 아닙니다. 동이족(東夷族)입니다. 동아시아 역사에서 가장 오래된 민족이 배달민족입니다. 여기서 이(夷)자를 흔히 오랑캐라고들 합니다. 중원대륙 25사 가운데 우리나라 역사를 기록한 제목이 동이열전(東夷列傳)인데, 여기에는 고구려, 백제, 신라가 전부 다 나옵니다. 그러면 그 후손인 우리는 전부 오랑캐가 되어 버립니다. '나는 오랑캐 올시다'라는, 성은 오씨요 이름은 랑캐가 되어버리는 것입니다.


    고쳐야 할 사대주의 사상이 하나 둘이 아닙니다. 세종대왕의 중국이라는 용어를 잘못 해석하는 것도 문제이지만, 이(夷)자를 오랑캐라고 훈을 붙인 옥편의 저자는 더 문제가 많습니다. 한문옥편의 원조가 되는 것은 허신(許愼)이 쓴 설문해자(說文解字)인데, 이 옥편의 역사가 약 2000년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그러면 여기서 이(夷)자를 찾아보면, '동방지인야(東方之人也)' 그 다음에 '고문인동(古文仁同)'이라 되어있습니다. 그러니까 오랑캐란 말은 없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혹시 누가 이(夷)를 오랑캐로 말하면, 여러분들은 그들에게 '古文仁同'이라는 한마디로써 가르쳐주어야 합니다.


    동양오행철학에 의하면 木은 東, 火는 南, 金은 西, 水는 北, 土는 中央에 해당됩니다. 오행을 색깔로 말하면 東은 靑, 西는 白, 南은 赤, 北은 玄이고 中央은 黃입니다. 오상(五象)을 방위에 배치하면 仁은 東, 禮는 南, 義는 西, 智는 北, 信은 中央입니다. 동양철학 속에서 그 근거를 지니고 있는 글자인 仁을 오랑캐라고 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습니다.


    배달민족이야말로 중원대륙 가운데 가장 비옥한 땅에서 사는 민족이었고, 이 지역을 경영했습니다. 따라서 중원대륙민족 가운데 가장 많은 민족이 배달민족이고, 배달족은 즉 우리 선조들은 지나라는 연합민족국가를 형성한 원료입니다. 우리의 7000년 역사가 쥐나문화의 지류를 따라 흘러서 겨우 마시고 살아 연명해 온 역사라고 붓놀리는 사람들이 그따위 수작을 해 왔지만, 우리 민족이 과연 끊어질듯 끊어질듯 하면서도 목숨을 겨우 연명해 온 민족입니까? 그렇치가 않습니다. 동양의 역사문화 속에서 질풍노도와 같이 군림한 역사문화민족이 우리입니다. 우리가 알맹이요, 핵심입니다. 이제부터는 반대로 생각하고 살아야 합니다.


    한자도 마찬가지입니다. 한자는 지나의 글자가 아니라 우리 글자입니다. 약 4만 3천여 자가 옥편 속에 있는데, 글자 하나 하나마다 대개 발음기호가 들어 있습니다. 예를 들어 '學'자를 옥편에서 찾아보면, 우리는 '學'이라는 발음기호를 적었을테고, 지나인은 한글을 모르니까 자기네 발음기호를 적었습니다. 즉 '轄覺切'으로 표시되어있습니다. 여기서 '切'은 '轄覺切'이 발음기호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또 읽는 방법은 아주 간단한데, 첫글자에서는 자음(하)만 취하고 두번째 글자에서는 모음(가)과 받침(가)을 취해 읽으라는 뜻입니다. 이렇게 '轄覺切'로 지나옥편에는 2000년동안 적혀 내려오고 있는데, 지나인은 '學'발음을 못하고 '쉬에'라고 합니다. 가,띵,밑으로 끝나는 글자를 사성 중 입성이라고 하는데, 지나인은 입성을 발음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한문자(漢文字)는 지나인들이 제대로 발음할 수 없는 것이고, 한민족의 발음으로서만이 완벽히 소리낼 수 있는 것입니다. 100% 우리말로 적혀있는 것이 지나인의 옥편이고, 따라서 우리가 표준어를 쓰고 있는 한문자의 주인공입니다. 한글만이 우리문자가 아니란 사실을 알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한문자야말로 우리 문화와 전통을 지금까지 전해준 고마운 글자입니다.



    민족사의 르네상스를 위하여


    정말 우리 문화의 본질을 정확하게 안다면 이제부터 한자에 대한 애착을 가져야 합니다. 마치 어떤 탕자의 비유마냥 말이죠. 백만장자의 아들이 아버지의 돈을 객지에서 다 써 버려서, 남의 돼지우리에 버린 밥껍질로 주린 배를 채우다가 하루는 탄식합니다. '나의 아버지집에는 먹을 것과 입을 것이 많이 있었건만, 나는 객지에서 헐벗고 굶어죽게 되었구나' 하며 깊은 한숨을 쉽니다. 이런 탄식끝에 이 탕자는 아버지의 집을 향해 다시 힘차게 뛰어갑니다. 아버지는 아들의 목을 끌어앉고 맞으며, '내 아들이 다시 돌아왔노라'하며 양잡고 소잡아 축제를 엽니다. 그래서 탕자는 또다시 백만장자가 됩니다.


    바로 이것이 르네상스입니다. 옛집으로 되돌아 가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에게는 과연 그런 용기가 있습니까? 옛집을 기억은 하고 있습니까? 옛집이라는 것은 상고사입니다. 이제 상고사를 재확인하고 민족사의 과제인 옛집으로 돌아가는 것, 마치 탕자가 자기 본래의 집을 향해 돌아가는 것처럼, 바로 이것이 한국사의 남아있는 과제입니다.


    자기의 옛집으로 돌아가려면 우선 한문(漢文)을 알아서 민족의 전통을 확인하는 것이 첫작업이 될 것입니다. 한국사는 목표가 뚜렷한 근원을 향해서 돌아가는 '민족사의 르네상스'가 일어나야 합니다. 만약 그리스와 로마의 영광과 위대함이 없었고 이를 기술한 고전(古典)이 없었더라면, 인류역사상 저 'Renaissance'는 존재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본래 이 말의 어원은 '옛 정통(근본)으로 돌아간다'는 그리스말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따라서 되돌아갈 고향의 영광과 위대한 추억이 없는 민족, 향수가 없는 민족에겐 르네상스란 말은 존재하지 않을 것입니다.



    한사군에 관한 보충설명은 본 블로그의 /역사/면에 있는 [한사군의 허구로 풀어보는 짱골라들의 거짓]을 읽어보세요.


    보다 자세한 것은 [몇 가지 추려본 간략한 게시물 목록들]를 참조하세요.


    #훈민정음에서 말하는 '중국'


    다른 분들이 훈민정음에서 말하는 중국이란 용어에 대해 궁금해 하기에 이렇게 몇 자 적습니다.



    훈민정음에서 "나라의 말 소리가 중국과 달라서 문자와 더불어 서로 통하지 못 한다"라는 중국은 쥐나를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다.

    나라 가운데 즉 국내를 뜻하는 國中을 뜻하는 겁니다.



    무엇보다 세종대왕 당시에 중국이라는 국호를 쓰는 나라가 지구상에 없었습니다.

    그것은 훈민정음을 반포한 것이 1446년이고 중국(쥐나민국)이라는 국호는 1911년 짱골라 손문이 신해혁명을 일으켜



    배달갈래왕조인 고구려 후예 청나라를 무너뜨린 후에 생겨난 공식적인 국호로 세종대왕때보다 무려 465년 후의 일입니다.

    <오제본기> 제1에 기록된 '제왕소도위중帝王所都爲中 고왈중국故曰中國과 <목천자전>의 수우중국樹于中國,

    <맹자>의 진양북학우중국陳良北學于中國 등에 기록된 중국中國이라는 글자는

    그 나라 내에서 임금이 있는 가운데 장소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다민족국가개념에 있어서도 쥐나와 미국은 전혀 다릅니다.

    미국은 건국초부터 이민을 받아들여 세워진 다민족국을 처음부터 표방한 나라이고,

    쥐나는 그 동안 동아시아를 지배했던 배달계통왕조들이 약해진 틈을 노려 세워진 그것도 짱골라 한족만을 위하는 나라입니다.

    역사적으로 짱골라왕조는 한,송,명 세 왕조뿐입니다.



    그 외의 모든 왕조들은 모두 배달갈래 중에서도 동이계와 흉노계 그리고 융족계가 건국한 것입니다.

    수,당마저도 배달 흉노계 선비족국가들이죠.



    과거 짱골라의 한나라는 북쪽 배달계 흉노와 동쪽 배달계 북부여의 속국이었습니다.

    송나라는 배달 흉노계 거란의 요나라와 고구려 후예 여진의 금나라의 속국이었으며 끝내는 배달 흉노계 몽골의 원나라에 멸망당합니다.



    명나라는 고구려,발해의 후예인 여진(만주)족의 청(후금)나라에게 멸망당하고 말입니다.

    짱골라들이 실제 조공을 받을 수 있었던 적은 명나라때 뿐입니다.



    청나라 때의 자금성은 원래 고구려 성곽 축조 방식이었는데, 짱골라들이 허물고 쥐나식으로 개축했죠.





    고등학생때 국어선생이 하던말이 아직도 생각이 납니다
    훈민정음 서문을 배우던 그때

    " 國之語音異乎中國 與文字不相流通 故愚民有所欲言而終不得伸其情者多矣 予爲此憫然 新制二十八字 欲使人易習使於日用矣”

    해석을 이렇게 하더이다

    나라말이 중국과 달라 문자와 더불어 서로 통하지 않으매 우매한 백성이 말하고자 하나 종래는 그 뜻을 얻지 못하는자가 많으므로 내 이를 민망히(불쌍히) 여겨 새로 28자를 지어 사람으로 하여금 쉽게 익히어 일용케 함이라.

    이렇게 해석해놓고 보면 꼭 쥐나의 변방 제후국정도로 밖에 안보이더이다 이때 부터 저는 자존심이 많이 상했었습니다.


    그런데 이 해석은 엄청난 오류를 가지고 있음을 밝힙니다

    현 中國측의 사전을 보면
    "中國이란? 나라 이름이 아니라 중원 즉 나라의 한 가운데,천하(天下)의 중심지(中心地)이며,
    中國이란 이름으로 다른 나라에서 나라이름으로 사용치 못하도록 1911 년 이후에 나라이름
    으로 처음 사용했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1911년 신해혁명 당시 쑨원이 쥐나인민공화국으로 이름을 만든것을 줄여서 중국이라 부르는것입니다
    그럼 그 이전에 중국이라는 나라가 있었나요?
    물론없습니다 그럼 그 이전 역사서에 나오는 중국이라는 지명을 왜 한족의 나라들로 해석을 하는걸까요????
    분명 중원대륙의 나라들은 당, 원, 명, 청 이라는 국호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짱골라 한족인 쥐나의 나라를 중국으로 불렀다고 한다면 또 하나의 오류가 발생합니다
    한족은 자신의 왕조가 나라를 세운게 몇개 안되기때문입니다
    실제 짱골라 한족의 왕조는 한,송,명 3왕조뿐입니다.

    복희, 신농, 공손헌원, 요임금, 순임금 등 삼황오제 모두 배달 한겨레입니다.
    진시황의 진나라마저도 배달 흉노계 국가죠.
    실제 짱골라의 왕조는 한,송,명 3왕조뿐이며 이들이 설쳤던 세월은
    고작 수백년 밖에 안 됩니다.
    한나라는 북쪽 배달계 흉노와 동쪽 배달계 북부여의 속국으로서 조공을 바치며 연명했고,
    송나라는 배달 흉노계 거란족의 요나라와 고구려,발해 후예인 배달 부여계 여진족의 금나라에 조공을 바치며
    힘겹게 속국으로 살아가다 배달 흉노계 몽골족의 원나라에 병합되어 사라집니다.
    명나라 역시 고구려,발해의 후예 여진족의 청나라(후금)에게 망합니다.
    (+고구려,발해의 백성이었던 배달계 말갈족이 이후에 여진족으로 불리고 다시 만주족으로 불리는 것입니다.
    다른 민족이 아니라 같은 민족입니다.
    이것 역시도 짱골라들이 고구려,발해 후예인 그들 배달계 말갈족이 다른 민족인 것처럼 조작하기 위해 시대에 따라 달리 부른 것입니다)

    오히려 짱골라들이 배달계왕조들의 지배에 있었고 혹은 속국으로 살아간 노예종족입니다.
    (실지로 짱골라족 자체가 허구의 개념입니다. 조작,날조를 시작하면서 허구의 종족을 내세운 것에 불과합니다.)

