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명 : 이사카 코타로
작품명 : 마왕
출판사 : 웅진지식하우스
초능력자 형제와 파시스트 정치가의 어이없고 진지한 대결
<사신 치바>, <중력 삐에로>의 작가 이사카 고타로의 장편소설. 복화술의 초능력을 가진 형과 미치도록 운이 좋은 동생이 생각없는 세상에 홀로 맞서는 이야기를 그려내고 있다.
텔레비전과 인터넷 앞에 멍하니 앉아 있는 젊은이들과 자기변명에만 급급한 어른들, 우르르 휩쓸려 다니는 세상에 카리스마를 가진 정치인 이누카이가 혜성처럼 등장한다. 사람들은 그에게 동조하며 스스로 생각하지 않고 흐름에 휩쓸려 다니고, 그것에 형 안도는 공포를 느끼고, 동생과 함께 어리석은 세상에 대항하는데….
이 책은 파시즘과 민족주의라는 무거운 주제를 다루면서도, 작가 특유의 독특한 주인공들이 만드는 기발한 유머와 엉뚱한 상상력으로 유쾌한 분위기를 잃지 않는다. 어리석은 군중에게 '생각하라'는 문제의식을 던져주면서도, 작가의 다른 작품인 <사신 치바>의 주인공을 등장시키는 등 재미와 유머를 함께 선사하고 있다.
-------------------------------------------
- "엉터라리도 좋으니까 자신의 생각을 믿고 대결해 간다면, 그렇게 하면, 세상이 바뀐다."
- 컴퓨터 앞에서 일어섰다. 인터넷의 어느 페이지를 보건, 익명이고 실명이고 가릴 것 없이 이 건에 대한 의견과 갖은 욕설이 난무할 것임에 틀림없다. 단 한 사람의 미국인과도 이야기를 섞어 본 적이 없는 젊은이들이 "미국은" 하며 시건방지게 떠들어대고, 컴퓨터로만 얻은 정보를 근거로 "뭘 모르시는군" 하며 거들먹거리고 있을 테지.
- 이누카이는 명쾌한 말투로 다시 한 번 카메라를 응시하더니 "제군" 하며 말에 힘을 줬다. 그리고 쓰읍 하고 숨을 들이쉬더니 나무둥치에 뚫린 구멍처럼 보이는 눈을 이쪽으로 향하고 이렇게 잘라 말했다.
"나를 믿지 마세요. 잘 생각하십시오. 그리고 선택하세요."
당신들이 하고 있는 것은 검색이지 사색이 아니라는 말도 덧붙였다.
-"형은 지지 않았어. 달아나지 않았어. 그러니까 나도 지고 싶지 않아. 무진장 큰 규모의 홍수가 났을 때, 그래도 나는 물에 휩쓸려가지 않고 언제까지고 꿈쩍도 않고 서 있는 한 그루 나무가 되고 싶어."
------------------------------------
이사카 코타로의 '마왕'을 막 다 읽었습니다.
처음 '마왕'을 알게 된 것은 만화책이었습니다. '마왕 - 쥬브나일 리믹스'라는 제목으로 만화책이 한국에 4권까지 나왔습니다만, 전 원작이 라이트노벨인줄 알고 있었는데, 일반 소설이더군요;; 원작이 있다는 소리를 듣고 도서관에서 빌려서 읽었습니다만, 만화책과는 상당히 다른 이야기였습니다. 애초에, 만화책 부제인 '쥬브나일 리믹스'는, 주인공들을 10대로 교체하였다는 뜻이더군요. 원작의 주인공 형제는 회사원입니다.
이 소설의 대략적인 내용은 이렇습니다. '복화술'과 '1/10 안의 행운'이라는, 초능력이라 보기에는 너무도 보잘것 없는 '신비한 힘'을 가진 형제가, 이누카이라는 이름을 단 파시즘에 대항하는 이야기입니다.
형 안도의 이야기를 읽을때에는 읽는 내내 전율이 몸을 달렸습니다. 단 한사람의 말에 이끌려 분노하고, 분위기에 휩쓸리는 '대중'의 모습은 우리나라에서도 충분히 찾아 볼 수 있는 것이니까요. 안도의 "생각해, 생각해."라는 말은, 자신에게 하는 것과 동시에 책을 읽고 있는 독자에게도 건내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동생 준야의 이야기에 들어가면, 이야기는 살짝 맥이 빠집니다. 결말도 애매모호하게 끝나지요. 형의 의지를 이어받은 준야는 어느날 닥쳐 올지도 모르는 '홍수'에 대항하기 위해, 자신의 능력으로 힘을 비축합니다. 그 결말이 붉은 황야가 될지, 푸르른 창공이 될 지 이 소설은 알려주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쉽게 결말 지을 수 없는 이야기겠지요. 이 대결은 소설 속에서도, 현실 속에서도 현재 진행형이니까요.
만화책도 재밌게 읽고 있는 편이긴 하지만, 대략적인 구도를 제외한 많은 부분이 차이가 납니다. 애초에 만화책에서는 직접 안도와 대화를 나누기도 하는 이누카이는, 소설에서는 정면으로 나서는 일조차 없으며, 국가가 아닌 한 도시 규모이기에 좀 더 직접적인 묘사가 많지요. 또한, 가장 직접적인 차이점이라면 만화책에서의 이누카이는 직접적으로 '폭력의 수단'인 '그래스 호퍼'를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로 인해 만화책 쪽이 좀 더 극명하게 선악 구도를 그리고 있습니다만, '이누카이'라는 인물 자체는 그다지 변한 게 없어 보입니다. 단지 그 스케일이 좀 더 커졌다 뿐, 만화책의 이누카이가 성장하여 정치를 하게 된다면, 소설의 이누카이 같아 지겠지요.
다만, 전체적인 묘사 면에서 만화책과 소설은 상당히 다른 분위기를 가지고 있습니다. 만화책에서 안도가 저항하는 것은 '파시즘'이라기 보다는 '이누카이' 자체란 느낌이 조금 강하지요. 안도가 이누카이를 나쁘게 생각하게 된 계기는, 만화책의 경우, '이누카이의 다른 면'을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만, 소설의 경우는 '막연한 두려움과 의문감'이 발단입니다. 개인적으로는 둘 다 마음에 들지만, 만화책 쪽은 소년 만화 적인 느낌이 너무 강해서, 현실과 결부시키기에는 좀 멀어보였습니다만, 소설은 섬찟할 정도였습니다.
그나저나 소설 상의 '전환점'이 된 사건과 비슷한 상황이 만화책 4권에 나왔습니다만, 만화책의 안도는 그럭저럭 상황을 모면하더군요. 이렇게 되면 준야의 활약상은 상당히 줄어들게 되지 않을까 하는데; 아마 만화책 쪽은 확실하게 결말이 나겠지요. 좀 더 단순한 이야기 구조를 위한 '쥬브나일 리믹스'일 테니까요.
Comment '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