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어김없이 중학교에 교육봉사를 하러 갔습니다. 우체국에 들를 일이 있어서 허겁지겁 우편물 부치고 헐레벌떡 뛰어갔지요. 예.
오늘은 영화 보여주기로 한 날이어서... 영화를 잔뜩 들고 갔습니다.
그런데 애들끼리 다툼이 일어나서... 공포영화를 볼 것인가, 액션영화를 볼 것인가... -_- 썩을 것들.
아무튼 그러다가 투표를 통해 액션영화를 고르니까 공포영화 보자고 하던 애들은 삐져서 교실 바깥으로 나가버리고... 막상 액션영화 보자던 애들은 영화 제대로 보지도 않고 교실 싸돌아다니다가 일찍 보내달라고 징징거리고...
그러면서도 뻔뻔스럽게 먹을 거 사달라고 조르기에 니들은 개념이 있는 거냐 없는 거냐 하면서 화를 잔뜩 내줘 애들 풀 죽게 한 다음에 집에 보내버렸습니다.
기분 아주 잡쳤죠. 모처럼 애들 비위 맞춰주려고 영화도 준비해서 왔구만... -_-
저는 왜 안 갔냐고요?
당연히 안 가죠.
저번 금요일에 우산 빌려준 거 돌려받아야 하니까. -_-
교실 책상 정리하면서 그 녀석 기다리고 있는데 복도에서부터 우다다다다다 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그 녀석이 불쑥 들어오더군요.
그리고 저를 보자마자 씨익 웃으면서 하는 말.
"아직 안 나가셨네요?"
"-_- 그랴."
"왜 사세요? ^^"
"....-_-"
몇 주째 봐도 레퍼토리가 바뀌지 않아서 아주 기가 차더군요.
"우산 내놔. -_-"
"싫어. ^^"
"이 자식이 지금 장난하나? 안 내놔? -_-"
"내가 왜? ^^"
"아놔, 넌 은혜도 모르냐?"
"ㅋㅋㅋ 싫음^^"
"이제는 아주 반말을 까는구나?"
"ㅋㅋㅋㅋㅋ"
"-_- 아놔, 뭐 기대도 안 했다만... 제기랄."
"^^"
한참을 그렇게 또 옥신각신하면서 교무실로 내려갔죠. 교무실 열쇠고리에다가 열쇠를 던져놓더니 이번에는 학교 건물 바깥으로 쪼르르 빠르게 뛰어나가더군요? 저는 이 자식이 우산 안 돌려주고 도망치나 싶어서 황급히 출석부 던져놓고 쫓아갔죠.
"혜수~! 혜수! 이 자식, 어디로 간 거야?"
"ㅋㅋㅋㅋ 찾아보세요!"
목소리는 들리는데 이놈이 감쪽같이 숨어서 두리번거리며 문 바깥으로 나가려다가... 뭔가와 퍽! 부딪혔습니다.
젠장... 녀석이 문 한쪽 구석에 숨어있다가 반대쪽으로 도망치려다가 마침 나온 저랑 부딪힌 거죠. -_-
아놔, 젠장. -_- 조막만한 녀석인데 막상 부딪히니까 충격이 큽디다. 빌어먹을.... 뭐라고 씨부리려고 했는데 하필 그 때 다른 선생님이 나오시는 바람에 뭐라고도 못하고 그냥 말문이 턱 막혔습니다. 그러니까 그 녀석은 제 모습 보고 더 재미있어졌는지, 운동장으로 나가는 길에 저를 계속 놀리더군요.
"이거 수풀에다가 던져야지."
"마음대로 해라. -_-"
"ㅋㅋㅋ 진짜요?"
"...당연히 안 되지, 이 자식아. 우산 내놔. -_-"
또 녀석이 우산을 손에 든 채 안 넘겨주려고 애를 쓰니까 뺏네 마네 하면서 운동장을 가로질렀지요. -_-
"뭐 하면 줄래? -_-"
"그거 주면요. ^^" (제 오른손에 들린 단팥크림빵을 가리키며)
"진짜? 진짜 이거 주면 우산 돌려줄 거지?"
