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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에 관련된 감상을 쓰는 곳입니다.



작성자
Lv.16 Zinn
작성
06.10.24 15:53
조회
1,782

작가명 : 이영도

작품명 : 드래곤 라자

출판사 : 황금 가지

지난번에 올렸던 핸드레이크 관련 감상문에 살을 약간 덧붙여서 패러디 형식으로 써봅니다. 하루히 감상 읽어보셨던 분들이라면 그거랑 비슷하겠네요.

“언젠가 먼 훗날, 나는 내가 타자(他者)에게 남아있을 것임을 믿소. 바이서스가, 루트에리노가 세운 이 나라가 사라진다고 하더라도, 그와 나는 분명히 살아있을 것이오. 나는 이미 인간이 아니니까. 나를 올려다보는 모든 사람들이 내가 인간이 아니길 바랄 미래의 어느 순간까지 나는 그들의 이상 속에서 인간이 아닌 존재로 인식될 테니 말이오.”

핸드레이크는 서늘한 늦가을의 바람을 맞으며 자신의 손에 다소곳하게 앉아 있는 페어리퀸 다레니안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물빛 머리칼은 윤기를 머금어 솟아오르는 아침 여명에 선홍빛으로 타오르고 있었고, 그녀의 맑은 눈동자는 어딘가 불가해한 애수를 품고서는 한 마법사의 확고한 얼굴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다시금 불어오는 바람에 단풍 진 나무가 흔들린다. 거대한 산중호(山中湖), 페어리퀸이 그녀의 자녀와 함께 살아가는 변하지 않을, 아름다운 상태로 줄곧 고정되어 있을 러브네인 호수는 마치 투명한 거울과도 같이 가을 하늘을 투영하고 있었다.

“핸은 인간이잖아요? 다른 존재들이 뭐라고 하던 간에 핸은 인간 아니에요? 당신은 뛰어난 마법사이고 루트에리노나 인간들의 든든한 조력자이겠죠. 하지만 그런 사실이 당신을 바꿔놓나요? 그건 아니잖아요. 핸이 언제나 핸으로 있는 한에는 분명 핸은 변하지 않아요, 설령 당신이 죽…는다고 하더라도, 루트에리노가 죽는다고 하더라도 마찬가지예요.”

핸드레이크는 다레니안의 말에 얼핏 미소를 지으며 엄지 손가락으로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하지만 양 볼을 붉게 물들이며 기쁜 표정을 짓는 다레니안을 바라보며 핸드레이크는, 전무후무할 인간의 대마법사는 비통한 감정이 마음 속에서 휘몰아치고 있음을 느꼈다. 분명 히 순진한 페어리에게는 그가 언제까지나 그로 존재하겠지. 하지만, 그녀는 인간이 아니다. 영원히 무한한 차원을 영유하며 살아갈 순수한 페어리의 여왕인 그녀는 반드시 인간이 아니다. 핸드레이크는 자신의 죽음을 긍정해주는, 자신을 올곧게 바라봐주는 다레니안의 순진함에 더욱 슬펐다.

그것은 그가 분명히 온전히 죽지 못할 것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소, 당신의 말이 맞소, 다레니안. 하지만 언젠가 내가 말했듯이 인간은 단수가…”

“흥! 단수가 아니라는 말을 하는 건가요?”

핸드레이크는 다레니안에 뾰족한 말에 짐짓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머리를 긁었다. 다레니안은 작은 날개를 움직여 그의 손바닥에서 떠올라 핸드레이크와 눈높이를 맞출 수 있을 정도까지 날아올랐다. 꺼져가려 하는 삶의 기운을 간신히 붙들고 있는 것만 같은 핸드레이크의 피폐한 눈동자를 바라보며 다레니안은 의기양양하게 가슴을 펴고 말하기 시작했다.

