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이 지나면 잊혀진다, 개인적으로 저 말이 틀렸다고 생각합니다. 진짜 사무치는 경험은 세월이 지난다고해서 잊혀지지 않지요. 그저 그 경험을 받아들일 수 없기에 땅을 파고 모두 묻어서 그 위에 콘크리트를 덮어두었을 뿐, 눈에 보이지 않는 곳으로 사무치는 경험을 밀어두었다 해서 그게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두터운 콘크리트 속에서 고약하고 지독한 형태로 뒤틀려가며 썩어갈 뿐이지요. 마치 콘크리트속에서 썩어가던 청계천처럼요. 언젠가 콘크리트는 그 뒤틀린 경험들을 막아내지 못하고 금이 가겠고, 그때 튀어나오게 될 썩어버린 내용물은 그리 유쾌한 모습을 지니고 있지는 않을 것입니다. 대신 그것은 추악하고, 지독하며, 뒤틀렸고, 혐오스럽고, 구토가 솟아오르는 모습일 것입니다.
그래서 그것들을 파냅니다. 절대 떠올리고 싶지 않고, 생각해보는 것 만으로도 너무 고통스러워서 그냥 뛰어내려 죽어버리고 싶은 그런 사무치는 경험들도 하나하나씩 파내면서 그것을 이해하고 되돌아보고 받아들여보려 합니다. 그러다보면 왜 그때 그랬는지, 그때 어떤 감정이 들었었는지가 이해갑니다.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수치는 사라지고 증오는 씻겨지며 고통은 어루만져지고 분노는 해소됩니다. 그러다보면 뭔가 뿌듯한 감정도 자주 듭니다.
근데, 그렇게 이해하고 소화해서 받아들인 것 같은 과거의 감정들이 절대 그냥 사라지지는 않습니다. 마치 상처를 매꿔도 흉터는 남듯 그 흉터를 만질 때마다 불쑥불쑥 고통이 튀어납니다. 그리고 이 흉터는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사라지지는 않는 것 같더라고요. 아마 제가 죽을 때까지 저를 따라다니거나 하겠죠. 참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흉터가 쓰라리게 아려올 때마다 남에게 평생동안 사라지지 않을 흉터를 남길만한 짓은 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다시금 떠오릅니다. 흉터투성이로 살기에 인생은 너무 짧지 않습니까. 한번 떠올라서 적어봤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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