    민족이란 용어가 근대 국민국가 이후에 생겨났다고 해서
    배달 한겨레가 부정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민족이라는 말을 사용하기 훨씬 이전부터
    겨레라는 순수 우리말을 사용해 오고 있습니다.
    겨레는 같은 혈족,언어,풍습,문화 등을 공유하는 용어입니다.

    고대의 배달겨레가 크게 동이계,흉노계와 융족계 등으로 나누어졌지만
    그 뿌리는 함께 공유하고 있는 것입니다.
    배달민족이 먼저 생긴 개념이고,
    이것이 후에 광의의 동이족, 협의의 동이족 개념으로 나누어집니다.
    그리고 배달계통이 흉노,예맥,말갈(여진),돌궐,동호,거란,선비,묘족,오환족, 강(티벳)족, 장족 등으로 좀더 세분되어집니다.
    배달민족이란 용어 안에는 흉노계나 융족계,동이계 등 모두 담을 수 있는 말이지만 동이족이란 말은 그렇지 못 하죠.
    그리고 한웅배달시대가 단군조선시대보다 더 이전의 시대니 당연한 것이죠.

    요하문명 전시회도 심양이나 대련에서 열고 있는데 짱골라들은
    그 유산들과 우리 배달 한겨레의 연관성을 숨기려고 엄청 노력을 하더군요. 그래서 역사공정을 더욱 펼치는 것이죠.

    드러나는 한웅배달국의 홍산문명이나 단군조선국의 요하문명 등 여러 고대 유적들과 학자들의 발표로 점점 사실로 드러나고 있죠.
    세계 학술대회에서도 여전히 홍산문명을 주제로 벌어지고 있으며 국회에서는 2006년 생방송으로 국회방송도 했었습니다.

    홍산배달문명의 발견으로 러시아,독일,미국 등 세계 학자들의 유적 방문조사가 보다 대대적으로 벌여지려 했으나 짱골라들이 이를 막아서 모든 게 지지부진하게 지체되어 있는 중입니다.
    지금 짱골라들이 그 고대 유적들을 조사 못 하게 군사통제구역으로 설정해서 출입을 아예 틀어 막고 있으며
    그 유적들의 일부는 물에 수장시키거나 나무를 심는 등 여러 방법으로 파괴하고 또다른 일부는 유적지 자체를 들어내어
    거기에 인위적인 장치를 하는 등 여러 방식으로 조작하고 있는 것도 알았으면 합니다.

    지금까지 드러난 여러 유적과 유산들로 인해 한웅배달국과 단군조선국의 실존은 점점 확정되고 있거나 확정되었습니다.
    이번 2007년 국사교과서부터는 단군조선국의 역사가 편입되었습니다.

    지금까지 학계의 연구 결과로 통해 본인 역시 한웅배달국과 단군조선국의 실존을 더더욱 확신하게 되었지만, 한웅배달국 이전의 환국시대에 대해서는 아직 판단유보중입니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오랑캐라 치부하던 치우천황이나 단군,징기스칸 등을 지금에 와서는 짱골라들이 자신의 조상이라고까지 우기는 코미디도 연출하고 있죠.

    실제 복희,신농,요순임금 등 삼황오제 모두 배달민족일 뿐 아니라
    진시황의 진나라 역시 배달 흉노계 국가이니 이미 말 다 했죠.
    남의 조상,역사,업적 등을 빼앗으려 하는 짱골라들.
    한,송,명 3왕조를 제외하고는 수많은 배달왕조들에게 지배당한 짱골라들.
    그래서 짱골라들은 배달 한겨레에 대해 그렇게 열등감과 두려움으로 똘똘 뭉쳐있나 봅니다.

    수많은 세월을 배달 한겨레 왕조들에게 정복만 당한 짱골라 한족들이기때문에 과연 정복 왕조들인 수(배달 흉노계 선비족), 당(배달 흉노계 선비족), 요(배달 흉노계 거란족), 금(배달 부여계 여진족), 원(배달 흉노계 몽골족), 고구려,발해 후예 부여계 여진족의 청(후금) 등 많은 배달 한겨레 왕조들이 쥐나의 짱골라 한족과 같은 울타리인 중국이라는 국호로 통일해서 역사서를 집필했냐하는것입니다

    청나라의 경우 여진족인데 그것은 우리와 뿌리가 아주 비슷한 형제와 같은 만주족들입니다.
    그들도 우리처럼 백두산을 영산으로 생각하고 드러운 한족은 절대 백두산 근처의 지역으로는 출입을 통제하고 어길시 참형에 처하는 봉금정책을 써왔던 민족입니다
    그러한 청나라가 자신의 국호 청을 버리고 중국이라는 단어를 썼다고 볼수없으며 1900년이전에는 중국이라는 국호를 가진 나라가 없었으므로 한족의 나라로 해석하는것은 무리가 많다는것입니다


    그렇다면 中國이라는 단어는 1911년부터 나라 이름으로 쓰인 말인데 훈민정음에 나온 단어는 뭐란말인가???
    그당시 쥐나의 나라는 명(明)나라 였으며 그럼 훈민정음에 나오는 중국을 명나라로 보고 해석을 다시 해봅시다.

    대륙이 명이며 한족의 중국이고 한반도가 조선이라면 조선의 말이 대륙의 중국 즉 명나라의 말과 다르므로 백성들이 의사소통에 큰 불편함이 있음으로 이로 인해 한글을 만들었다?????
    논갈고 밭갈던 일반 백성들에게 있어 명나라와 소통되지 않음이 뭐가 그리 불편해서 문자까지 창조햇을까요.
    상식적으로나 실제적으로도 말이 안 됩니다.
    조선의 말과 중국 즉 명나라의 말이 다른것하고 조선 백성들이 서로 말이 통하지 않는 것 하고 대체 무슨 관련이 있는것일가요???

    일반 백성이 명나라놈과 소통할일도 전혀 없을 거고 조선내에서는 백성은 한자를 몰라도 말은 분명히 있으므로 이를 나타내기 위해 소리글자를 사용것 뿐입니다.
    훈민정음은 세종대왕을 칭송하며 백성을 위한 것이었다는 입장에 서서 해석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훈민정음 서문에 나오는 듕국(中國)이라는 지문은
    "나라의 말들이 中國(중앙지방,나라의중심)과 달라 문자가 달라 서로 통하지 않으매....."
    라고 해석하는것이 옳은 것입니다. 실제로도 그렇고...

    즉 일반백성을 위한 것이었으므로 명나라 운운할 필요가 없다는 얘기입니다.
    여기서 중국은 황제 계신곳 바로 세종이 있는곳을 말하며, 고려에서 조선으로 넘어오면서 정권을 잡은 후조선왕조의 지배층과

    피지배층의 백성들 말이 서로 달리 쓰였으므로 이런 취지로 훈민정음을 보다 널리 사용할 이유가 된 겁니다.

    그때 당시 이런 기록까지 있었습니다

    당시 전남 순천에서 아들이 아버지를 죽였다는 패륜적 사건이 보고된다.
    그래서 삼강행실도를 간행한다.
    그런데 일반 백성들은 이해하지 못한다.
    그래서 쉽게 알 수 있는 방법을 찾는다.
    ○○공주에게 부탁한다.
    ○○공주는 옛날의 어떤 글자를 참고하여 정리한다.

    또하나 우리가 배우는 한자랑 그때 당시의 한자는 음과 뜻이 약간씩 틀렸기에 이런 오류를 범하는것입니다.
    왜 중국을 중앙지방이라고 해석을 하냐하면 바로 國이라는 단어때문입니다.
    지금은 저 단어가 나라를 가르키지만 예전의 역사는 성(城)정도 크기나 땅(地)의 의미로 봤기 때문입니다.
    근세조선초기까지도 사병을 가지고 있는 성읍국가였기때문입니다.
    그러한 성들이 모여서 한개의 커다란 나라를 만드는것입니다
    쉽게 말해서 삼국지연의라는 소설을 보시면 됩니다. 수십개의 성이 있고 그성을 빼앗아서 제후국으로 삼고 자신의 나라안에 편입시키는 개념이죠.


    근세조선이라는 나라를 이해할수있게끔 지문하나를 참고로 올리겠습니다

    ( 문종실록.원년)
    중추원사(中樞院使) 안숭선(安崇善)이 상서(上書)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여러 도의 군(郡)·현(縣)의 땅이 혹은 크기도 하고 혹은 작기도 하여 강역(疆域)이 바르지 아니하고 견아상입(犬牙相入)하여서 이 때문에 백성들이 그 폐단을 받은지 대개 여러 해입니다.
    우리 나라 군(郡)·현(縣)의 땅은 본래 정한 제도가 없어서 처음에 세울 때 향리 품관(鄕吏品官)이 서로 다투어 빼앗았으므로, 힘이 있는 자는 많이 점령하고 세력이 없는 자는 적게 얻었습니다. 그 토산(土産)이 있는 비옥한 땅을 다투어 먼저 점령하였으므로, 이 때문에 한 현(縣)의 땅이 혹은 몇 군(郡)의 경계(境界)에 섞여 들어가고, 혹은 몇 군(郡)의 밖으로 끊겨 들어가서, 백성들의 공부(貢賦)·요역(?役)·사송(詞訟)이나 짐바리를 싣고 왕래할 때에 동일한 관부(官府)인데도 몇 군(郡)을 지나고 3, 4식(息) 밖까지 말을 달려가서 반드시 청단(聽斷)하게 됩니다.
    부서(簿書)·기회(期會)할 즈음이나 차임(差任)·추징(追徵)할 때에 백성들을 많이 편달(鞭撻)하고 아전[吏]이 침탈을 행하므로, 동일한 적자(赤子)인데도 수고하고 평안한 것과 고생하고 쉬는 것이 이처럼 현격하게 다르니,
    하나의 봉강(封疆)과 하나의 지역(地域) 사이에서 백성들에게 병폐되는 것이 이보다 심한 것이 없습니다."

    위의 내용으로 중앙에서 행정구역을 나눈 것이 아니라 지방세력이 서로 전쟁을 하여 강역 크기를 결정한 것이기에 지방 세력의 다툼이 힘의 세기에 따라 지역의 강역 크기가 달랐다는 것입니다
    힘이 있는 자는 많이 점령하고, 토산(土産)이 있는 비옥한 땅을 다투어 먼저 점령하다보니 지역의 경계가 개 이빨처럼 들숙 날숙하여 일반 백성들은 고생이 심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중앙정부에서 이러한 백성들의 불편함을 해소하고자 지역경계를 바로하라는 압력을 행사하자는 의견인 것입니다

    근세조선초기 지방정부에 중앙조정의 힘이 아직 미치지 않았을 때 지방정부는 나름대로 그들의 세력을 형성하고 있었습니다.
    지방에서도 서로 다툼을 하여 그들의 세력을 확장하고 그들의 강역을 만들었던 것입니다.
    그러고 난 뒤 나중에 지방정부는 중앙정부(中國)에 그 강역을 봉토받으면 되는 것이었다.
    물론 중앙에서 지방으로 내려보내는 지역도 있었겠지만... 근세조선은 완전한 중앙집권이 되지않은 나라이며 지방마다 그 세력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한개의 나라임에도 경계가 다르고 전쟁까지 하는 연방국가라는것을 알수있습니다.
    그 연방마다의 언어가 중앙정부와 잘맞지않고 백성들이 잘못된 언문으로 인해 율법을 잘못 이해해서 큰 고초를 겪고 언문이 약간씩 다른것이 말과 글이 통하지않아
    지방마다 또는 중앙정부와의 교류시 어려움이 많아 사용하게 된 것이 한글입니다.

