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시대에 팔천 중 가장 아래에 해당하는 것이 백정이었다.
이들은 전조 시절에 흘러온 이민족이었다.
생심새부터가 틀렸다.
회색과 갈색의 눈동자에 음푹 들어간 눈과 상반대가 넙적대대한 툭 튀어나온 광대 붉은기가 있느 머리카락 얼굴은 검거나 검붉었고 키는 180 전후 였으며 골격이 잘 발달되었다.
이들은 나라의 법을 우습게 알았고 사냥과 목축을 하며 떠돌아 다녔고 경우에 따라서는 마적과 도적이 되었다.(살인, 방화, 약탈)
원래 백정이라는 말 자체가 고려시대때 자작농 즉 중상층 이상되는 부농을 뜻하는 거였죠. 그때는 백성이 송곳 꽂을 땅도 없어서 자기땅 없으면 그냥 노비가 되던 시대였죠.
세종떄 이르러 이민족들을 백서으로 받아들이려 천시하지 말라고 백정이라 부르게 했는데.
그래봤자 이들 태생이 그러하고 조선과 융화 되지 않으니 조선 백성들이 멸시하고 천시하는 것은 당연하죠.
불법체류자가 세금 안내고 창칼로 집단 무장하면서 여기저기 떠돌면서 여차하면 사람 죽이는 도적질 하니 누가 원망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니까는 예를 들어 이것입니다. 일본이 가라 앉았어요. 근데 그중 일부가 한국으로 망명 왔는데 정치 성향이 극우에다가 직업은 야쿠자 양아치들인데.(범죄자 폭력 집단)
이들이 한국에 몰래 입국해서는 불법 무력 집단 만들어서 삥뜯고 불법 저지르고 살인, 강간 하고, 일반 가정집 들어와서 강도질 한다고 해보세요. 한국인 무시하며 한국 법 우습게 여겨 어기면서 다케시마는 원래 우리꺼 이렇게 외친다고 쳐요.
그럼 가만히 놔두겠습니까. 응당 뭉둥이로 조 패다 못해 때려죽여야 하죠.
원래 조선은 왕족이라도 나이 많은 상민이면 그래도 어느 정도 존장 대우를 해주거든요.
물론 여기서 노비와 백정은 제외였습니다.
백정은 어린아이라도 평민이 지나가면 고개 숙여 인사해야 했고 돈이 많아도 가죽신과 비단옷은 입지 못했으며 패랭이 조차 쓰지 못했어요.
상민도 결혼식 때는 신랑이 관복과 관모를 쓸수 있었고 신부는 쪽뚜리에 연지 찍고 비단 색동옷 입었는데. 백정은 그런것도 허락치 않았어요. 혼인식도 제대로 못치루었죠. 상위에 물 한바가지 올리면 그것도 후한거였죠.
시간이 지남에 백정들도 조선에 정착해서 도축이나, 생활에 필요한 물건 가죽신이나 고리 궤짝, 망나니 등등 사회에 합법적으로 녹아들었는데... 그런데도 백정에 대한 천시와 분노는 여전했어요. 이건 솔직히 너무 하다 싶을 정도로요.
과거 무법자 시절이면 몰라도...
장례에 상여꾼도 부를수 없었고 무덤도 만들 수 없었죠.
이 일을 어기던가, 몰래 하다 걸리면 마을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가 개패듯이 팼어요.(이때 죽는 경우도 다반사 였어요.)신명나게 두들겨 팰대로 팬 다음 관아로 끌고 가서 고소하는데. 백정들이 돈이 많으니까는 뇌물을 써서 가벼운 죄를 받으면 구경하던 마을사람들이 그자리에서 돌을 던졌어요.
그것도 고을 사또가 국문하는 자리에서요. 이럴 때는 그 동네 양반, 중인, 상놈 할 거 없이 합심해서 오늘날의 불법 폭력 시위 처럼 담장을 넘어와 우르륵 돌 던지며 조팼죠.
이때는 사또 부터 포졸도 어쩌지 못했어요. 성난 군중 말리다가 자기들도 몰매 맞을 수도 있고 이걸 어디가서 하소연도 못해요.
지금이야 다 같은 대한민국 사람들이지만 당시 우리 조상들이 백정을 멸시를 넘어 왜 함부로 했는지 어느정도 이해가 가긴 합니다.
백정들은 혼혈이라 유전적으로 외모가 좋았어요. 돈도 많이 버는 편이라, 비싼 옷과 신발, 분칠. 꾸미지는 못하더라도 잘먹고 고생은 안해서 백정의 딸들이 피부가 곱고 유전적으로 미녀가 상당히 많았는데 이건 저주였어요.
노비라도 맘만 먹으면 강간할 수 있고 아무도 이것을 탓하지 않고 술자리 안주 삼아 박수치고 좋아했어요. 영움담 취급 받았죠.
이러니 임꺽정이 패를 만들어서 산적질을 했죠. ㅜ.ㅜ
“나도 사람답게 살고 싶소! 왜 나는 그러면 안되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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