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심심풀이 삼아 가볍게 쓴 “성장물의 어려움”에 덧글이 많이 달렸더군요. 저도 덧글들을 보고 또 많이 배웠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저번글과 연관하여 “주인공의 패배”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합니다.
주인공이 무조건 최강인 먼치킨물이 아니라면, 특히 “미숙한 주인공이 고난과 역경을 통해서 성장하는 성장물이라면”, 아무래도 주인공의 패배 혹은 실패가 필요합니다. 물론 고난과 역경이 있다고 해도 꼭 패배 혹은 실패해야한다는 법은 없겠으나, 그럴 경우 앞서 말한 “미숙한 주인공”이라는 점과 상충될 뿐더러, “그런 고난과 역경 속에서 패배도 실패도 없었으니 오히려 더 먼치킨”이라고 보일 수도 있습니다.
때문에 성장물에서는 주인공의 패배 혹은 실패를 그리는 장면이 나오기 마련입니다. 만화로 예를들면 슬램덩크에서는 주인공 강백호가 천재적인 자질을 지녔지만, 자신의 미숙함과 실수 때문에 패배한 이후, 머리를 삭발하고 한층 더 진지하게 농구에 임하는 장면이 나오죠.
다만 여기서 주의해야할 것은 패배 혹은 실패의 이유입니다. 주인공의 능력 부족 혹은 미숙함으로 패배하는 것이 아닌, 뭔가 다른 이유(아군의 배신, 환경적인 문제 등)로 패배했을 경우 “주인공이 아닌 다른 사람들에게 패배의 책임을 돌리게 된다”로 이어지기 때문에 아무래도 조금 의미가 다르게 됩니다(물론 사람보는 눈이 없다는 식으로 주인공에게 책임을 전가할 수도 있으나 직접적인 것은 아니죠).
특히 먼치킨물에서 이러한 경향이 자주 보이는데, “주인공을 부각시키거나 혹은 주인공에게 면책권을 주기 위해 아군의 패배를 전부 무능한 아군들의 책임으로 돌리는 일”이 바로 그것입니다. 이럴 경우 흔히 이야기하는 “주인공이 똑똑한게 아니라 주변 인물들이 바보라서 주인공이 먼치킨”이라는 뭔가 어색한 이야기가 될 수 있습니다.
이것은 “메리 수” 문제와도 연관이 깊습니다. 메리 수의 성격이 큰 작품일수록 주인공은 완전무결하며, 설령 일반적으로 나쁜짓이라고 생각되는 일을 저질러도 용서받는등, 어떻게 해서든 주인공을 부각시키려고 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주인공에게 결코 실패의 책임을 돌리지 않기 위해, 뭔가 실패한 일이 있으면 그건 전부 무능한 아군 탓”이 되기 마련입니다.
전 개인적으로 메리 수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도, 이야기를 창작하는 사람들에게 “다른 사람에게 책임을 돌릴 수 없는, 주인공의 실수 혹은 무능함 혹은 미숙함으로 인해 생긴 패배(실패)‘를 이야기에 넣으라고 권합니다. 이것은 메리 수의 문제를 해결해줄뿐더러, 이야기의 극적 전개를 위해서도 크게 도움이 되지요.
문피아의 여러분들에게도 자신의 글에 “주인공의 변명할 수 없는 패배”를 마련해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하고 권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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