    우리의 삼국시대(원래는 가야를 포함한 사국시대나 열국시대라 부르는게 옳음)부터 중국이라는 말을 우리 사서에 써왔으며 쥐나도 당나라 이전부터 써왔었습니다.
    그렇다면 온갖 사서에 나오는 수없이 나오는 중국이라는 단어를 쥐나의 한족국가로 해석을 한다면 역사가 뒤죽박죽이되고 온갖 역사가 쥐나의 것이되는 헤프닝이 될것입니다

    동북공정은 단지 고구려의 역사만을 노리는것이 아님을 아시고 그들의 국호또한 제대로 이해하고 불러야겠습니다
    앞으로는 그들의 국호이면서 세계인이 부르는 china(쥐나)라는 단어를 써주시고 우리 스스로를 동쪽의 오랑캐라 칭하는 중국이라는 국호는 앞으로 안써주셨으면합니다.

    원래 지나支那란 진시황의 진나라 진(秦)’의 음 [chi’n]이 전와(轉訛)하여 서방 제국에 치나(Cina) ·틴(Thin)으로 전해졌습니다.
    그리고 지나支那란 용어에는 배달 한겨레의 갈래민족 지류란 뜻이 함께 담겨있습니다

    이상으로 <a href=http://blog.daum.net/hearo9mars target=_blank>http://blog.daum.net/hearo9mars</a> 에서 퍼왔습니다.

    학계의 학자들 논문,자료나 방송국,신문사 등의 뉴스,다큐 등을 비롯 여러 영상자료들이 있으니 방문해서 자신의 궁금증을 해결하는 것도 좋을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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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Lv.1 한배달쥬신
    작성일
    07.12.16 00:38
    No. 3

    자료들은 많습니다. 하지만 올려도 끝까지 다 읽지 않고 자신의 말부터 하는 사람들이 태반이죠. 그래서 어디에 가니 이런 자료들이 있더라 하고 알린 것뿐입니다. 지금에 이 글에 딸린 댓글만 봐도 알 수 있지 않습니까? 그냥 출처를 얘기하니 처음부터 아니다 하고 부정하길래 다시 설명을 덧붙였고 그것을 다 보지도 않으면서 또 뭐라 하길래 그 근거가 어디에서 가져왔다란 식으로 기사자료를 몇 편 올렸지만 또 이상한 소리 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분명히 더 궁금하면 그 출처에 가서 직접 확인해보라고 하는데도 엉뚱한 소리만 해대니.....

    학문은 정체되는 것이 아닙니다. 연구진행결과에 따라 언제든지 바뀌고 업데이트가 되는 부분입니다. 일견하여 우리 주변의 과학발달을 봐도 알 수 있지 않습니까?

    나 역시 무협,판타지 매니아입니다. 그런데 보다 보면 하도 왜곡된 배경에서 시작되는 소설들이 많아서 한편으로 답답해 이렇게 올린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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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Lv.1 한배달쥬신
    작성일
    07.12.18 19:53
    No. 4

    연재한담에 있던 [역사를 논하다.('우연찮게 천지림님의 글과 그 댓글을 보고'에서)]란 글이 <독자마당>의 /핫!이슈/게시판으로 이동되었습니다. 그 글에 달린 다른 이들의 댓글을 보려면 그 게시판으로 가서 내 닉네임으로 검색해서 찾아보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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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Lv.1 한배달쥬신
    작성일
    08.01.11 21:02
    No. 5

    <a href=http://blog.daum.net/hearo9mars target=_blank>http://blog.daum.net/hearo9mars</a> 에 가면
    [기획특집, 코리안루트를 찾아서]란 자료들과 [한국인의 고향, ‘신비의 왕국’ 찾았다]란 자료들이 있습니다. 혹시나 싶어 그 출처들도 찾아봤습니다.

    경향신문 <a href=http://news.khan.co.kr/kh_news/khan_serial_list.html?s_code=af061 target=_blank>http://news.khan.co.kr/kh_news/khan_serial_list.html?s_code=af061</a>

    사이언스타임즈 <a href=http://www.sciencetimes.co.kr/ target=_blank>http://www.sciencetimes.co.kr/</a>

    이 두 곳이 그 자료출처더군요.

    그리고 <a href=http://blog.daum.net/hearo9mars target=_blank>http://blog.daum.net/hearo9mars</a> 에서는 이외의 다른 자료들에도 많은 신문,뉴스 등을 함께 실어 놓아서 더욱 신뢰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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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創造夢想家
    작성일
    08.01.16 14:28
    No. 6

    한배달쥬신님
    사대주의할때요.
    事자가 아닌 仕자로 알고있습니다.
    일사자가 아닌 섬길 사<-로서,
    사대주의(仕大主義).
    큰 나라를 섬긴다는뜻을 가진걸로 압니다.
    ......
    태클죄송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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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Lv.1 한배달쥬신
    작성일
    08.01.16 15:50
    No. 7

    - 네이버 백과사전 참조 -

    사대주의 [事大主義]

    (요약) 주체성 없이 세력이 큰 나라나 세력권에 붙어 그 존립을 유지하려는 주의

    (본문) 맹자(孟子)의 '유지자위능이소사대(惟智者爲能以小事大)', 손초(孫楚)의 '귀소불사대(貴小不事大)' 등에 그 어원이 나타나며, 이에 준하여 근세조선시대에는 명(明)나라에 대한 국가적 자세를 '근사대지예(謹事大之禮)'라 표현, 세력이 큰 나라를 섬겨 국가의 안존(安存)을 꾀하려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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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위스퍼
    작성일
    08.01.23 04:01
    No. 8

    가슴이 뿌듯해 지는 글입니다만
    우리말이 아닌 다른언어를 사용하는 부족이
    같은 배달계라고 해도 먼가 좀 거리가 멀게 느껴지네요.

    찬성: 0 | 반대: 0 삭제

  • 작성자
    오덕후
    작성일
    08.01.28 19:53
    No. 9

    아직도 이런거 믿는사람이 있다니;

    찬성: 0 | 반대: 0 삭제

  • 작성자
    Lv.1 한배달쥬신
    작성일
    08.01.28 21:51
    No. 10

    그 자료들 거의 모두 재야학자가 아닌 강단학자 대학교수들 자료들입니다.

    그리고 소수의 의견이라서 진실이 아니다란 식으로 말하는데, 진실이 다수결로 이루어집니까??? 그렇게 따지면 코페르니쿠스나 갈릴레이는 자신의 주장 자체가 처음부터 진실을 부르짖은 것이 아니라 거짓을 부르짖은 것이었군요.

    독일의 고고학자 슐리만[Schliemann, Heinrich]이 트로이를 발견하지 않았다면, 아직도 트로이의 존재는 그냥 신화의 일부나 호머의 이야기로만 치부되어 지금도 진실이 아닌 허구로 여겨졌겠죠. 그리고 세뇌된 일반사람들이 우리고대사가 무턱대고 거짓이라 치부하는데 그것은 짱골라나 왜놈의 방해 때문에 우리의 유적을 조사하지 못 해서일뿐이죠. 연구나 조사할 의지조차도 없으면서 무조건 거부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됩니다

    식민사학자들 역시 나와 같은 실증주의를 주장하는데 그럴수록 더더욱 우리의 유적을 알아보려고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요. 아무 노력도 하지 않고 처음부터 거짓이라는 딱지를 붙인다는 것은 실증사학에 위배 되는 짓 곧, 스스로를 기만하는 자승자박이죠

    여전히 활개치는 몇몇 식민사관학자들때문에 많은 선량한 강단학자들마저도 도매급으로 욕 먹게 됩니다. 우리 역사를 찾으려는 강단학자들이 왜 일반인들에게 식민사관학자로 엉뚱한 오해를 받아야 합니까........

    난 식민사관학자를 경멸하는 것이지 강단학자를 싫어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식민사관학자와 강단학자는 동의어가 아닙니다. 나 역시 환빠도 아닙니다. 난 과학실증주의자입니다.

    정작 블로그에 들어가봐 확인하라 해도 하지 않으면서 뭘 그리 자신의 주관만 고집하는지 오히려 내가 님에게 묻고 싶군요.

    내가 고대문명에 대해 경향신문,동아일보 등 모든 국내 신문자료들을 비롯 사이언스타임즈 등의 여러 과학기관산하 자료들, KBS역사스페셜,KBS일요스페셜,SBS,MBC,EBS다큐멘터리 및 여러 영상시리즈, 히스토리채널,BBC,내셔널지오그래픽 등 학계,언론계,방송계 기타 여러 곳에서 정보를 얻은 것 외에도 많은 문헌을 참고하고 어느 정도 읽어봤습니다.

    그리고 읽은 자료들의 참고문헌들 일부만 확인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어차피 제시해도 또 못 믿겠다는 소리나 님에게 듣겠죠.

    한국사 새로 보기』, 신복룡, 풀빛, 2001.
    『동북아 청동기시대 문화연구』, 최몽룡 외, 주류성, 2004
    「고조선, '역사'의 발자취를 찾았다」, 박종진, 주간한국, 2007.3.6
    「청동기 주역 ‘퉁구스 예맥족’이 주역」, 유홍준, 문화일보, 2004.11.25
    『유네스코가 보호하는 우리 문화유산 열두 가지』, 최준식 외, 시공사, 2004
    「화순고인돌에 대하여」, 네이버neverfell81, 2004.03.16
    「한반도 거석기념물 고인돌」, 황규호, 내셔널 지오그래픽, 2003년 10월
    『한국 지석묘 연구』, 유태용, 도서출판 주류성, 2003
    「고인돌 왕궁-고조선」, 『역사스페셜 4』, 효형출판, 2003
    「한반도 거석기념물 고인돌」, 황규호, 내셔널 지오그래픽, 2003년 10월
    『유네스코가 보호하는 우리 문화유산 열두 가지』, 최준식 외, 시공사, 2004
    『유네스코 지정 한국의 세계유산』, 제주국립박물관, 2005
    『한국 7대 불가사의』, 이종호, 역사의아침, 2007
    『한국 지석묘 연구』, 유태용, 도서출판 주류성, 2003
    「평양일대에서 새로 발굴된 고인돌무덤과 돌관무덤에 대하여」, 석광준, 『조선고고연구』, 1995
    「한반도 거석기념물 고인돌」, 황규호, 내셔널 지오그래픽, 2003년 10월
    「화순고인돌에 대하여」, 네이버neverfell81, 2004.03.16
    「지석묘는 무엇을 말하는가?」, 유태용, 『대한문화재신문』 제16호, 2004년 7월 15일
    「고조선의 석각천문도」, 김동일, 조선고고연구, 2003년 1호
    「고인돌 무덤에 새겨져 있는 별자리의 천문학적 연대 추정에 대하여」, 김동일 외, 조선고고연구, 1999년 4호
    「북두칠성 모양으로 배렬되어 있는 구서리고인돌무덤 발굴보고」, 김동일, 조선고고학학회, 2005년 3호
    『하늘에 새긴 우리역사』, 박창범, 김영사, 2002
    「고인돌 무덤에 새겨져 있는 별자리의 천문학적 연대 추정에 대하여」, 김동일 외, 조선고고연구, 1999년 4호
    「대동강 류역 고대성곽의 성격」, 남일룡, 조선고고학학회, 1999년 1호
    「청암동 토성에 대하여」, 남일룡 외, 조선고고학학회, 1998년 2호
    「평양지방의 고대 토성」, 남일룡, 조선고고학학회, 1995년 2호
    「평양 일대 고대 토성의 축조연대에 대하여」,남일룡, 조선고고학학회, 1996년 1호
    김종혁, 「대동강류역일대의 고대부락터유적에 대하여」, 『조선고고학학회』, 1999년 1호
    신형식, 이종호, 「‘중화5천년’, 홍산문명의 재조명」, 『백산학보』, 2007, 5~4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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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산문화의 제단과 중국고대의 교사지예의 기원에 대한 연구」, 전광림, 2회동북아평화정착을 위한 한중 국제학술회의, 국학학술원, 2007
    '한국 고대사 연구', 김철준, 서울대학교 출판부, 2001, 5~9쪽.