"ㅇㅇ"
존X 미심쩍은 표정을 지으며 조심스럽게 단팥크림빵을 내미니까 그 녀석이 쑥 빼앗아가고... 의외로 순순히 우산을 내주대요? 저는 좋아라 하면서 잽싸게 빼앗아 들고 시시덕거렸죠.
"좋댄다. ^^"
"시끄러워! 이제 빨리 집에나 가. -_-"
"왜 사세요? ^^"
"...-_-"
운동장 한 켠에 매달아놓은 자전거 풀러 가는데... 그 와중에도 녀석은 쉴 새 없이 종알거립니다. 하필이면 제 자전거 바로 옆자리에 걔 자전거가 매여 있더군요. -_- 빌어먹을... 평소에는 멀찌감치 매달아놓더니만! (물론 늦게 온 건 나지만;;;)
"저번 주에 집에 갈 때 비는 안 맞고 잘 갔냐?"
"ㅋㅋㅋ 네. 근데 자전거 되게 그지같네요. ^^
"-_- 죽을래?"
"선생님이 그지 같으니까... ㅋㅋㅋ"
"아놔, 이 자식이 오냐오냐 해주니까 진짜... -_-"
"저는 사실을 말한 것뿐인데 왜 그래요?"
"얼어죽을, 그럼 그 상황에서 찬성을 표해주랴?"
이번에도 걔가 길 막을까봐 걔보다 먼저 자물쇠 풀고 튀려고 했는데, 빌어먹을 자물쇠는 항상 안 풀리죠. 예. 게다가 오늘 비까지 내려서 녹이 제대로 슬었는지 더 안 풀림. 빌어먹을 -_-
결국 그 녀석이 먼저 자물쇠 풀고 자전거 타고 뽀르르 나가는데... 걔가 교문 앞에 당도한 순간 저는 긴장했죠. 그런데 이번에는 순순히 잘 갑디다?
"잘 가세요~ ㅋㅋㅋ"
"(한숨 쉬며) 오냐. 너나 빨리 집에 가라."
"ㅋㅋㅋ 근데 왜 사세요?"
"-_- 아놔..."
결국 끝까지 염장 지르고 튀었지만...
근데 집 방향이랑 다른 데로 가길래 혹시 나 가는 길에 매복하는 거 아냐? 싶어서 또 쫄았는데...
다행히 아니더군요. -_-; 제가 보기에는 아마 걔네 반 선생님이 오늘 저녁 사주기로 했는데 그거 따라간 모양입니다. 그러니까 평소와 달리 저를 오래 붙잡지도 않고 빠르게 우산 건네주고 그쪽으로 가버린 거죠.
뭐, 아무튼 오늘은 길게 괴롭힘당하지도 않고 우산 잘 받았습니다. 예. 수업 때문에 열이 한 번 뻗쳤는데 그나마 스트레스가 덜 쌓였네요. 이 녀석이 끝까지 놀리고 간 터라 스트레스 완전 0 상태는 아니지만... -_-
그나저나 1주일에 한 번씩 글 쓰면서 느끼는 건데, 점점 저도 모르게 이 글을 소설 양식으로 쓰게 되더군요? 역시 호응이란 무섭군요.
뭐, 여러분이 남기시는 댓글 하나하나 다 읽어보고 있습니다. 매의 눈으로 말이죠. -_-
보니까 아주 저랑 이 녀석을 러브러브 관계로 못 맺어서 안달이신 분들이 많은데... 일단 저는 대학교 3학년이고 걔는 중학교 1학년이지 말입니다? 8살이나 차이나지 말입니다? 말이 되는 예측을 좀 하셔야... -_-
그리고 오늘 자기네 선생님 쫓아서 뽀르르 간 거 보니까 저한테 연애 감정 느끼는 것도 확실히 아니구만... -_-
저한테 관심 있었으면 먹을 거 사주는 거 안 따라가는 한이 있어도 저랑 붙어 있으려고 했겠죠.
뭐...아무튼 메데타시 메데타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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