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을 토대로 예시를 들어보면 혼란이 발생하더라구요.
ex) 나는 동성애를 수용할수는 있지만 이해할수는 없다.
보통 수용=받아들이다
이해=...뭐라고 설명하지?
이런 뜻인데
제목처럼 해석하면 이미 수용한다는 결과는 내려졋는데
이해는 안하는... 오류가 발생하네요
제목처럼 결론내고 마음편하게 있었는데
다시 생각해보니까 이게 뭔가 아닌것 같네요.
이해와 수용의 관계에 대해 알기쉽게 설명해주실분?!
우리 모두 웃어봐요! 우리들의 이야기로.
제목을 토대로 예시를 들어보면 혼란이 발생하더라구요.
ex) 나는 동성애를 수용할수는 있지만 이해할수는 없다.
보통 수용=받아들이다
이해=...뭐라고 설명하지?
이런 뜻인데
제목처럼 해석하면 이미 수용한다는 결과는 내려졋는데
이해는 안하는... 오류가 발생하네요
제목처럼 결론내고 마음편하게 있었는데
다시 생각해보니까 이게 뭔가 아닌것 같네요.
이해와 수용의 관계에 대해 알기쉽게 설명해주실분?!
다들 원래 사전은 팔아먹고 혼자서 새 사전 쓰시는 건가요?
수용 -> 어떠한 것을 받아들임
이해 -> 사리를 분별하여 해석함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예컨데 동성애자가 나는 당신과 사랑하고 싶다...그럴때 좋아요 이런다면 상대의 의견을 수용한 것이죠. 용법상 수용과 관용을 헷갈리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전혀 다른 개념인데 받아들인다는 의미에 집착하는 분들이 그렇죠. 내가 동성애자가 아닌데 동성애를 수용할 수는 없어요. 다만 동성애에 관용을 가질수는 있는거죠. 그리고 이해는 전혀 다른 개념입니다. 동성애에 반대하고 멸시하고 한 조각 관용조차 없어도 동성애를 이해할 수는 있습니다. 이해한다고 해서 반드시 받아들이는 경우는 드뭅니다. 이해하기때문에 더 멸시하게 되는거죠. 물론 멸시하면서도 관용적일수도 있구요.
이해 : 납득하고 헤아리다.
수용 : (어떤 것에 대한 현실적인) 요구를 받아들이다.
[나는 동성애를 수용할수는 있지만 이해할수는 없다.]
문장이 모호하게 되어있는데요.이것은 이렇게 바꿀 수 있습니다.
[나는 동성애에 대한 현실적인 요구를 수용할수는 있지만, 동성애 자체를 이해하지 못한다.]
= [나는 동성애에 대한 현실적인 요구를 받아들일 수 있지만. 하지만 동성애 자체를 납득하고 헤아려서 그런 것은 아니다.]
제목의 문장도 모호한데요.
[이해란 수용하는 과정을 말한다.]
이것은 몇가지 의미가 생겨납니다.
첫째. 납득하지 못하던 것을 , 납득이 되도록 이끌며, 문제가 되었던 것 그 자체를 받아들이도록 만드는 과정. ( = 전체긍정으로 만드는 과정)
둘째. 납득하지 못하던 것을 타협하고 이끌며, 문제가 되엇던 것 그 자체를 전부는 아닐지라도, 일부 받아들이도록 만드는 과정. (= 일부 긍정으로 만드는 과정)
셋째. 납득하지 못하던 것을 이끌며, 문제가 되었던 것에 대하여 어떤 결론을 내고 이끌도록 만드는 과정 (= 긍정평가든, 부정평가든 알 수 없지만, 문제에 눈을 돌리지 않고 평가하게 만드는 과정)
그러므로 너무 간략한 문장으로 인하여, 모호해지고 점점 혼란스러워지기에, 이런 일이 일어나는게 아닌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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