    참고문헌 예시는 이 정도만 들겠습니다. 어차피 공허한 메아리일 뿐이니..

    어차피 나를 환빠로 본 것이 님의 착각이었다는 뒤늦은 얘기를 듣는다 해도 별로 기분이 풀릴 것 같지는 않습니다. 전에 내가 올렸던 글을 제대로 안 살펴보고 환빠로 몰았다는 또다른 근거가 되니까.....

    그리고 '동북공정 너머 요하문명론'을 저술한 우실하씨 등을 비롯 몇몇 교수분들이 우리 동아시아 역사를 한국,몽골,일본,쥐나,티벳,위구르,중앙아시아 등 모든 민족이 함께 공유하는 동북아시아 시원을 밝하려 했지만 쥐나의 서남,서북,동북공정으로 거의 좌절된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학자적 양심에 따르는 것이 아니라 쥐나 공산당 정부의 충실한 개노릇을 하는 짱골라학자들에게 뭘 바랄 수 있겠습니까만....

    솔직히 실제의 종족인 배달겨레의 조상,발견발명,유산,업적들이 허구의 종족 짱골라에게 눈 뻔히 뜨고 빼앗기고 있다는 것도 기가 찰 일입니다.

    쥐나 짱골라 한족의 허구 <a href=http://blog.daum.net/hearo9mars/3301830
    target=_blank>http://blog.daum.net/hearo9mars/3301830
    </a>

    2008년 1월 22일 쥐나인민군, 北체제 붕괴시 북한에 파병 추진 (뷰스앤뉴스/뉴시스/ 연합뉴스) <a href=http://blog.daum.net/hearo9mars/5709837 target=_blank>http://blog.daum.net/hearo9mars/5709837</a>

    학자적 양심을 가지고 모든 것에 공정한 시선으로 봤으면 합니다. 그것이 소수의 학설이든 다수의 학설이든지간에 말입니다. 진실을 밝혀나가는 것에는 수가 많고 적음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물론 진실이 다수결로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고 말입니다. 그러니 다수의 학설은 무조건 옳고 소수의 학설은 틀리다란 생각을 고쳤으면 합니다. 위에서도 잠시 언급했지만 코페르니쿠스나 갈릴레이의 학설도 처음에는 소수의 주장으로 시작했지만 종교시대에 억압받고 있던 무지몽매한 어리석은 다수를 결국에는 진실로써 일깨웠지 않습니까. 고고학자 슐리만[Schliemann, Heinrich]이 트로이를 발견했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이 실재한다는 것을 지금이야 상식으로 알지만 발견전까지만 해도 그것은 그리스신화의 일부로 봤었죠. 그래도 슐리만은 다행이었습니다. 트로이유적을 조사한다고 누가 방해하지는 않았으니....
    우리는 어떻습니까? 과거 우리의 터전이었던 만주,몽골,연해주,중원 등에 있는 유적들을 조사하려 해도 짱골라들의 방해가 너무나 극심하죠. 있던 사서나 사료도 오랜 세월 동안 전부 왜놈이나 짱골라들이 훔쳐가거나 훼손했고..... 왜제시대 35년동안 우리의 20만권의 사서들이 조선편수회에 의해 압수되고 불태워졌다는 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그 때 목록을 보면 대부분 20세기 초반 저서들이 대부분이죠. 다만 우리의 진짜 사서들은 모두 교묘히 빼돌려 왜왕실이나 혹은 일본대학도서관 등에 잠들어있습니다. 왜제시대 35년뿐입니까? 그 이전 임진왜란이나 수많은 왜구들의 침략으로 도자기,서적,장인 등 사람,물건 할 것 없이 너무나 많은 것을 약탈했습니다. 사서를 통해 연구하려 해도 짱골라와 왜놈들이 숨기고 안 보여주니 더더욱 답답할 뿐이죠. 왜왕실에 수많은 우리 사서들이 숨겨져있는 것에 대한 신문기사자료도 있습니다. 지금이야 어느 정도 과학이 발달하고 깨인 강단학자들이 많이 늘어서 다행이지만 아직도 우리 역사를 찾으려는 길은 멀기만 합니다. 과거 2~30년전만 해도 식민사관학자들의 폐해가 컸습니다. 물론 지금도 그 암운이 아직 걷혀지지 않고 있지만 뭐 뉴라이트가 버젓이 이명박을 앞세워 더더욱 극성을 부리는 시대니.....
    그리고 mars님도 밝혔듯이 역사를 밝혀나가는데는 역사학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딸랑 사서만 보고 밝혀내는 것도 아니고요.....
    역사학,고고학,인류학,천문학,생물학,화학 등 인문사회계열과 이공계열을 비롯한 수많은 관련분야 교수나 박사들이 함께 연구하며 진행되는 일이 많습니다.
    mars님의 말을 몇 가지 그대로 인용하겠습니다.
    "몇몇 이들은 현재의 모습을 가지고 문명과 역사를 판단하는데, 이는 대단히 위헙하고 짧은 생각입니다. 문명과 기후,지형 변화 등 다각도로 그 상황에서의 여러 관계들을 함께 끌어들여야 제대로 볼 수 있는 겁니다.
    과거의 땅이었던 것이 지금은 바다로 되어 있는 것도 많고 또 이전에는 초원지대가 지금에 와서는 사막이 된 자역도 많죠.
    한마디로 오판하는 그들은 지구의 환경변화에 대해 고려하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입니다.따라서 지구의 환경변화를 중심으로 문명을 이야기할 수 밖에 없는 것이죠.
    유적발굴이나 역사를 알아가는데는 역사학자만 동원되는 것이 아닙니다. 고고학자,인류학자,화학자,생물학자 등 여러 분야의 학자들이 동원됩니다. 그 유물,유적에서 나온 물질을 분석도 해야 하는 등의 여러 상호관련되어 진행되는 것이죠.
    알아보려고 하지도 않는 방관적인 태도랑 중립적인 태도는 같은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진실을 알기 위해 중립적이면서도 공정한 태도는 학자들뿐만이 아닌 기자,판사,일반인 등 우리 사회구성원 모두에게 필요한 당연한 행동인 것입니다.
    역사란 현실의 거울이요 미래의 지표라고 합니다.
    진실되고 확실한 역사관정립은 분명히 후대에 남길 수 있는 유일한 선물이자 우리 미래의 도약대가 될 것입니다"

    어쨌든 내가 소개했던 mars님의 블로그 <a href=http://blog.daum.net/hearo9mars target=_blank>http://blog.daum.net/hearo9mars</a> 에 님이 들러서 궁금한 점을 따로 풀기를 바랍니다. mars님의 주의사항이 하나 있는데, 간혹 가다가 블로그 게시물들의 내용화면이 바로 나오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이 때 그 블로그 우측 메뉴에 있는 '카테고리(대분류)'를 통해 직접 게시물을 클릭하면 뜬다고 합니다. 혹은 각 게시물 우측 위의 '목록열기'를 통해 직접 게시물을 클릭해도 뜬다는군요. 그 게시물의 내용(용량)이 많거나 접속이 원활하지 않아 서버가 일시적으로 못 읽어들여 그런 현상이 발생하였다고 합니다. 그러니 재차 게시물들을 클릭해주면 된다고 합니다.

    마지막으로 님에게 한마디 더 하자면 상대방이 어떤 글이나 말을 제시하면 꼭 확인은 하고 답변을 했으면 합니다. 제대로 살피지도 않아 오해해서 남을 환빠니 어쩌니 하는 식으로 상대방을 몰아세우면 그 본인인 상대방은 어이가 없을 뿐만 아니라 화를 돋우기만 해서 감정적으로 분위기가 흐르기 때문입니다. 생각해보세요. 아무 잘못 없이 도둑으로 몰리거나 누명을 쓴 당사자의 기분을.......

    일반인들에게도 공정함이 필요하지만 학자들에게는 더욱 엄격히 지켜져야 합니다. 그것이 어떤 분야의 학자가 되었든지 말입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雲賢風
    작성일
    08.03.09 22:30
    No. 11

    ㅎㅎ 좋은 자료... 수고하셧습니당

    찬성: 0 | 반대: 0 삭제

  • 작성자
    Lv.1 가일
    작성일
    08.03.13 02:36
    No. 12

    학문은 정체되어 있는게 아니라고 했는데, 망상이랑 학문은 구분해야..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 한배달쥬신
    작성일
    08.03.13 04:30
    No. 13

    그렇지 망상과 학문은 구분해야지.
    짱골라의 역사탐원공정과 식민사관학만 맹신하는 가일 당신 같은 망상가들을 깨부수기 위해서도.....
    혹시 사서 하나만 딸랑 연구한다던지 역사학자만 역사에 관여한다는 망상을 가진 것은 아닌지 심히 우려스럽네...또는 강단학자와 식민사관학자를 동의어로 착각하는 몰지각한 망상가는 아닌지 걱정되네.
    일부의 식민사관학자들 때문에 많은 선량한 강단학자들이 욕 먹는 것이 참으로 개탄스럽다.
    과학이 발달함에 따라 역사는 고고학적 유물,유적 등의 연구와 그에 따른 여러 관련분야가 함께 참여해서 공동연구하는 것이 일반적인 흐름이고 그것이 실증주의에도 부합하지.
    역사학자,고고학자,인류학자,사회학자,화학자,생물학자,천문학자,지리학자,지질학자 등 인문사회계열 및 이공계열의 많은 교수,박사들이 함께 연구하는 것이 정석이야.

    몇 가지 예시를 들면,

    코리안루트를 찾아서
    <a href=http://blog.daum.net/hearo9mars/5556614
    target=_blank>http://blog.daum.net/hearo9mars/5556614
    </a>
    <a href=http://blog.daum.net/hearo9mars/5556639
    target=_blank>http://blog.daum.net/hearo9mars/5556639
    </a>
    <a href=http://blog.daum.net/hearo9mars/5556668
    target=_blank>http://blog.daum.net/hearo9mars/5556668
    </a>
    <a href=http://blog.daum.net/hearo9mars/5556719
    target=_blank>http://blog.daum.net/hearo9mars/5556719
    </a>
    <a href=http://blog.daum.net/hearo9mars/5556765
    target=_blank>http://blog.daum.net/hearo9mars/5556765
    </a>
    <a href=http://blog.daum.net/hearo9mars/5556817
    target=_blank>http://blog.daum.net/hearo9mars/5556817
    </a>
    <a href=http://blog.daum.net/hearo9mars/5556905
    target=_blank>http://blog.daum.net/hearo9mars/5556905
    </a>
    <a href=http://blog.daum.net/hearo9mars/5556910
    target=_blank>http://blog.daum.net/hearo9mars/5556910
    </a>
    <a href=http://blog.daum.net/hearo9mars/5556914
    target=_blank>http://blog.daum.net/hearo9mars/5556914
    </a>

    지구환경변화와 역사 - 기후 문명의 지도를 바꾸다
    <a href=http://blog.daum.net/hearo9mars/5756609
    target=_blank>http://blog.daum.net/hearo9mars/5756609
    </a>

    허구의 종족 짱골라
    <a href=http://blog.daum.net/hearo9mars/3301830
    target=_blank>http://blog.daum.net/hearo9mars/3301830
    </a>

    MBC 2부작, '곡옥의 비밀'
    <a href=http://blog.daum.net/hearo9mars/5819530
    target=_blank>http://blog.daum.net/hearo9mars/5819530
    </a>

    집요한 `역사공정`
    <a href=http://blog.daum.net/hearo9mars/5172373
    target=_blank>http://blog.daum.net/hearo9mars/5172373
    </a>

    동북공정은 서막에 불과하다.
    <a href=http://blog.daum.net/hearo9mars/3589049
    target=_blank>http://blog.daum.net/hearo9mars/3589049
    </a>

    "홍산문화와 요하문명, 주인공은 우리 겨레였다"
    <a href=http://blog.daum.net/hearo9mars/3590109
    target=_blank>http://blog.daum.net/hearo9mars/3590109
    </a>

    세계에서 가장 먼저 농사를 지은 한국
    <a href=http://blog.daum.net/hearo9mars/4420304
    target=_blank>http://blog.daum.net/hearo9mars/4420304
    </a>

