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명 : 백상
작품명 : 곤륜삼성
출판사 : 뫼
이번에 다시 곤륜삼성을 읽게 되었다. 나는 백상 선생의 작품을 좋아하는데 그 중에서도 곤륜삼성을 가장 좋아한다. 곤륜삼성은 지금껏 잊혀질만하면 다시 읽곤 하였으므로 한 10번 정도는 읽었던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에 다시 읽게 되었을 때 나에게 재미와 감동을 주었다.
나는 고등학교 시절 소림방장이라는 책을 시작으로 백상 선생의 작품들을 읽게 되었다. 당시 소림방장이라는 작품은 여러 모로 나에게 신선한 충격이었다. 무공의 설명도, 무공의 경지도, 작품이 끝나는 과정도 여타 무협들과는 너무나 달랐던 것이다. 특히 인상 깊었던 것은 등장 인물의 설정이었다. 작품들 속에서 선인이라고 할 만한 인물은 주인공과 주인공과 인연을 맺는 극소수(아마 5명이나 10명 정도)의 인물들에 불과했던 것이다. 그 외의 모든 인물은 탐욕에 찌들거나 악에 물든 인물들이었던 것이다. 그 때 나는 이 작가가 세상을 너무 부정적으로 보는 게 아닌가하고 생각했다. 아직 세상에 때가 묻기 전이라 세상 사람들은 대다수가 선하고 소수의 악인들이 존재한다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세월이 지나감에 따라 백상 선생의 작품들 속에 들어 있는 이야기들이 가벼운 이야기들이 아님을 느끼게 되었다. 지금도 기억나는 대화는 이런 내용이다. 어떤 작품이었는지 다시 찾아보기는 귀찮으나 나의 기억에는 생생하게 살아 있다. 주인공은 아마도 무림 역적의 자제였던 것(아마도 화산 문하가 아닐까?)으로 기억한다. 당시 주인공은 힘을 얻고 난 후 여러 무림의 지배 세력과 충돌하며 지내고 있었다. 이 때 제갈세가의 문주가 주인공에게 충고를 한다. 그 내용은 이런 것이었다. 이 세상을 움직이는 인물들은 선한 것도 아니요, 악한 것도 아니다. 그래서 덕이 필요하다. 세상과 조화를 이루며 사는 것이 현명한 것이다. 이런 이야기는 당시 학생 시절엔 몰랐으나 사회 생활을 하고 세상을 살아보니 덕이라는 것의 중요성을 새삼 깨닫게 되었던 것이다.
백상 소설의 특징은 인물들의 설정이 지극히 현실적이라는 것이다. 악인들은 대 놓고 악을 저지르고 정파의 인물들은 체면 상 드러나지 않게 자신의 욕구를 추구하며 타인에게 해를 끼치고 있었다. 이 얼마나 현실과 흡사한 것인가? 저 적십자조차 피를 팔며 자신들의 배를 채우고 있고 유엔 역시 현실적으로는 강대국들에 의해 좌우되며 강대국들의 이익을 위해 운영되고 있는 것이다. 모든 현실 상의 단체, 인물들은 자신들의 욕구를 위해 암중에서 표면에서 쟁투하고 있는 것이 현실인 것이다.
이 백상의 소설 속의 주인공들은 대체로 선하다. 그리고 모두가 어떤 불가적 깨달음을 얻게 된다. 깨달음을 얻는 과정은 작품마다 다른 편이다. 어떤 글에서는 초월적 존재와 같은 스승 아래 이미 깨달음을 얻고 글이 전개되기도 하고 어떤 글에서는 생명의 위기 아래 깨달음을 얻기도 하고 어떤 글에서는 사랑이라는 동기 아래 깨달음을 얻기도 한다. 하지만 깨달음을 얻고 난 후 결말 부분에 있어서는 대체로 대동소이한 부분이 있다. 즉 주인공이 세상을 구해도 세상 사람들이 모르게 세상을 구한다는 것이다. 곤륜삼성의 결말이 특히 그러한데 주인공 금몽추는 죽은 척하고서 몰래 세외칠선을 제거했던 것이다. 곤륜삼성에서 금몽추는 중반까지 괴짜에 멍청이 같은 취급을 당하고 있었다. 따라서 결말 부분에서 화끈하게 세외칠선을 제거하였다면 독자들의 흥미라는 측면에서는 좀더 만족시킬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백상은 그러한 결말을 피하고 있었다. 이것 역시 백상의 결말 방식 중 하나이다. 만약 금몽추가 세외 칠선을 제거 하였다면 천하는 세외 칠선을 홀로 제거한 금몽추라는 고수를 염두에 두게 되고 불편한 상황이 계속 되었을 것이다. 즉 이러한 결말은 천하를 위해 천하를 구하고도 자신을 숨기는 대인배적 기질을 드러내고자 함이 아니었을까 싶다.
