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용병/ 삼보의 골밑 4대천왕
2000-2001 시즌, '총알탄 사나이' 신기성의 군 입대까지 일년을 미루며 플레이오프 진출을 위해 최선을 다했던 원주삼보는 얇은 선수 층과 상대적으로 허약한 용병 진으로 말미암아 아쉽게 고배를 마시고 말았다.
장신에 부드러운 슛터치를 자랑하며 큰 기대를 모았던 용병센터 모리스 조던(23·204㎝)은 높이는 좋았지만 파워에서 상대팀의 장신자들에게 형편없이 밀리는 모습이었으며 어린 나이 때문인지 지나치게 소극적인 플레이로 일관해 삼보 골 밑에 전혀 힘을 실어주지 못했었다.
또 다른 파트너인 '백인탱크' 와센버그는 대체 용병답지 않게 어시스트, 적극성, 골 결정력 등을 두루 갖추어 그나마 나은 편이었으나 단조로운 공격옵션과 단신자의 한계 때문에 시간이 지날수록 약점을 노출하며 초반의 기세를 이어가지 못하고 있었다.
'역시 문제는 골 밑이야…'
어느 때보다도 골 밑 강화에 신경을 써서 의욕적으로 시작한 원주삼보의 2001-2002시즌.
신기성의 군입대가 큰 구멍으로 남기는 했지만 전체 2순위로 '불꽃 포워드' 안드레 페리를 선발했고 백인임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점프를 보여주던 조나단 비어봄(23·199㎝)을 후순위로 결정하며 적어도 골 밑에서 만큼은 승부가 될 것이라는 강한 자신감을 보였었다.
안드레 페리 같은 경우 IBA, USBL, 스위스, 도미니카 리그 등에서의 엄청난 활약상으로 인해 어느 정도는 검증된 상태라고 할 수 있겠으나 문제는 나이 어린 백인장신자 비어봄이었다.
"겨우 저따위 어린아이를 뽑으려고 나를 포기했는가?"
같은 백임임에도 자신을 뽑지 않고 비어봄을 선택한 것에 대해 강한 섭섭함을 표현했던 와센버그의 한마디에 적잖은 우려를 표명하는 팬들도 있었으나 당시의 대체적인 분위기는 백인이지만 점프력이 좋은 비어봄이 페리와 함께 충분히 골 밑을 지켜줄 것이라는 의견이 대세였다.
그러나 시즌이 시작되기도 전 비어봄은 퇴출되면서 원주삼보에는 서서히 먹구름이 끼기 시작한다. 역시 지난 시즌에도 같은 경우가 있었던지라 똑같은 악몽이 되풀이되는 것은 아닌지 팬들의 우려는 사뭇 컸다.
비어봄의 퇴출에는 기량미달, 향수병으로 인한 적응실패 등 다양한 말이 나돌았는데 정확한 사유에 대해서는 알기가 어렵다.
그리고 허겁지겁 데려온 선수가 해리 리브즈(27·199.8cm).
삼보의 원년을 이끌었던 제이슨 윌리포드를 닮은 듯한(?) 외모는 왠지 묘한 기대감을 불러일으켰고 코트에서의 적극적인 모습은 점점 그것을 커지게 하기에 충분했다.
일단 리브즈의 초반모습은 무척 좋았다.
정확한 미들슛에 삼성센터 무스타파 호프와 정면으로 붙어도 밀리지 않는 몸싸움능력, 거기에 수비수를 달고 덩크까지 성공시키며 기대에 부응해갔다.
원주삼보 역시 해리 리브즈의 뜻밖의 활약에 고무된 듯 크리스털 헤어스턴이라는 여자친구까지 한국으로 초청해 사기를 북돋아주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시간이 지날수록 리브즈의 기량은 점점 바닥을 치기 시작했고 설상가상으로 안면쪽 부상까지 당하고 말았다.