“루트에리노의 강직한 후원자인 핸드레이크, 드래곤 로드의 강력한 적인 핸드레이크, 인간 마법사의 시조인 핸드레이크, 인간에게 자유를 가져다 줄 광영의 핸드레이크, 솔로쳐의 무한한 악몽일 핸드레이크. 그리고 제 영원한 연인일 핸.”

그리고는 잠시 숨을 돌리고 다레니안은 다시 말했다.

“핸이 너무나도 많아요. 나는 멍청한걸요, 그래서 내가 받아들일 수 있는 핸은 제 연인으로서의 핸 뿐만인걸요. 하지만 그걸로 된 것 아닌가요? 핸이 처음에 이 말을 하는 걸 듣고 지금까지 곰곰이 생각해 봤어요. 그래서 전 깨달았지요. 분명히 모두가 핸을 똑같이 받아들이지는 않을 거예요. 그래도 전 그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해요. 어느 누구도 분명히 타인을 온전히 포용할 수 없어요. 제가 바라보는 핸이 언제나 사, 사랑스럽듯이 말이에요….”

핸드레이크는 얼굴을 붉게 물들이고 그의 시선을 피한 채 귀엽게 말하고 있는 다레니안을 두 손으로 안아서 그의 어깨에 앉혔다. 그리고는 그의 얼굴에 기대오는 다레니안과 그녀의 숨결을 느꼈다. 영롱한 목소리가 다시 울려왔다.

“음…. 인간 식으로 말해볼게요. 주변이 어두우면 인간은 마법이나 정령으로 빛을 현현시키거나 그렇지 못할 경우에는 횃불을 들어야 할 거예요. 맞죠?”

“그렇소.”

“유한한 빛은 모든 어둠을 밝혀주지는 못해요. 빛이 있는, 어둠 전체에 비교하면 너무나도 작은 공간만 밝혀줄 수 밖에 없지요. 그것이랑 마찬가지 아닌가요? 누구도 사람을 오롯이 인식할 수 없어요. 그가 볼 수 있는 건 부분일 따름인걸요. 그렇지만 반드시 그런 그의 모습을 받아들이는 어느 누군가에게는 그게 최선이에요. 그 누군가에게는 자신이 받아들이는 전체의 편린이 그의 전체예요. 어둠 속에서 빛나는 공간만이 어느 존재에게 있어서 오롯한 세계이듯이, 그리고 단수인 핸이 저에게 있어서 전체이듯이!”

핸드레이크는 귀청을 울리는 높은 소리에 잠시 놀랐고, 뒤이어 그녀의 인식이 이만큼이나 변했음에 다시 놀랐다. 하지만 곧 그는 알아차렸다. 분명히 다레니안은 변했지만 그 동시에 변하지 않았다. 그는 씁쓸한 감정을 느끼며 나직하게 말하기 시작했다.

“당신 말도 옳소. 하지만 말이오, 다레니안. 분명히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는 세계도 존재하고 있소. 내가 모자라고 주의를 기울이지 못해 포용하지 못한 많은 의미들이 등잔 밑의 어둠처럼 도사리고 있소. 그래. 우리는 모두가 동굴에 있는 것과 마찬가지요, 밖에서 강한 햇빛이 비쳐와 우리가 동굴 속을 어느 정도 분간할 수 있을지언정 우리가 동굴 전체를 알 수 있는 건 아니오, 또한 그렇기에 우리가 동굴이 불완전하게 존재한다고 생각해야만 하는 건 아니오. 우리가 설령 햇빛이 밖에서 비쳐옴을 지각하고 밖에 해가 존재한다고 인식할지언정 외부세계에 태양만 있을 거라는 보장은 없는 것이오.”

핸드레이크는 잠시 숨을 돌리고 다시 말했다.

“그렇기에 인간은 단수가 아니오. 서로가 받아들일 수 있는 부분은 한정되어있기 때문에 우리 인간은 혼자서는 존재할 수 없소. 그래서 어떤 인간이 완전에 가깝게 존재하기 위해서는 서로 인식을 나누며 살아갈 수 밖에 없는 것이오.”

