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사랑용(김용)
제목:신조협려
출판사:김영사
오랜만에 감상란에 글을 써봅니다. 혹시나 왜 신조협려가 로맨스이냐..라고 말하시는 분이 계실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제 생각에 동의하실분들도 꽤 있을것이라고 생각됩니다.
과연 신조협려를 단순히 무협소설로만 볼수가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된건 제가 20대가 됐을때부터입니다.10대초반에 고려원에서 나온 영웅문을 접하게 됐을때부터 지금까지 김용소설 14편을 최하 두세번씩은 읽었습니다.특히 영웅문2부인 신조협려는 5,6번정도 읽은거 같습니다.최근에 김영사에서 2003년도에 나온 정식계약본인 신조협려를 다시 읽게 되었습니다.사조영웅전부터 다시 읽었습니다만...솔직히 사조영웅전은 예전의 감동을 다시 느낄수가 없었습니다.사조영웅전같은 경우는 10대후반에 마지막으로 읽고 거의 10년만에 다시 읽게 된것이었습니다만....예전의 그 흥미와 감동을 느끼기가 어려웠습니다. 곽정이 "大俠"이 되어가는 과정이 예전만큼 와닿지가 않았습니다.호연지기가 느껴지는것도 아니었고..밋밋한 구성에 어설픈 무공묘사에 특히 김용소설의 최대강점이었던 주인공으로의 감정이입이 이루어지지가 않아서 완독하는데 꽤 시간이 걸렸습니다. 더욱 걸림돌이 되었던것은 이번에 정식계약판은 번역도 새로 했는데 이 번역이 말그대로 순수하게 토시 하나 안틀리고 충실하게 원문번역을 한것이라 예전 고려원에서 나온거에 비해서 문장이 좀 어색하게 느껴지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다 읽고나서 2부를 볼까말까 고민을 좀 했습니다. 혹시 2부를 읽고 나서도 실망을 하게 될까봐서입니다. 한국의 명작가들의 무협에 너무나 젖어있어서 김용의 武에 대한 묘사와 서술이 너무나 식상하고 단순해 보인게 가장 큰 이유였습니다.특히 너무나 낮은 무공수위하며 갑작스럽고(단 몇개월만의) 말도안되는 논리의 주인공의 무술실력의 상승등...암튼간에 고민을 하다가 신조협려를 다시 집어들게 되었습니다.결론은...오랜만에 본 "신조협려"는 무협소설이 아니다. 신조협려는 "로맨스 소설"이다 라는 것입니다.
신조협려(神雕俠侶)란 제목의 풀이를 해보면 신조(여기서 조는 새"조"가 아니라 독수리"조"입니다.)와 협(양과)그리고 려(평생의 반려자인 소용녀)..합쳐서 신조와 양과와 소용녀인것입니다.
신조는 단지 양과의 분신이라고 생각하면 될거 같습니다.소용녀에 비해 양과를 좀더 강조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싶습니다.결국 이 신조협려는 양과와 소용녀의 이야기인것입니다.
좀더 자세하게 말하자면 양과와 소용녀의 하늘도 갈라놓지 못하는 "사랑 이야기"입니다.이 소설을 읽으면서 다시 한번 찬탄에 찬탄을 금치 못한것은 이게 1959년도에 쓰여졌다는 것이 첫째이며,둘째는 어떻게 이렇게 인간의 심리묘사를 치밀하게 할수가 있을까입니다. 이 소설뿐만 아니라 다른 김용의 무협도 인간의 탁월한 심리묘사와 탄탄한 스토리가 최대의 장점이긴 합니다만...신조협려를 읽으면서 다시 한번 느꼈습니다.
물론 다른 소설들..예를 들면 의천도룡기나 천룡팔부나 벽혈검 비호외전등에도 사랑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아니..녹정기를 제외하면 모든 김용소설을 꿰뚫고 있는 것은 바로 "情"인거 같기도 합니다. 하지만 제가 유독 신조협려를 최고의 무협로맨스라고 칭한건 고전에서 나오는 최고의 러브스토리 라인을 그대로 따라가는 숨막힐듯한 사랑이야기가 나오기때문입니다.
마치 로미오와 줄리엣처럼 그들의 사랑을 방해하는 온갖것들이 나옵니다. 양과는 소용녀와 만나는 순간부터 세상과 싸우기 시작합니다. 로미오와 줄리엣이 단순히 양가집안의 문제였다면 양과와 소용녀는 그 당시 지배적인 도덕규범,풍속,관습과 싸웠던 것입니다. 현대로 치면 동성(同姓)간의 결혼이 겪는 사회의 눈초리와 비슷할것입니다.(네델란드는 비롯해 몇몇나라들만 인정하고 있죠.) 아니..어쩌면 그 이상일수도 있습니다. 부모와 자식간의 결혼...그 시대에는 그정도까지로도 볼수 있는 행태를 양과와 소용녀가 보인것입니다. 둘의 시련은 실로 상상을 초월합니다. 현대 한국무협에서도 찾아보기 힘들정도의 플롯을 가지고 있습니다.
일단 여자 주인공이...그것도 정말 청순하며 순수하며 백옥같이 아름답게 나오던 여자주인공이 강간을 당합니다...수많은 남성 독자들의 가슴을 아프게 만들었던...윤지평(3판에서 이름이 바껴서 나옵니다.실존인물었던 윤지평의 명성에 누가 된다고 김용이 3판부터는 이름을 바꿨다고 합니다.) 의 소용녀 강간씬..물론 나중에 윤지평은 결국 양심에 가책을 느껴 자살하게 되지만....첨에는 저 또한 윤지평 개새끼,소새끼하면서 죽이고 싶었지만..윤지평이 소용녀를 진심으로 사랑한다는걸 알게 되면서 부터 연민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윤지평은 양과 못지않게 소용녀를 사랑했었던 것입니다. 여기서는 이루어질수 없는 사랑이 많이 나옵니다. 윤지평도 그 중 하나였습니다.
