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의 확대, 파이의 확대에 대해서 많은 분들이 의견을 남기고 계십니다.
작업을 하면서도 중간중간마다 머리도 식힐 겸 해서 그 글들, 댓글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다 읽고 있는데 잘못 생가하고 계시는 점이 있는 것 같아서 한 마디 남기고자 합니다.
시장이 확대되는 것은 말 그대로 그 시장에서 돌고 있는 금액의 규모가 커진다는 것과 같을 겁니다. 적어도 제가 이해하고 있는 바 대로라면요. 그렇다면 그 규모가 커지는 것은 어떻게 해야 한다는 것인가? 그 시장에서 제작되고 있는 상품을 더 많은 구매자들이 구입하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여기에서 몇 가지의 선택지가 생깁니다.
1. 지금까지의 시장에서 판매가 제대로 안 된 것은 홍보 부족이니 홍보에 열을 올리자. 가격이나 질은 지금까지의 수준이 적절하다.
2. 홍보 부족도 아니고, 질의 부족도 아니다. 가격이 너무 높아서다. 낮춰야 한다. 낮추자(정액제)
3. 홍보 부족보다는 가격에 비해 질이 낮기 때문이다. 사회적인 인식도 대단히 좋지 못하고. 하지만 이렇게 된 것은 출판 시장의 복합적인 문제 때문이다. 이 문제들을 해결하고, 질을 상승시켜야 한다(편당 과금을 비롯한 몇 가지)
정액제가 낫다고 주장하시는 분들은 2번일 겁니다. 문피아에서는 제가 보기엔 3번을 선택했고요. 작가의 입장에서 본다고 하더라도 2번보다는 3번이 맞습니다. 왜냐? 천천히 따져보겠습니다.
지금의 시장에서 전업 작가로 한 달에 한 권씩 글을 써서 먹고 살 수 있는 분들의 숫자는 얼마 되지 않습니다. 당장 무협, 판타지 등을 통해서 ‘이 장르의 대표작가는 이 사람이지?’ 하고 생각할 수 있는 분들을 제외한다면 정말로 전업작가의 생활은 힘들 수밖에 없습니다.
나이가 어리고, 책임져야 할 가족이 없다면 그럭저럭 괜찮을 지도 모릅니다. 혼자 사는 것이라면 돈이 그렇게 많이 필요하지는 않으니까요. 하지만 나이가 있고, 책임져야 할 가족이 있다면 다달이 필요한 돈의 액수는 많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4인 기준으로 적어도 월 250만원 정도는 수입이 있어야 합니다. 이것도 낮게 잡은 거고요.
양가의 부모님들께 지원을 받아서 집을 산 상태에서 시작하는 게 아니라면 월세에서 살 수밖에 없습니다. 그 상태에서 전업 작가의 길을 선택한다면? 다달이 죽어라 일해서 200도 제대로 못 받고, 그 소득이 일정하게 유지되지도 않으며, 그 소득이 많아질 가망성도 그다지 크지 않은 직업을 선택하고 계속 그 일을 하고자 할까요? 저라면 안 할 겁니다.
이게 새롭게 좋은 글을 쓸 수 있는 전업 작가의 등장을 막는 요인입니다. ‘저 일을 하면 내가 풍족하게 먹고 살 수 있을 것이다.’ 라는 희망이 있어야 새로 이쪽 바닥에 뛰어드는 사람들이 생길 것이고, 그래야 양질의 작품들이 계속해서 쏟아져 나올 것이며, 그래야 시장의 파이가 확대되고 독자들은 편당 백원(권당 2500원 안팍)이라는 가격에 양질의 작품을 즐길 수 있을 테니까요.
문피아의 유료연재 시작, 그리고 편당 과금제는 이러한 방향에서 시작된 겁니다. 작가의 생계가 유지되고, 풍족한 생활을 영위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이 있어야만 당장의 생활비를 벌기 위해 급급해서 적당히 분량만 길게 뽑아내고 소재나 스토리도 다른 글들에서 언젠가 한 번쯤 보았던 것과 같이 붕어빵 같은 글이 아닌 정말 좋은 글을 써 낼 수 있을 테니까요.
지금의 대여점 위주 출판시장에서 나오는 글들이 독자들에게 그다지 좋지 못한 평가를 받는 이유 역시 그렇습니다. 과거에 대여점이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권당 만 부씩 판매되던 때에는 돈이 된다는 이유로 이런저런 출판사들이 마구잡이로 뛰어들고 그 과정에서 단순하게 취미로 글을 쓰다가 출간을 하고 돈을 벌게 된 분들이 많았던 것으로 압니다.
그 과정에서 글을 쓸 생각도 없이 문어발식으로 여기저기 계약을 맺어서 계약금만 받아다가 잠적한 분들도 많습니다. 요즘엔 출판사들에서 그런 분들에게 소송을 걸어서 계약금을 돌려받아내고 있다는 얘기들이 들리고 있고요.
작가로서 데뷔하게 된 지 이제 고작 4년밖에 되지 않은 제가 이런 말을 한다는 게 여러가지로 민망하기도 하고, 선배 작가분들께 죄송스러운 이야기이기도 합니다만 대여점 시장에서는 정말로 각각의 작품들이 독자들에게 냉정한 평가를 받기는 힘들었습니다. 대여점이라는 시스템으로 구매자의 구매활동이라는 게 좀 왜곡되어 있다는 것은 많은 분들이 동의하시리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제 그 대여점 시장은 저물어가고 있고, 유료연재 시장이 등장해서 움직이고 있습니다. 네이버에서 그렇고, 조아라가 그러하며, 북큐브가 그렇고, 루트미디어의 사과박스가 그렇습니다. 바로북 역시 마찬가지고요. 그리고 이제는 문피아가 뛰어들었습니다.
이렇게 유료연재라는 방식을 통해 독자가 직접 자신의 구매 행위를 통해 글의 가치를 결정하고, 투명하게 그 가치를 시장에서 내어 보이는 방식은 보기엔 시장에서 양질의 글이 아니라면 남아있을 수 없도록 만드는 시스템입니다. 지금 당장이야 수많은 글들이 한데 뒤섞여 있지만 편당 과금 체제에서는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좋은 글들만이 남을 수밖에 없지요. 좋지 못한 글들은 구매가 적을 것이고, 그렇게 되면 그 글들을 쓰는 작가들은 도태될 수밖에 없으니까요.
정말로 양질의 글을 읽고, 그것들을 소비하기를 바라신다면 정액제보다는 과금제가 좋습니다. 조아라의 시스템과 같은 정액제에서는 대여점 시장의 반복일 뿐입니다.
글을 쓰기는 했습니다만 이것으로 제가 직접 논쟁에 끼어들기를 바라진 않습니다. 저는 이 글에 댓글을 달고, 다른 분들의 의견을 반박하거나 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부분을 미리 밝혀두며 글을 마무리합니다.
총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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