    세계최초의 신석기가 한국에서 발견
    <a href=http://blog.daum.net/hearo9mars/4420313
    target=_blank>http://blog.daum.net/hearo9mars/4420313
    </a>

    한국 전곡리 유적 30만∼35만년 전 것 - 네안데르탈인보다 앞서
    <a href=http://blog.daum.net/hearo9mars/4420325
    target=_blank>http://blog.daum.net/hearo9mars/4420325
    </a>

    세계 고고학史 바꾼 한탄강변 '주먹도끼'
    <a href=http://blog.daum.net/hearo9mars/5624448
    target=_blank>http://blog.daum.net/hearo9mars/5624448
    </a>

    한반도-만주 8천년 전에도 동일문화권 입증
    <a href=http://blog.daum.net/hearo9mars/4420405
    target=_blank>http://blog.daum.net/hearo9mars/4420405
    </a>

    세계 最古목선 발견
    <a href=http://blog.daum.net/hearo9mars/4615920
    target=_blank>http://blog.daum.net/hearo9mars/4615920
    </a>

    英 BBC “반구대 암각화는 고래사냥 기원”
    <a href=http://blog.daum.net/hearo9mars/4617290
    target=_blank>http://blog.daum.net/hearo9mars/4617290
    </a>

    한사군은 한반도에 없었다.
    <a href=http://blog.daum.net/hearo9mars/4588915
    target=_blank>http://blog.daum.net/hearo9mars/4588915
    </a>

    단군조선의 금속기술
    <a href=http://blog.daum.net/hearo9mars/4607198
    target=_blank>http://blog.daum.net/hearo9mars/4607198
    </a>

    BC 7세기 철기유물 강원 홍천서 출토
    <a href=http://blog.daum.net/hearo9mars/5164741
    target=_blank>http://blog.daum.net/hearo9mars/5164741
    </a>

    국내 最古 ‘7000년 전’ 토우 발굴
    <a href=http://blog.daum.net/hearo9mars/5512090
    target=_blank>http://blog.daum.net/hearo9mars/5512090
    </a>

    코리안루트를 찾아서, 배달겨레 발해문명들 ! ! !
    <a href=http://blog.daum.net/hearo9mars/5972045
    target=_blank>http://blog.daum.net/hearo9mars/5972045
    </a>

    첨단 측정기술 이용,中에 앞선 유리제조술 밝혀
    <a href=http://blog.daum.net/hearo9mars/5514478
    target=_blank>http://blog.daum.net/hearo9mars/5514478
    </a>

    “제천행사 무천은 고조선 풍속"
    <a href=http://blog.daum.net/hearo9mars/5761150
    target=_blank>http://blog.daum.net/hearo9mars/5761150
    </a>

    삼별초가 日류큐왕국 기초 세웠다
    <a href=http://blog.daum.net/hearo9mars/3856250
    target=_blank>http://blog.daum.net/hearo9mars/3856250
    </a>

    그 외 기타 여러 자료들은 나처럼 블로그 방문해서 각자 알아서 보기를... (확인도 않고 남을 환빠로 모는 어리석은 망상가들때문에 심히 불쾌하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부류가 무조건 우기고 보는 식민사관빠 및 환빠거든.... 모든 것을 열린 마음으로 보되 억지를 써서는 안되지. 그리고 나는 과학을 믿는 실증주의자거든)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 가일
    작성일
    08.03.13 16:45
    No. 14

    짱꼴라니 하는 식으로, 어떤 편견을 정의해놓고 시작하는 논리가 과학적 실증주의와 무슨 상관인가 모르겠네요. 'ㅅ' 좀 열린마음을 가지고 팩트를 접하기를 권합니다. 아, 애초에 그런 분이셨다면 환독에 사로잡힐 이유가 없었겠지만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 가일
    작성일
    08.03.13 16:56
    No. 15

    그리고 예시로 드시는 모든 글들의 출처인 블로그에 있던 말인데요.

    "유럽의 변방에 불과한 독일이 일어났듯이.
    징기스칸이 세계 대제국을 건설했듯이.
    왜놈들이 강대국에 올라섰듯이.
    우리도 언젠가는 다시 한웅배달국이나 단군조선국 같은
    거대한 제국으로 다시 거듭나지 않을까....
    흥망성쇠의 수레바퀴는 돌고 도는 것.
    다시 우리가 다물하여 세계가 자랑하는 팍스 코리아나 시대를
    열어나가자!"

    다른건 둘째치고, '거대한 제국', '팍스 코리아나'에서 시껍했습니다. 저야 한웅배달국이나 단군조선국의 실존여부가 어땠는가는 학자들이 연구해야 할 몫이라고 생각하지만, 만약 그러한 연구의 목적과 방향성이 저 자랑스러운 거대한 제국, 조국과 민족에 번영에 맞춰져 있다면 심히 우려하지 않을 수 없네요.

    히틀러와 무솔리니가 사람들의 자유와 양심을 탄압할 수 있었던 맛깔나는 떡밥이 바로 저것과 똑같은 냄새가 났거든요. 요즘 울나라가 하도 어수선하고 해서, 그런 인간들이 나타나기에 딱 좋은 시기라 우려를 해봅니다 :(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 가일
    작성일
    08.03.13 17:00
    No. 16

    지나간 시대의 일들을 편견없이 분석하고 받아들여서 순수하게 연구하는 것과, 인간이 저지를 수 있는 가장 큰 범죄의 테크를 똑같이 탈 가능성이 농후한 접근태도 사이에 어떤 차이가 있지 생각할 수 있다면. 감히 타인에게 '몰지각한 망상가'라는 말을 할수는 없겠죠.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 가일
    작성일
    08.03.13 17:01
    No. 17

    더 길면 읽기 귀찮으실지도 모르니 한줄로 요약합니다.

    '한배달쥬신님께서 학문이라는 것에 접근하시는 태도가 심히 우려스럽습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 한배달쥬신
    작성일
    08.03.13 17:45
    No. 18

    독일이 처음 강국으로 일어선 때가 언제냐고??? 히틀러 No!
    독일이 처음 과학을 발달시키고 강국으로 일어선 것은 비스마르크 재상이 활동하던 프러시아 때다.
    왜 갑자기 히틀러를 들먹이지.....
    언급하지도 않은 히틀러와 무솔리니 결부시켜 괜히 어쭙잖은 전쟁광으로 몰고 가려는 님의 의도가 심히 우려스럽소.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 한배달쥬신
    작성일
    08.03.13 17:51
    No. 19

    일본이 잘못한 점은 잘못했다고 꾸짖어야 하지만 그들에게 우리가 배울 점도 있지.
    사람들은 일본하면 그냥 운이 좋아서 지금의 강대국이 되었다고 쉽게 간과하는 점이 있는데, 이는 잘못이다.
    일본인들은 현상황에 자신들의 부족함을 인식하고 끊임없이 연구,노력했다. 그들은 불타는 호기심과 완벽주의,장인정신으로 무장해 외래 문화를 성공적으로 흡수할 수 있었다.
    왜국에 총이 들어온 것은 1543년 다네가 섬에 표착한 포르투갈인에 의해서였다. 그로부터 40년이 지난 1582년에는 왜국의 총은 그 명중도와 우천시의 기능에 있어 세계제일을 자랑하게 되었다.
    40년만에 총의 전래국 포르투갈을 양과 질면에서 훨씬 능가하게 되었다.
    도쿠가와가 천하를 얻은 세키가하라 전쟁에서는 동/서 양군 합해서 약6만정의 총이 동원되었다고 한다.
    그 당시 유럽 최대의 육군을 자랑하던 프랑스 왕의 군대가 소지한 총이 1만여정 밖에 안 되었다고 하니 당시 왜국의 총생산은 가히 경이적이었다.
    16세기 중엽 이래 17세기에 걸쳐서는 포르투갈이나 스페인으로부터 서양문물을 수입하는 소위 <남만학>시대를 구가했고 남만학은 다시 네덜란드를 중싱으로 하는 <난학>과 연결되었다. 200여년 동안 네덜란드가 최고인 줄 알고 그들의 기술이나 또는 네덜란드어로 쓰여진 서양 서적 수입에 열을 올렸다.
    난학 만능시대는 1853년 미국 페리 제독에게 왜국의 개국으로 끝이 났다. 왜국인은 이제 <난학>에서 <영학>으로 돌어섰다. <난학>을 모태로 하여 발전한 <영학>은 명치문화의 배경을 형성한 것으로 영어 학습과 동시에 영미의 학문 연구를 총칭한 것이었다.
    일본은 몇 백년간의 이런 끝없는 노력으로 서양과의 대결 끝에는 으레 서양 문물 흡수에 더욱 더 박차를 가했던 것이다.
    일본은 항상 외국으로부터 기술을 도입하면 40년내에 그 종주국을 추월하고 만다고 하니 왜인이야말로 청출어람이다.
    제사,면방기술,합성섬유,전기,카메라,자동차 등도 모두 그와 같은 예에 속한다.
    그러니 부디 착각하지 말았으면 한다. 일본은 운이 강한 것도 있겠지만, 그 이전에 오랫동안 실력을 닦아온 것을....
    운도 실력이 있어야 잡지, 그렇지 못 하면 운도 소용없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 가일
    작성일
    08.03.13 19:13
    No. 20

    국수주의적인 목적성을 가지고 학문에 접근하는 것이 어떤 위험을 가지고 있는가"
    에 대한 지적을 엉뚱하게 받아들이는게 참 안타깝네요. 다른 사람의 논지를 제대로 짚어내지 못하는 것은 '딴 사람을 식민사학에 경도된 자로 치부하는 분들'의 공통점인듯 'ㅅ'

    그럼 그 엉뚱하게 받아들인 것에 맞춰서 질문을 해보겠는데요,
    '지난날에는 우리가 이렇게 잘나갔다!'라는 사실을 증명하려고 애쓰는 것이 오늘날 우리의 실력을 향상시키는 것에 도움이 됩니까?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 가일
    작성일
    08.03.13 19:14
    No. 21

    과학적이고 실증적인 것을 따르신다는(즉 자신이 지극히 논리적이라는) 주장이 공허하게 들리지 않게, 제 논지를 정확하게 파악해주시고, 논리적으로 대답해주시길 바랍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 한배달쥬신
    작성일
    08.03.13 21:55
    No. 22

    왠 국수주의?????
    분명 원문과 댓글에서도 분명히 밝히고 들어가는데 제대로 읽지도 않았군요.......

    다시 한번 이 부분에 대해서 mars님의 블로그에 있는 글들에 일부 퍼
    오면, 다음과 같소. 나는 그렇게 말재주가 없어서........

    직접적으로 허구의 종족 짱골라( <a href=http://blog.daum.net/hearo9mars/3301830 target=_blank>http://blog.daum.net/hearo9mars/3301830</a> )의 시작은 유방의 한나라때부터입니다.
    이 때부터 사마천의 사기를 집필하는 등 여러 역사조작 왜곡을 시작합니다. 진시황의 분서갱유로 많은 서적들과 자료들이 불타버린 관계로 조작하기가 한층 쉬웠죠.

    옛날(B.C 200) 쥐나의 사마천은 당시까지 정립되지 않았던 쥐나의 역사를 2600년을 거슬러 올라가 짱골라의 역사를 편찬했습니다.
    그것이 쥐나의 사기입니다. 소위 말하는 춘추필법으로 말이죠.
    즉 자기들은 한껏 올리고 주위의 국가나 민족은 한껏 깎아 내리는 못된 필법으로 말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당시에는 그들 스스로도 그것을 역사서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약간 양심은 있었던지....)
    그것이 약 300년 후에야 정식 쥐나의 사서로 채택된 것입니다.
    그것도 후대의 왕들이 자기들을 높이기 위해서는 안성맞춤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한번 생각해봅시다.
    2600여년이란 결코 짧은 세월이 아닙니다.
    당시까지 정립되지 않았던 그들의 역사라고 하는 것은 정식역사라고 할만한 사료가 그때까지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사마천은 2600년을 거슬러 올라가면서 단숨에 정립(?)했던 것이죠. 사마천이 편찬한 사기史記25권......
    진시황의 분서갱유 등의 여러 이유로 인해 당시까지 제대로 된 사료가 없는 상태에서 사마천이 그 많은 사서를 편찬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죠.
    따라서 사마천이 서술한 역사들은 거의 꾸며낸 짱골라 위주의 재미있는 책에 불과합니다.
    그러니까 그들 자신도 어처구니가 없었던지 그것을 정식역사로 인정을 하지 않았던 것이죠.

