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명 : 햇빛고양이
작품명 : 로망
출판사 : 문피아 정연란
(존댓말로 계속 하기도 뭐해서 반말 비스무리한(?) 언어로 쓰겠사옵니다. 이해를 바라옵니다 (__))
대한민국은 바다로 둘러 쌓여있는 반도국가다.
그래서인지 우리에게 ‘바다’란 참으로 많은 의미를 가지고 있다. 멀리는 통일신라 시대의 장보고가 동아시아의 바다를 장악하였고, 충무공 이순신은 10여척의 배로 200여척의 배를 박살내는 기적과도 같은 해전을 일궈 냈으며, 현재의 우리 나라는 세계 최고의 조선 강국으로 이름을 날리고 있다.
이것은 어쩔 수 없는 반도인의 특징이라 볼 수 있다. 대륙을 향한 열망, 그리고 바다.
그럼에 우리는 우리와 비슷한 환경을 가졌던, 포루투칼과 에스파냐(스페인)의 영광된 시절을 그린 게임 대항해시대 시리즈에 열광하고 드라마 ‘해신’에 빠져 들었으며 만화 원피스의 유쾌한 해적들을 보고 웃고 케러비안의 해적에 박수 갈채를 보낸다.
이런 모든 것들의 중심에 있는 소재는 단연코 해적(海賊)이다.
가히 당시 절대적 지지를 받았던 드라마 해신에서 송일국이 한 역할은 멋들어진 해적이었다. 일본를 비롯한 수많은 나라에서 선풍적 인기를 끌며 아직도 완결되지 않은 만화 원피스는 말 그대로 괴이한(?) 해적의 이야기다. 케러비안의 해적은 제목 자체가 해적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이들 글에 등장하는 해적은 참으로 ‘낭만적인’ 해적이다.
송일국은 해적이었지만 수애를 사랑하는 일편단심으로 무장한 로멘틱한 해적이었고, 윈피스에서의 해적은 사실 해적이라기 보다는 모험가 집단이다. 그리고 케러비안의 해적도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잡설을 여기서에서 멈추고 판타지에서의 해적에 대해 생각을 해보도록 하자.
사실 판타지에서 해적이 나온 것은 참으로 감미로운 고전에서부터 시작된다. 이후 판타지 소설에서 등장하는 거의 모든 해적을 싸그리 그 이미지로 굳히게 만들었던 피터펜의 후크 선장이 그이다. 참으로 지금 생각해도 머릿속에 훤한 그의 이미지! 바로 해적의 상징인 모자와 애꾸눈, 그리고 갈고리 손. 누구나 머릿속에 그릴수 있는 보편성을 가진 이야기의 주인공이 아닌가.
그리고 점점 판타지에서의 해적은 ‘정형화’의 길을 걸어왔다고 생각한다. 주인공이 로멘틱 하고 ‘착한’ ‘모험가형’ 해적이라면 꼭 주인공이 탈퇴(혹은 퇴출)했거나, 혹은 주인공과 적대적인 해적 집단은 매우 잔혹하고 ‘범죄형’ 해적인 경우가 많다.
보물 지도는 필수고, 저주받은 보물이나 끝내주는 보물은 언제나 쟁탈전의 대상이다. 멋들어지고 큰 함선을 몰고 주인공을 쫓아줄 나라의 제독도 필수다.
이것이 해적을 주제로 한 판타지의 필수 요소라면, 유명한 해적물들은 왜 유명해 졌을까? 그것을 나름대로 한번 생각해 보았다.
가장 가장 최근에 영화로 만들어진 케러비안의 해적은 주자사의 딸 엘리자베스 스완을 등장시킴으로서 이러한 식상함에서 벗어났다.
유명한 일본의 만화 & 에니메이션인 ‘원피스’는 악마의 열매라는 것을 소재로 하여 파격을 시도했다.
이제 한국의 판타지 소설로 넘어가 보자. ‘해적’이라는 것을 소재로 한 우리나라 판타지 중에서 단연코 유명한 작품은 저 이름도 존경스러운 이영도 님의 ‘폴라리스 렙소디’가 있다. 감히 본인이 7번이나 읽은 작품이다. 개인적으로 폴라리스 렙소디는 이영도님의 최고 걸작이라고 생각하는 바인데, 그것의 이유중 하나는 그 이야기가 하고자 하는 주제, 그리고 해적이라는 것이 등장 했음에도 전형적인 ‘로멘틱 해적’이 등장하지 않았다는 점이었다(그것은 참으로... 아무리 생각해도 쉽지 않은 일이다.)
