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아도란의 백과사전
저자: 제피
출판사: 루트미디어
소재는 신선한데 개연성은 좀 떨어지는 소설이네요. 대충 줄거리는 언어학 교수인 후작작위의 주인공이 어떻게 그 세계로 넘어갔는지 모를 한국의 백과사전을 해석해서 그 지식을 통해 영지를 발전시켜나가는 것입니다. 최근 정말 홍수같이 쏟아지는 질낮은 작품들을 생각하면 그런대로 읽히기는 하는 소설.
허나 세세히 생각하면 상당히 개연성이 떨어지는 부분이 많네요. 이를테면 천재급 주인공이 아무리 자기 분야만 팠다고 하지만 지나치게 세상에 무지한 모습을 보이는데 이건 어떻게 생각해도 무리한 설정입니다. 아무리 언어학을 중심으로 공부했다는 설정이지만 영지를 물려받을 후계자인데 영지운영에 대한 제왕학이나 기타 제반 지식에 대해 거의 아무것도 배우지 않은 듯한 모습은 상당히 비현실적이죠.
백보양보해서 자기 분야만 죽어라 팠다는걸 100% 인정해준다해도 해석이 필요한 고대문서 역시 철학과 제왕학과 소설 등 각종 지식을 전달하는 서적일텐데 언어학을 공부하면서 이를 파고든 주인공이라면 그런 서적을 해석하면서 자연스레 방대한 지식을 가질 수 밖에 없지요. 역시 작가님의 설정이 너무 미숙했다고 봅니다.
또한 고위귀족으로써 나고 자란 주인공이 신분제에 대한 혁신적인 철학을 공부한적도 숙고하지도 않았으면서 지나치게 탈귀족적인 모습을 보이는 것도 문제네요. 귀족으로써의 당연스런 예법이나 행동양식에도 무지한 모습을 보이는데 뭔가 귀족탈만 썼지 사람없는 외진 곳에서 혼자살다 툭 튀어나온 듯한 모습입니다. 너무도 인간적인 사람이라 왜 신분 때문에 차별해야하는건지 모르겠다식으로 평소 고민했다는 그런 글귀라도 있다면 이해를 할텐데....
그리고 신기술이나 패러다임의 변화가 인간세계에 미치는 파생효과면을 지나치게 간과하기도 했습니다. 만약 신기술이 발견되고 그것이 콜롬부스의 달걀처럼 발견이 어렵지 복제가 어렵지 않은 기술이라면 순식간에 퍼져나가고, 관련된 파생효과가 나타나게 마련인데 그런점 역시 거의 고려되지 않는 모습이네요.
또 2권에서는 주인공의 장인이 주창했다는 중앙집권제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주인공은 그 중앙집권제에 반발할 수 밖에 없는 처지에 있는 입장입니다. 전형적인 영지귀족으로써 중앙집권제가 성립되면 도태되거나 최소한 자신이 가지고 있던 권한을 상당히 잃을 처지에 있는 입장인데 당연스레 중앙집권제를 혁신적인 개혁 아이템으로 받아들이고 지지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기도 합니다. 이런 모습 역시 개연성을 크게 잃게 만드는 요인. 사회의 발전과 본인의 이익은 늘 일치하지만은 않는 법이죠. 만약 주인공이 충성스러운 황제파라면 그런태도를 보이는 것을 이해 못할바는 아니지만 전혀 그런 모습을 보이지도 않습니다.
이런저런 문제점을 늘어놨지만 되도 않는 영지물이 많은 것을 생각하면 그런대로 참고 읽을 수 있는 수준은 된다고 봅니다. 하지만 예를들어 강무님의 마도시대 마장기나 칸솔론같은 작품을 생각하면 사실 좀 한숨이 나올 정도로 깊이가 없네요. 강무님 소설은 극먼치킨의 탈을 쓰고 있지만 인간과 사회가 돌아가는 모습들은 굉장한 깊이를 가지고 있죠. 그에비해 이 소설은 10대후반 청소년이 어설픈 지식으로 짜맞추는 듯한 그런 느낌까지 들더군요. 작가님에게 죄송한 이야기려나?
쓰다보니 감상문이 아니라 굉장한 비평글이 되버린것 같긴 한데 일단 감상문 의도로 쓰기 시작하긴 했으니 이대로 두겠습니다. 만약 문제가 있다면 비평란으로 옮기구요. 아무튼 제가 비평한 부분과 각 캐릭터들의 행동방식이 좀 더 개연성있게 변하면 충분히 다음권을 기대할만한 여지는 남아있지 싶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많은 부분을 집기도 한거고. 작가님이 다음권은 여러가지 부분을 생각하셔서 좀 더 발전된 모습을 보이셨으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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