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명 : 김강현
작품명 : 마신 1~5
출판사 :
이 작품은 먼치킨이다. 더 이상 없을 정도의 초초초초초 먼치킨이랄까. 사실 먼치킨에 그다지 흥미가 없어서 많은 추천글에도 불구하고 손도 대지 않았지만, 변덕이랄까 그 근처의 뭔가가 발동해서 읽어봤다. 어라, 나름 볼만 하다.
먼치킨을 싫어하는 이유는 그들의 상당수가 「힘에 취해서」 날뛰기 때문이다. 소설 속의 악당들만 힘에 홀리는 게 아니다. 주인공들이 그런 경향을 나타내는 경우도 상당히 많다. 힘에 푹 빠져서 힘 있으니 자기가 최고인 줄 알고, 강하니까 자기가 진리인 줄 알고, 말로는 정의 운운 하지만 일단 폭력이 먼저 나가는... 이런 것이 내가 먼치킨물을 싫어하는 원인이다.
마신이 더 없이 극단적인 먼치킨인 것은 사실이지만, 그래도 깽판물은 아니다. 그는 나름의 행동원리를 갖고 있고, 힘에 취하지도 않고, 힘을 진리로 받들어 모시거나 힘의 정의로 타인을 심판하거나 하지 않는다. 그의 힘은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서, 그리고 친인들을 지키기 위해서 사용된다.
일단 이렇게 개념을 탑재하고 나면 먼치킨의 장점이 제대로 발휘될 기반이 마련된 것이다. 미소녀가 위험할 때 수십 수백 킬로미터의 거리를 뛰어넘어 구해주는 주인공은 먼치킨이라도 멋있다. 누구나 위험하다 고개 저을 때 번개 몇방 떨어뜨려서 아무렇지도 않게 해결해버리는 모습은 짜릿한 맛이 있다. 힘의 방향성이 엇나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소설은 기존 무협에서처럼 강자들과의 혈투라던가, 무림세력간의 암투 같은 것에 주안점을 두고 읽어서는 안된다. 어차피 주인공이 제일 세다. 킹왕짱 세다. 그 어떤 강자도 주인공 앞에서는 번갯불의 표적일 뿐이고, 어떤 거대세력도 숫자에 불과하다. 그러니 의미가 없다.
마신은 오랜 세월 마계에서 굴러먹어 인성이 많이 사라진 주인공이 사람들을 만나 점점 인간다움을 되찾아 가는 과정을 즐기는 글이다. 그 와중에 킹왕짱 센 힘으로 좋아하는 이들을 지켜주고, 친한 이들을 강하게 만들어주며, 스스로도 점점 발전해 가는 그를 보며 재미를 찾는 소설이다.
주인공이 최강인 건 기정사실이다. 어떤 강적도 번개 번쩍 하면 쪼개지는 거다.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어도 순간이동으로 날아온다. 그러니 불안해 할 것 아무것도 없다. 마음 편하게 먹고 느긋하게 즐기면서 읽으면 된다. 긴박한 스릴은 없지만 가볍게 읽을 수 있으니 나름의 장점이 있다. 거기에 미소녀들이 줄줄이 나오니까 그 화사한 분위기를 만끽하는 것이다.
할렘틱한 분위기를 비판하는 목소리도 많다. 뭐, 노리고 쓴 것은 맞는 것 같다. 뭔가 일이 있으면 어김없이 이쁜 여자가 나온다. 그리고 주인공을 따라다닌다. 정도의 차이는 있더라도, 대략 한명의 예외(빙란 모용설)를 제외하고는 모조리 주인공에게 헤롱헤롱이다.
어느 정도 여성 캐릭터들에게 개성을 부여하고 있기는 하지만 적절한 할렘 조성을 위한 수준일 뿐, 깊이 있는 감정 묘사는 보이지 않는다. 조설연을 제외한 나머지 대다수의 여인네들이 주인공에게 끌리는 과정은 매우 단순하다. 무뚝뚝하여 자기에게 관심을 가지지 않는 주인공에게 반발심을 느끼고, 거기에 뭔가 있어보이니 호기심을 품고, 그러다 엄청 강한 무력에 매료되어 따라다니다보니 어느새 마음이 깊어졌다 정도의 것이다.
모든 강아지가 미친듯 따르는 아이가 무뚝뚝한 강아지를 보고 어라 이놈 봐라 하고 호기심을 느껴 계속 꼬시고, 그러다 알고 보니 그 퉁명스런 강아지는 재주도 엄청 잘 부리고 무지 비싼 품종이라 뿅 가는거랑 다를 바 없다. 강렬한 로맨스나 애절한 연심, 은은한 정교 같은 것을 기대하면 안된다는 거다. 그냥 할렘이다.
하지만 말은 그리 해도, 역시 꽃이 만발하는 건 나쁘지 않다. 딱히 주인공이 여성들에게 하악하악 거리는 것도 아니고, 갈팡질팡 세다리 네다리 걸치는 것도 아니니까. 요즘은 무협이나 판타지에서도 일부일처제를 선호하는 독자가 꽤 있는 것 같지만 난 전혀 아니다. 일대일도 좋고 일대다수도 좋고 다수대다수도 오케이다. 재미만 있으면 그런거 신경 안쓴다.
전투묘사는 너무 단순한 면이 있긴 하다. 워낙 무력차이가 심하다보니 그럴 수 밖에 없지만. 그래도 읽기 전에 걱정한 것보다는 다채로운 묘사가 있어서 나름대로 전투를 즐길 수 있었다. 긴장감 제로이긴 해도, 먼치킨은 먼치킨 나름대로의 맛이 있는 법.
먼치킨에 할렘물이라는 두 단어로 마신을 다 표현하기엔 무리가 있다. 이제까지 그 두 단어 때문에 읽지 않은 내가 할 말은 아닌 것 같긴 해도. 일반적으로 무협에 기대할 수 있는 것과는 조금 다른 재미를 제공하긴 하지만, 읽어볼 만한 글인 것 같다. 물론 먼치킨은 곧죽어도 못읽겠다는 분이나 일부일처제가 아니면 책을 태워버리고 싶은 사람은 접근금지다.
http://blog.naver.com/serpent/110022982696
Comment '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