키 드레이번은 낭만적인 송일국 같은 해적도, 원피스의 루피 처럼 유쾌한 해적도, 케러비안의 해적의 젝 스페로우 처럼 해적의 욕망을 보이면서도, 결국 친구들을 배신하지 않는 전형성을 보여준 ‘판타지적 해적’도 아니었다. 감히 감상문을 쓰자면 A4지 100장은 써야 할 듯 하여, 또한 이 감상문은 폴라리스 렙소디의 감상문이 아닌 관계로 폴라리스 렙소디에도 ‘뭔가 다른게 있었다’는 말로 끝을 맺도록 하자.
그렇다면, 결코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진부함, 그 살 떨리는 주제 ‘해적’에 대한 이야기를 쓴 햇빛고양이 님의 ‘로망’에 대한 감상을 말해보도록 하자.
해적물이 집필을 하기가 어려운 것은 그 진부함에 있다. 로망을 감상하면서 그 존성대명은 기억하지 못하겠으나(죄송 ^^) 한 동도의 댓글을 보고 고개를 끄덕였었더랬다.
‘이야기가 어떻게 진행 될 줄 뻔히 알면서도 재미 있는 것은 왜일까?’
아마도 이거랑 내용이 좀 다를 것이다. 하지만 뜻은 이랬더랬다. 그렇다. 로망은 참으로 전형적인 해적물 판타지다. 그러나 재미있다. 그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작가님께서는 과감히 ‘젝 스페로우’에서 휠 선장의 이미지를 가져왔다고 고백했고, 세계의 조각을 찾는 나침반 또한 ‘케러비안의 해적 2:망자의 함’에 나왔던 그 문어(..... 이름이 뭔지 알게 뭐냐)의 심장을 가르키는 젝 스페로우의 나침반에서 가져온 것은 확실하다. 휠 선장이 탈퇴(?)한 나쁜 해적집단(으로 보이는)도 등장하고 주인공을 아주 끈덕지게 쫓아줄 군인도 등장하고 교수형을 당할 뻔 하다가 배를 훔치는 장면도 등장한다.
여기에서 멈추면 안 된다. 위에서 우리가 열심히 마구마구 뜯어서 분석했듯이 좋은 해적물에는 뭔가 다른게 있어야 한다. 루피의 ‘고무고무 열매’이든, 폴라리스 랩소디의 ‘일곱가지 나쁜 감정의 악마’와 ‘휘리 노이에스’이든, 송일국이 가졌던 멋들어진 경쟁자와 일편단심 사랑이든, 케러비안의 해적의 ‘레이디 스완’이든.
현재 까지 로망의 그러한 점은 ‘드래곤 라자식 언어유희’였다. 언어유희는 참으로 쓰기 어려운 것이다. 같은 글을 쓰는 입장에서 그것은 참으로 존경스러운 부분이 아닐수 없다. 하지만 이러한 언어유희가 점점 수위가 떨어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은 안타깝기 그지 없는 부분이다.
로망은 참으로 좋은 소설이다. 현재의 로망은 전형적인 해적의 스토리를 재미있게 풀어내는 실력을 가진 작가가 시작한 대모험 이야기의 초반부가 진행되고 있다. 어느 누가 말했던가? ‘최고의 이야기꾼은 별것 아닌 이야기를 재미있게 할 줄 아는 사람이다.’라고. 그런 의미에서 판타지의 걸작 ‘어스시의 마법사’는 참으로 좋은 예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로망이 앞으로 보여줄 ‘뭔가 다른 것’을 기대하는 것은 독자로서의 욕심이다.
‘해적의 로망스’라 했던가. 수많은 사람들을 사로잡는 ‘착한 해적’의 로망스는 분명한 판타지적 코드라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로망’이라는 제목은 참으로 해적에 어울리는 제목이 아닌가.
분명한 것은 ‘로망’이 일독을 권할 만한 작품이라는 것이다. 언젠가는 ‘반드시 봐야 한다’라는 말을 넘어 ‘대작’이라는 말을 듣기를 희망하며.........
가가맬 드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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