    짱골라는 역사를 삭제,왜곡하는 등의 방식뿐만 아니라 그들은 사이四夷라 하여 북적,동이,서융,남만으로 나누어 배달 한겨레를 흉노,동호,몽골,선비,묘족,말갈(여진)족,돌궐,거란,강족,오환,저족 등으로 계속 분리되도록 유도해왔습니다.
    이夷란 뜻마저 오랑캐로 변질시키기까지 했죠.
    반면에 짱골라는 서로 다른 민족과 결합되도 양친 중 한명만이라도 짱골라면 그 혼혈인은 짱골라다라는 정책을 편 것이죠.
    누구는 결합되면 민족이 사라지고 누군 마찬가지로 결합되도 민족이 불어나는 말도 안 되는 억지를 계속 한 것이죠.

    북부여,동부여,졸본부여(고구려) 등은 한웅배달국과 단군조선국의 후예들로 농경과 유목기마를 함께 하는 대표적인 반농반목민족국가이고 몽골,돌궐 등은 전형적인 유목기마민족국가죠.
    배달 한겨레는 여러 지역에 따라 여러 모습으로 퍼져 살았기 때문에 어느 하나를 보고 그것이 모두를 대표한다는 것은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일 뿐만 아니라 어불성설입니다.
    배달 한겨레는 농경민족이면서도 유목기마민족이며, 그의 후예 백제나 왜열도 등 해상민족이기도 한 것입니다.

    유방 한나라 이전에는 짱골라가 존재하지 않았죠.
    아니 없어졌다고 보면 됩니다.
    화하족은 낙양 중심으로 살아가던 소수민족이었죠.
    시간이 흘러 화하족은 배달민족들에게 흡수되어 사라졌습니다.
    그런데 유방의 한나라 때부터 자신의 치부를 가릴려고 조작하게 되면서 짱골라 개념을 갖고 나오게 된 것이죠.
    한나라가 영토확장하려다 북쪽 배달계 흉노와 동쪽 배달계 북부여에게 대패해서 그들에게 조공을 바쳐가며 살아가는 속국으로 전락하죠. 이런 상황 등이 그들에게 조작,날조하도록 더욱 부채질하게 되죠.
    진시황의 분서갱유로 조작하기는 더욱 쉬운 것은 말할 필요없죠.
    짱골라들이 타국을 침략할 때 가장 먼저 한 일이 그 나라의 사고에 있는 역사서나 수많은 저서들을 약탈하거나 불태운 것이었죠.
    지들이 저질러놓고 그것을 믿으라 하는 심보가 정말 가관입니다.
    지들이 없애놓고 니네는 원래 그런 것 없었다 하면 말이 됩니까?

    민족에 의해 그 역사가 탄생하는 것이지, 영토에 의해 역사가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민족의 흥망성쇠에 따라 영토의 변화가 있을 뿐이죠.
    짱골라들이 내세우는 역사관의 맹점은 시간의 연계성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더더욱 공간(영토)를 확보하여 날조,삭제하려고 ㄱㅐㅈㅣ랄을 떠는 것이죠.

    복희, 신농, 공손헌원, 요임금, 순임금 등 삼황오제 모두 배달 한겨레입니다. 진시황의 진나라마저도 배달 흉노계 국가죠.
    실제 짱골라의 왕조는 한,송,명 3왕조뿐이며 이들이 설쳤던 세월은 고작 수백년 밖에 안 됩니다.
    한나라는 북쪽 배달계 흉노와 동쪽 배달계 북부여의 속국으로서 조공을 바치며 연명했고,
    송나라는 배달 흉노계 거란족의 요나라와 고구려,발해 후예인 배달 부여계 여진족의 금나라에 조공을 바치며 힘겹게 속국으로 살아가다 배달 흉노계 몽골족의 원나라에 병합되어 사라집니다.
    명나라 역시 고구려,발해의 후예 여진족의 청나라(후금)에게 망합니다.
    (+고구려,발해의 백성이었던 배달계 말갈족이 이후에 여진족으로 불리고 다시 만주족으로 불리는 것입니다. 다른 민족이 아니라 같은 민족입니다. 이것 역시도 짱골라들이 고구려,발해 후예인 그들 배달계 말갈족이 다른 민족인 것처럼 조작하기 위해 시대에 따라 달리 부른 것입니다)

    처음 시작은 단일민족으로 시작했을지 모르나 시간이 흐르면서 우리 겨레가 여러 계통으로 나누어졌죠.
    그래서 지금으로서가 아닌 오래전부터 우린 다민족국가라 할 수 있습니다. 부모님과 형제들이 처음에는 하나였지만 시간이 흘러 먼 친척이 되고 그 후에는 남남이 되어 다시 서로 만나 부둥켜 살아가는 세상처럼 말입니다. 수많은 배달 한겨레들이 오랜 세월을 거쳐 오면서 여러 분파로 나뉘어졌습니다.
    그래서 그 기원은 배달 한겨레에서 시작되지만 그 세부의 역사에 있어서는 그 분파된 민족의 고유한 역사인 것입니다.
    역사는 그 민족의 것이지, 시대적인 영토변화에 따라 역사가 바뀌는 것이 아닙니다.

    민족의 흥망성쇠에 따라 영토의 변화가 있을 뿐이죠.
    원나라의 역사는 몽골 그 자신들의 것이고, 훈제국의 역사는 헝가리의 것, 오스만투르크(돌궐족)의 역사는 터키의 것,
    부여,고구려,백제 등의 역사는 대한민국인 것처럼 우리 배달 한겨레 형제들의 역사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에 대해 억지를 부리는 짱골라들이 문제입니다.
    치우천황이나 복희,신농,공자,묵자,징기스칸 등 남의 조상도 자기 조상이라 하고 수많은 배달갈래왕조들이 이룩한 발견,발명,업적 등을 자기 것이라 어거지를 부리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러니 짱골라의 억지에 대해 우리는 보다 정확히 민족을 분류하고 그것에 따라 역사를 논리적으로 반박할 뿐이죠.
    만약 누가 우리 자신이 역사나 민족을 너무 확대시킨다고 성질을 낼지도 모르죠.
    하지만 그것은 사대주의 매국노나 짱골라,쪽바리 등의 의견에 동조하는 행동일 수 있습니다.
    우리는 다만 배달 한겨레가 시간이 지나 이렇게 여러 민족으로 나누어졌다는 사실을 언급하고 끝내려 하나 짱골라가 말도 안 되는 억지를 부리니 그것에 대해 배달 한겨레가 나누어졌다고 말하는 이상의 사실을 지적하며 그들의 무지를 일깨우려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먼저 문제를 일으킨 것이 아니죠. 문제를 해결하려면 그 원인을 제거해야 하는데, 그 문제의 원인과 원인제공자인 짱골라나 쪽바리에게는 아무 말 안 하고 가만히 있으면서, 그에 대해 지적하는 우리 자신 스스로를 타박한다면 말이 안 되죠.
    그런 어리석은 짓은 공정하지도 못 할 뿐더러 스스로를 자학하는 꼴이죠.

    민족이란 용어가 근대 국민국가 이후에 생겨났다고 해서 배달 한겨레가 부정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민족이라는 말을 사용하기 훨씬 이전부터 겨레라는 순수 우리말을 사용해 오고 있습니다.
    겨레는 같은 혈족,언어,풍습,문화 등을 공유하는 용어입니다.

    고대의 배달겨레가 크게 동이계,흉노계와 융족계 등으로 나누어졌지만 그 뿌리는 함께 공유하고 있는 것입니다.
    배달민족이 먼저 생긴 개념이고, 이것이 후에 광의의 동이족, 협의의 동이족 개념으로 나누어집니다.
    그리고 배달계통이 흉노,예맥,말갈(여진),돌궐,동호,거란,선비,묘족,오환족, 강(티벳)족, 장족 등으로 좀더 세분되어집니다.
    배달민족이란 용어 안에는 흉노계나 융족계,동이계 등 모두 담을 수 있는 말이지만 동이족이란 말은 그렇지 못 하죠.
    그리고 한웅배달시대가 단군조선시대보다 더 이전의 시대니 당연한 것이죠.

    요하문명 전시회도 심양이나 대련에서 열고 있는데 짱골라들은 그 유산들과 우리 배달 한겨레의 연관성을 숨기려고 엄청 노력을 하더군요. 그래서 역사공정을 더욱 펼치는 것이죠.

    드러나는 한웅배달국의 홍산문명이나 단군조선국의 요하문명 등 여러 고대 유적들과 학자들의 발표로 점점 사실로 드러나고 있죠.
    세계 학술대회에서도 여전히 홍산문명을 주제로 벌어지고 있으며 국회에서는 2006년 생방송으로 국회방송도 했었습니다.

    홍산배달문명의 발견으로 러시아,독일,미국 등 세계 학자들의 유적 방문조사가 보다 대대적으로 벌여지려 했으나 짱골라들이 이를 막아서 모든 게 지지부진하게 지체되어 있는 중입니다.
    지금 짱골라들이 그 고대 유적들을 조사 못 하게 군사통제구역으로 설정해서 출입을 아예 틀어 막고 있으며 그 유적들의 일부는 물에 수장시키거나 나무를 심는 등 여러 방법으로 파괴하고 또다른 일부는 유적지 자체를 들어내어 거기에 인위적인 장치를 하는 등 여러 방식으로 조작하고 있는 것도 알았으면 합니다.

    지금까지 드러난 여러 유적과 유산들로 인해 한웅배달국과 단군조선국의 실존은 점점 확정되고 있거나 확정되었습니다.
    이번 2007년 국사교과서부터는 단군조선국의 역사가 편입되었습니다.

    지금까지 학계의 연구 결과로 통해 본인 역시 홍산문명의 한웅배달국과 요하문명의 단군조선국 실존을 더더욱 확신하게 되었지만 한웅배달국 이전의 환국시대에 대해서는 아직 판단유보중입니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오랑캐라 치부하던 치우천황이나 단군,징기스칸 등을 지금에 와서는 짱골라들이 자신의 조상이라고까지 우기는 코미디도 연출하고 있죠.

    실제 복희,신농,요순임금 등 삼황오제 모두 배달민족일 뿐 아니라
    진시황의 진나라 역시 배달 흉노계 국가이니 이미 말 다 했죠.
    남의 조상,역사,업적 등을 빼앗으려 하는 짱골라들.
    한,송,명 3왕조를 제외하고는 수많은 배달왕조들에게 지배당한 짱골라들.
    그래서 짱골라들은 배달 한겨레에 대해 그렇게 열등감과 두려움으로 똘똘 뭉쳐있나 봅니다.

    <사고전서>는 청나라 건륭 황제 때 연간 1000여명의 학자를 동원, 10년에 걸쳐 국력을 기울여 편찬한 동양 최대 총서로 무려 7만9천여권에 달합니다. 고대부터 청나라에 이르기까지 역대 중원의 주요 문헌들을 거의 다 망라하고 있는 이 책은 그 사료적 가치를 국내외에서 모두 인정하는 동양의 대표적인 고전 총서입니다. 특히 그 중에서도 동이 사료 안에는 한국역사, 동양역사의 물꼬를 바꿀 수 있는 그야말로 새로운 발견에 필적하는 귀중한 자료들로 가득 차 있죠.
    만약 고대부터 청나라때까지 역대 중원대륙 모든 왕조들의 역사서들을 그 출처로 하여 종합편찬한 <사고전서>를 부정한다면 그것은 그 출처였던 중원대륙의 모든 사서들마저도 부정하는 자가당착에 빠질 뿐이죠.
    청나라의 <사고전서>나 근세조선의 <조선왕조실록>은 모두 이미 디지털화되어 있어 일반인들도 확인이 가능하죠.