특수 제작된 안면마스크를 쓰고 뛰는 등 나름대로는 투지를 보였으나 기량미달에 부상까지있는 선수를 데리고 시즌을 보내기에는 원주삼보의 입장이 너무도 다급했다.
삼보는 또다시 대체용병을 수혈해야했고 그렇게 들어온 선수가 찰스 맨트(193.7cm)였다.
솔직히 이 선수를 처음 보는 순간 '왜 저런 선수를 뽑았을까?'하는 의구심이 먼저 들었다.
영화배우 뺨치게 잘생긴 모델형의 백인선수였지만 농구가 생김새로 하는 것도 아니고 더욱이 그다지 크지 않은 신장을 가지고있어 가뜩이나 허약한 삼보의 골 밑을 잘 지킬 것 같지 않았던 것이다.
타리그에서의 성적은 그럭저럭 괜찮은 편이었다고 하지만 외곽슛위주의 플레이를 펼치는 스윙맨 스타일이었다고 한다.
'토털농구라도 할 셈인가?'
골 밑이 허약할 것이라는 것은 불을 보듯 뻔했지만 최대한 긍정적으로 생각해서 성공한 백인용병 에릭 이버츠의 플레이를 기대해보았다.
골 밑 수비는 약해도 엄청난 득점력으로 이를 상쇄시켜버리는 식의 스타일을 말이다.
안 되는 집안은 뭘 해도 안되는 것일까…
설상가상으로 찰스 맨트는 치명적인 부상을 숨기고 한국에 온 케이스였다.
12월 12일 국내무대를 밟은 찰스 맨트는 결국 한달도 채우지 못하고 크리스마스인 25일 보따리를 싸야만 했다.
4경기동안 찰스 맨트가 남긴 기록은 게임당평균 9.8득점, 5.8리바운드, 1.3어시스트로 웬만한 토종선수보다도 못한 성적이었다.
결국 원주삼보는 7연패의 악몽에 시달리게되었고 이러한 최악의 성적은 김동욱 감독의 사퇴, 전창진 감독대행 체제의 전환이라는 결과로까지 이어지고 말았다.
마지막으로 데려온 선수의 이름은 조지 워싱턴 대학교출신의 페트릭 은공바(200.1cm·100kg).
해외무대경험이 거의 없는 신인선수라는 것이 다소 걸렸지만 일단 좋은 체격조건에 강해 보이는 인상(?)은 어느 정도는 골 밑을 지켜줄 것이라는 또 한번의 기대를 갖게 만들었다.
그러나 결국 은공바 역시 앞서 퇴출되었던 다른 용병들과 크게 다를바 없었다.
대학리그에서 골 밑을 담당했다는 말이 무색할 만큼 기본기가 안 되어있는 모습에 투지도 그다지 강해 보이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남은 시즌을 같이 가기는 했지만 부상으로 삐걱거리던 찰스 맨트보다도 나을게 전혀 없었다.
총 24게임을 뛰며 평균 7.4득점, 7.7리바운드, 어시스트와 블록슛은 각각 0.1, 0.3이었다.
가뜩이나 국내선수의 전력이 좋지 않은 상태에서 안드레 페리 하나 만으로 버티기에는 타팀들의 골 밑은 너무 강했고 결국 팀 창단이래 최악의 성적인 9위로 정규시즌을 마감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인생지사 새옹지마라고 했던가…
그토록 골 밑 때문에 고생했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원주삼보는 바로 다음 신인드래프트에서 '신인 최대어' 김주성을 잡는 행운을 누렸고 현재는 최강의 골 밑을 갖춘 '트윈타워'의 팀으로 군림하고 있다.
이제는 기억조차 희미해져가고 있는 당시의 골 밑 4대천왕(?).
안타까움도 많고 실망도 컸던 시즌이었지만 '비온 뒤에 땅이 더 굳는다'는 말처럼 그때가 있었기에 현재의 강함도 존재하고 있는 것이라는 생각을 잠시 해본다.
◇ Rome wasn't built in a day 로마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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