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명 : 카이첼
작품명 : 리얼리티
출판사 : -
우선 카이첼님께 감사드립니다. 사실 저는 지금 국방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군에 입대해 있는 몸으로 무려 입대 6개월만에 신병위로휴가라는 걸 나와있는 상태입니다. 게다가 무려 오늘 복귀입니다. 지금 세상이 끝나는 기분입니다......
말이 샜는데 본론으로 돌아와서, 어제 6개월만에 문피아에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그 사이에 카이첼님께서 글 한편을 완결지어놓으셨더군요. 게다가 분량도 그닥 길지 않고. 가볍게 이틀 투자해서 다 읽었습니다. 왜 휴가나와서 집에 있었냐고 물으시면 할말이 없으니 그런 가슴아픈 질문은 피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어쨌든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변함없이 좋은 작품 쓰고 계신 카이첼님, 군대 가기 전에 이런 좋은 작품을 보고 갈 수 있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읽다보니 읽기가 힘들어서 하차한다고 하신 분들이 몇몇 분 계신 것 같습니다. 주인공의 헤어날 수 없는 찌질함때문에 그러신 것이겠지요. 저 역시 읽다가 굉장히 가슴을 찌르는 것을 느꼈습니다. 아마 대한민국에서, 아니 학교를 다녀 본 사람이라면, 아니 인간이 만든 사회에서 살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겪어봤을 풍경 때문이겠지요. 거기엔 고통이 있지요. 주인공 성민이 겪었고, 현실에서도 누구나 겪어봤을, 혹은 겪고 있을 고통 말입니다. 그런데 거기엔 폭력도 있습니다. 호철이 행사했던, 혹은 현실세계의 누군가가, 혹은 우리들 자신이 행사했을, 혹은 알면서도 모르는 척 넘어가 결국 공범이 되길 자처했던 그런 폭력 말입니다.
때로는 의도하지 않은 고통을 줄 수도 있습니다. 고백했다 차여서 고통받을 수도 있고(제 얘기는 아닙니다), 오해에서 비롯한 고통, 자격지심에서 비롯한 타인의 시선, 생각없이 뱉은 말 한마디, 홧김에 뱉은 욕설 등등. 의도했건 그렇지 않았건 소통엔 필연적으로 고통이 따릅니다. '우리는 소통하기 위해 태어나지 않'았으니까요. 불완전한 소통엔 왜곡이 끼어들고 결국 타인은 고통의 원천이 될 수밖에 없는 겁니다.
그래서 소설에서처럼 이상적인 타인, 상처받을 염려가 없는 타인이 있다면, 그래서 소통이 더 이상 고통스럽지 않다면, 과연 우리는 행복할 수 있을까요. 만약 그렇지 않다면 얼마나 더 고통스러워해야 우리는 행복해질 수 있을까요. 고통을 회피해야 할까요 아니면 고통을 무릅쓰고 전진해야 하는 걸까요. 고통을 주는 주체에게 대항한다면 그 수단은 또다른 폭력이 되는 건 아닐까요. 여기서 글을 마무리지으면 매우 무책임한 사람이 되는 기분이군요. 그런데 저도 아직 생각이 정리가 되지 않아서 쓸 말이 생각이 안나는군요. 좀더 포장해서 말하자면, 이 문제는 여러분이 직접 읽고 생각해 본 후 결론내릴 문제라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저의 답은 여러분의 답이 될 수 없고, 여러분의 답 역시 저의 답이 되긴 어려우니까요. 우리는 소통하기 위해 태어나지 않았으니까요.
쓰다 보니 굉장히 난잡한 글이 되었군요. 아마 글쓴이 머릿속이 난잡해서인 것 같습니다. 복귀 시간이 얼마 안남았군요. 고통스럽더라도 소통은 행복을 찾는 길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여러분도 항상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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