    실지로 짱골라의 왕조는 한,송,명 3왕조뿐이며 오히려 짱골라들이 배달계왕조들의 지배에 있었고 혹은 속국으로 살아간 노예종족입니다. (실지로 짱골라족 자체가 허구의 개념입니다. 조작,날조를 시작하면서 허구의 종족을 내세운 것에 불과합니다.)

    수나라와 당나라는 배달 흉노계 선비족 국가이고,
    진시황의 진나라 역시 배달 흉노계 국가이니 이미 말 다 한 것이죠....

    유적발굴이나 역사를 알아가는데는 역사학자만 동원되는 것이 아닙니다.
    고고학자,인류학자,사회학자,화학자,생물학자,지질학자,지리학자 등 인문사회계열 및 이공계열 여러 관련분야의 학자들이 동원됩니다.
    그 유물,유적에서 나온 물질을 분석도 해야 하는 등의 여러 상호관련되어 진행되는 것이죠.
    알아보려고 하지도 않는 방관적인 태도랑 중립적인 태도는 같은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진실을 알기 위해 중립적이면서도 공정한 태도는 학자들뿐만이 아닌 기자,판사,일반인 등 우리 사회구성원 모두에게 필요한
    당연한 행동인 것입니다.

    [소위 세계화]라는 것은 우리 자신의 정체성이 확고하게 확립된 위에 이뤄져야 [진정한 세계화]가 이뤄질 수 있습니다.
    각 국가의 역사교육,민족교육,국민교육이 바로 [그 나라, 혹은 민족의 정체성]을 기르는 교육이죠.
    [시민교육]은 세계인으로서 갖춰 야할 [보편적인 윤리/덕목]을 가르치는 것이죠.
    따라서 [역사교육]은 없고 [시민교육]만 한다는 찌질이의 절규에 정말 웃기는 일입니다.

    (옛날 덴마-크의 "그룬트비히"라는 사람은 [너는 크리스찬이 되기 전에 먼저 덴마-크 인이 되라]고 했죠.)
    유태인들이 부르짖는 시온주의, 독일의 게르만주의 운운하는 것도 다 같은 맥락입니다.
    미국도 다민족국가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각 민족사회,인종사회로 굴러갑니다.
    그에 따라 인종차별도 심하고... 그래서 미국 정치계에서 스패니쉬계나 흑인종,동양인 등을 비롯한 각 단체들의 힘겨루기가 극심합니다

    근데 미국내 한국사회만 결집이 안 되는 편이죠. 그래서 미국에서 부당한 이익을 받는 면이 더 큽니다.
    흑인이나 스패니쉬계 등은 각각의 정치의원이나 이익,인권 등 다양한 수단을 마련해 미국 정부에 압력을 주어 보다 많은 것을 이끄는 것에 비하면 정말이지 어리석기 짝이 없습니다.
    하나가 되고 있는 유럽공동체마저도 각국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확고히 합니다. 물론 미국도 마찬가지.

    그런 기반이 되는 정체성교육도 없이 세계화를 추진한다는 것은 한마디로 사상누각입니다.
    그렇게 따지면 보스니아 내전이나 아프리카의 여러 내전과 같은 위험을 안게 되는 겁니다.
    체코슬로바키아가 체코나 슬로바키아로 나누어진 것이나 구소련이 무너진 후, 여러 국가가 들어선 것만 봐도
    현재는 한울타리의 세계화라는 이면의 신민족주의시대로 볼 수 있는 겁니다.
    하여튼 자신의 주변도 살피지 못 하면서 인류애,세계화를 부르짖는 찌질이들이 된다 면 우리는 곧 무너질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지금 폭풍전야의 풍전등화같은 어려운 상황에 놓여있는 겁니다.

    최근 유엔에서 한국 순혈주의 운운하며 마치 인종차별을 낳는 식으로 민족주의가 나쁘다는 식으로 몰고 가는데 참 황당합니다.
    민족주의는 부정도 긍정도 아닌 그저 중립적인 용어일 뿐입니다.
    민족주의와 인종차별주의를 혼동하는 일은 더 이상 없었으면 하는군요.
    어떤 이들은 애국심과 배타성을 구분 못 하더군요.
    미국 사람들이 자기 나라 위해 애쓰면 애국심이고, 한국 사람들이 조국을 위해 애쓰면 국수주의,배타성입니까??
    도대체 이런 사람들의 의식구조는 어떻게 되어 먹은 것인지.....
    언제부터인가 한국은 스스로에 대한 자신을 잃어버린 나머지 외부에서 무슨 소리를 하면 쉽게 흔들리더군요.
    그리고 도움도 안 되는 체면을 위해 손해보기를 밥 먹듯이 하고, 똥고집은 엄청 부리죠.
    중세고려 아니 후조선 초기까지만 해도 나름대로 실리추구를 하는 면이 강했는데 중기에 들어서면서 유학이란 학문을 변질적인 유교로 받들기 시작하면서 더욱 그런 것 같습니다.
    유교로 포장하는 것도 실은 불완전한 후조선 왕조의 정통성을 극복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이었죠.
    그래서 백성과 현실을 도외시한 채 양반만의 정치, 체면과 허위허례의식의 유교로 똘똘 뭉쳐 종국에는 국방력을 모두 말아먹고 외세에 침입에 쉬이 당하고 무너진 것입니다.

    몇 가지 더 인용하면서 말하겠습니다.

    단일민족론의 기원은 조선유교 쥐나사대주의에 비롯합니다.
    단일민족이론의 시초에 대해서는 여러 주장이 제기되고 있지만, 유학이 통치이념으로 자리잡은 근세조선조 이후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죠.
    ‘조선왕 독살사건’ ‘우리 역사의 수수께끼’ 등의 저자인 역사 연구가 이덕일(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장)씨는 ‘소쥐나’ 사상에 경도된 유학자들을 단일민족이론의 시초로 꼽습니다.
    이씨는 “유교를 받아들이면서 쥐나와 일체화하기 위해 같은 민족이었던 동이, 몽골, 만주족을 오랑캐로 내몰았다”면서 “민족 개념이라는 것도, 봉건시대에서 통일국가로 이행했던 유럽이나, 왜국의 경우에는 맞아 떨어질지 몰라도, 나라의 개념이 하나뿐이었던 우리나라에 적용하는 것은 무리”라고 지적했습니다.
    그는 “단군신화를 순수혈통주의로 해석하는 것은 옳지 않다”면서 “한 조상이라고 해도, 여러 지류가 흘러 큰 물을 이루는 넓은 개념으로 해석하면 다문화, 다민족 사회를 가로막는 요소로 보기 힘들다”고 덧붙였습니다.

    고대에 이미 배달겨레가 크게 동이계,흉노계,융족계로 나누어집니다.
    이들이 서로 다시 여러 민족으로 갈라지며 합쳐지는 등의 변천을 거듭했죠.
    곧 우린 이미 배달겨레의 여러 민족으로 이루어진 다민족국가입니다.
    그래서 단일민족이니 뭐니 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니 서양인들이 헛소리하는 것 자체가 모순이죠.
    더욱이 그들의 혼혈은 다른 나라를 침략하여 식민지 지배로 통한 것이니...
    더군다나 그들의 현사회에서도 오히려 인종차별이나 민족차별이 심하면 심했지 못 하진 않죠.
    지들 주제도 모르면서 남에게 뭐라 한다는 것 자체가 어처구니 없는 거죠!

    그리고 유엔에서 한국의 민족 운운하는 헛소리들은 정확히는 유럽에서의 논란이라고 보는 것이 보다 적절할 것입니다.
    본인은 외국의 사례인 스킨헤드, 시오니즘, 네오나치,kkk단 등은 굳이 거론하지는 않겠습니다.
    하지만 표리 부동한 그들에 대해서 비판은 하겠습니다.
    유럽인들이 왜 다인종 국가를 만드는데 성공했을까.....
    그것은 그들의 관용(똘레랑스 ㅗ 먹이셈)따위가 절대 아닙니다.
    그것은 오직 제국주의 시대에 값싼 노동력을 착취하기 위해 끌고온 것이었으며, 2차대전 이후 경제성장에 있어 3D업종에 종사 시킬 사람들을 충당하기 위해 그나마 연관성이 있는 식민지인들을 데려온게 아니었습니까.
    그리고 신생아 출생 감소로 인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였고. 그것으로 인해 다원사회를 이룩하였으면서, 그들이 본질적으로 관용적인 것처럼 말하는 것에 어이가 없을뿐입니다.

    어차피 한국도 20년내 고려인 역이주.
    50년내 타국민 이민을 받아들여 인구수 8000만 유지해야만 하는 떄가 옵니다.
    통일한국이 되면 더욱 가속화되겠죠.
    순리가 그러니까 제발 먼저 설레발 치지 않길 바랄뿐입니다.
    그 잘나신 프랑스도 타인종 관리 못해서 폭동이나 일어나게 만드는 주제에, 자신들이나 잘 관리하길 충고할 뿐입니다!
    똘레랑스 좋아하고 자빠졌다. {-_-}

    서양은 동양으로부터 문물을 받기 시작해서 그리스,로마 문명의 기초를 다질 수 있었죠.
    하지만 중세시대의 미쳐버린 종교때문에 건축기법 중 시멘트공법마저 잊어버릴 정도로 암울한 시대죠
    하지만 아랍의 문명을 다시 받아들이면서 르네상스를 이루어 과거의 학문,문화 등을 서서히 되살리기 시작하죠.
    세계최초의 종합병원이나 도서관 아라비아 숫자 등 뛰어난 동양 아랍문명이 없었다면 어림도 없었죠.
    하물며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 등 의 여러 고대 저서 등이 아랍의 도서관에 보관되지 않았다면 아마 서양의 문명은 벌써 사장되어 한참이후에나 다시 발전을 이루어 나갔을 것입니다.
    이 부분은 전에 EBS교육방송에 방영된 BBC역사관련 다큐멘터리 등에서도 나왔던 내용입니다.
    한웅배달국부터 시작하여 고구려,발해까지 위대한 선조들이 이룬 업적을 짱골라에게 우리 조상까지 다 빼앗기고 역사마저 빼앗기게 만든 그 후손이 못 나서 그렇지 그 조상이 못 난 것은 아니죠.
    아무리 뛰어나도 그 후손이 못 나면 아무 소용없죠.
    우리의 전례뿐만 아니라 잉카,마야,캄보디아의 크메르, 인도의 여러 문명,종교때문에 모든 발전이 거의 정체되게 된 근동,중동의 아랍문명 등등...
    서양 역시 마찬가지죠. 동양의 문명이 없었으면 다시 르네상스를 일으키지도 못 했죠.
    또 회계제도는 우리나라도 개성상단의 사개송도치부법이라는 훌륭한 복식부기법이 예전부터 사용되어왔고 시스템도 현대 서양의 그것에 비해 결코 뒤쳐지지 않습니다.
    숫자는 한웅배달시대에는 산목으로, 단군조선시대에는 산대 등으로, 시간이 많이 흘러 근세조선에 들어서는 쥐나의 숫자나 조선산이라는 고유숫자도 사용했습니다.
    물론 숫자표현체계는 아라비아숫자가 더 쓰기 편한듯 싶습니다
    이 우리부기법은 서양보다 200년이나 앞서있어 1910년대 오스트리아 경영학회에 보고되어 고려의 회계시스템이 아라비아를 거쳐 유럽에 전파되었다고 주장되었으나 왜국의 학자가 이를 반박하는 논문을 발표하였고 당시 왜국의 식민지배를 받던 우리 나라의 상황때문에 묻히게 됩니다. 물론 금속활자에 대한 앞선 사용 또한 마찬가지죠.
    참고로 서양이 동양을 서서히 따라붙다가 17세기초에 이르러, 여러 분야의 발전 에서 조금씩 추월하기 시작하죠.
    그리고 서양이 세계대항해시대를 열게 된 배경 중 자연의 영향도 큽니다.
    15세기에서 18세기까지 유럽은 소빙하기시대였거든요.
    그래서 최북단에 있던 영국은 식량문제 등을 비롯한 여러 악조건을 타개하기 위해서 상공업을 장려시키고 과학을 위시한 학문을 공부하고 세계로 뻗어나갈 필요성이 컸죠. 이런 복합적인 이유로 끝내는 산업혁명을 일으키고 그리하여 전세계에 미국,호주 등의 영연방이 생기게 된 기저가 되죠.

