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들 아시다시피 이 책은 고무림 신춘무협에서 은상을 수상했습니다.
혈리표랑 같은 상이지요.
처음에는 좀 납득이 가지 않았습니다.
어찌해서 은상까지 수상하게 되었을 까.
보표무적이나 혈리표는 제 자리를 적절하게 찾아간 것 같았으나,
이 책은 애매모호했지요.
상대적으로 감비란에 소개된 빈도도 위의 책들에 비해 떨어집니다.
그런데 마지막권인 6권을 읽다보니 답이 보이는 군요.
이 책은 분명한 자기만의 색깔을 담고 있습니다.
손승윤 류라고 할만한, 글에서 풍기는 독특한 자기만의 향기.
그런게 있네요. 분명히.
다 읽고 나니 아무리 낮게 잡아도 은상의 자격이 충분하다고 생각됩니다.
박력있는 글솜씨로 독자를 사정없이 끌어당기는 혈리표와 달리
천도비화수는 한줄 한줄의 글이 가슴속을 저릿하게 울리면서
서서히 독자의 마음속에 스며듭니다.
예를 들자면, 주인공도 아니며, 한 두 페이지 정도에 등장하는
어느 창녀의 죽음에 대한 묘사 등이 그렇습니다.
"그녀는 가슴 저 안쪽에서 벌떡거리는 자신의 심장을 향해 소도를 박아 넣었다.
퍽! 순간 소도가 튕겨 나왔다. 그녀는 더 깊이 꾸욱- 소도를 박아 넣었다.
뼈를 만나면 살짝 뼈를 헤치고 부드러운 부분으로 박아 넣었다.
마침내 심장에 닿은 소도가 부르르- 떨었다. 그녀는 망설이지 않았다. "
작자는 뭇 사람들이 살아가는 결코 만만하지 않은 현실의 모습들을
과장하거나 축소하지 않고 섬세하고 담담하게 그려나갑니다.
그리고 독자를 전혀 비현실적인 판타지의 세상으로 안내하는게 아니라
기대할게 없는 현실에 지쳐있는 오늘날의 우리들에게
따뜻한 희망을 안겨주기도 합니다.
"거대 악을 뿌리뽑아도 작은 악들은 뿌리뽑히지 않습니다.
언제 어느 때든 벌떡 일어나 선량한 사람을 넘어뜨리고 뒤꿈치를 깨무옵니다. "
"압니다, 그러나 줄어들겠지요.
우리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런 것들이 늘어난다면 우리는 진정 희망없는 일을 하는 것이겠지요.
하지만 줄어들 겁니다. 저는 이 줄어듦에 희망을 가집니다.
한꺼번에, 개벽하듯, 당장, 어느 날 갑자기 세상은 좋아지지 않을 겁니다.
천천히 좋아지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
이 내용이야말로 천도비화수 전체를 통해서 작자가 하고 싶은 말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윗글을 읽으면서 왜 오늘날의 정치판이 떠오를까요.
"먼저 싸움을 걸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싸움이 걸리면 피하지도 않겠습니다.
죽음이 두려워서 옳다는 믿음을 버리는 건 차라리 죽는 것보다 못합니다.
지킬 것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죽겠습니다.
이건 정의나 대의가 아닙니다. 그리 거창하지 않습니다.
제가 옳다고 믿는 바를 향해서 나아가는 겁니다.
상대가 설령 황제라고 해도 이 마음을 꺾을 수 없습니다. "
얼핏 무슨 도덕경 강좌하느냐고 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이런 거야말로 건전한 판타지의 모범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이 고리타분하거나 바른생활만을 강조하는 건 절대 아닙니다.
무협으로서의 읽는 재미를 충분히 바탕으로 하면서도
작자의 살아온 인생의 경험이 자연스럽게 녹아있으니
무협소설로서 이보다 더 좋을 수 있겠습니까.
묘하게도 이 책은 대여점에서 그리 쉽게 눈에 띄지를 않습니다.
하지만 충분히 일독을 권해드릴 만합니다.
차기작을 더욱 기대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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