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투는 음슴체로 하겠습니다. 양해를...
ARMA에서 롱소드 검술을 수행 중인데, 그냥 느낌을 적어보겠습니다.
-처음 철제 검을 잡았을 때 상당한 감동을 하게 됨. 블런트라고 부르는 연습용 철검이나, 진검을 휘둘러 보면서 이게 판타지 소설에 나오는 그거구나 하면서 무한 감동. 헌데 그 대단한 감동을 준 검이 이제는 그냥 수련 도구 이상, 이하도 아니니 미인의 얼굴빨이 3년이라면, 롱소드의 감동은 불과 3개월.... 같은 이야기인데, 처음 철제검이 격렬하게 부딪칠 때의 충격에 전율함. 손목이 찌릿찌릿한 그 느낌은 대박 그 자체인데, 어느덧 철검의 날 부분이 깨질 정도의 충돌에도 덤덤해짐.
-싸우다 철제검(이후 블런트)이 손에서 부러지는 걸 경험함. 당시 모두들 놀라워 했는데, 이제는 누구칼이 부러지면 날아가는 돈 생각만 할 뿐. (고가 업체 블런트로 바꾸고 나서 분질러지는 일이 없어지긴 했음)
-프리플레이 중 어떤 분 손가락이 부러짐. 처음에 다들 경악. 두 번째 부러지는 인원이 나오자 그냥 그런가보다 함. “그래 뭐, 사이보그도 아닌데 블런트에 맞으면 부러지겠지.” 칼에 맞아 찰과상으로 피가 나거나, 멍드는 거 보고도 점점 아무 느낌 없음. 이래서 옛 마스터들이 손가락 멀쩡하고 두 눈이 다 있으면 마스터가 아니라고 한 건가 싶음(물론 현대인은 펜싱 마스크 쓰고 하니 눈은 절대 안 날아갑니다. 다만 펜싱마스크가 아니라 투구 쓰고 하다가 눈알 날아간 경우가 불과 몇 달 전에 독일에서 있었죠. 격한 대련을 하려면 반드시 펜싱마스크를 써야 합니다. 다치면 자기만 손해. 그런데 하드코어 했던 중세 검술길드의 인원들은 아무런 보호구 없이 철검으로 대련을 했습니다. 당시 길드전 기록을 보면 눈깔 수정체가 터지고, 코가 쪼개지고 난리도 아님. 피가 나야 이기는 거였다고 하던... 당시 저급한 의료수준으로 이런 상처는 큰 문제였을 게 틀림없는데, 그럼에도 굴러다니는 갑옷도 입지 않고 대련한 걸 보면, 중세인들이 얼마나 진지하게 검술을 익혔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검술길드에서 대련중에 죽거나, 길거리 칼싸움에서 죽어나가는 인원이 많았습니다.)
-안목이 늘어나면서 롱소드에 대해 까다로워짐. 처음에 좋다고 생각했던 저가 브랜드의 연습용 블런트들이 지금와서 생각해 보니 쓰레기란 걸 알게 됨. 고가의 하이앤드 제품만이 적합한 도구이며, 나머지는 그냥 쇠몽둥이라고 여김. 진정한 고수는 도구를 탓하지 않는다는데, 어중간하게 배운 탓인지 이빨만 늠. 그래도 그간 안 보이던 부분을 볼 수 있게 되서, 롱소드는 사진만 봐도 어떤지 견적이 나옴. 웹서핑으로 미국부터 유럽 곳곳의 도검사를 다 쑤시고 다님.
-영화나 드라마(특히 왕좌의 게임)에 나오는 검술을 보며 한숨을 쉬게 됨. 그간 재밌게 봤던 영화속 칼싸움 장면에 그냥 눈물만 남. 무술감독이 누군지 검술의 기초도 모르는 사람인 게 틀림없다고 생각함. (그래도 일본 영화들은 검술이 꽤나 진지하던데, 서구쪽 영상물은 그냥 개판 중에 개판. 유럽 영화 중엔 괜찮은 게 몇 있지만 천조국은 이건 뭐 그냥... 칼만 뽑으면 구라가 자동으로...)
-자신의 영어실력에 깊은 좌절을 겪음. 수많은 자료들이 영어. 협회의 동영상 강의도 영어, 검술서도 영어, 에세이도 영어, 커뮤니티에서도 영어로 얘기, 이메일도 영어로 날아옴.
-칼을 사고 경찰서에서 도검소지허가 받을 때, 김형사님의 날카로운 질문에 시달림. 보통 형사 양반들이 허가 내주는 게 카타나인데, 날 길이가 긴 롱소드다 보니(제가 산 칼은 날길이만 카타나 전체 길이랑 같습니다.) 아주 위험스럽게 생각하는 듯 함. 서양검술 한다면 별종을 보는 듯한 눈이 됨. 양손검 산다고 그러면 이 몸을 아주 갈아마시실 듯.
-롱소드 검술을 하면서 점점 레슬링을 잘 하게 됨.(중세-르네상스 메뉴얼의 롱소드 기술의 절반 가까이가 하프소딩이나 링은이라고 부르는 잡기 기술.) 이 점에 대해 ARMA의 수장이자 서양검술계의 거목 존 클레멘츠에게 직접 들은 소리가 하나 있음. 레슬러는 검술을 못하지만, 검객은 시키면 레슬링을 잘 한다고. (중세시대에도 보면 검객들이 전문 레슬러들에게 교육을 받고 그랬음.)
-매우 소수 민족이라는 프리미엄이 있음. 혼자 내가 중세 마스터들의 전인이라는 생각에 흐뭇함. 그 이름 높은 대검호 리히테나워의 기예를 연습할 수 있다니...
-역사를 검술 마스터들을 기준으로 생각하게 됨. 그 전에는 왕이나 국가를 기준으로 유럽사에 대해 인식했다면, 이제는 마스터들이 기준이 됨. 그때 마스터 누가 죽었고, 어떤 마스터가 무슨 일을 했는지 그런것만 궁금함.
-마스터들이 남겼던 아리송한 말을 이해하는 순간이 옴. 혼자 전율하며, 깨달음을 얻었다! 라고 생각함. 그리고 다음 프리플레이(대련)에서 괜히 새로운 거 하려다 대판 깨짐. 깨달음도 좋지만, 연습+연습이 있어야 써먹을 수 있는 법이라는 교훈을 얻음. 머리로 아는데 몸은 안 됨.
끝으로,
롱소드 검술 해보세요. 무척 재밌습니다. 특히 판타지 소설 좋아하시는 분들과 잘 맞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혹시 관심 있는 분은 쪽지 주세요. 현재 ARMA코리아에서는 롱소드와 메서(Messer) 검술을 다루고 있습니다. (ARMA는 클럽식 단체이며 전혀 영리목적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즉, 배우시는데 공짜란 소리죠.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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