두번째의 충격적인 장면은 바로 곽부의 양과 오른팔 절단 사건이었습니다. 여자주인공이 강간당하는것에서 정신이 하나도 없는데 이제 남자주인공이 어처구니없는 년한테 팔을 헌납합니다. 김용의 모든소설의 온갖 캐릭터중 가장 재수없었던 인물인 곽부....아무리 부모가 뛰어나도 교육을 잘못시키면 2세는 "개뇬"가 된다는 전형적인 표본을 보여준 케이스였습니다.
거기서 끝나지 않고 결국 곽부는 양과와 소용녀와 끝장을 보게 됩니다.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소용녀를 결국 죽게 만들죠.(물론 소용녀는 결국은 죽지는 않습니다만..) 양과는 분노에 분노를 거듭하다가 결국은 포기하고 맙니다. 양과의 성격에 운명으로 알고 받아들이기까지 얼마나 힘든지 독자는 알수가 있습니다.
하지만...결국 곽부 또한 사랑의 희생자였던 것이 결말에 밝혀집니다. 곽부는 양과를 사랑했던 것이었죠. 얽히고 섥히는 러브스토리..
양과와 소용녀의 사랑
곽부의 양과에 대한 애정과 증오..양과의 곽부에 대한 증오..
윤지평의 소용녀에 대한 사랑.
정영과 육무쌍 공손녹악 곽양의 양과에 대한 사랑.
이막수의 육문훤에 대한 사랑..
주백통과 영고의 사랑, 그외에도 절정곡 곡주인 공순지나 곽정의 제자인 무씨형제들의 가벼운사랑등 온갖 사랑이야기가 난무합니다. 결국 주제는 사랑이라고 할수 있습니다..
서로를 위해 언제든지 목숨까지 버릴수 있는 그런 지고지순한 사랑..그 사랑이 이루어져가는 과정과 탁월한 연애묘사,감정묘사,그리고 그 둘의 주변인물에 대한 심리변화과정등...무협적인 요소가 아닌 단순히 등장인물들의 심리묘사를 보는것만으로도 정신을 차리기 어려울정도로 빠지게 만드는 무협소설이 바로 신조협려인거 같습니다. 제가 이 소설을 읽으면서 잠시 착각을 했던것이..어떻게 김용같은 할아버지가 이렇게 젊은이들의 연애감정을 이렇게 생생하고 절묘하게 표현했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는 것입니다. 김용이 이 소설을 쓸 당시에는 30대중반이었다는것을 망각했던 것이었습니다. 50년이 지난 지금 20대후반인 제가 봐도 감정이입이 될만큼의 사랑이야기...그걸 무협소설에서 볼 수 있다는게 얼마나 행복한지 모르겠습니다. 물론 한국작가였다면 더욱 좋았겠지만 말입니다.
제가 오랜만에 양과가 되어 소용녀와 다시 한번 사랑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양과의 열정적이고 어떻게 보면 다혈질이라고도 할수 있는 그런 성격이 저와도 비슷한거 같아서 더욱더 빠진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마도 양과와 같은 성격이 아니라면 그렇게 한여자를 16년이나 기다린다는게 불가능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황용의 말을 듣고 소용녀가 남해신니를 만나 병을 치료하기 위해서 16년이라는 시간이 걸린다는 말만 믿고 그 긴세월을 견뎌왔는데...결국 그 세월이 흐르고 소용녀가 이미 죽었다는 것을 알고 자살까지 하게 되는..자살을 할때의 그 대사가 정말 가슴에 와닿았습니다.
"용이는 이미 16년 전에 죽었어...그런데 나 혼자 16년을 더 살고 있었으니 이 얼마나 허무한 짓이었나...."
16년동안 양과는 신조대협이라는 명성을 얻게 되었고 무공또한 곽정못지하게 강해지게 됩니다.또한 양과를 사모하는 정영이나 육무쌍과 같은 소용녀 못지 않은 여자들도 있었습니다. 수려한 외모와 활달한 성격과 강한 무공실력으로 인해 얼마든지 행복한 삶을 누릴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양과에게 이 16년이란 세월은 단지 소용녀와 만나기 위한 대기시간이었을 뿐이었던 것입니다.
소용녀가 없는 세월을 살았다는 이유만으로도 불행해지고 허무해지는 인생이라....
사랑을 하고 싶게 만드는 무협소설1위인거 같습니다. 지고지순한 사랑을 다룬 많은 무협소설이 있지만..정말 감동깊게 읽은 무협은 몇편 안되는거 같습니다. 물론 김용의 모든 사랑이야기는 무협이라는 장르를 떠나서 다 공감이 갑니다. 한국무협중에서는 당장 생각나는 정말 공감이 갔던 사랑이야기는 장경님의 "암왕" 과 초우님의 "호위무사" 진산님의 "사천당문,결전전야(사천당문2부)" 정도군요.. 바로 사랑이 주제인 대표적인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천당문같은 경우는..사랑이 무슨 주제냐라고 말씀하시는분들도 계시겠지만..저는 당문주와 무의 사랑을 주제로 봤습니다.
마지막으로 다들 많이 들어보셨을겁니다. 영웅문을 보신분들이라면 누구나 봤을 그 유명한 말....
세상사람들에게 묻노니,
정이란 무엇이길래 이토록
생과 사를 같이하게 한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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