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황제의 검
작가 : 임무성
출판사 : 북박스
벌써 나온지 10년이 넘은 작품이지만, 지금까지 본 중에서 가장 독특하고
개성적인 무협 판타지로 기억하는 작품입니다.
원래 무협의 시초는 중국에서 시작되었기 때문에 유, 불, 도교의 사상이
중국의 고유한 문화, 역사관 속에 투영되서 무협지가 탄생하죠.
중국 무협의 대가 김용, 와룡생, 와룡강 등의 무협이 50년대 등장했고
한국에도 소개되면서 중국을 무대로 하는 무협 문학이 한국에도 자리잡게
됩니다.
그래서, 한국인들은 생전 듣지도 보지도 못한 소림파, 무당파, 화산파 등의
정파와 무공에 대해서 읽으며 열광했죠.
그런데, 2000년대 초반 한국에서 오리엔탈 무협 판타지라는 장르가 최초로
등장합니다. 중국의 무협에다 서구 판타지를 퓨전한 문학 장르인데 대표적인
작품이 바로 황제의 검과 묵향이었죠.
저는 작가의 사상과 철학, 세계관의 독특성과 문학적 가치면에서 황제의 검을
오리엔탈 판타지의 최고봉이라고 봅니다.
작품은 1~2부, 전혀 다른 편인 3부로 나뉘는데 구성은
1부가 명나라 시대의 중원
2부는 중원을 넘어서 중앙 아시아, 유럽까지 연결되는 세계관이죠.
1부는 흔히 아는 데로 전형적인 중국의 무협 장르의 재미가 넘치고
2부에서 중국을 침략해서 정복하는 서구 판타지가 등장하면서 색다른
감흥을 줍니다.
난데없이 중국에 등장해서 가공한 힘으로 중원 무림을 초토화시키고
정복하는 서구 판타지의 영웅, 괴수들이라니...정말 특이했죠.
작가는 침례교 목사출신으로 기독교, 불교, 유교, 도교 등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뛰어난 문장력으로 중화주의 사상의 중국과 구별된 한국식의
오리엔탈 무협을 창조하는데 성공합니다.
상대적으로 1부에 비해 난해하고 철학적이라서 인기가 적은 2부에는
기독교 사상과 철학이 나옵니다.
메타트론, 수호자, 아퀴나스, 케플러 등의 서구 판타지, 철학 사상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통해 새로운 무협 판타지 장르를 창조했다는 건 대단한 거죠.
서구 사상과 철학에 대한 깊은 이해와 지식이 없다면 창조가 불가능하니까요!
중화주의 일색인 중국 무협과 달리 작가인 임무성 씨는 동서양 전체를 아우르는
한국식 오리엔탈 판타지를 최초로 창조한 거죠.
그가 쓴 작품에는 현대의 세계관이 투영되서 더한 개연성과 설득력을 가집니다.
유교, 불교, 도교가 지배하던 아시아를 서구 제국이 침공하면서 기존의 종교와
가치관이 붕괴되고 새로운 서구식 기독교 가치관이 지배하고 있는 현대의 모습이
작품 속에 잘 투영되었습니다.
1부에서 중원 무림의 절대자로 부상한 파천은 2부에서 서구인들 사이에 끼인 꼴이
된 무력한 아시아인으로 등장하는 편에서 잘 드러납니다.
파랑눈에 금발을 한 서구인들 사이에 꼽사리 낀 아시아인 파천은 구세주의 역할을
수행하죠.
2부는 사실 서구 사상에 대한 지식이 충분하지 못하면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라
상대적으로 잘 알려지 않았고 인기가 적었습니다만...그래도 작가가 최종적으로
주장하고 싶은 결론이 드러나죠.
세상의 종말을 막기 위한 파천 =구세주의 희생이죠. 매트릭스의 네오와 비슷한
개념입니다.
그런데 아쉬운 점은 작가의 문장력과 표현력이 2부에서 현저히 떨어지는 면이 보입니다. 전체적인 스토리의 전개와 복선에서 완성도와 재미가 아쉽죠.
아무래도 전혀 새로운 장르를 개척하면서 드러나는 미성숙함과 조급함이 원인인 거
같습니다. 결말 부분이 아쉬운 데..이건 한국 판타지 문학의 미숙함과 열악한 토대에서
근본이 되는 거 같아요.
판타지 문학에도 서구처럼 공통적인 세계관과 개념이 작가들 사이에 통일되야 하는데,
한국은 아직 그러한 통일성이 없죠.
그래서, 임무성 작가도 2부에서 나름 독자들에게 공감대를 얻기 위해 노력했지만
독자들이 이해하기 힘든 용어와 개념의 나열만으로 그칩니다.
제 자신도 충분한 배경지식이 없는지라 작가의 근본 취지에 대해 충분한 감상을 충분히 쓰기는 힘들지만, 적어도 임무성 씨가 중국 무협과 전혀 다른 한국식의 오리엔탈 무협의 창조자란 공적은 인정합니다.
비록 그의 문학 세계와 사상이 대중적인 이해와 인기를 충분히 얻은 건 아니지만
한국 최초의 동서양 퓨전의 판타지 장르를 창조했다는 점에서...과장을 조금 보태자면
반지의 제왕의 작가인 톨킨에 비길만한 업적을 이룩했다고 봅니다.
아직 한국의 판타지 문학의 발전과 토대가 미약해서 현재까지 그 업적을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지만, 임무성 작가의 오리엔탈 판타지는 한국만의 고유한 판타지 문학이라 평가받아야 마땅합니다!
세계 문학계에 한국만의 고유 오리엔탈 판타지물로써 내세울 만한 작품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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