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명 : 백연
작품명 : 이원연공
출판사 : 뿔미디어
백연의 이원연공 (뒷북)
나이가 조금씩 들다 보니 책을 읽으면서 과연 어떤 책을 재미있다고 느꼈을까 생각해 보니 기억에 남는 책이 별로 없었다. 다들 자기 연령층의 작가를 좋아하기 마련이고 나이가 들수록 눈높이는 높아만 간다. 나이가 들어가면 사실 모든 것이 조금씩 귀찮아진다. 날카로운 감각을 유지하기도 어렵고 재미있었다고 느꼈던 것들이 어느새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간다. 논쟁에 끼여들 마음도 생기지 않는다. 나이가 든다는 게 그런 것 같아서 슬프기도 하다.
사실 장르문학이 관여하고 있는 그 어떤 문화 컨텐츠라도 만고불변의 진리가 한가지 있다. 내가 한 말이 아니고 내가 싫어하는 질질 짜는 한국 드라마 좋아하는 아줌마들이 하는 얘기다. 유치해야 재밋다는 거다. 물론 유치의 수준에도 레벨이 있다.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사랑 얘기는 유치빤스다. 그런데 사람들은 정신 못차리고 빠져든다. 물론 그 유치는 사람 사이의 관계를 깊이 파고든 유치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감정의 흐름을 잘 파고들 수 있어야 한다. 독자가 주인공의 감정에 동화될수록 그 이야기는 재미있어진다. 같은 연령층의 작가가 쉽게 땡기는 이유이다. 비평과 격찬이 넷상에서 난무하지만 실상 도서 판매량과는 크게 다르다고 한다. 이유가 뭘까? 출판시장을 좌우하고 있는 독자층이 문제일게다. 나이가 들어가면 무협지가 아무리 재밋어도 애들 틈바구니에 끼여서 그걸 빌리러 대여점에 간다는 건 생각하기가 어렵다. 물론 책을 읽을 시간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작가들은 어려운 이야기(빡빡한 설정 나열은 안된다)를 쉽게 풀 줄 알아야 한다. 복잡한 이야기(복선없는 꽈배기도 안된다)를 재미있게 구성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분명한 것은 이야기 속에 정서(메마른 감수성에 비를 좀 내려달라)를 잘 다져 넣을 수 있어야 한다. 이원연공이 기억에 남았던 게 그거 아닐까 싶다. 남사스럽게도 나는 이원연공을 읽으면서 제법 눈물을 찔금거렸다. 이원연공의 스토리는 벌써 대충 까먹었지만 흘러내렸던 눈물 속에서 느꼈던 감동의 여운이 백연을 기억하게 해주는 것 같다.
김용도 마찬가지다. 거의 외울만큼 읽고 논문을 쓸 수 있을 정도로 깊이 분석했던 그의 작품들도 세월이 오래 지나니까 내용은 가물거린다. 하지만 거기서 잊혀지지 않는 것들이 있다. 그건 그의 작품을 읽으면서 느꼈던 호연지기와 통분함과 같은 짙은 인간적인 감정들이다. 그런 부분의 장면들은 잊혀졌다가도 어던 계기를 타고 생각 속에 다시금 살아난다. 호국충정과 대인대용의 곽정, 정이란 무엇이길래 생사를 가늠하느뇨?라는 아련한 시구, 자신의 가슴에 화살을 박아넣고 죽을 수 밖에 없었던 소봉, 나열하자면 끝이 없을 것 같다.
최근 작품들을 보면 대부분 긴장감이 없다. 이야기는 클라이막스에 이르기 전까지는 일정 부분은 숨겨지는 부분이 존재하고 그로 인해 독자를 긴가민가 궁금하게 만들어야 한다. 다음장 내용이 뻔히 보이는데 책장을 넘길 수 있다는 것은 필력이 좋아서 땜방질하는 것이지 두번은 안 통한다. 긴장감이 없다는 것은 구성이 너무 단순하다는 것이다. 이 구성은 사건을 둘러싸고 있는 인물들간의 긴장관계를 말하는 것이다.
너무 복잡하고 어렵게 생각할 것 없다. 사조영웅전의 끝자락에 보면 곽정이 화산에 올라 절애의 고도 앞에서 황용과 옥신각신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 장면을 보면 정말 남자 입장에서 곽정이 등신 같아서 열불이 난다. 오래된 기억 속에서도 곽정이 그냥 확 뛰어 내려버렸으면 했던 생각을 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혹시라도 이 글에 조금이라도 공감하는 작가가 있다면 사조영웅전을 처음부터 차분히 읽고 지적한 장면에 가보기를 삼가 부탁드린다. 왜냐면 저 장면은 정말 아무것도 아닌 남녀간의 티격태격이지만 실제로 독자의 가슴에 미치는 임팩트는 작지 않기 때문이다. 저런 사소한 장면들이 쌓여서 인물이 살아나게 되는 것이다. (왜 저런 장면에까지 이를 수 있었는가를 살펴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이원연공도 끊을 수 없는 사제지간의 정을 주책스럽게도 잘 표현하고 있다.
이와 같이 내 마음을 부드럽고 격렬하게 흔들어 줄 작품과 늘 만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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