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이름을 작품이 아닌 다른 경로를 통해 알게 된 경우 선입관이라는 것이 작용하기 마련이다. 녹목목님은 게시판의 글들로 먼저 알게 되었다.
그는 무척 유쾌한 사람이었고 다소 엽기적 이미지로 다가왔다.
여성의 브론즈상 가슴을 어루만지며 삼매경에 빠져 있는 사진을 본 사람이면 누구나 그럴 것이다. ^^
일반연재란에 연재중이고 조회수가 엄청난 작가였지만 한 번 들어가 보곤 읽지 않았다.
10회까지 꾹 참고 읽어보라는 멘트가 보였으나 그냥 나왔다.
대화나 지문 위주로 이루어진 글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개인적 취향 때문에.
글의 첫 도입부는 유려한 상황 설명이 나오는 글을 선호하는 편이다.
첫 장면의 필력이 끝까지 간다고 믿고 있는 고리타분한 독자인지라.
얼마 전 게시판에서 정담을 나누다 그가 나의 댓글에 반응하는 것을 보곤 다시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댓글에 넘어갔기 때문이다. 웃겨서.
묘하게 의표를 찌르는 말이었다.
대단한 감각이란 생각이 들었고 이 사람이 쓰는 글을 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청룡만리"는 대단한 조회수를 자랑하고 있고 작가와 독자들간의 커뮤니케이션도 활발히 이루어지는 작품이다.
댓글들도 무척 유쾌하다.
무척이나 재밌는 엽기 코미디 무협이랄까.
다시 "청룡만리"를 보게 된 이유가 작가의 감각 때문이었고 그 안에 숨겨진 날카로움을 보았는지라 차분히 읽으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유쾌한 작품의 이면에 숨겨진 여러 냉정한 장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작가는 이미 시놉시스는 완결되어 있는 작품이라 주장한다.
아마 그 주장이 맞을 것이라 생각한다.
환타지의 주메뉴인 용이 주인공인 무협이다.
그러면서도 정통 무협을 표방하고 있지만 상당히 설득력 있는 주장이라 본다.
왜 사람이 아닌 용인가!
그저 웃길려고 황당한 설정을 한 것은 아닐 것이다.
사람으로 둔갑해 이야기를 이끄는 용은 전혀 웃기지 않는 캐릭터이기 때문이다.
그의 수하로 나오는 자라가 상당히 엽기적으로 나오지만 그가 인간이 아닌 것을 감안한다면 그리 무리한 설정도 아니다.
자신이 따르는 청룡에게 무례한 인간의 머리채를 뜯어 버리는 것은 인간의 양식으로만 비합리적일 뿐이다.
동물의 시각으론 아무 문제가 없다.
작가는 인간이 아닌 영물의 시각으로 인간 사회를 봄으로써 두 마리 토끼를 잡는다.
의외성을 동반한 신선한 웃음과 인간 사회에 대한 객관적 시각의 확보.
인간의 사회는 작가에게 무척 비판적이며 냉소적 대상이다.
권력을 이용해 자신의 욕망을 관철시키는 사천당문,
수백년간 용의 내단을 탐해 용을 해치려 했던 많은 인간들,
용을 이용해 천하를 제패하려는 마라황성궁...
그러나, 청룡이 본 세상은 나름 더럽고 나름 순수하다.
인간인 항아와의 사랑으로 승천을 주저할만큼 순수한 존재인 용은 친구로 사귄 백호를 통해 우정을 배우고 일행이 된 사람들을 통해 나눔과 용서를 배운다.
작가의 세계관이 투영된 인물은 청룡이 아닐까. (자라라는 이들도 있을지 모른다.^^)
작가가 구사하고 있는 유머라는 포장을 걷어낸 "청룡만리"는 무척 진지한 고민을 끌어가고 있다.
천년을 살아 승천을 앞둔 용은 세상을 관조하는 절대 영물이 아니라 새롭게 인간 세상을 배우는 존재로 그려진다.
삶을 성찰하는 존재인 것이다.
청룡의 앞으로의 행보가 작가의 숨은 의도를 드러내 주리라.
무척이나 발랄한 설정, 엽기적인 전개, 웃음 만방.
실컷 웃는 와중에 문득 생각하게 하고 문득 따뜻하게 하는 것은 놀라운 솜씨라고 생각한다.
문어체를 지양하고 묘사를 거의 배제한 빠른 전개는 요즘 독자들의 구미에도 맞으리라 본다.
"청룡만리"의 가장 큰 장점은 작가의 세계관을 가르치려 하지 않는 것에 있지 않을까.
자연스럽게 웃음을 따라가다 저절로 고개 끄덕이고 흐뭇하게 된다.
출판을 앞두었다고 한다. 활자화되었을 때에도 같은 매력을 발산할 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다소 거친 묘사를 보완하고 독자와의 커뮤니티를 위해 삽입한 장면들을 배제한다면 어떨까.
그러나, 되도록 "청룡만리"의 장점을 살려 나갔으면 싶다.
요즘은 제대로 웃기는 소설을 만나기가 정말 어려우니.
작가는 진지한 이야기라고 주장하는데 아마도 그의 주장이 맞을 것이라 생각한다.
진지하게 본 "청룡만리".
내가 본 것이 사실일지는 작가말고는 모르리라.
물어봐도 알 수 없으리라 생각된다.
여태까지 본 바, 그는 거짓말에도 무척 능통하기 때문에.
엽기스런 녹목목목님은 사실은 굉장히 진지한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망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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