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전 양판 소설을 싫어하지도 않고, 좋아하지도 않습니다.
다만,
다 읽고서 스토리는 잊어버리는 편입니다.
처음에는 하나하나 기억하고 있었는데 말이죠..
아, 이게 양판소라는 건가..하고 느낀 경험을 한 이후에는..딱히 스토리를 기억하려하는 노력을 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양판소라는 건, 소재도 비슷, 배경도 비슷, 인물도 비슷, 스토리도 비슷~한..말하자면, 유행에 따른 소설 ..대세에 따른 소설..정도로 전 생각합니다.
어느정도 성공한 소설이 있으면, 거기서 성공을 한 요인만 빼내어 비슷하게 쓰는 걸..여러사람이 하는 것.
나쁘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하나의 전략이니까요. 그리고 즐겁게 읽기도 했습니다. 지금도 즐겁게 읽기는 하지만..더이상 집중해서 읽지는 않습니다. 이유가 있지요..
언젠가, 동생이 판타지 소설을 읽고있는 제게, 어떤 판타지 소설을 내밀며 물어본 적이 있습니다.
"이거 재밌어? 내용 좀 알려줘봐."
전 읽은 책이었고. 나름 재밌게 읽어서..내용을 말해줍니다.
....
그런데, 말하는 내용이 섞이는 겁니다. 다른 판타지 소설들과...
읽었던 게 다 비슷비슷하다보니,그리고 워낙 많이 읽다보니..
읽었던 판타지 소설들이 섞여서, 예전에 읽었던 판타지 소설의 줄거리가 기억나지 않더군요. 아니, 기억은 나는데..
말하다보면, 섞여요...
.어? 이게 아닌데, 이거 다른 소설 아니었나? 아니 맞나?
물론, 다른 소설이나 영화에서도 이런 경우가 있을 수 있지만..조금, 심한 감이 없잖아 있었습니다.
전 생각했죠.
어차피 다 비슷하니까, 나중에 떠올려 봤자 스토리가 섞이는데 뭘, 섞여도 위화감이 없고...뭘, 어차피 다 그게그거니 그냥 기억할 필요없이 개그보듯 읽으면 되겠구나..하고 말이죠.
그렇게 머리 비우고 읽게 되었습니다. 머리를 비워서 읽어도 되더군요.딱히 신간으로 나온 판타지 소설을 읽으면서 기억해야할 건 없었습니다. 인물 이름이야 소설 내에서 계속 말해주고, 배경이나 설정이야 이미 예전 것이고, 떡밥이 있다한들 다른 소설에서 본 듯한 것이고, 스토리 전개도 비슷하다보니..보게 되는 것은 등장인물들의 말빨이나, 서술에 있는 유머 혹은 개그 정도군요..아니면, 이미 알고있지만 대리만족을 주는 주인공에게 놀라는 주변인물들의 반응 정도..말하자면 즉각적인 재미...(기억해야 할 필요가 없다보니, 책장을 넘기고 한달이 채 안되도 읽었던 소설의 인물들 이름은 당연하게도 기억나지 않습니다. 조금 더 지나면 스토리도 기억나지 않고요. 그래서 양판소가 빨리 나와야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다 보니, 조금만 심각한 소설, 혹은 등장인물의 성격이나 생각이 조금이라도 다른 소설, 스토리가 생각했던 것과는 다르게 나가는 소설을 보니, 괜히 복잡하게 써놨다는 생각이 들면서 읽지 않게 되더군요..
근데 그러다보니까...그렇게 읽다 보니까..제가 점점 더 무뇌아가 되는 듯한 생각이 들면서..나 대체 멍청이처럼 생각도 없이 지금 뭐하고 있는거지?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소설이 한심하게 느껴지는 게 아니라, 판타지 소설을 읽고 있는 제가 한심하게 느껴졌습니다. 양판소를 읽을수록 머리가 깡통이 되어가는 느낌이었죠.
그리고 슬슬 짜증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왜냐면..다시 생각을 하고 읽기로 했거든요. 머리 끄고 읽었을 때는 소설에 쓰여져 있는 대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래서, 개연성이니 뭐니 그런 거 없이. 아 그런가보네. 하고 그냥 넘기고 그랬죠. 스위치를 완전히 끄고 있었으니까요..
근데, 생각을 하면서 읽다보니..아, 이런 걸 읽고 있었다니 나도 참 한심하구나..라는 생각이 더욱 더 심해지더군요. 그래서 전 예전에 ..오래전에 나온 소설들을 찾게 되었죠.
읽은 후에 머리속에..하다못해 스토리와 주인공 이름 정도는 그래도 기억에 남는..그런 소설이 그래도 소설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 뒤,
드래곤 라자, 퓨처 워커, 폴라리스 랩소디, 눈물을 마시는 새, 피를 마시는 새, 룬의 아이들 윈터러, 룬의 아이들 데모닉, 집으로 돌아가는 길, 절망의 구, 얼음나무 숲, 등등을 읽으면서 소설을 읽는 재미란 게 무엇인지를 알게 되었죠.
그제서야요. 뭐..전 원래 책하고는 정말 거리가 있었습니다. 전혀 읽지를 않았어요. 멀리~ 돌아서 오기는 했지만 전 소설을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아마 처음부터 위의 소설들을 읽었다면, 소설의 재미를 몰랐을지도 모릅니다. 작가의 고뇌같은 것도 몰랐겠지요.
양판소를 읽었던 시간들이, 딱히 아깝지는 않습니다. 그 소설들은, 제게 소설을 좋아하게 할, 뭐랄까..발판 역할을 해주었거든요. 다만, 시간이 조금 걸렸지요..몇년은 걸렸으니.
제가 처음으로, 읽어서 판타지 세계에 푹 빠지게 한 소설의 제목은 '에티우' 입니다. 전부 사서 책장에 꽂아두기 까지 했죠. 양판소입니다. 에티우라는 실버드래곤이 유희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들이죠. 하지만, 전 괜찮았다고 봅니다. 이 소설이 있어서 전 소설에 관심을 두게 된 것인까요. 굉장히 멀~리 돌아오긴 했지만.
아마, 지금 양판소를 읽고 계신 분들도..저와 비슷한 절차를 밟지 않을까요..양판소라는 게 처음에는 정말 중독성이 장난 아니니까요
후유증으로 '그래도 판타지 소설이 좋아!'가 남으니 말입니다.
시간이 무지 걸리지만....
뭐..그냥 한담입니다.
* 연담지기님에 의해서 문피아 - 하 - 연재한담 (s_9) 에서 문피아 - 하 - 강호정담(fr1) 으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11-09-18 1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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