    솔직히 서양인들이 배가 부른 때라 해 봤자 기껏 '그리스, 로마시대'와 '산업혁명 이후부터 현재에 이르는 300년 정도'입니다.
    이를 제외하면 수천년동안 아랍과 동아시아 등 동양의 지배에 있었던 야만인들에 불과할 뿐입니다.

    과학이 발달하면서 현재 많은 학자들의 연구결과로 사실이 조금씩 밝혀지고 있는 실정입니다. 학문은 정체된 것이 아닙니다. 연구결과에 따라 얼마든지 업데이트가 되는 것입니다. 일례로 우리 주변의 과학발달의 결과만 봐도 알 수 있지 않습니까. 짱골라들이 유적조사 등을 못 하도록 무수한 방해로 인해 전세계 학자들이 동아시아 고대문명에 대해 연구 진행이 어려운 것이 현실입니다. 그런 현실 속에서도 진실을 밝혀내는 학자들이 그나마 역사적 사실을 조금씩이나마 밝혀낸 것도 대단한 것이죠.
    허구의 종족 짱골라 그들이 그렇게 남의 조상,발견발명,역사 등을 빼앗으려는 서북,서남,동북공정이 그냥 나온 것이 아닙니다. 자신들의 허구를 가리기 위해서도 끊임없이 약탈할 수 밖에 없는 태생적 한계입니다.

    이옥순, 이종득, 이태주, 이평래, 이희수, 조흥국, 한건수 등 많은 대학교수들이 함께 저술한 '오류와 편견으로 가득한 세계사 교과서 바로잡기'란 책을 봐도 좋을 듯 합니다. 우리 모두 각자 자신들이 알고 있던 것이 편견,오류였는지 자기검증도 할 수 있어 유익할 것 같습니다.

    허구의 종족 짱골라들. 매일 하는 것이라고는 남의 것 훔치는 것 밖에 없으니....
    짱골라들은 한국의 수도 서울을 지금도 공공연히 한성이라 하며 무시합니다. 서울시가 서울의 쥐나어 표기를 '한청'(漢城)에서 '서우얼(首爾)'로 바꿨지만 쥐나쪽은 상당히 불쾌한 반응을 보이고 있습니다.
    아직도 지들끼리 공공연히 한성이라 합니다.
    ‘서울’의 쥐나어 표기 ‘首爾(서우얼)’이 쥐나어로 ‘서우얼’로 발음돼 ‘서울’과 비슷한 데다 ‘首’가 수도를 뜻하기 때문에 가장 적합하다고 하지만 이는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르는 소치입니다. 그 쥐나어 발음이 ‘서울’과 좀 닮았긴 하나 우리의 한자어 발음으로는 ‘수이’일 뿐입니다. 또 ‘首’가 수도의 의미를 풍기긴 하나 ‘爾’는 쥐나에선 변방 지명에 주로 사용되는 글자입니다. 쥐나의 서북쪽 신장웨이우얼(新疆維吾爾) 자치구와 동북쪽 하얼빈(哈爾濱)이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지금 쥐나가 고구려를 쥐나의 변방 역사에 편입하는 동북공정과 티벳과 신장 등의 여러 소수민족들을 살육하며 서북,서남공정을 추진하고 거의 끝나가는 마당에 우리가 자진해 쥐나의 변방임을 인정하는 결과가 되지 않을까 걱정됩니다.

    소수의 의견이라서 진실이 아니다란 식으로 말하는데, 진실이 다수결로 이루어집니까??? 그렇게 따지면 코페르니쿠스나 갈릴레이는 자신의 주장 자체가 처음부터 진실을 부르짖은 것이 아니라 거짓을 부르짖은 것이었군요.

    독일의 고고학자 슐리만[Schliemann, Heinrich]이 트로이를 발견하지 않았다면, 아직도 트로이의 존재는 그냥 신화의 일부나 호머의 이야기로만 치부되어 지금도 진실이 아닌 허구로 여겨졌겠죠. 그리고 세뇌된 일반사람들이 우리고대사가 무턱대고 거짓이라 치부하는데 그것은 짱골라나 왜놈의 방해 때문에 우리의 유적을 조사하지 못 해서일뿐이죠. 연구나 조사할 의지조차도 없으면서 무조건 거부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됩니다

    식민사학자들 역시 나와 같은 실증주의를 주장하는데 그럴수록 더더욱 우리의 유적을 알아보려고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요. 아무 노력도 하지 않고 처음부터 거짓이라는 딱지를 붙인다는 것은 실증사학에 위배 되는 짓 곧, 스스로를 기만하는 자승자박이죠

    여전히 활개치는 몇몇 식민사관학자들때문에 많은 선량한 강단학자들마저도 도매급으로 욕 먹게 됩니다. 우리 역사를 찾으려는 강단학자들이 왜 일반인들에게 식민사관학자로 엉뚱한 오해를 받아야 합니까.....
    식민사관학자와 강단학자는 동의어가 아닙니다.

    그리고 '동북공정 너머 요하문명론'을 저술한 우실하씨 등을 비롯 몇몇 교수분들이 우리 동아시아 역사를 한국,몽골,일본,쥐나,티벳,위구르,중앙아시아 등 모든 민족이 함께 공유하는 동북아시아 시원을 밝하려 했지만 쥐나의 서남,서북,동북공정으로 거의 좌절된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학자적 양심에 따르는 것이 아니라 쥐나 공산당 정부의 충실한 개노릇을 하는 짱골라학자들에게 뭘 바랄 수 있겠습니까만....

    솔직히 실제의 종족인 배달겨레의 조상,발견발명,유산,업적들이 허구의 종족 짱골라에게 눈 뻔히 뜨고 빼앗기고 있다는 것도 기가 찰 일입니다.

    부디 학자적 양심을 가지고 모든 것에 공정한 시선으로 봤으면 합니다. 그것이 소수의 학설이든 다수의 학설이든지간에 말입니다.
    진실을 밝혀나가는 것에는 수가 많고 적음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물론 진실이 다수결로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고 말입니다. 그러니 다수의 학설은 무조건 옳고 소수의 학설은 틀리다란 생각을 고쳤으면 합니다.
    위에서도 잠시 언급했지만 코페르니쿠스나 갈릴레이의 학설도 처음에는 소수의 주장으로 시작했지만 종교시대에 억압받고 있던 무지몽매한 어리석은 다수를 결국에는 진실로써 일깨웠지 않습니까. 고고학자 슐리만[Schliemann, Heinrich]이 트로이를 발견했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이 실재한다는 것을 지금이야 상식으로 알지만 발견전까지만 해도 그것은 그리스신화의 일부로 봤었죠. 그래도 슐리만은 다행이었습니다. 트로이유적을 조사한다고 누가 방해하지는 않았으니....

    우리는 어떻습니까? 과거 우리의 터전이었던 만주,몽골,연해주,중원 등에 있는 유적들을 조사하려 해도 짱골라들의 방해가 너무나 극심하죠. 있던 사서나 사료도 오랜 세월 동안 전부 왜놈이나 짱골라들이 훔쳐가거나 훼손했고..... 왜제시대 35년동안 우리의 20만권의 사서들이 조선편수회에 의해 압수되고 불태워졌다는 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그 때 목록을 보면 대부분 20세기 초반 저서들이 대부분이죠. 다만 우리의 진짜 사서들은 모두 교묘히 빼돌려 왜왕실이나 혹은 일본대학도서관 등에 잠들어있습니다. 왜제시대 35년뿐입니까? 그 이전 임진왜란이나 수많은 왜구들의 침략으로 도자기,서적,장인 등 사람,물건 할 것 없이 너무나 많은 것을 약탈했습니다. 사서를 통해 연구하려 해도 짱골라와 왜놈들이 숨기고 안 보여주니 더더욱 답답할 뿐이죠. 왜왕실에 수많은 우리 사서들이 숨겨져있는 것에 대한 신문기사자료도 있습니다. 지금이야 어느 정도 과학이 발달하고 깨인 강단학자들이 많이 늘어서 다행이지만 아직도 우리 역사를 찾으려는 길은 멀기만 합니다. 과거 2~30년전만 해도 식민사관학자들의 폐해가 컸습니다. 물론 지금도 그 암운이 아직 걷혀지지 않고 있지만 뭐 뉴라이트가 버젓이 이명박을 앞세워 더더욱 극성을 부리는 시대니.....

    역사를 밝혀나가는데는 역사학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딸랑 사서만 보고 밝혀내는 것도 아니고요.....
    역사학, 고고학, 인류학, 사회학, 천문학, 생물학, 화학, 지질학, 지리학 등 인문사회계열과 이공계열을 비롯한 수많은 관련분야 교수나 박사들이 함께 연구하며 진행되는 일이 많습니다.
    "몇몇 이들은 현재의 모습을 가지고 문명과 역사를 판단하는데, 이는 대단히 위헙하고 짧은 생각입니다.
    문명과 기후, 지형 변화 등 다각도로 그 상황에서의 여러 관계들을 함께 끌어들여야 제대로 볼 수 있는 겁니다.
    과거의 땅이었던 것이 지금은 바다로 되어 있는 것도 많고 또 이전에는 초원지대가 지금에 와서는 사막이 된 자역도 많죠.
    한마디로 오판하는 그들은 지구의 환경변화에 대해 고려하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입니다.따라서 지구의 환경변화를 중심으로 문명을 이야기할 수 밖에 없는 것이죠.

    유적발굴이나 역사를 알아가는데는 역사학자만 동원되는 것이 아닙니다.
    인문사회계열과 이공계열 등 관련성 있는 여러 분야의 학자들이 동원됩니다.
    그 유물, 유적에서 나온 물질들을 분석도 해야 하는 등 여러 일들이 상호관련되어 진행되는 것이죠.

    알아보려고 하지도 않는 방관적인 태도랑 중립적인 태도는 같은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진실을 알기 위해 중립적이면서도 공정한 태도는 학자들뿐만이 아닌 기자,판사,일반인 등 우리 사회구성원 모두에게 필요한 당연한 행동인 것입니다.
    역사란 현실의 거울이요 미래의 지표라고 합니다.
    진실되고 확실한 역사관정립은 분명히 후대에 남길 수 있는 유일한 선물이자 우리 미래의 도약대가 될 것입니다"
    일반인들에게도 공정함이 필요하지만 학자들에게는 더욱 엄격히 지켜져야 합니다. 그것이 어떤 분야의 학자가 되었든지 말입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 한배달쥬신
    작성일
    08.03.13 22:03
    No. 23

    하나 더 예를 들어 한성백제시기 같은 경우 위례성의 위치에 관련하여 몽촌토성이다 아니다... 풍납토성이다라고 설전이 많았습니다. 초기엔 몽촌토성이 자료와 논거가 더 확실하여 풍남토성이라는 주장보다 우위에 있었지만 자료가 더 발굴되면서 풍납토성이 현재는 다수설이죠.
    이처럼 일련의 과정을 거쳐 학문은 업데이트되는 것입니다.
    어디서 갑자기 나타는것이 아니라는겁니다.

    여러 교수들과 함께 코리안루트 탐사원정으로 고대유적과 그 문명들을 파헤치고 있는 선문대 이형구 교수는 풍납토성의 발굴에 참여했던 학자입니다. 그리고 최근 그는 홍산문명과 요하문명 등에 관한 탐사자료 일부를 경향신문을 통해 알리고 있습니다.

    코리안루트를 찾아서
    <a href=http://blog.daum.net/hearo9mars/5556614 target=_blank>http://blog.daum.net/hearo9mars/5556614</a>
    <a href=http://blog.daum.net/hearo9mars/5556639 target=_blank>http://blog.daum.net/hearo9mars/5556639</a>
    <a href=http://blog.daum.net/hearo9mars/5556668 target=_blank>http://blog.daum.net/hearo9mars/5556668</a>
    <a href=http://blog.daum.net/hearo9mars/5556719 target=_blank>http://blog.daum.net/hearo9mars/5556719</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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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 href=http://blog.daum.net/hearo9mars/5556910 target=_blank>http://blog.daum.net/hearo9mars/5556910</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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