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6년 프로야구는 본인에게 유달리 인상적인 시즌으로 기억되고 있다.
무적 해태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국내제일의 투수 선동열이 일본으로 가고 재벌가의 큰손 현대가 만년하위팀을 인수해 김재박이라는 스타선수 출신의 감독체제로 전환, 창단 첫해 한국시리즈 진출이라는 기염을 토한 해이다.
어디 그뿐인가? 약체로 낙인찍혔던 또 다른 호남팀 쌍방울이 강력한 '돌격대모드'를 무기로 정규시즌 2위의 돌풍을 일으켰고 괴물신인 박재홍이 등장, 대한민국최고의 타자 이종범의 아성에 도전한 시즌이기도 하다.
한화와 해태가 맞붙을 것이라는 지극히 개인적인(?) 예상을 깨고 플레이오프는 의외의 결과가 속출했다.
탄탄한 전력의 한화를 현대가 간단히 셧아웃 시키더니 정규시즌 내내 자신들을 괴롭혀온 쌍방울마저 2패 뒤 3연승의 대역전극으로 물리쳐버린 것이다.
그리고 맞붙은 한국시리즈.
현대는 강했지만 상대는 30승 투수와 맞먹는 팀공헌도를 자랑한다는 최고의 타자인 이종범이 정상적인(?) 상태를 유지하며 팀타선을 이끌고있었고 리그를 대표하는 톱클래스의 투수들이 즐비한 최강의 해태타이거즈였다.
현대도 강했지만 해태는 더 강했다…
96시즌 4강팀 (정규시즌의 모습으로 회상해 보았습니다)
1. 해태타이거즈
투수력: '젊은 에이스' 이대진, '핵잠수함' 이강철, '싸움닭' 조계현이 이끄는 선발진은 구위와 노련함, 다양성 등에서 자타가 공인하는 리그 최고의 1·2·3펀치였다.
거기에 중간과 선발이 가능한 고 김상진 선수, '신형어뢰' 임창용, '씩씩한 허리' 강태원, '가을까치' 김정수가 버티고있는 불펜진까지, 역시나 해태의 힘은 막강 투수진이었다.
타력: 이순철과 이건열이라는 고참타자들이 내리막길을 걷고 있는 가운데 그래도 이름 값 있는 젊은 타자는 이종범과 홍현우 둘밖에 없었다.
믿을만한 좌타자가 없는 점 등 어쩌면 겉으로 보이는 타력에서는 4강팀 중 가장 약했으나 찬스에 강한 팀컬러 등 무형의 무언가가 역시나 존재하고있었다.
전통이라고 해도 좋고 타팀의 입장에서는 야릇한 징크스라고 불러도 이상할게 없는 무엇인가가…
기동력: 해태하면 으레 기동력을 떠올리는 분들이 많다. 물론 바로 이 부분 때문에 상대적으로 약해 보이는 타선이 엄청난 탄력을 받게되는 부분도 상당했다.
하지만 기실 속내를 들여다보면 해태는 '신·구 대도' 이순철과 이종범만이 몰아서 기동력을 발휘하는 편이었다. 물론 유망주(?) 김종국 등도 빠른 발을 가지고는 있었지만 아무래도 이 당시는 위 두 선수에게 의존도가 높았다. 지금도 전체적으로 빠르다기보다는 특출한 기동력을 가지고있는 몇몇 선수가 몰아서 스피드를 이끌어 가는 것을 보면 이점 역시 타이거즈만이 가지고있는 기동력의 전통이 아닐까싶다.
수비력: 동봉철의 어깨가 상대적으로 약한 편이기는 했지만 강견을 자랑하는 이순철과 이호성이 지키는 외야는 그야말로 탄탄했다. 거기에 지금까지도 당대최고의 내야파트너로 회자되고있는 이종범과 김종국의 키스톤콤비는 화려함과 견실함 면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3루수 홍현우의 수비가 조금 불안하다는 것이 옥의 티였다.
2. 현대유니콘스
투수력: 정민태와 위재영이 이끄는 선발진, 가내영·최창호·조웅천으로 짜여진 미들맨라인에 특급마무리 정명원까지…현대 역시 투수력 하나는 확실한 편이었다.
특히 정민태와 정명원은 구위와 관록면에서 유달리 큰 경기에 강한 면모를 자랑하고 있었다.
타력: 역시 이 당시 현대의 공격력 하면 제일먼저 떠오르는 것은 '괴물신인' 박재홍이었다. 막강한 파워를 바탕으로 홈런을 펑펑 날리는가하면 프로야구최초로 30-30클럽의 기록을 세우며 이종범의 뒤를 이을 대표적인 호타준족으로 성장할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오죽하면 달리 견제할 방법이 없자 타팀에서 앞다투어 그의 타격폼을 놓고 딴지를 걸고 나섰을까…?
