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조선시대 대여점은 '세책가'로 불렸습니다.
2. 대략 조선에 상공업이 활성화 되기 시작한 후기에 한양을 비롯한 각 도시들에 나타나기 시작하여 19세기 말기까지 유행했습니다.
3. 책을 빌려주는 시장이 활성화 된 것은 상공업의 융성으로 조선에 여유 있는 식자계층이 늘어났기 때문입니다.
4. 가장 큰 세책가의 경우는 3000권이 넘는 장서를 보유했다 합니다.
5. 대여료는 엽전으로도 지불했지만, 쌀로도 지불했답니다.
6. 문맹자들을 위해 책을 읽어주는 사람이나 기생이 세책가에서 일했습니다.
7. 당시엔 중국을 배경으로 하는 판타지(?) 소설이 융성했습니다.(대표작 '심청전')
8. 세책가 주인은 불온서적(홍길동전 같은 거...)을 대여하다가 걸리면 의금부로 가서 코렁탕을 먹어야 했습니다.
9. 당시 세책가에 돌던 소설들은 대부분이 작자 미상입니다. 소설을 집필한 것은 대부분 가난한 선비들인데, 소설집필이 수필이나 시문에비해 천박한 것이라 생각해서 대부분 이름을 남기는 것을 꺼려했다는군요.(나관중의 삼국지나 박지원의 허생전 등도 당대에 좋은 대접은 못 받았죠.)
10. 당시에도 찌질이들이 많아서 책을 찟거나 훼손하는 일이 비일비재했습니다. 심지어 표지에 스포일러를 적어두는 괴씸한 놈들도 있었다네요. 덕분에 세책가 주인들은 매번 표지를 갈거나 낙서금지라는 글자를 써두어야 했습니다.
11. 인기 작품의 경우 세책가에서 사람을 고용해서 직접 베껴 팔기도했습니다.(다시 말해 대여점이 P2P 노릇을 했다는 거...--;)
12. 당대에 시대를 앞서는 사상과 필체를 자랑하시던 김만중 선생께서는 막장멜로물 사씨남정기를 집필하셨습니다. 그러다 깨방정 숙종대왕이 이것을 보고 진노하여(...) 귀양간 김만중 선생께선 홀로 적적한 어머니를 위해서 할렘 판타스틱 로맨스 소설 구운몽을 집필하셨습니다.
13. 빌린 책 때먹고 도망가는 경우도 꽤 있었다고 합니다.
14. 많은 소설들이 한글로 집필되었습니다.
15. 청나라 백화소설(오늘날 무협지들의 조상)들도 번역되었는데, 어느 왕때 공주인지 자세히 생각은 안 나지만, 부왕에게 청나라 소설 번역을 요청한 적도 있다고 합니다.(요새로 치면 대통령 딸네미가 일본 애니 자막 만들어 달라고 조른 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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