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가 아니라 헌법서커스단을 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야당과 여당 사이에서 줄타기 하는 것이 너무 확연히 보인다. 대통령 탄핵은 기각해야겠는데, 그렇다고 야당과 척을 질수도 없으니 배려하겠다는 고려가 지나칠 정도로 노골적이다. 법에 입각해 판단해야 할 헌법재판소인지, 여론과 야당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는 서커스단인지, 도무지 구분이 가지 않는다.
탄핵소추 사유에 왜 위법성이 없는가? 탄핵사유에 대한 사전조사가 필요하다고 하는 것은 하나의 의무다. 탄핵심판은 형사재판의 준용을 받는다. 형사재판에서 피의자의 혐의에 대해 제대로 조사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고발, 고소한다고 하자. 그럴 때도 경찰이나 검찰이 피의사실에 대한 조사를 하는 것이 필수적이지 않다고 할 것인가? 더구나 피의자가 자기변론을 할 기회도 주지 않았고, 충분한 토의도 거치지 않았다. 만일 이런 형사고발 사건이 있다면 그 즉시 국가배상소송 들어갈 것이다. 이런 엉터리 고발사건을 합법적이라고?
더구나 공천권을 두고 협박을 했다. 공천하지 않는다고 협박하며 표결을 강요했다. 형법재판에서 증인이나 고발인들에게 어떠한 이유에서든 고발이나 고소를 강요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그래도 아무 문제 없다고 고발을 받아들이겠는가? 공천이 그리 중요하지 않다고? 우리나라 정치에서, 아니 거의 모든 나라의 정치에서 무소속 후보의 당선비율은 매우 낮다. 이유는 투표에 있어 정당의 선택 여부도 큰 비중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공천을 받지 못한다고 생각해보라. 그래도 정치적으로 아무런 위협이 되지 않는다고 할 수 있는가?
다른 부분은 굳이 따지지 않겠다. 선거법 위반이나 헌법수호의무 어쩌고 하는 내용들은 굳이 따질 필요도 없다고 생각한다. 탄핵소추 자체가 부당한 이상 탄핵재판의 내용은 그 의미를 잃기 때문이다. 있을 이유가 없는 재판의 판결내용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그저 심심풀이 뽑기점 이상은 아닌 것이다. 따라서 탄핵소추의 적법성에 대해 손을 들어준 이 부분이 탄핵재판 판결문에서 가장 중요하고, 문제가 되는 부분이라 할 수 있다.
탄핵소추 자체를 정당한 것으로 인정하는 헌법재판소의 판결 덕분에 탄핵안을 추진한 세력들이 기가 산 모양이다. 지금도 탄핵 자체는 아무 문제가 없다며 큰소리 치고 있다. 공천권을 가지고 협박까지 한 주제에 "국회의 판단"이라며 적반하장 격으로 의기양양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그러면서 탄핵소추에 대해 사과하지 못하겠단다. 그들에게 헌법재판소의 판결은 그들의 행위를 정당화시켜주는 "면죄부"가 되었던 것이다. 헌법재판소의 판결의 결과란 게 대충 이렇다. 어찌 문제삼지 않을 수 있겠는가?
판결문으로 추측컨데 헌법재판소는 아무래도 국민여론을 잘못 이해하고 있었던 것같다. 국민들이 탄핵사실 자체에 분노한 것이라 여기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탄핵만 기각하면 모든 게 해결될 것이라고, 그러면 될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래서 이런 판결이 나온 것일테고. 법전만 보느라 머리가 굳어버린 모양이다.
생각해보라. 노무현 지지자라고 해봐야 30% 남짓일텐데 노무현 탄핵했다고 열받을 일이 없지 않은가? 국민들이 분노한 것은 탄핵소추 자체가 갖는 반민주적, 반국민적, 반헌법적 과정 때문이다. 당리당략 때문에 탄핵을 추진하고, 그것을 통과시키기 위해 국회의원들을 협박까지 했던 그 염치를 모르는 뻔뻔함과 헌정질서를 유린하는 전횡에 분노한 것이다. 그래서 노무현을 지지하지 않던 시민들까지 그 추운 밤에 광화문에 나가 촛불을 밝혔던 것이다.
그런데 헌법재판소는 이러한 민의를 제대로 읽지 못했다. 아니 안했다. 그래서 그들은 탄핵 기각이라는 결정만 던져주면 국민들이 만족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래서 국민들에게 탄핵기각을 던져주며 다른 한 편으로 같은 기득권집단인 국회의원들을 보호하려 했던 것이다. 그들의 탈법적, 월권적 전횡을 정당한 것으로 이정해주는 것으로 국민 여론에 응한 데 대한 균형을 맞추려 한 것이다. 그 비겁하고 교활한 줄타기의 결과가 이번 헌법재판소의 판결이다.
사법은 칼이어야 한다. 불의를 가르고, 질서를 바로잡으며, 동시에 자기 자신도 경계하는 잘 벼려진 칼이어야 한다. 사법부가 독립된 삼권분립의 한 축으로서 존재하고, 또 인정받기 위해서는 스스로 보다 예리하고, 보다 선명한 칼이 되어야 한다. 비겁하게 이리저리 눈치나 보며, 정치적 배려나 하는 무딘 칼은 칼로서의 자격이 없다. 사법으로서의 자격이 없다. 지금같은 모습으로는 사법부의 미래는 없다고 단언한다.
출처- 미디어몹 (하얀검댕이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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