그러나 박재홍만 강할 뿐 클린업트리오를 이루고있는 다른 이들, 윤덕규와 김경기는 이름 값을 제대로 못하고있는 상황인지라 중심타선의 파괴력이 부족해 보였다.
다만 톱타자 김인호와 박진만이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상황이었다.
수비력: 김인호만이 안정적인 외야수비를 자랑했을 뿐 박재홍(당시에는), 이숭용은 그다지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이숭용은 어깨가 약한 편이었고 박재홍은 아마시절 3루수를 했던 탓인지 강견임에도 불구하고 포구능력이 많이 떨어지는 편이었다.
내야의 박진만, 권준헌 라인은 안정적이었지만 2루수비가 불안했다.
기동력: 박재홍을 중심으로 김인호, 박진만 등이 만만치 않은 준족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톱타자 김인호의 기동력과 센스는 알아주는 편이었지만 아무래도 타팀을 압도하는 수준은 아니었다.
3. 쌍방울 레이더스
투수력: 투수조련사 김성근 감독의 지휘아래 상당한 수준의 투수력을 자랑했다. 주로 이름 값보다는 상대적으로 지명도가 낮게 평가되는 선수들의 선전이 돋보였다.
아마시절 화려한 명성을 자랑했던 김원형과 박성기는 시즌 내내 부진한 모습을 보인 반면 성영제와 김기덕의 원투펀치는 실속 면에서 꽉찬 평가를 받았으며 김현욱, 조규제로 이어지는 중간 마무리는 확실한 경쟁력을 보여주고 있었다.
타력: 상하위 타선 할 것 없이 한번 도화선에 불만 붙으면 무섭게 폭팔 하는 팀 타격은 쌍방울을 정규시즌 2위로 올려놓은 원동력이었다.
유일한 스타플레이어 김기태에 느닷없이 회춘모드(?)로 돌변한 김광림, 한방을 갖춘 포수 박경완은 물론 김실, 최태원, 김호, 조원우까지, 어느 한 선수 방심하기 어려웠다.
기동력: 돌격대 특유의 모습을 반영이라도 하듯 기동력부분에서 타력과 비슷하게 질보다는 양으로 승부 하는 편이었다.
이종범, 이순철 등 기동력의 스페셜리스트는 없지만 김광림, 최태원, 김호, 조원우등은 틈만 나면 몸을 사리지 않고 마구 뛰어다니며 근성의 야구를 보여주었다.
말 그대로 전원돌격형이었다.
수비력: 공격력으로 승부 하는 팀인지라 수비력은 아무래도 타 팀보다 떨어졌다.
유격수 김호, 외야수 김광림, 2루수 최태원 정도만이 안정적일 뿐 나머지선수들은 수비에서 만큼은 높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4. 한화 이글스
투수력: 선동렬도 인정한 우완정통파투수 정민철, 정규시즌 내내 2선발로 활약한 이상목, 항상 꾸준한 송진우로 이어지는 막강 선발 3인방은 해태와 맞먹는 위력을 자랑했고 미스터 카리스마 구대성이 버티는 마무리는 그야말로 철벽이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선발과 마무리를 이어줄 쓸만한 중간계투가 없어 항상 아쉬움을 남겼다.
타력: 당시만 해도 리그최고의 거포 중 한 명으로 군림하던 장종훈이 버티고있었고 거기에 홍원기, 송지만, 임주택이 날카로운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한방을 지닌 선수들이 전체적으로 많은 모습은 영낙 없는 '다이너마이트 타선' 그 자체였다.
기동력: 장타력을 지닌 선수들이 많은 반면 제대로 기동력을 발휘해줄 수 있는 선수가 너무나도 없었다. 물론 후보선수들까지 포함하면 발 빠른 선수들이야 있겠지만 주전급 중에 도루능력을 갖춘 선수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막강 선발과 마무리를 가지고있음에도 중간이 없어 어려움을 겪는 투수력처럼 타력 역시 한방을 이어줄 기동력이 아킬레스건으로 항상 작용했다.
수비력: 신인들이 많은 탓에 내외야를 통 털어 썩 신통치가 않았다.
3루수 이민호와 중견수 강석천, 포수 조경택 정도를 제외하고는 믿음이 가는 구석이 적었다.
특히 내야의 핵인 2루와 유격수가 너무나도 부실했다.
수비가 좋은 선수들이 후보로 대기하고있기는 했으나 그렇다고 주전들을 뺄 수도 없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한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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