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명 : 강승환
작품명 : 열왕대전기 1-6권
출판사 : 로크미디어
책방에 항상 꽂혀있었다.
한번도 빼본 적이 없다. 제목이 맘에 안들어서.
그러다 몇몇 추천글이 눈에 들어와서 보기로 했다.
1권만 빌렸다. 1시간만에 다 보고,
6권까지 모두 빌려서 그날 다 읽었다.
첨에 주인공이 병에 무진장 고생한다.
온갖 방법 다 써보고 기공이니 선도니 하는 데까지 손을 뻗다가
헤롱헤롱 거리던 와중에 사고로 이계로 뚝 떨어진다.
매우 평범한 이계진입물의 도입부라 하겠다.
이계로 왔더니 밀림 속이고,
마나가 더 풍부하니 어쩌니 해서 내공 축적 속도가
빨라지는 것은 이미 이계진입물의 단골손님이랄 수 있다.
이까지 읽고는 솔직히 좀 실망을 했다.
그러나, 여기서부터 열왕대전기의 장점이 드러난다.
주인공은 책을 아주 많이 읽은 것으로 나온다.
단학 쪽으로도 깊이 파고 들었다는 설정이다.
그래서 그런지, 주인공이 내공을 쌓는 과정이
굉장히 섬세하게 그려진다.
마나가 많았다, 그래서 많이 쌓았다, 졸라 쎄졌다.
이런 단순무식묘사가 아닌 것이다.
이런 장점은 열왕대전기 전체에 걸쳐 나타난다.
지구의 중세에 대한 자료수집을 많이 하고,
그것을 적절히 판타지 세계에 도입해서 현실성을 확보하고 있다.
세븐메이지와 비교해보자.
'마법'이라는 커다란 변혁을 가져올 도구가
정치, 경제, 사회, 군사면에서 어떤 영향을 줄 것인지
깊이 고찰해서 나름의 세계를 꾸며낸 것이 세븐메이지다.
매우 현실적인, 그러나 독창적인 세계를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반면에 열왕대전기는 그런 면은 많이 보이지 않는다.
이 세계에도 마법이 존재하고 소드마스터가 존재하지만,
그런 판타지적 요소가 문화 전반에
미친 영향에 대한 고찰은 부족하다.
그저 중세의 생활상을 그대로 차용한 면이 많이 보인다.
그러나, 그것이 단점이 될 수는 없다.
열왕대전기의 인물들은 철저하게 그들에게 주어진 가치관,
즉 '중세'의 관념에 따라 행동한다.
그리고 주인공은 당연히 현세의 가치관에 따라 행동한다.
열왕대전기에서는 이 두 관점의 충돌을
정말 생생히 그려내고 있다.
그리하여 주인공이 어떻게 고뇌하고,
주변을 변화시키거나 혹은 받아들이는지,
또 주변인물들은 어떻게 주인공 카르마의 사상을 받아들이는지,
그러한 충돌과 변화의 과정이 깊이 묘사되고 있다.
이런 점도 대단하지만,
주인공인 카르마의 카리스마도 참 대단하다.
수많은 멋지구리한 무기들을 놔두고
주무기로 선택한 게 슬링이란 것도 재밌고(나중엔 칼을 들지만),
조금씩 조금씩 강해지는 모습은 대리만족 점수를 높여준다.
이런 소설에서 주인공이 약하고 찌질해선 곤란하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나 졸라세' 이런 캐릭도 싫다.
강함 자체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 과정을 납득할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
작가는 치밀한 설정을 바탕으로 친절하게 설명을 해주며
그 과정이 꽤나 신기하고 재밌어서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열왕대전기는 후반으로 진행되면 영지물의 성격을 띠게 된다.
꽤나 전형적인 세팅이 나온다.
위험하지만 자원이 풍부한 어둠의 숲,
풍요로운 라이벌 영지, 철이 나오는 광산,
영지를 위협하는 유목민족 비스무레한 애들, 등등.
여기서 숲은 개간하는 게 정석이며
라이벌 영지는 꿀꺽 삼키는 게 정석이고
광산에선 미스릴이 나와야 정석일 것이다.
미스릴은 안나오지만 나름 정석은 따르고 있다.
그치만 여기서도 열왕대전기의 장점이 발휘된다.
카르마가 영지의 여러 문제를 해결하고 발전시키는 과정에서
여기저기 발견되는 너무나 현실적인 모습은
감탄사가 절로 나오게 한다.
밭의 수확량을 도표로 정리해서 문제점을 발견하는 모습,
대지성사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바뀌어가는 과정,
두 대립하는 종교의 교도들이 조금씩 조금씩 서로 화합하는 모습,
큰 은혜를 입었음에도 배은망덕한 짓을 저지를 수 밖에 없었던
사교(?) 교도들의 마음, 신전과의 갈등, 기사들의 내부갈등,
옆 영지와의 다툼과 흡수통합 과정, 숲 개간의 방식 등등....
어떻게 보면 사소하게 넘어갈 수 있는 각 요소들에
최대한 신경쓰고 현실성을 부여하고,
각자 의지를 가진 존재임을 보여주는, 그런 진행이었다.
어찌나 생생하고 재밌던지 영지물이라면 학을 떼는 나로서도
너무나 즐겁게 보았다. 스펠바인더 이후로 처음이다.
게다가 중간중간 강렬한 임펙트를 넣어주어 지루할 새가 없다.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들어하는 캐릭터인 '황제'가
병상에서 일어나 최초로 대신들 앞에서 식사하는 장면....
최고였다.-_-b
카리스마 황제란 이런 놈이 아니겠는가.
정말 간만에 만족스러운 작품이었다.
주저리주저리 많이 써놨지만
한마디로 표현하면 '몰입도가 높다' 이거다.
작품 속으로 풍덩 빠져서 즐겁게 헤엄치다 나오면
어느새 6권 마지막이다.
현실성이니 개연성에 목 메는 나같은 사람이나,
주인공이 강한 것, 강해지는 것을 좋아하는 분들,
영지물을 좋아라 하는 분들, 이런 모든 분들을
만족시킬 만한 그런 글이었다.
정말 간만에 만난 별 4.5개짜리 소설이다.
강력추천을 해본다.
http://blog.naver.com/serpent/110019783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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