다레니안의 떨림이 느껴진다. 분명히 단수로서 존재하는 그녀에게는 인간의 이런 정의가 받아들이기 힘든 것이겠지. 하지만 다레니안에게 자신의 죽음을 온전히 인정 받으려면 인간에게서 자신이 온전히 죽을 수 없음을 알려야 한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는 비록 잔인할지언정 다레니안에게 인간의 모습을, 그의 한계를 알려줄 수 밖에 없다.

“나를 다룬 사람들의 노래를 들어 봤소? 나는 분명히 그들에게 신화로서 존재하오. 그리고 그들의 신화적인 믿음은 아직 깨져서는 안되오. 자신의 자유를 가지지 못하고 억압 받으며 살아왔던 그들에게는 분명히 나의 존재가 희망일 것이오. 루트에리노와 내가 그들의 어둠을 밝혀줄 불길일 것이오.”

“그리고 그렇기에 나는 오랜 시간 동안 죽지 못할 것이오. 설령 내가 죽는다고 하더라도 아직 나는 그들의 보육자이자 어버이이니까. 내 자식들은 내가 죽은 뒤로도 오랫동안 홀로 걸어갈 수 없을 테니까.”

핸드레이크는 피로한 눈을 감으며 온 세상을 포용할 것처럼 두 팔을 들어올렸다. 다레니안은 그의 움직임에 다시 날아올라 그의 얼굴 앞으로 이동했다. 다시금 바람이 불어온다. 그리고 가지에서 낙엽이 떨어진다. 낙엽은 떨어져서 해지고 다시 땅으로 돌아가 죽을 테지. 하지만 분명 자신이 완전히 땅으로 돌아가려면 오랜 세월이 있어야 할 것이다. 핸드레이크는 그 사실을 슬프게 자각하며 말을 내뱉었다.

“그러니 내가 죽는다고 하더라도 나의 만가는 불려지지 않는 것이오. 단수로서는 존재할 수 없는 내 자식들이 아직 나에게 기대고 있기에, 아직 그들이 내 인격을 돌려주지 않았기 때문에, 아직 그들이 스스로의 삶의 주인이 아니기 때문에.”

그렇게 말을 마친 핸드레이크는 두 눈을 떴다. 그리고 자신에게 날아오는 다레니안을 보고 깜짝 놀랐다. 두 눈에 눈물을 흠뻑 머금으며 거세게 날아온 다레니안은 이윽고 핸드레이크의 코와 부딪쳤고, 핸드레이크는 즐거운 코의 고통을 느끼며 다레니안을 바라보았다.

“그래도 나는 핸의 만가를 부를 거예요! 내가 살게 될 무한한 시간 동안 당신의 부재를 슬퍼하며 지금과 같이 계속 눈물 흘릴지라도, 나는 당신의 죽음을 받아들일 거에요! 그게 사랑이니까요!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으니까요! 내가 필멸자인 당신을 보내주어야 한다는 것을 몸서리 치도록 깨닫고 있으니까요!”

“그러니까, 지금 죽지 말아요 핸!”

다레니안의 외침을 들으며 핸드레이크는 피식 웃었다. 그리고는 자연스럽게 생각했다.

아아, 그래. 그녀는 너무나도 순진무구하다. 다른 누구가, 심지어 루트에리노가 자신을 보내주지 않을 지라도 그녀는 분명히 자신의 죽음을 진정 슬퍼해 줄 것이다. 그리고 자신은 분명히 이 때문에 페어리퀸을, 작지만 이렇게나 고결한 그녀를 사랑하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윽고 핸드레이크는 미소를 지으며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

“고맙소 다레니안, 내 연인이여.”

약간은 어설프고 급하게 쓴 면도 있지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지난번에 올린 거랑 비교하면서 읽어보시는 것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너무 부탁드리는 건가..)

그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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