이처럼 백상의 이야기는 하나하나가 언뜻보면 그냥 의미 없어 보이는 이야기일지라도 세상과 비추어 읽어보면 실로 의미가 있고 씁쓸한 부분이 많다. 이러한 의미들은 곤륜삼성에서 작가 후기에서도 나와 있듯이 백상 선생의 의도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즉 백상 선생은 자신의 작품에서 세상의 현실을 담고 그 속에서 때로 덕이나 어떤 인생의 지침(곡선적 무학 또는 깨달음)을 전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 세상은 욕망이 충돌하는 투쟁의 장이다. 여기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백상 선생은 불가적 가르침이나 도가적 가르침, 때로 유가적 가르침을 자신의 작품에 담아 전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리고 백상 선생의 글이 언뜻 보면 모두 같은 작품으로 보나 실로 그 내용들을 보면 모두가 다른 작품이다. 단지 어떤 깨달음을 설정하고 세외 팔선과 같은 존재가 언제나 등장하고 주인공이 그들을 격파한다고 하여 모두 같은 이야기로 폄하한다는 것은 백상 선생의 작품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나 역시 한 때 왜 백상 선생의 작품은 모두 똑같은 이야기인 것일까 하고 오해를 했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고 불경이라든지 철학책들을 접하고 다시 읽어보니 나는 백상 선생의 메시지를 거의 파악하지 못했던 것이다. 현실을 바탕으로 백상 선생의 글들을 읽어 보니 비로소 이 작품들이 전하고자 하는 의미를 대략은 파악하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전에는 같은 이야기라고 생각되었던 것이 실은 전혀 다른 이야기들이었던 것이다. 단지 같은 무공과 같은 깨달음, 세외 팔선의 등장이 계속 된다고 하여 같은 이야기로 보는 것은 작품의 내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것이다. 실제로 각 작품들을 음미해보면 주인공이 처한 현실은 작품마다 다르다. 어떤 주인공은 고아로 태어나 스승을 만나 성장하기도 하고 어떤 주인공은 일문의 주인공으로 성장하기도 하고 어떤 주인공은 역적의 아들로 핍박을 받으며 성장하기도 하는 등 주인공의 성장 스토리는 모두 다르다. 그리고 주인공이 깨달음을 얻게 되는 과정도 모두 다르며 주인공과 적들과의 갈등과 결말 부분 역시 모두 다르다. 이것이 백상 소설의 묘미라고도 할 수 있는데 언뜻 보면 모두 똑같아 보이는 주인공이 타고난 성품과 자라난 환경에 따라 다른 모습을 보이며 작품 속에서 활개를 치고 있는 것이다. 아미속가제자에서는 친모가 자식을 죽이려고 하는 극한 상황에 처해 있기도 하는 것이다.
나는 백상의 작품 중에서 이 곤륜삼성을 가장 좋아한다. 히로인이 죽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며 힘이 있으면서도 힘을 드러내지 않고 천하를 위하는 개그 케릭터처럼 보이기도 하는 금몽추가 좋았던 것이다. 그리고 곤륜삼성 마지막 부분의 남궁가기의 독백 부분은 그야말로 묘사가 절절하여 나의 심금을 울리기도 하였다. 백상 선생의 묘사와 문체 글재주에 대해서도 이야기 하고 싶긴 하나 이미 글이 길었고 이 부분은 나의 공력이 부족하여 제대로 표현할 수 있을지가 의문이라 다음을 기약해보고자 한다.
이처럼 백상 선생의 각 작품들은 언뜻 보면 비슷해보이나 실제론 다른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백상 선생께서 곤륜삼성 후기에서 밝혔듯이 언뜻 보면 비슷해보이는 이야기라도 세상 사는 이야기들을 질박하게 담고자 하셨던 것이다. 나는 백상 선생의 이야기들을 참으로 좋아한다. 그 안에 담긴 메시지가 좋고 모든 것을 포용하려는 주인공이 때로 마음에 들지 않긴 하나 그래도 좋아하는 편이다. 전에 문피아에서 어떤 독자분이 말했던가, 백상 선생의 이야기는 어른들을 위한 동화라고. 나는 백상 선생의 이야기는 어른들을 위한 동화이면서 인생을 보는 거울이며 인생을 항해하는 지침서라고 평가하고 싶다. 여기에 더해 불가적 안목을 가진 분들한테는 불가의 깨달음을 담은 구도 소설이라고 말하고 싶다.
백상 선생께서 지존만리행을 마치지 못한 채 편찮으신 걸로 알고 있다. 이 감상문을 적은 이유는 백상 선생을 올바르게 이해하고 백상 선생의 작품이 좀 더 널리 읽혀 백상 선생의 다음 작품을 읽고 싶어하는 나의 욕망을 위한 것이다. 백상 선생의 작품들을 읽은 것은 나의 인생에서 소중한 한 부분이 되었으니 이 지면을 통해 백상 선생께 감사의 말씀을 올린다. 그리고 백상 선생이 쾌차하시고 그의 이야기가 널리 읽혀 다음 작품을 보게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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